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1

중국인이 중국을 성찰하는 책 [주변의 상실]

우리가 찾아야 할 주변 - 오마이뉴스



우리가 찾아야 할 주변중국인이 중국을 성찰하는 책 <주변의 상실>
23.01.11 13:49l최종 업데이트 23.01.11 13:49l
조건준(kcwc)


페이스북 친구인 기자가 <주변의 상실 :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책을 소개한 글을 보니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마침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정한 곁'이고 그것이 바로 노조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 터였다. 그런데 '주변의 상실'이라는 책 제목에서 뭔가 강한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책에서 쓴 용어는 '부근의 소실'이지만 '주변의 상실'이 훨씬 한국에 익숙한 용어로 보인다.

500페이지를 넘어서는 좀 두꺼운 책이다. 그러나 책이 두껍다고 어려운 것은 아니고 얇다고 쉬운 것도 아니다. 이책은 두껍지만 대화를 기록해서 쉬운 측면이 있다. 물론 다루는 주제가 쉬운 주제만은 아니다. 중국 밖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중국인이 중국 자랑하는 얘기에 비해 중국인이 중국을 성찰하는 시각은 접하기 드물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왜 국뽕에 빠질까


▲ 주변의 상실 | 샹바오 | 글항아리


하늘에 뜬 하나의 달을 비춘 수많은 호수에도 달이 뜬다. 그러나 하나의 달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호수에 다르게 뜬 달이다. 하나의 달이라는 통일성이 있지만 저마다 다른 호수에 뜨는 다름을 '천 개의 호수를 비추는 달빛'으로 표현하는 것이 맘에 든다. 진실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포근한 감성으로 다가올수록 친근하다.


그런데 이 문구를 보자 학창 시절에 배웠던 어렴풋한 기억 속에 천개의 강에 뜬 달을 의미하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이 떠올랐다. 본래는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공덕을 칭송하는 표현이었다고 하는데 백성에게 미치는 임금님의 크나큰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성은 호수고 달은 임금님이다.

하지만 샹바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고리타분한 옛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달과 호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개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는 개인과 다양한 집단들로 이뤄진 수많은 단위의 사회가 있다. 국가는 강력하고 개인은 약하다.

그래서 개인들 곁엔 다양한 집단들이 있어야 개인을 억누를 수 있는 국가의 횡포를 막고 더 좋은 국가가 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시장에 뜬 달처럼 기업이 있다면 막강한 기업에 저항하기 힘든 지원들이 있다. 기업의 횡포를 막고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 사이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

샹바오는 왜 우리가 국가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하냐고 묻는다. 우리는 보통사람이고 대부분 국가 권력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 주변과 일상의 구체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세계 최고 강대국이 되려는 국뽕에 빠져서 세상을 보는 중국인들에게 성찰을 촉구한다. "어쩌면 자기 생활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거대한 국가와 민족의 모자를 눌러써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진짜 영웅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생활의 매일 매일을 바꿔나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게 딱 내 생각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거대한 혁명을 말하는 사람보다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바꾸는 사람이 중요하다.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체적 삶이 바뀌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거대하고 특별한 혁명과 대비해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바꾸는 보통혁명, 즉 노멀 레볼루션이라 표현해 왔다.

초연결 사회에서 주변도 넓어졌을까

온라인 접속이 일상이 된 세계를 '초연결 사회'라고 할 때에, 오프라인의 곁을 대체하거나 혹은 온라인을 통해 좁았던 곁을 널리 확장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기억에 박혔던, 스마트폰 세태를 비판한 그림이 떠오른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 올리기 위해 온통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주변 사람들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다만 그림이었을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대화는 단절된 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일상에서 자주 본다.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에 멈출까. 곁의 사람 일상과 고민보다 온라인을 통해 유명인들 일상과 고민,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곁에 두게 된다. 오프라인의 대면 관계를 온라인의 비대면 관계가 대체할 수 없다. 대면 관계는 오감으로 교감하는 종합적인 관계라면 비대면 관계는 영상이나 소리나 문자로 이뤄지는 부분적인 관계다.

기업에 취업하면서 단단한 곁이 생길까. '정'보다 '돈' 먼저인 관계에서 취업하는 순간 다정한 곁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냉정한 주변에 휩싸이곤 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온라인 기술은 N번방의 성 착취 라인이 되고, 익명성과 악플에 의한 혐오 라인이 되며, 플랫폼 노동 착취 라인이 된다. 물론 온라인 기술 그 자체는 잘못이 없다. 다만 그 기술이 작동하는 구조가 문제다.

