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8

알라딘: [전자책] 남한산성 김훈

알라딘: [전자책] 남한산성
[eBook] 남한산성 
김훈 (지은이)
학고재2007-04-14



전자책정가
9,100원
종이책 페이지수 : 384쪽


책소개

소설가 김훈이 <현의 노래>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소설의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청나라 10여만 대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조선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다.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럽혀질 것인가.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는 척화파와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그들은 47일 동안 칼날보다 서슬 푸르게 맞선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 <남한산성>의 상징을 톺아보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병자년 겨울과 이듬해 봄, 조선 사직 앞에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할 길이 포개진다.

작가 김훈은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전제한다. 아울러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하지만 그가 되살린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소설적 상상력으로 살점이 붙어, 생생한 얼굴로 되살아난다.


목차
눈보라 / 언 강 / 푸른 연기 / 뱃사공 / 대장장이 / 겨울비 / 봉우리 / 말먹이 풀 / 초가지붕 / 계집아이 / 똥 / 바늘 / 머리 하나 / 웃으면서 곡하기 / 돌멩이 / 사다리 / 밴댕이젓 / 소문 / 길 / 말먼지 / 망월봉 / 돼지기름 / 격서 / 온조의 나라 / 쇠고기 / 붉은 눈 / 설날 / 냉이 / 물비늘 / 이 잡기 / 답서 / 문장가 / 역적 / 빛가루 / 홍이포 / 반란 / 출성 / 두 신하 / 흙냄새 / 성 안의 봄

하는 말
남한산성 지도
연대기
실록
낱말풀이

책속에서

적이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종묘와 사직단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도성이 포위되면 서울을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서울로 다시 돌아올 일은 아예 없을 터였다. 파주를 막아 낼 수 있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본문 18~19쪽에서  접기

...가자.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살아있으므로,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40쪽 - Yellowpencil

언 강 위에 눈이 내리고 쌓인 눈 위에 바람이 불어서 눈이 길게 불려갔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시간의 무늬가 드러났다.-41쪽 - Yellowpencil

한밤중에 임금은 어두운 적막의 끝 쪽으로 귀를 열었다. 적막은 맹렬해서 쟁쟁 울렸다.-179쪽 - Yellowpencil

남한산성에서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고, 머뭇거리지 않았다.-179쪽 - Yellowpencil



저자 및 역자소개
김훈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 영문과를 중퇴했다. 한국일보, 시사저널, 국민일보,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2004년 이래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 『현의 노래』, 『개』, 『남한산성』, 『흑산』,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공터에서』, 소설집 『공무도하』,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1, 2』,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바다의 기별』,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 등을 펴냈다.
수상 : 2022년 동리문학상, 2013년 가톨릭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 2001년 동인문학상
최근작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하얼빈>,<저만치 혼자서> … 총 14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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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분포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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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은 생것인양 살아서 꿈틀거리며 튀어올라 나에게 덤벼드는 것같다.  구매
징가 2016-05-31 공감 (8) 댓글 (0)

     
마지막 문장을 쓰고자 장대한 서사가 동원되는 작품이 있다. 종묘, 사직, 전하 등 허울뿐인 말들이 넘치다가 치욕의 의식(삼전도의 굴욕)을 거쳐서 사라진 자리에 서날쇠와 같은 민초들의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김훈소설의 본령(말들의 신기루와 인간삶의 자연성)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매
수다맨 2017-07-18 공감 (4) 댓글 (0)

     
선물로 구입하고서, 다시 집으로 가져와 읽은 책. 역시 대작은 읽으면서 다르다.  구매
Willy 2008-04-13 공감 (3) 댓글 (0)

     
승질이 뻗쳐서 힘들게 보았다.  구매
컴온타스 2014-07-17 공감 (2) 댓글 (0)

     
- 가자,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살아 있음으로,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p. 40)  구매
warmsoul 2017-10-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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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 남한산성 >

책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쳐갔을 김훈 님의 작품들. 좀 부끄럽지만(사실 나는 책 좀 안 읽었으니 덜 부끄러워해도 되려나; ^ ^;) 나는 이제 두 번째 만남이다. 그 유명한 <칼의 노래>, <현의 노래>는 책꽂이에 꽂아둔 채 아직 읽어보질 못했고, 어느 잡지의 추천책으로 만난 <자전거 여행>은 그 옛날 읽다가 접었던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 그의 짧다막한 소설 <개>에 이은 두 번째 만남은 그리하여 나를 설레게 했다.

