하버드대 교수가 한국 고대사 연구를 포기한 까닭 | |
보스톤코리아 2016-10-20, 21:38:31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하버드 대학 마크 바잉턴 교수가 올해 말로 한국 고대사 연구를 접게 됐다. 그는 세계를 통틀어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미국인 교수 3인중의 하나다. 지난 2006년부터 한국교류재단과 한국동북아 역사재단의 지원으로 고대한국사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 이하 EKP)를 진행해왔다.
그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사 연구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고, 하버드에서 고대사 관련 각종 컨퍼런스 및 강의를 개최해왔다. 미국 역사학계와 학도들은 고대 한국사의 갈증을 이를 통해 해갈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4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 중단 선언으로 EKP사업은 종료됐으며, 월급의 60%를 지원하던 한국교류재단의 계약도 2017년 1월 종료된다.
미국내 중국과 일본에 관한 서적은 풍부한 반면 한국은 극소수다. 미국 학생들이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파악하려면 풍부한 자료를 보유한 중국과 일본의 서적을 통해 한국을 바라보게 된다. 왜곡된 일본과 중국의 시선으로 한국을 보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한국역사를 도둑맞는 일이나 다름없다.
바잉턴 교수는 지난 5월 인터뷰에서 “고대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고대 한국사에 관심 있어 하지만 연구자료가 희박하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너무 집중적 연구여서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그래서 서양 학자들은 잘 번역된 1930년대 일본학자들의 번역본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보게 된다. 일본사는 (식민사관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에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한국학이 좋아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스스로 한국 고대사를 연구했던 그다. 1983년부터 공군으로 1년간 대구외곽에서 근무한 게 인연이었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대학시절 여름 동안 연세어학당 발간 한국 문법책을 사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1986년에서 90년까지 삼국사기를 번역키도 했다. 그런 그를 한국이 키우기 위해 국가적인 안목으로 지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학자금 대출을 통해 하버드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고도 그는 한국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는 “몇 년 동안 6-7번이나 지원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한국에 갈 때면 비용을 스스로 부담했다.”고 밝혔다.
전인미답의 길을 홀로 걸어온 그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청강하면서 미국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분야를 개척하겠다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얻어, 하버드에서 EKP를 시작한 후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한국교류 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은 그의 하버드 연구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끼고 지원을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순조로웠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37번의 고대사 강의 시리즈, 9번의 워크샵이 이뤄졌다. 워크샵에서는 46명이 주제발표를 하고 50명이 참가해 토론을 벌였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한국 주요 학자들의 논문으로 구성된 3권의 고대사 서적, 그리고 3권의 고대한국프로젝트 서적 3권 등 6권을 발행했다. 현재는 고구려 관계서적은 지난 여름 발간됐으며 한일관계를 다룬 1권의 서적 마감단계다.
호사다마. 그의 프로젝트는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균열이 생겼다. 물론 논란이 있는 문제였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서적 하나가 모든 프로젝트를 좌초시킬 지는 몰랐다. 바잉턴 교수는 “한사군에 대한 워크샵과 논문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덕일로 대표되는 사이비역사학과 이종찬으로 대표되는 극우정치세력이 국회에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발단은 바잉턴 교수가 2013년 영문본 <한국고대사에서의 한군현>을 발간하면서 시작됐다. 고대한국사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의 일환으로 발간된 서적이다. 바잉턴 교수 외 8명의 역사학자들의 논문이 영어로 소개된 이 책은 낙랑의 위치가 현재의 평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서적을 접한 이덕일 한가람 연구소장을 필두로 한 재야 민족사학계가 그의 프로젝트를 동북공정을 대변하는 사업으로 규정하면서 그는 식민사학을 서양에 전달하는 사람으로 오도되어 버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덕일 소장이 중심이 된 <식민사학해체국민운동본부>는 "이 책(한국고대사에서의 한군현)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 북부는 중국 식민지가 되고 남부는 일본 식민지가 된다"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정립한 식민사학을 국가기관이 세계 학생과 재외공관에 배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6월 국회에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2014년 3월 <식민사학해체국민운동본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를 지원해 2014년에 발간한 <한국고대사에서의 한군현>의 내용에 한국 고대사에 대한 식민사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비난하고, 재단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2014년 9월 감사에 착수해 2007년부터 2013년 2월까지 한국고대사 연구를 지원하면서 2차례나 심사 절차를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바잉턴 교수가 중국측 동북공정에 부응했다는 이덕일 소장의 주장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공을 역사학계에 넘겼다.
이를 두고 연합뉴스는 2015년 2월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심사도 없이 25만달러 '펑펑'>이란 제목으로 보도하며 제목에서 한국고대사프로젝트를 돈낭비로 몰아버렸다. 이외 상당수 한국언론도 비슷한 논조로 보도했다. 바잉턴 교수는 “2014년부터 계약 연장을 논의하던 동북아역사재단은 국회, 언론 등의 전방위 압박을 받자 돌연 EKP 연구비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균형된 사관을 가지고 충분히 합리적인 고고학적 유물 및 역사 문헌 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해 나온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과연 그 책을 읽고 비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지도만 봤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2014년 당시 그의 입장이 주류사학계의 변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EKP는 정말 중요한 일이며 그동안 잘 진행되어 왔는데 한국의 주류 사학자들 중에 아무도 나서서 변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프고 분노할 일이었다”고 주류사학자들의 침묵을 강하게 성토했다.