적적한 노부모에게 드리는 밤 전화는 '정' 라인이지만, 퇴근 후 직장 상사의 업무지시 톡은 '악' 라인이 된다. 이익 경쟁을 넘어선 존중하는 상호작용이 강해질 때에 비로소 다정한 곁이 된다. 이익 경쟁 공장을 권리 존중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다. 바로 그 무엇 중의 하나가 노조다. 노조는 바로 곁의 사람들과 만드는 사회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찾아야 할 주변이 바로 이런 것이다.

멀리 넓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고 주변을 보라고 하면 작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을 보는 것이야말로 실천적이고 구체적이며 진짜 크고 중요한 얘기다. 샹바오는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거창하고 쓸모없는 얘기들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고 주변을 되찾을 것을 제안한다. 플랫폼 경제에서 노동은 옆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일이 아니라 분산된 흐름이다.

이 또한 주변의 상실이다. 그는 사회를 잃고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 사람의 재생산, 포퓰리즘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신냉전을 얘기한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덩치가 크고 인구만 많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건준 아유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책 만나기'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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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국이 ‘국뽕’ 취하는 이유,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경쟁

등록 :2022-11-21 14:58수정 :2022-12-1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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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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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주변의 상실> 펴낸 중국 출신 인류학자 샹뱌오와
한국 조문영 교수, 한·중 경쟁사회를 진단하다

노먼 콜래드가 찍은 샹뱌오의 사진을 사용해 디자인한 <주변의 상실> 책 표지 이미지. 글항아리 제공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직장을 얻고, 집을 사고, 계속 의미가 외재적인 것으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 시민들이 일상의 사소한 일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자기 자녀들이 베이징으로 가기를 원하게 되죠.”




중국 출신 인류학자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장이 2020년 펴낸 <방법으로서의 자기>에서 진단한 중국 사회의 모습이다. 늘 거창한 담론보다는 구체적인 생활에 천착했던 샹뱌오 소장의 연구 태도를 담은 책은 중국에서 20만 부 넘게 팔리며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책은 2022년 10월 말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샹뱌오 소장이 들여다본 중국 사회의 과열 경쟁은 한국 사회와 어떻게 닿아 있는가.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샹뱌오 소장이 화상으로 만나, 한·중 두 나라의 경쟁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경쟁에 참여했으나 기본적인 바람도 이루지 못한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한 중국 사회의 극한 경쟁은 1978년 급격한 시장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개혁·개방으로 10억 인민이 거의 동시에 시장경쟁에 뛰어들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주위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보류하는 심리를 갖게 됐다.”(샹뱌오 소장) 이때 중심과 주변은 상대적으로 사회자원이 쏠린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일컫는 비유적 개념이다.



자원 배분을 놓고 격렬한 경쟁이 펼쳐진 지 40여 년. 중국 사회 곳곳에서 피로가 축적되며 경쟁을 자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 중국 사회엔 ‘(경쟁에) 말려들었다’는 뜻의 ‘네이쥐안’(內卷), 중국 명문대(일명 ‘985 공정’)를 나와도 양질의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뜻의 ‘985 폐기물’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결국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토록 많은 경쟁에 참여했으나 가장 기본적인 바람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샹뱌오 소장의 진단이다.



계층이동을 향한 격렬한 경쟁은 교육도 그 수단으로 둔갑시켰다. 중국에선 대학 입시를 치른 수험생과 석·박사 과정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드물지 않다. “이유는 경쟁 그 자체에 실패해서가 아닙니다.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 속에서 자신의 경쟁 실패를 설명할 수 없었거나, 혹은 왜 이 경쟁을 원치 않는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샹뱌오 소장) 이런 분위기는 압축성장을 겪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문영 교수는 “한국 청년들도 ‘정지 버튼 없는 러닝머신에서 계속 뛰는’, 이른바 보상이 명확지도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경쟁에 처해 있다. 교육자본을 축적했지만 정규직-비정규직의 뚜렷한 이중 노동시장 속에서 극도의 취업 불안정을 경험하는 청년이 스스로를 ‘약자’로 출현시켰다”고 짚었다.