오천년의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과연 영광의 날들만 있었겠는가. 기쁜 날이 있었다면 또 슬픈 날들도 있었고, 영광의 날이 있었다면 치욕의 날도 있었으리라.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배경인 병자호란도 그 치욕의 순간 중 하나다.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대의명분만 중시하다 결국 온 나라가 짓밟히는 상황 속에서도 손도 못 대고 가만히 앉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에 무기력한 임금과 각자의 신념을 주장하는 관리들, 그리고 죄없이 고통 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남한산성>은 이런 비극적이고 치욕적인 역사의 한 순간을 책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병자년 겨울, 청나라의 군사들이 조선으로 밀려오고 신하들은 인조에게 강화행을 권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묘호란의 기억을 되살리며 착찹한 마음으로 강화도로 길을 떠나는 인조일행은 강화로 가는 길마저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길머리를 돌린다. 산세가 가파르고 사방이 막혀있어 숨어있기 좋으나 그 반대로 평야로 뚫린 입구를 막으면 꼼짝달싹할 수 없이 갇혀있는 형세인 남한산성. 그 속으로 숨어든 임금의 행렬은 진퇴양난, 청군에 짓밟힌 조선의 운명과 어째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고립된 성 안의 모습은 바깥과 다르지 않다. 제한된 식량과 자원으로 일년 중 가장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는 그들의 모습을 김훈은 그저 담담히 들려줄 뿐이다. 한겨울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병사들이 깔고 자는 가마니를 뺏어 말을 먹이고, 먹이가 부족한 말들이 굶어죽고, 앙상한 뼈를 드러내며 죽은 말들을 잡아 다시 병사들을 먹이는 악순환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 중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리고 제대로 싸움다운 싸움 한 번 하지 못한 채 성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과 자신의 생활터전을 떠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아있는 백성들, 그리고 임금과 그의 신하들은 점점 그속에서 지쳐간다.

또한 계속되는 청나라 장수 용골대의 압박으로 그들과 화해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과 절대 그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척화파 김상헌의 대립이 조정을 뒤흔든다.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주어진 환난에 대한 답을 움켜쥐고 있는 이 대답을 대체 누가 내릴 수 있으며, 그것들을 주장하는 그들을 감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평할 수 있겠는가.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도, 후세에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도 감히 함부로 단언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 쓰러져가는 조선의 운명을 앞에 두고 갇힌 성 안에서 명나라에 예를 올리는 조선 임금의 모습은 한 마디로 참담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죽어서 아름답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의명분이란 무엇인가. 그들이 그토록 핏대를 세워 주장하는 명나라에 대한 예는 과연 아름다운 것인가. 그들이 떠받들던 중국은 그토록 대단한 것인가. 답답하고 답답하다. 그 시대적 상황이 답답하고, 사대사상으로 가득찬 그 시대 사람들이 답답하며,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가 답답하다.

매섭던 바람이 잦아들고 땅에 봄기운이 조금씩 스밀 때쯤, 견디고 견디던 남한산성에서의 47일은 청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로 인해 끝이 난다. 더불어 기나긴 전쟁도 마무리된다. 청의 말발굽에 온통 상처입어 너덜너덜해진 조선은 언 땅을 뚫고 싹을 틔우는 연약한 풀들처럼 그렇게 다시 지난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치욕은 다시 삶을 이어주고 그 삶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 우리가 그 때의 일들과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김훈의 문체는 짧고 강하다. 그 속에서 힘이 넘쳐난다. 그러나 치욕적인 역사현실에서도 그의 시선은 담담하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시선은 치우치지 않고 그 시간을 훑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력에 한탄하는 인조, 자신들이 교육받은 성리학 안에서 나름 최선의 길을 찾고자 하는 신하들, 척박한 현실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는 군인들, 그리고 견디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뿔뿌리 민중들에 이르기까지 고통받는 자들의 구슬픈 표정을 책 속에 풀어낸다.