유일하게 중국고대사를 연구하는 단국대학 심재훈 교수만 올해 초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EKP지원 중단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심 교수는 “연구자로서 양심을 걸고 동북아역사재단의 EKP지원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 특유의 조급함, 냄비근성, 역사왜소 콤플렉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왜곡된 여론을 형성했던 것 같다. 정말 전세계적 망신이다”라고 그의 페이스북에 썼다. 심교수는 지난 여름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라는 책을 출간해 EKP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다뤘다.
이와 더불어 올 초부터 젊은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고대사를 주장하는 이른바 ‘국뽕역사’에 대한 학문적 논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역사 비평에 실린 안정준의 <오늘날의 낙랑연구>, 기경량의 <사이비역사학과 역사 파시즘>, 위가야의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 세 편의 논문은 주류사학자들의 침묵을 떨치고 재야 역사학계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역사학자 안정준 박사는 <오늘날의 낙랑연구>라는 논문에서 “학계의 대다수 전공자들의 의견이 무시당하고, 정치권과 일부 비전공자들의 주장이 대등하게, 혹은 그 이상 조명되는 이 ‘이상한’ 역사논쟁은 일반 대중들이 지니고 있는 민족주의적 감성에 기대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안 박사는 “한사군의 설치와 변천상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문헌기록이 없는데다 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 설이 병립한 것”이라며 일제시대에 발굴한 낙랑고분 70여기, 해방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고분 1000여기를 통해 발굴된 유적을 바탕으로 재평양설을 주장했다.
위가야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덕일 소장의 여러 주장을 반박하고 “한사군 한반도설은 중국 사서의 주석가들 이래 조선 후기에 역사지리학을 연구한 실학자들, 그리고 일본인 역사학자들에 이르기 까지 오랜 기간 강화되고 그 타당성을 인정받아 온 학설일 뿐 일제 식민사학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위대한 고대사 주장의 근본적인 출발점이 “사이비 역사학의 강박관념”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몰락시 중국에 대해 한반도의 영토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역사 연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사를 고대사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위박사는 “역사가 현실의 욕구에 복무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역사만 쓰는데 몰두하는 것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잉턴 교수는 “진짜 식민사관은 일본학자들이 한국에 대해서 쓴 것이다. 물론 모든 일본학자들의 연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며 일부는 좋은 학문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도 있다. 과거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이뤄졌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누가 그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중국 주류학자 ‘동북공정’ 인정안해
E.H. 카의 말처럼 ‘역사는 현실과의 대화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 뿐만 아니라 현실의 정치학, 사회학, 철학과 교류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문적 영역에서의 평가일 뿐이다. 이와 달리 학문의 분장을 하고 역사학을 정치적 목적에 맞도록 불러낸 것이 식민사학이요 동북공정이다. 역사학 고증 이전에 뚜렷한 목적이 있고 거기에 역사를 꿰맞춘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바잉턴 교수는 “동북공정은 정치적으로 의도된 움직임이었고 1992년부터 단 5년만 지속됐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여전히 동북공정이 진행중인 것으로 아는데 오래 전에 끝났다. 중국 주류학자들도 동북공정에 참여했던 주앙부, 장박천 등 고구려가 중국소유라는 역사를 쓴 학자들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 언론은 2003부터 동북공정을 거론했다. 바잉턴 교수는 1999년부터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왔으며 2002년 한국에 발표했으나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당시 동북공정은 현존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존하는 위협으로 묘사했다.
이덕일 소장과 일부 국회의원들은 역사적인 논의보다 바잉턴 교수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덕일 소장은 책에서 바잉턴 교수가 대학 학부시절 컴퓨터를 전공했는데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공격했다. 한국 국회는 바잉턴 교수가 길림대학 유학시절 지도교수였던 위존성 교수가 동북공정에 이론적 방향을 제시했던 사람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바잉턴 교수는 “국회에서는 동북공정에서 자금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내가 1997년부터 98년까지 위존성 교수 밑에서 공부했을 때 동북공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위 교수도 처음에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강제로 합류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인했다.
그는 “이덕일을 비롯한 많은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이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낙랑이 평양이라고 하면 그것이 동북공정이라 주장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이덕일 소장의 주장을 믿는 것이 쉽고 이런 감정은 결코 책을 읽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길림대학에 합류한 것은 수없이 지원한 한국대학에서 모두 거절당한 후였다. 그나마 고구려와 부여의 유물을 연구할 수 있는 길림대학에서 전액장학금을 주며 지원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공부를 접게 됐다. 그를 비난한 국회나 이덕일 등은 한 번도 당사자인 그에게 직접 사실확인을 한 적이 없다.
세시간 가까운 인터뷰에서 자신이 준비한 모든 내용을 털어놓은 바잉턴 교수는 “내년 1월이면 이방의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된다”고 밝혔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국을 연구한다면 지원이 없지만 중국쪽을 연구한다면 여전히 미국내에서 자금 지원이 주어진다. 그는 케임브리지 연구소를 설립해 이제 자신의 살길을 찾아가야 한다. 그는 내년이면 한국전문가에서 중국전문가로 타이틀을 갈아타게 될지도 모른다. 식민사학 해체 운동본부와 한국국회가 원하던 것이 겨우 이것인가.
국회의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의 활동을 두고 조선일보 이선민 선임기자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위원회의 부작용으로 “정치가 학문에 개입하는 현상이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상고사를 둘러싼 논란에 “이성적 논의보다 정서적 공방이 잦다”는 것이다.
바잉턴 교수는 이렇게 평가한다. “남한 정부는 동아시아를 공부하는 서양학자들에게 아주 나쁜 인식을 주고 있다. 북한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터무니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좋은 학자들이 설자리를 잃고 강요당하고 있다.”
많은 하버드 졸업생들은 미국의 정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학부 때 한국 고대사를 들을 기회도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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