조 교수는 다만 ‘상류층 진입 경쟁의 피로감’을 과도하게 보편화하는 것은 경계한다. “그것도 교육자본을 어느 정도 갖춘 청년들 얘기고요. 플랫폼 배달노동자가 호소하는 경쟁의 피로함은 정보기술(IT) 업계 청년이 호소하는 경쟁의 피로함과 사회적 보상의 정도가 다릅니다. IT 업계 청년을 비롯한 대학생 청년이 자기 불안을 토로하는 공론장은 많아졌으나,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난 노동자 청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는 또한 주류 담론에서 벗어나 기본소득운동이나 기후정의운동 등 자기만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청년도 한국에서 꾸준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샹뱌오 소장은 중국 사회에서 그러한 시도는 아직 주류가 아니며 경쟁 이외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이가 여전히 대다수라고 설명한다. “중국도 ‘탕핑’(躺平·소득 없는 경쟁보단 누워 있는 게 낫다는 뜻) 같은 용어가 생겨나긴 했습니다. 다만 경쟁에 저항하기보다는 일종의 감정 처리에 머무르는 수준이죠. 경쟁에서 탈출한 운동가나 귀농인은 소수의 엘리트일 가능성이 크고요. 지금은 청년들이 (실패했다는) 감정만 있고 명확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분석 도구를 줘야 합니다.”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장. 샹뱌오 제공


‘자기 이해’의 빈자리를 채우는 ‘남의 이해’, 국뽕

자기 이해의 빈자리는 때때로 ‘남의 이해’가 채운다. 대표적 예가 국가주의다.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공격적인 중국 청년 인터넷 부대 ‘샤오펀훙’(小粉紅)은 애국이라는 구호 아래 중국 위상에 흠집을 낸다고 판단되는 ‘적’을 무차별 공격한다. 한국 가수 이효리씨가 2020년 방송에 출연해 “예명으로 ‘마오’ 어떠냐”고 말했다가 샤오펀훙의 악성 댓글 공격에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마비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샹뱌오 소장은 이런 현상도 ‘자기 철학 부재’의 이면이라고 진단한다. “우리 모두 국가권력과 관계없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국가 정책에 익숙하지도 않죠. 그런데 왜 꼭 국가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하나요? 반드시 ‘중국 담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자기 생활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거대한 국가와 민족의 모자를 눌러써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죠.”



한국도 ‘케이(K)-방역’과 각종 한류 문화 콘텐츠 열풍을 타고 ‘국뽕’ 바람이 거셌다. 샤오펀훙처럼 외부를 공격하는 양상은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드높은 국제사회 위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SNS에서 끝없이 재생산됐다.



새로운 가치관으로 부상한,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온라인·사회 내 소수집단에 대한 언어적 차별을 피하자는 주장)도 공론장의 한 축을 차지한다. 샹뱌오 소장은 이 역시 개인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기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윤리적으로 잘 정돈된 ‘입장’이 꼭 개인이 느끼는 경험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학력 중산층의 가치가 거의 공공 담론을 독점하고 있고 ‘진짜’에 대한 유일한 표현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싫어하는 건 그게 틀렸거나 거짓이라서가 아닙니다. 너무 속 빈 강정 같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금 모두가 천천히 참된 방식으로 자기 경험을 써내려가기 시작(해야)합니다. 많이 쓰다보면 진짜가 남을 겁니다. 그때 ‘쪼잔하게’ 다투는 식의 태도는 지나가고 천천히 참된 느낌과 정말 중요한 일을 결합해서 볼 수 있겠죠.”



성차별, 기후위기 등 논쟁적 현안에 대한 개인의 파편적인 경험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다. 하지만 온라인 공론장이 가진, 폭발적이고 즉각적인 소통의 위험성도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다름을 조율할 수 있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논쟁하고 토론하면서 상대에게 반성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줘야 하죠. 온라인상에서는 그게 거의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을 일시에 폭발시켜 상대방을 응징하지 않으면 내가 진다, 이런 조바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조문영 교수의 말이다.





조문영 연세대 교수. 김진수 선임기자


개인의 의미와 존엄을 되찾는 방법

순간의 관심을 잡아끄는 SNS의 특성도 소통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SNS는 그 특성상 주제를 깊이 다루지 않고 자극적인 드라마를 다루듯 고도로 상징화하고 상품화합니다. 그래야 유통이 가능하니까요. 그 안에서 우리는 이모티콘 쓰듯 ‘싫다’ ‘좋다’ 선언만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주고받는 게 아니라요.”(샹뱌오 소장)