소설 속 <남한산성>의 현실이 과연 그 시대에 한정된 것일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다만 섬김의 대상이 명나라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큰나라에게 끌려다니는 내 나라의 모습을 보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답답하기가 매한가지다. 역사는 살아있는 거울이다. 그냥 조상들의 삶으로 끝나는 과거가 아니라 내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는 현재와 미래의 주춧돌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치욕의 아픈 역사를 담은 김훈의 <남한산성>은 현시대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남겨주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 군소리 *

국사를 공부할수록 개인적으로 참 아깝다고 생각되는 임금 중에 한 명이 광해군이다. 그의 능력을 펼쳐보기도 전에 숙청당한 비운의 임금, 광해군. 물론 그에게 도덕적 허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태종이나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세조가 그에 비해 떳떳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밖으론 명청 교체기에 현실을 직시한 중립외교를, 안으론 민생안정을 위한 개혁정치를 펴던 광해군.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중립외교와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에 타격을 가하는 개혁정치가 사대부들에게 곱게 보일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대부들에게 뽑아야 할 눈의 가시로 여겨졌을 것이고, 정치적 희생물이 됐다. 

가끔 그가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좀 더 펼칠 수 있었다면 조선은 조금 달라졌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졌다. 중립외교를 펼쳤다면 그 알량한 대의명분을 그르쳤을진 몰라도 최소한 양란으로 고통받는 백성과 잃어버린 문화재는 물론이고 후금에게 무릎꿇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가정법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하고 아무리 가정한다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짙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으니.. 혼자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별빛속에 2007-05-04 공감(101)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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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농사를 시작하기 늦지 않았음에 희망 있음을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두 번째다. 『칼의 노래』가 그 처음이었다. 사실 김훈이란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이 『칼의 노래』덕분이다. 아니 정확히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었고, 더 정확히는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 때문이었다. 노무현의 탄핵은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민주공화국 역사상의 치욕이라기 보다는, 스타크래프트의 종족간 싸움보다도 질 낮은 블랙코미디였다고 난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 이 탄핵의 처음이(이 탄핵으로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이 웃기는 노릇이라는 것, 노무현을 탄핵한 세력이 진작에 탄핵되어 없어졌어야 할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이 이 블랙코미디를 가능케 한다.

『칼의 노래』가 탄핵이라는 이벤트에 당첨되었던 것 때문인지, 외롭고 고독한 사나이 노무현의 간택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때를 잘 만났기 때문인지, 무엇보다도 김훈의 소설이 탁월했었기 때문인지,  그것들을 가릴 필요는 딱히 없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시류를 탔다는 것이고, 김훈의 소설이 얼마나 탁월했던 것인지 아닌지에 관계 없이 세상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는 것, 그로 인해 어느 정도 과대평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그런 것에 상관 없이 많이 팔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소설이 개떡 같은 탄핵세력 같았다면야 아무리 떠들어도 읽히지 않았을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내가 읽은 『칼의 노래』는 이러한 연유에서 읽혀졌을 가능성이 컸고, 또한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리 달가운 평가가 내려지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다. 김훈이 『칼의 노래』로 인해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잇다른 작품들을 내어놓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소설계의 거목으로 부각된 지금, 이 소설 『남한산성』은 그런 이유들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려 떠들석하다. 『칼의 노래』와 어느 정도 겹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세간이라는 것은 주로 언론을 통해서 주도되고 있는 것인데, 이전의 것은 시류를 잘 탔다는 점과 지금의 것은 김훈이라는 이름의 상업성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어쨌건 나는 『남한산성』을 읽었고, 지금 리뷰를 쓰고 있다. 『칼의 노래』에는 리뷰를 다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 리뷰를 쓰는 이유는 리뷰를 쓰게끔 하는 무언가 마음의 동함을 『남한산성』에서 받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이 책 『남한산성』은 빠르게 읽힌다는 데에 나름의 장점이 있겠다. 소설이 빠르게 읽히고 느리게 읽힘에 그 장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읽힌다는 것은 느리게 읽히는 것보다 서사적 강점을 더 많이 지닌다는 것을 뜻할 수는 있다. 빠르게 읽힌다는 것은 복잡스럽지 않다는 것이고, 서사의 진행이 간명하다는 것이며, 그 간명한 진행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이어진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소설 『남한산성』은 바로 그런 것들을 분명 지니고 있었다. 밤의 야심을 틈타 읽은 이 소설을 새벽녘까지 끌고와 마침내 모두 읽어낸 후에, 이른 아침 이렇게 리뷰를 쓰게하는 그 힘을 분명 가지고 있다.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은 없었으나, 문한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서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채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284쪽)

