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린 교수 / UBC 아시아학과 부교수 |
멈추면 끝난다
모르던 한국 사람을 만날 때 가끔 겪는 필자의 경험담이다. 대학에서 일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방은 의외라는 듯, 두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일본말도 좀 할 줄 아세요?" 거기에다 필자의 학부 전공이 종교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종교학을 전공했는데, 일본역사를?" 그리고는 자문자답이 이어지는데 연령에 따라 그것은 두 부류이다.
식민지 치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대개 "아, 그 일본 역사, 우리 다 배워 압니다." 식민지 이후 세대는 "그까짓 일본 역사 뭐 할게 좀 있어요?" 약간은 단순화시켰지만, 이러한 범위를 크게 벗어난 질의와 자문자답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일본사를 전공하는 학자에게 일본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은,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영어를 좀 읽을 줄 아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치기로 돌리더라도, 필자가 좀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다음 질문들이다. '종교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그리고 "아, 그까짓 것"이라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그 배후의 의식에 관한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들을 서양 사람들로부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대학 학부에서 소위 전공을 공부하는 기간은 길어야 불과 2-3년간이다. 20대 초반의 2-3년, 그것을 절대적 잣대로 삼아 그 후의 인생을 재단하려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때문에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바른" 전공을 해야 하고, 거기에 그 좋다는 "고시"까지 붙으면, 인생은 그것으로 끝난다.
그래서인지 그 후 10년, 20년에 걸쳐 누가 무슨 노력을 했고,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과 애정이 없다. 20대 초반에 정지한 시간을 밑천으로 삼아 타인을 압도하려 하는 것이 학력주의이고, 연줄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 그까짓 것"하는 식으로 지적으로도 성장이 멈추어 있다.
해마다 나의 일본사 수업에는 60세는 넘었으리라 보이는 만년 학생 한 둘이 늘 청강을 한다. 그들의 태도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열심이다. 정년 퇴직을 한 분들이다. 그들에게는 정지한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사회는 또한 그들의 시간이 정지하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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