소모적 소통을 넘어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샹뱌오 소장은 개인의 ‘주변’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원자적인 개인으로서 자신한테 큰 관심을 갖다가도 때로 거대한 사건에 대해 갑자기 거창한 논평을 합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가족 아니면 전세계에만 관심을 두지요. 하지만 개인의 의미와 존엄을 되찾는 방법은 개인이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개인의 존엄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그가 강조하는 ‘주변’은 동네 이웃, 단골 가게 주인, 아파트 경비원 등 개인이 물리적으로 몸담은 공동체다. 이들이 작은 개인과 큰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 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샹뱌오 소장이 책 제목을 <방법으로서의 자기>라고 붙인 취지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세상 이해의 도구로 삼자는 것이지만, 이때의 ‘자기’는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네트워크”(조문영 교수 추천사)인 셈이다.



“경비원이나 청소미화원 등 평범한 이웃의 삶이 자기가 겉으로 추측하던 것과는 얼마나 다른지, 또 마을 사람들끼리 하는 말다툼에는 어떤 싸움의 기술이 있는지 이런 것들이 실은 아주 재미있는 (연구) 주제거든요. 학생들이 런던이나 뉴욕은 예술적이고 농촌은 따분하다고 느끼는데 이렇게 접근해보면 농촌에도 풍부한 서사가 숨어 있습니다. 관건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펜이 아닌 ‘자기만의 펜’으로 세상을 보는 겁니다.”



인류의 생활과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는 문화인류학은 그런 점에서 좋은 도구가 된다. 샹뱌오 소장은 자기 주변을 소재로 한 논픽션 글쓰기나 일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뒤집어 보는 과학소설(SF) 읽기 등을 통해 청년이 자신의 주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조문영 교수 역시 대학 수업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끼리 교류하고 질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한 적이 있다.





<한겨레21> 줌 회의 갈무리.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맨 위 왼쪽)와 샹뱌오 소장(둘째 줄 오른쪽)이 대담을 나눴다. 책 <주변의 상실>을 한국어로 옮긴 우자한 국문학과 박사과정 학생(둘째 줄 왼쪽)과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맨 아래)가 대담 통역을 했다. 영상 화면 갈무리


디지털 플랫폼이 창출한 새로운 ‘주변’

조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이 새로 창출하는 ‘주변’의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높은 집값과 잦은 이동으로 한곳에 정착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물리적 주변에 애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이에 차선책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의 ‘주변’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자기 주변(부근)을 만들어가는 청년을 많이 만난다. 예를 들어 부산에 정착한 젊은 여성 예술가들이 의외로 부산의 지역 예술가들보다 서울 쪽 젊은 여성 활동가들과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지내더라. 이유를 들어보니 부산 토착 예술가 모임은 아직 가부장 문화나 인맥 중심 문화가 강해서 교감하기 어려웠다는 거다. 물리적 주변에만 머무르지 않고 각자가 애정을 담을 만한 공간을 온·오프라인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해내는 흐름이 아닐까.”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글로벌 로컬리티의 대가

샹뱌오는?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장은 중국 베이징 근교에서 일하는 저장성 출신 노동자들의 거주촌을 6년에 걸쳐 연구해 펴낸 석사논문 ‘저장촌 연구’로 처음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 출신 정보기술(IT) 인재들의 외국 이민 등을 소재로 세계의 경제 교류와 지역 ‘로컬리티’의 관계를 분석한 박사논문 ‘글로벌 헤드헌팅’도 미국 인류학계에서 영예로 여기는 ‘리즈상’을 받았다. 2020년 펴낸 책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20만 부 넘게 팔리며 중국 대중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류학 교수로도 재직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과 중국을 주 무대로 빈곤 연구에 천착한 연구자다. 서울 관악구 빈민 지역 ‘난곡’에서 가난과 복지의 관계를 관찰한 내용을 석사논문으로 써서 주목받았다. 이후 중국 둥베이지방 사회주의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 과정을 박사논문으로 썼고, 2014년 중국 북동쪽 지역의 도시 빈곤을 주제로 연구논문을 써서 리즈상을 받았다. <헬조선 인 앤 아웃>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등 빈곤을 다룬 다양한 책을 썼고 2022년 11월 빈곤의 여러 층위를 탐색한 책 <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글항아리)을 펴냈다.