김훈의 소설은(이 소설 뿐만 아니라, 『칼의 노래』에서도) 칸으로부터 붓놀림의 엄한 다스림을 받은 듯 하다. "문채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칸의 이런 엄함으로 인해 "글을 짓는 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처럼, 이 소설을 읽어내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인가 보다.

이 소설의 이런 빠르게 읽힘과 더불어 장점이랄 수 있는 것은 여러 인물군상의 다양한 구도설정에 있다. 얼핏 이러한 구도가 복잡스러움으로 얽히고 설킬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지극히 간명한 문체로 처리되면서 그런 복잡성을 타파한다. 여러 갈래의 샛길이 있고, 그것은 큰 길, 곧 대로를 향하다가, 다시금 두 갈래의 길로 나뉜다. 그 두 갈래의 길은 본래의 길이었다. 길이 갈리고, 다시 합치고, 원래의 두 길로 돌아가는 이 구도의 설정은 길의 얽히고 설키며 이루어지는 긴장감과는 다른, 간명함의 극치를 이루는 데서 오는 어떤 이질적 종류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욱 빠르게 읽히는 힘을 발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은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 (94쪽)

이것은 김류의 길이다. 김류 앞에는 김상헌의 길과 최명길의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었던 것이다. 그 길 사이에서 김류는 시간의 길을 가고 있다. 어느 길로든 합쳐져야 할 것인데, 그 합쳐져야 할 길이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가운데의 길로 느리게 걸음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임금의 길과도 조금 다르다. 임금의 길은 최명길의 길과 김류의 길 사이에 있는 또다른 길이었는지 모르겠다. 묘당의 길도 제각각이며, 체찰사의 길과, 김상헌의 길과, 최명길의 길과, 당상의 길과, 당하의 길과, 간관의 길이 또한 제각각 달랐다. 성안의 백성의 길은 저마다  다른 듯 하나 그 길은 어쩌면 같은 길, 삶기만이라도 하자는 길이었다. 정명수의 길은 또다른 삶의 길이었다. 비난하지 못하는 길, 어느 누구의 길도 나무랄 수 없다. 제각기 나름대로 "아름다운" 길일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218쪽)

이시백의 길은 이처럼 또 달랐다. 여기에 자못 김훈의 목소리라고 여겨지는,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이라는 언설은 쓸데없이 보이기까지 한다. 이시백은 그것이 그의 길이었거늘, 이시백 같은 자가 많지 않았음을 한탄하고 있을 필요는, 이 소설에서는 하등 없어 보인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는 김훈의 말은 이시백과 겹쳐져서는 아니된다. 그런 점에서 이 한탄이 쓸데없어 보이는 것이다. 과연 김훈은 누구의 편이란 말인가? 김훈의 길은?

그렇다면 '고통 받는 자들'은 누구일까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임금으로서나 당상으로서나 당하로서나 저 나름의 고통이 있겠으되, 김훈의 '고통 받는 자들'은 민중으로 기운다. 그러므로 김훈의 길은 민중의 길로 합쳐진다. 임금이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은 임금의 길,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 다시 당상과 당하의 길이 합쳐지고, 양반의 길이 합쳐진다. 남겨진 성 안에는 김훈의 그 '고통 받는 자들'의 길이 있다. 이시백은 성 안에 있었지만 그도 다시 성밖의 임금의 길로 합쳐져야 할 것이다.