관련기사How a survival-of-the-fittest culture kindles jingoism among Koreans,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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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상실 - 방법으로서의 자기

샹뱌오 (지은이), 김유익, 김명준, 우자한 (옮긴이), 우치 (대담), 글항아리(2022)

주변의 상실 - 방법으로서의 자기 
샹뱌오 (지은이),김유익,김명준,우자한 (옮긴이),우치 (대담)글항아리2022-10-25

Sales Point : 2,370 

552쪽

책소개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삶과 연구를 대담 형식으로 담아낸 저서. 독일의 『디차이트』는 최근 옥스퍼드대학 교수직에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샹뱌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스타 인류학자”이자 “중국의 새로운 사상가”라고 소개했다.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샹뱌오의 이러한 글로벌한 학문적 여정과 혼돈의 시대에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색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 출간된 인터뷰집 『방법으로서의 자기』, 그의 미디어 인터뷰와 강연 원고, 번역자의 논평을 한데 묶어 가장 풍부한 형태로 샹뱌오의 문제의식과 연구를 보여준다.


목차
추천사: 혼돈과 살아가는 힘_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제1부
1. 베이징 방담
사고와 탐색을 도울 도구 | 어린 시절의 기억과 도경圖景 | 1980년대 | 베이징 대학생이 느끼는 초조함 | ‘저장촌’ 연구 | 청년들의 ‘상喪 문화’ | 주변과 중심 | 개인적인 위기 |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역글로벌라이제이션 | 1980년대를 들어 1980년대를 비판하다 | 비판이란 무엇인가? | 공감하는 학문

2. 옥스퍼드 방담
자신을 분석하는 사회과학 | 옥스퍼드의 기억 | 심리적 거리두기와 직접성 | 인류학 학계 | 논픽션 문학
학문은 천직이 아니다 | 민족과 포퓰리즘 | 싱가포르 계몽 | 식물 뿌리가 뒤엉킨 ‘토양생태계’식의 공동체 | 트랜스내셔널한 ‘완전체’의 작은 세계 | 대학은 예외를 찾는 곳 | 개인의 경험을 문제로 삼기 | 새로운 연구 | 공동의 이상 | ‘향신’을 방법으로 삼다

3. 원저우 방담
왜 초조함을 느낄까 | 사람의 재생산 | 계급 유동의 역설 | 새로운 언어를 찾아서 | 중개업으로서의 인류학 | 다시 향신을 말하다

제2부

996과 소외異化: 도시의 새로운 빈곤층, 경제적 빈곤과 의미의 빈곤

세 가지 질문
플랫폼 경제의 역노동 과정
부근의 소실: 즉각성, 관계, 정신
네이쥐안을 말하다: 실패와 퇴장이 허용되지 않는 경쟁더보기

책속에서
P. 25 제 어린 시절은 이런 삼중 생활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첫째는 빈민가, 둘째는 외할아버지의 몰락한 귀족 정신세계,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부모님이 사는 학교 안. 여기서는 체제 내의 정통 담론을 들을 수 있었죠. 이 삼중 세계는 서로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생활에 많은 차원이 존재한다는 걸 의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P. 33 향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위치한 곳의 소우주 안에서 일종의 ‘완전체’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외재한 시스템의 인정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바깥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지, 그가 쓴 글이 널리 유포되는지 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자신의 작은 세계의 사정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일상 세계의 디테일을 신경 쓴다는 의미입니다.  접기
P. 74~75 어떤 지식인들의 담론은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런 글들의 담론 자체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어쨌든 이 이야기에 대응하는 사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이렇듯 꽤 까다로운 독자입니다. 아마 이게 제 강점일 것입니다. 만일 뭔가 진짜 알맹이가 없다면 저를 속일 수 없습니다. 저는 말을 꽉 쥐어짜서 그 아래 도대체 무슨 영양가 있는 것이 숨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의 클래식한 르포르타주 작법을 좋아합니다.  접기
P. 108 현재의 모순을 부여잡고 이 모순에서 출발해 과거의 모순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역사로 들어갈 수 있고 역사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들어가면 일종의 연관되고, 안정되고, 중국이라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역사는 필요 없어집니다. 중국의 역사는 아마 단절된 것처럼 보일 겁니다. 예컨대 하이난성의 문제는 아마 말레이시아와 타이에 더 가까워질 겁니다. 왜냐하면 원래 역사적으로 관계가 밀접했기 때문이지요. 사회 공간의 전개와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새롭게 정의된 행정 공간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의 안정된 ‘중국 서술’의 존재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의 안정된 서술이 없는 것이 더 재미있고, 더 많은 것을 보게 해줍니다.  접기
P. 110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과제를 수행했는데, 스스로의 글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뭔가 ‘임팩트’가 있고, 깊이 있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써놓고 나면 피곤하기만 했죠. 이렇게 해봤다가 저렇게 해봤다가, 이 프레임 저 프레임을 사용했다가, 이 이론 저 이론을 써봤다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미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고 생각도 많이 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글을 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놓을 수도 없고, 자연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제가 느낀 위기의 실체입니다.  접기

 
추천글
시대를 투시하는 그의 힘은 바로 그가 ‘자기’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의 하나로 자기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삼자는 제안이다. 이때의 ‘자기’는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네트워크다. 요컨대, 이 책은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여러 대화자를 만나면서 ‘자기’라는 네트워크를 부단히 세공하는 동안, 독자 역시 이 시대의 여러 모순에 대해, 중국에 대해, 나아가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이해의 밀도를 높이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국민일보 
 - 국민일보 2022년 10월 27일자 '책과 길'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2년 11월 4일자 '책&생각'

저자 및 역자소개
샹뱌오 (项飚) (지은이) 

중국 저장성 원저우 출신으로, 톈안먼 사태 직후인 1990년 베이징대학에 입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다. 학부와 대학원 재학 때 베이징 교외의 저장촌을 드나들며 고향인 원저우 출신 민중의 삶을 민족지로 기록했다. 이때 쓴 석사 논문이 중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고전으로 인정받아, 옥스퍼드대학에 무시험으로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인도 출신 IT 인력들의 국제적 유동과 인도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 박사 논문은 인류학계의 영예인 리즈상을 수상했다. 이후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0년부터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경계를 넘는 마을: 저장촌 이야기』 『글로벌 ‘바디 쇼핑’』 등이 있다. 이 책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중국에서 2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그는 도구로서의 사회과학의 첫 번째 활용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이고, 그다음이 사회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 ‘도경圖景’은 관찰 대상 안의 현재뿐 아니라 내재적인 미래 방향까지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자신을 향신鄉紳 기질의 연구자로 정의했다. 즉 학자로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장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현지의 언어로 삶의 디테일들을 다루며 내재적 서술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는 오늘날의 학자나 지식 대중이 자기 자신이나 주변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부근을 소멸시키는’ 현대사회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접기
최근작 : <주변의 상실>,<중국과 비중국 그리고 인터 차이나> … 총 3종 (모두보기)
김유익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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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신으로, 중국 광저우에 거주하며 다른 언어와 생활 방식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도 그 작업의 일환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요구와 지역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인터내셔널보다는 트랜스내셔널한 관계 맺기를 추구한다.
김명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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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출신으로, 타이완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 중국과 관련된 논의가 첨예하게 펼쳐지는 타이완에서 중국의 디지털 사회 관리와 한중 관계, 중국의 국가-사회 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우자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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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출신으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일제강점기에 문필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작가에 관한 연구로 논문들을 썼다. 최근에 ‘4·19 세대’의 문학세계와 1990년대 한중 에로틱 문학의 양상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최근작 : <문턱의 청년들> … 총 2종 (모두보기)
우치 (吳琦)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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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성 출신으로 베이징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하고 『남방인물주간』 기자로 일했다. 무크지 『단독單讀』의 에디터이자 팟캐스트 「나사 죄는 중螺絲在擰緊」의 진행자로, 중국의 여러 지역과 각종 문화 영역을 넘나들며 크리에이터, 지식인, 활동가들과 대담을 나누고 그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혼돈의 시대를 꿰뚫어보는 힘
‘부근의 소실’에 슬퍼하며 생활을 어루만지는
‘방법으로서의 자기’

이 책은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여러 대화자를 만나면서 ‘자기’라는 네트워크를
부단히 세공하는 동안, 독자 역시 이 시대의 여러 모순에 대해,
중국에 대해, 나아가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이해의 밀도를 높이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_ 조문영 교수 추천사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삶과 연구를 대담 형식으로 담아낸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가 출간되었다. 독일의 『디차이트』는 최근 옥스퍼드대학 교수직에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샹뱌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스타 인류학자”이자 “중국의 새로운 사상가”라고 소개했다.