  "백성들이 날마다 몇 명씩 성 안으로 돌아왔다. 봄농사를 시작하기가 너무 늦지는 않았다.
  서날쇠는 뒷마당 장독 속의 똥물을 밭에 뿌렸다. 똥물은 잘 익어서 말갛게 떠 있었다. 쌍둥이 아들이 장군을 날랐고, 아내와 나루가 들밥을 내 왔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온 날 나루는 초경을 흘렸다.
  나루가 자라면 쌍둥이 아들 둘 중에서 어느 녀석과 혼인을 시켜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서날쇠는 혼자 웃었다." (363쪽)

이것이 곧 민중의 길이다. 김훈은 이렇게 그들의 편을 들고 있다. "봄농사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안도감 속에 민중의 삶의 길이 열렸다는 희망이 담긴다. 나루가 초경을 했다는 사실은 또한 그 희망의 씨앗이다. 서날쇠의 웃음 속에서 민중의 아들과 또한 그 딸들은 질긴 생명을 살아가면서, 늦은 봄농사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것이 곧 민중의 길이고, 그들 편에선 김훈의 길이다. 그길은 곧 희망의 길이다. 임금의 길에서는 그런 희망의 메세지를 김훈은 남기지 않았다.

흔히 임란과 호란을 우리는 우리 민족의 치욕스런 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임란과 호란의 치욕의 비중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인식 속에 더 큰 치욕은 임란으로 기억되며, 또한 더 큰 자랑은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을 부각시키는 임란에 있다. 호란은 그러한 임란의 기세에 눌려 조금씩 잊혀져 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호란의 그 치욕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박씨전』이란 고전소설은 또 다른 종류의 『남한산성』이랄 수 있겠다. 요즘식으로 한다면 환타지계열이겠다. 호란의 치욕에 대한 반향으로서의 작품이 『박씨전』이라 한다면, 우리에게 호란의 치욕의 잊지 못함을 말하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할 듯 싶다. 이 소설 『남한산성』은 '고통 받는 자들'의 편에서 이 땅의 고통 받는 민중의 길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지 싶다. 그 길을 김훈은 '남한산성'에 올라가 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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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05-28 공감(69)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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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보여주다.

핑크빛 표지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산뜻하니 고왔으며 작품의 분위기를 망치지도 않았다.  그것은 김훈 자신이 이 작품을 쓰면서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을 버리고 청을 받들 것을 거부하며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던 인조와 신하들의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얼어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굶어죽는 이들도 많았건만, 그 사실을 전하는 김훈의 목소리는 그저 담담할 따름이다. 화친을 말하는 최명길의 충절이 척화를 말하는 김상헌의 피끓는 외침과 크게 다르지 않고, 배삯을 치뤄주지 않... + 더보기
마노아 2007-04-23 공감(46) 댓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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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시간 그리고 갈 수밖에 없는 길
 
당혹스럽다. 김훈의 면모와 그의 글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지기님에게 어떤 기분이 들게 할지 난감하여 며칠을 묵혔다. 이 리뷰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한 아집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점을 미리 말하고 싶다. 그동안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리뷰를 쓰지 않았던 걸로 보면 이 책은 내치지 못하는 맛이 있다는 말이 된다. 김훈은 묘한 이중성의 매력을 풍긴다. 이건 아니야 하다가 딱 그거야 라고 할 수도 있는, 미지의 영역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담이 너무 높다. 그의 글을 처음 만난 건 ‘자전거여행’이다. 그 후 현의노래, 개, 공차는 아이들, 강산무진을 읽었다. 그의 책을 모두 읽은 건 아니고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자주 쓰는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더듬고, 겹치고, 포개지며’, ‘크고 높은' 동어반복과 동의열거의 허무한 말들에 허망해지면서도(이런 식의 표현이 점점 식상해진다는 느낌 때문에), 문득 놀라운 사유의 발견으로 다시 서성이기를 반복하는 그런 것이었다.