학부 시절 ‘저장촌 연구’가 고전의 반열에 올라

1972년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에서 태어난 샹뱌오는 베이징대학 학부 시절부터 ‘저장촌 연구’로 큰 주목을 받았다. 원저우 출신 농민들의 동향촌이 1990년대 베이징에서 가장 큰 저가 의류 생산·판매 기지로 변모하는 과정에 관한 이 문화기술지ethnography는, 『경계를 넘는 마을: 저장촌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간돼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국가와 사회,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통치와 저항의 역동적 관계를 살피는 고전이 됐다. 이 성과로 옥스퍼드대학 인류학과에 진학한 샹뱌오는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두 번째 책 『글로벌 ‘바디 쇼핑’』으로 2008년 미국 인류학회의 앤서니 리즈상을 받았다. 이 책은 이주에 관한 그의 관심을 인도와 호주를 잇는 IT 산업의 글로벌 정치경제로 확장했는데 바디 쇼핑은 글로벌 IT 기업이 컨설팅 회사를 통해 인도 출신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프로젝트 중심으로 채용하는 노동 분업을 일컫는다. 샹뱌오는 이 ‘쇼핑’의 모빌리티를 글로벌 아웃소싱이나 노동유연화에 관한 신자유주의 분석에 한정하지 않고, 혼인 지참금을 둘러싼 인도의 친족 경제, IT 훈련센터 같은 중개 조직의 작동을 정교하게 따라가면서 분석했다.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샹뱌오의 이러한 글로벌한 학문적 여정과 혼돈의 시대에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색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 출간된 인터뷰집 『방법으로서의 자기把自己作爲方法』, 그의 미디어 인터뷰와 강연 원고, 번역자의 논평을 한데 묶어 가장 풍부한 형태로 샹뱌오의 문제의식과 연구를 보여준다.

‘부근의 소실’ 등 현대의 병폐 꿰뚫는 개념 만들어

추천사에서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동료 인류학자에 대한 내재적 공감과 이해를 통해 이 책을 국내 독자들에게 잘 소개해주고 있다. 평생을 이동하면서 살아온 샹뱌오는 이 책에서 이주(학)자로서 무수한 연결을 관찰하고 감행한 그가 모국인 중국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의 긴장과 진심을 담았다. 대담을 중국 젊은이들과 대화할 기회로 삼고, 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모자”를 새것으로 바꿔주는 대신 “(자신감이 사라진) 자기 생활”을 함께 들여다볼 것을 제안했다. 베이징, 옥스퍼드, 원저우로 이동하며 펼쳐지는 대담의 주제는 실로 변화무쌍하다. 학문의 의미, 지식인의 역할, 신자유주의, 일체화된 시장 경쟁, 플랫폼 경제, 빈곤과 노동, 로컬과 글로벌, 문명과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의미의 즉각성’ ‘부근의 소실’ ‘잔혹한 도덕주의’ 같은 저자 자신의 언어로 깊이 있게 해석했다.
혼돈의 시대를 꿰뚫어보는 샹뱌오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방담을 보면 고향 원저우에서 길어올린 지혜가 풍성하다. 세계를 대하는 방법, 기질, 태도로 ‘향신’을 불러낸 것도 구체적·실용적 접근을 중시하는 원저우인에게서 받은 영감이 크다. 그가 기대하는 향신은 일상의 질감을 중시하고 디테일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사람, 중심에 동화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몰입과 거대 사건에 관한 거창한 논평만을 오갈 뿐 자신의 주변 세계를 돌아보지 않는 자아를 양산한다. 거래 과정의 마찰을 장애물로 보는 시장, 물리적 수고를 덜어낸 플랫폼이 ‘부근의 소실’을 추동하는 사이, 우리는 모두 (샹뱌오와의 대담에서 쉬즈위안이 지적했듯) 방관자가 된다.
두 발을 땅에 디딘 인류학자의 성실함과 겸손함도 논평 곳곳에서 돋보인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과 오랜 시간 마주하는 인류학자라면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의 비대칭성, 지식인의 담론 권력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피할 수 없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0년대 말 대입학력고사가 부활한 것을 두고 이성과 정상의 회복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샹뱌오는 누구를 위한 정상이었는지, 농민들에게도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되묻는다. “예전의 관료와 도시의 지식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사실은 공산당과 당시 사회주의 체제하의 엘리트들이 다시 뭉친 것입니다.”

‘중국 담론’은 ‘중국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꼴

주류 세계에 정주하길 거부하는 디아스포라 학자의 삐딱함도 논평의 날을 곧추세웠다. 이동이 삶의 패턴이 되니, 자신이 거쳤던 시대와 장소에 대한 감상적인 노스탤지어도 잦아들었다. 수많은 중국 지식인이 1980년대의 ‘문화열’을 그리워하지만, 샹뱌오는 대중의 경험과 유리되지 않는 구체성을 회복하는 게 당시의 격정을 되찾는 것보다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그가 졸업한 베이징대학은 저항운동의 역사적 무대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하지만, 그는 이 대학의 반항정신에서 자기가 옳다는 위험한 확신, 자기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영웅주의를 읽는다. 과장된 어법으로 공리공담을 떠드는 베이징의 엘리트들과 달리, 예컨대 그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연구자들은 큰일을 할수록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하듯” 과정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원저우 출신, 인류학자, 이주자라는 낱개의 조건으로 샹뱌오의 역량을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시대를 투시하는 그의 힘은 바로 그가 ‘자기’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대담집의 원제이기도 한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의 하나로 자기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삼자는 제안이다. 이때의 ‘자기’는 안팎의 경계가 뚜렷한 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네트워크다.

혼돈과 함께 살아가는 힘, ‘방법으로서의 자기’

이 책은 독자들이 샹뱌오라는 인류학자가 원저우, 베이징, 옥스퍼드, 싱가포르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인물, 제도, 담론,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라는 네트워크를 어떻게 수선하고, 반성하고, 갱신했는지 즐겁게 따라갈”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샹뱌오가 혼돈 바깥에서 멀찍이 상황을 관조하는 대신 우리처럼 혼돈 한가운데 살아가므로 자연스럽게 갖게 된 불안에 공감하게 된다. 너무 이른 나이에 받은 인정에 대한 부담, 현지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관찰하느라 이론적 기초를 닦지 못했다는 초조함, 고전을 읽지 못해 “지식인들의 우주에 입장권을 얻지 못했다”는 균열 감각, 자신의 연구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여성 동료의 비판에 대한 숙고, 좋은 책을 쓰고 싶은데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겪는 슬럼프까지, 깡마른 몸에서 솔직하게 삐져나오는 말들에 조문영 교수는 “동료 인류학자로서 우애를 느꼈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샹뱌오의 탁월함은, 그가 혼돈의 시대를 꿰뚫어보는 힘, 더 나아가 혼돈과 함께 살아가는 힘을 주변 세계와 호흡하면서 부단히 연마했다는 데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여러 대화자를 만나면서 ‘자기’라는 네트워크를 부단히 세공하는 동안, 독자 역시 이 시대의 여러 모순에 대해, 중국에 대해, 나아가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이해의 밀도를 높이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를 투시하는 모종의 원리나 비전을 만드는 작업을 샹뱌오는 세계에 도경圖景을 하나 내놓는 것으로 봤다. 도경은 자기와 세계를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관찰, 참여, 숙고를 통해 빚어내는 작품과도 같다. 대국으로 부상한 자아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중국 담론’이 그한테 패러독스로 비친 이유다. “자기를 증명하겠다는 것은 사실 자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미 설정한 원칙과 표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논리와 프로세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겠다는 뜻이죠. 자기 자신은 없애버리고요.”

중국 젊은 층은 21세기의 홍위병에 불과할까?

“스타 인류학자”라는 명명은 낯설다. 레비스트로스 정도가 대중의 뇌리에 있을 뿐 인류학은 스타성과 거리가 있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인류학이 사회 현장의 고고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그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다.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중국에서 20만 부가 팔렸고, 샹뱌오가 출현하는 팟캐스트 방송의 조회 수가 일주일 만에 10만 회를 훌쩍 넘기도 했다. 샹뱌오는 분명 인류학의 최전선에 있는 학자다. 한국어판 책 표지는 막스플랑크연구소의 계단참에서 찍은 저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펼쳐진 계단 벽과는 대조적으로 밑에는 헬스기구와 옷걸이 등 생활의 흔적이 역력하다. 아이디얼한 추상화와 생활 현장이 한 공간에 놓인 이 구도의 미묘한 콘트라스트가 저자 샹뱌오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한국어판 표지화로 제안되기에 이르렀다. 이 대비는 생활과 경험으로부터 앎과 추상을 뽑아 올려온 그의 행적과 지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공론장에서 중국 청년 세대는 ‘중국 담론’의 몽매한 추종자로, 21세기의 “홍위병”으로 곧잘 언급되나, 이들이야말로 샹뱌오의 글과 대담에 가장 호응한 집단이다. 이들이 겪는 불안과 혼란, 피로와 탈진이 샹뱌오를 움직였고, 그가 자기를 방법으로 삼아 그려낸 도경이 청년들에게 자극과 위로가 된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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