<남한산성>도 그런 '답답함'으로 읽어내려가 '막막함'으로 책장을 덮었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고 있지만 마치 작가 관찰자 시점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충실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현대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작가의 관념적 개입이 이야기로의 몰입을 방해한다. 소설로서만 읽히기를 바란다고 서문에 밝혔지만 그의 글은 소설로 읽힐 때 독자에게 제공해야할 것들에 그리 충실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체는 글쓴이의 개성이자 사고방식이므로 언외로 한다 해도 그가 소설 속에 매입해 둔 인물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창조한 인물과 그들의 성격 그리고 그들이 엮어내는 사건과 그것의 의미를 두고 보면, 작가의 그 ‘서늘할 정도의 담담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다. 그의 트래드마크 같은 서술방식을 장점으로 살리자면 차라리 인조가 화자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심정적으로 가장 연민하는 사람들의 중심에 인조가 있기 때문이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47일간의 성 안 투항’에 대한 인조의 심경을 서늘하게 그려내면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칼의노래>나 <개>에서처럼.



인물들은 성안과 성밖으로 나뉜다. 성안에는 인조의 주변에 주전파와 주화파의 중심인물로 김상헌과 최명길을 간결하게 배치하고, 성밖에는 비실제인물로 뱃사공, 나루 그리고 서날쇠를 창조했다. 그리고 청군의 장수 용골대(마부대는 생략)와 정명수, 칸을 대립되는 쪽에 두었다. 작가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주전파와 주화파로만 갈라서 말하자면 그 점은 인정되면서도, 무지한 백성보다는 치욕과 자존의 나눌 수 없는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임금과 벼슬아치들의 편에 서 있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그 점은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그가 창조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세습 관노 출신으로 천생(賤生)의 한을 품고 여진말과 몽고말을 익혀 용골대와 함께 온 정명수(실제인물이지만 그의 배경은 허구로 읽힘), 곡식이라도 얻어볼까 청병을 건너게 해준 뱃사공, 김상헌의 칼날에 사공인 아버지를 읽고 그림자처럼 성까지 들어온 열 살의 여자아이 나루(이듬해 이 아이는 초경을 하는데 옛날여자치고 꽤 숙성한 것 같다), 그리고 천하의 대장장이 서날쇠에 충분한 생명력이 불어넣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그래도 정명수와 서날쇠는 내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인조에 대해서라면, '자전거여행2'에는 성으로 들어가는 임금의 말고삐 잡은 손을 놓고 도망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 말고삐를 직접 잡아끌고 성으로 들어갔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소설에서도 그런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방식을 읽고 싶었다. 임금의 굴욕을 단적으로 그린 장면에서는 전율했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인조를 두고 옆으로 돌아서 오줌줄기를 휘갈기는 칸. 사신으로 온 정명수가 사대부 여자만을 맞아들이려하는데 속임을 당하자 벌거벗은 여자를 향해 냅다 발길질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제 하나의 틀이 된, 생경했던, 그의 문체에 가려 '소설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미덕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해 아쉬운 것이다. 이건 나의 글쓰기에서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는 오류라서 더욱 거슬렸는지 모른다. 원래 자신의 흠이 다른 사람에 투사되어 잘 보이듯이. ‘자전거여행 2’의 남한산성 편을 다시 읽었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다. 그 글 속에는 47일간의 투항 여정이 인조의 심경에 가까이 가 있다.



그 책에서 '무위로 돌아간 모든 언어행위'에 대해 절박하게 사유했듯이 소설 <남한산성>에서의 배경에는 말들의 먼지가 뒤섞여 창궐하고 있다. 눈여겨 본 부분은 말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다. 글에 대한 천착에도 버금간다. 성 안의 말(言)과 성 밖의 말(馬)을 동일선상의 상징으로 두고 단숨에 서술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9-10쪽)

 

주화파와 주전파의 말(言 혹은/그리고 馬)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성 안에 갇혀 굶주린다. ‘말먹이풀’ 장에서는 추위로 고통 받는 병사들을 위해 말먹이로 아궁이에 불을 떼고 있어 사람위에 말이 있지 못함을, ‘말먼지’ 장에서는 성의 안과 밖에서 말먼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인가, 말로 쌓은 성인가, 임금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봉우리’ 장에서는 ‘정처 없는 말’을 ‘말의 신기루’로 이름한다. ‘하나마나한’ 말의 본질은 공중누각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그의 종잡을 수 없는 문장으로써(의도적일까) 말의 헛됨을 입증하는데, 가장 거슬렸던 문장이기도 하다.

-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하는 정처 없는 말과 사물에서 비롯하는 정처 있는 말이 겹치고 비벼지면서, 정처 있는 말이 정처 없는 말 속에 녹아서 정처를 잃어버리고, 정처 없는 말이 정처 있는 말 속에 스며서 정처에 자리 잡는 말의 신기루......(72쪽)

이와 대조적으로 청나라 군대의 투항권유서는 '삼엄하고 정연한 현실주의적 어법으로 읽는 사람을 전율케'한다. - "너희가 살고 싶으면 성문을 열고 나와 투항해서 황제의 명을 받으라. 너희가 죽고 싶거든 성문을 열고 나와 결전을 벌여 황천의 명을 받으라!" (자전거여행 2 중 191쪽)



주화/주전파의 모든 언어행위를 문장에 대한 혹은 말에 대한 칸의 생각과 나란히 두면 대조적이며 흥미롭다.

-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은 없었으나, 문한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사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칸의 뜻에 따라 글을 짓는 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284쪽)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에 스스로도 일침을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애정이 남아있는 작가에 대한 나의 바람이든지. 



말먼지가 뒤섞여 앞길을 막고 있는 성 안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작가는 눈을 둔다. ‘강산무진’에서도 그가 빚어내는 시간의 허무성에 진저리를 쳤는데 실제 공간적 의미인 '남한산성'에서도 시간은 차갑고 멀지만 소생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 “적병은 눈보라나 안개와 같았다. 성을 포위한 적병보다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서 종적을 감추는 시간의 대열이 더 두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무도 아침과 저녁에서 달아날 수 없었다. 새벽과 저녁나절에 빛과 어둠은 서로 스미면서 갈라섰고, 모두들 그 푸르고 차가운 시간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180쪽)

 

작가는 시간의 영속성과 소생능력으로서의 치유성을 길에 대입한다. 성 밖으로 난 길이다. 최명길이 쓴, 칸에게 보내는 투항문서를 두고 김상헌은 글이 아니라 이른다. 그때 최명길이 치고 나오는 말이 시원하다. - 그러하옵니다. 전하,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옵고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바닥이옵니다.  이에 김류가 말했다. - 명길이 제 문서를 길이라 하는데 성 밖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글과 같을 수야 있겠나이까. 하지만 글을 밟고서 나아갈 수 있다면 글 또한 길이 아니겠나이까. (315쪽) 

글로써 삶의 길을 낼 수 있다면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벅찬 바람과 함께 나의 속된 경지로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밟고 나아가야함은 다음 문장에서도 알 수 있는 작가의 오랜생각이다. - “건너뛰어서 가는 길이 이 세상의 길바닥 위에는 없는 것이다. 인조는 그 건너뛸 수 없는 길을, 적의 말을 타고 적의 군복을 입고, 인질로 보낼 세자와 중신들을 앞세우고 한 걸음씩 걸어서 갔다.” (‘자전거여행 2’의 187쪽)

 

‘남한산성의 西門은 처연하다’로 시작하는 ‘자전거여행’의 남한산성 편에서 인상적인 구절 중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에서는 너무 압축한듯 잘라놓은 장면들이 여기서 오히려 더 잘 묘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서문 아래의 그 가파른 길, 그것도 꽁꽁 얼어 미끄러운 그 길을 말을 타고 내려오며 앞으로 고꾸라질 지경으로 쏠렸을 테니 임금은 내려서 마차와 말을 번갈아 타고 혹은 걷기도 했을 참담한 장면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었으면 다 읽고 나서 덜 허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문장은 각이 지고 관념적인 건조체이자 엄중하고 사유적인 문어체로 자리매김한 감이 있는데, 모호한 흡입력과 동시에 명확한 이물감을 떨쳐버릴 수 없으니, 묘하다.



말과 글, 시간 그리고 길!  그것들의 허무성, 영속성, 진실성이 소설 <남한산성>에 담겨있는 이야기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으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작가의 말 중)  소설 속 임금은 너무나 담담하게, 치욕의 시간을 감당하고 철수하는 청군과 칸을 배웅한다. 산성에 봄이 찾아오듯 백성들이 하나둘 성 안으로 들어오고 서날쇠는 봄에 씨 뿌릴 일과 아들과 나루의 훗날 혼사를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치욕의 결정적인 순간과 그 이후 임금의 심경에는 작가가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폭풍이 할퀴고 간 후의 백성의 삶 또한 그리 담담하다니. 김훈식의 역설적 묘사다.

수채물감을 연하게 풀어 칠한 것 같은 표지의 진달래색이 이름 모를 연초록 풀포기와 함께 살아있다. 손끝에 묻어날 듯 명징한 진달래색이 그리 처연하게 보인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해 주신 좋은 지기님에게 감사드린다. 그때의 생생한 기록을 보고 싶어 전에 읽었던 서해문집의 <산성일기>를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소설로만 읽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프레이야 2007-05-02 공감(43) 댓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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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김훈 / 남한산성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작성된 비전문적인 리뷰입니다. 본문에는 도서의 중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워낙에 유명했던 도서. 일전에 한 번 읽다가 포기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화되면서 영화를 보기 전에 다시 읽어보려 한다.

▶ 도서정보

- 저  자 : 김훈
- 제  목 : 남한산성
- 출판사 : 학고재
- 발행일 : 07.04.14
- 분  류 : 문학(소설)
- 기  간 : 17.11.13-14

▶ 총 평 점(한줄평)

9.3점 / 읽으면 읽을수록 김탁환 작가의 '압록강'이 떠오르고, 웹툰 '칼부림'이 떠오른다. 조선의 모든 시간들이 많이 회자됐지만... 이 전쟁의 시간들은 유독 많이 돌아보게 된다. 청과의 전쟁 또한 다르지 않다. 

역사에서 '만약에'처럼 어리석은 가정이 없다 하지만... 정말 이괄의 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전쟁 양상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이전에 광해가 반란을 진압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해본다. 모두 부질없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안타까움 때문이겠지.

내가 읽은 김훈 작가의 책은 '자전거 여행'이 유일하다. 그래서 더욱 이 '남한산성'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문장이 완전히 다르다. 담백하면서 힘이 넘친다. 굽어지지 않고 곧기만 한 느낌이다. 그런 점들이 감탄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약간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읽기에 자주 힘이 들었다.

지금의 생각으로 그때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 지금의 시선으로 그때를 바라본다.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치사함에 역한 기분마저 든다. 예나 지금이나 자리에 앉은 자는 자리가 주는 권리만을 탐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늘 똑같구나.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되뇌는 그 말속에 들어있는 가시가 목에 걸려 컥컥 거리게 된다.

책장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영화를 볼 수 있을까?'였다. 글로서도 이렇게 아프고 답답한데. 영상은 오죽할까. 애써 그려지는 그림을 지우며 읽은 시간과 달리, 영상은 눈으로, 귀로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 도서평점(항목별)
 
- 등장인물 : 10점 / 조선의 사람들인데, 현재의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다.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미움이 커졌다. 커진 미움만큼 점수가 올라갔다. 씁쓸함이 짙다.
 
- 소    재 : 10점 /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기준에서 10점이 부족하다.
 
- 구    성 : 9점 / 소설로서는 굉장히 좋은 구성이었다. 각 인물의 시선을 묘하게 겹치게 하고, 그 감정 선과 상황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걸 영화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 가 독 성 : 8점 / 문장력이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뛰어난 독자가 아니다. 그래서 힘든 점이 있었다. 
 
- 재    미 : 9점 / 힘듦을 뒤로하고, 예상외로 굉장히 재밌었다. 전투신이 화려했던 것도 아니고, 해피엔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불편한 상황과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를 풀어냈는데. 평소와 다르게 이런 내용들이 재미나게 다가왔다. 내가 변할 걸까? 작가가 대단했던 걸까?
 
- 의    미 : 10점 / 지금의 기준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자꾸 되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시선이 자꾸 책을 향한다. 그 시간의 내가 되어도 보고, 현재의 내가 바라보기도 한다. 두 시간 모두에서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읽었을 때는 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 독서일지

[17.11.13 / p5-114]
'자전거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문장은 짧고 명쾌하며, 힘이 느껴진다.

[17.11.14 / p115-397(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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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구석시골총각 2017-11-14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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