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6

事件だった『哲学往復書簡』(金泰昌と武田康弘・東大出版会刊)の裏話。 - 思索の日記 (クリックで全体が表示されます)

事件だった『哲学往復書簡』(金泰昌と武田康弘・東大出版会刊)の裏話。 - 思索の日記 (クリックで全体が表示されます)



武田康弘の思索の日記です。「恋知」の生を提唱し、実践しています。白樺教育館ホームと共に


事件だった『哲学往復書簡』(金泰昌と武田康弘・東大出版会刊)の裏話。
2012-05-11 | 書評


 金泰昌さんからのお申し出により、5年前、2007年の5月から行われた武田・金の哲学往復書簡34回(出版されたのは30回分)の裏話を以下に記します(金さんは、東大出版会のシリーズ『公共哲学』全20巻の編者であり国際的な政治哲学者です)。

 書簡の前半部分(とくに3回と5回の武田書簡)は、明治政府作成の日本の思想を俯瞰的に説明したものです。政治・社会・教育の全体を支配した【近代天皇制=天皇教・東大病=官僚主義】についてのわたしの見解を提示したのですが、それは、その前後の書簡で説明したように、(1)教育と知の目的は「主観性の知」にあるという本質論と、(2)現象学と実存思想(「私」からの出発)に立脚した哲学に支えられた 歴史と現実社会の分析で、まとめて「武田思想」とも呼ばれています(なお、認識論の原理であるフッサール現象学は、旧友の竹田青嗣さんによる解釈が最も有用で優れていると思いますので、それに依拠しています)。

 後半部分は、公共とは何か?の本質論と、それに深く関係する金さんが主導した東大出版会の基本方針=「公・私・公共の三元論」を巡ってのものです。わたしは、実存論に立脚する武田の公共思想を述べ、現代においては近代民主制(人民主権を原理とする)を徹底する以外に「公共性」を実現する道はないとして、三元論は、民主主義の原理論次元では成立しない(現実次元では有用である)と批判しましたが、それは結果として大きな支持を得ました。公的(2008年1月の参議院におけるパネルディスカッションなど)にも、私的(私信やわたしの催す会など)にもです。それらの多くは、このブログ「思索の日記」でご紹介してきました。

 この哲学往復書簡は、2005年の6月に金泰昌さんがわたしの白樺教育館を訪ねて以降、金さんとの二年間にわたる日常的な電話対話の末に行われたものですが、これが公開されて出版されるまでには、凄いドラマがありました。

 パート1(「楽学」と「恋知」の哲学対話・第1回~第21回)については、スムースでした。
まず『公共的良識人』紙の7月号に(1)から(11)までが載りました。前例のない特別扱いで、8ページの紙面のうち一面から5面までを使い、活字の段組みや体裁も変えての掲載でした。翌8月号にはその続き(12)から(21)までが掲載され、パート1は完結しました。

 問題は、パートⅡの「三元論」(「公」とは区別され次元を異にする「公共」を置く理論)を巡ってのものでした。わたしは、二元論とか三元論という発想(一元論?四元論?)そのものに異和を感じ、従来の国家主義的発想を超えるためには、民主制の原理を明晰に自覚することが必要で、第三極をおく・第三の道を歩むという優れた実践は、その原理を踏まえないと真に力を発揮しないと考えていました。それは、わたしが都立高校生時に全学議長として学校改革を成就させた体験にはじまる数々の公共的運動の成功体験(我孫子市における実践が主)に基づく確信でした。

 ところが、金さんの三元論は、『公共的良識人』紙とそれを母体にしてつくられていたシリーズ『公共哲学』(東大出版会刊)の屋台骨でしたので、それに対する原理次元における強力な反論であるわたしの書簡は、編集部全員の反対で掲載を拒否されたのでした。
(なお、パートⅡの往復書簡は、実は、発表された30回ではなく34回行われたのですが、わたしの反論に対して苛立ちを覚えた金さんが感情的となり、公表できるレベルを超えてしまいましたので30回までとなっているのです。一旦、冷却期間を置くことにして、往復書簡は中断しました。)

 2007年の11月某日、金さんからの電話で「申し訳ないですが、編集部の全員が反対しているので、哲学往復書簡の後半は、掲載しないことになりました。」と言われました。
わたしは、「分かりました。権利はそちらにあるのですから、わたしは批判めいたことは何も言いません。」と話し、「でも、残念ですね。金さんは、日本では異論や反論がなく、ほんとうに自由な対話がない。それが日本の実に困った問題だ、といつも仰っていましたが、今回わたしたちは、異論・反論を忌憚なく出し合いながらも人間関係が崩れないという見本をつくったのに、それが公表されないとは、・・・・」と話しました。
うーーん、と金さんは、唸り、「武田さん、分かりました。その通りです。もう一度、編集会議を開き、強く言います。」と話し、電話を切りました。
翌日、「武田さん、載せることになりました。どうしても載せたい、とわたしは言い、いろいろ大変でしたが、編集部を説得しました。」と金さんからの電話でした。不思議な感動がありました。素晴らしいことと感じ、心が震えました。

12月号に載りました。6面から8面の3ページですが、一面に、大きく太い文字で【「楽学」と「恋知」の哲学対話・武田康弘と金泰昌の往復書簡その3】と記載されています。この号は、大反響でした。発行元の「京都フォーラム」に多くのメッセージが寄せられたとのことですが、参議院調査室や人事院の関心も集め、翌1月(2008年1月22日)の参議院におけるパネルディスカッション『公共哲学と公務員倫理』  (パネラーは、わたしと金泰昌さん、東大教授の山脇直司さんと調査室の荒井達夫さん)においても、参加者にコピーが配布されました。

 なお、この往復書簡を発表する段階で、金さんは、自身の書簡を大幅に加筆・訂正しましたので、それに対してわたしも一部手直ししましたが、必要最小限に留めています。加筆・訂正前のオリジナルは、「白樺教育館」のホームページで読むことができます。
(余談ですが、この往復書簡の日付を見ると、わたしは、金さんの書簡を受け取った翌日に返信しているものが多いのです。Eメールが日常化していなければあり得ないことで、よいか悪いかは分かりませんが、自分でも驚きです。)

その後、この哲学対話の続きをしたいと金さんから再度の申し出があり、テーマは「命」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た。まず、武田さんが書いてほしいと言うので書いたのですが、金さんはわたしの思想に応答することが難しいようで、返信がなく、そのまま中断して今日に至っています。というわけで、それからしばらくの間、金さんとの交流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2010年の春に珍しく金さんから電話があり、「哲学往復書簡を東大出版会から本にして出したいのだが・・・」とのことでした。

わたしは、まったく思いもよらぬ話でビックリしました。「東大病」批判も書いた往復書簡が東大出版会から出る?そんなことがあり得るのかな、不思議な気持ちと同時に、金さんにはかなり不利な内容を含む往復書簡を出すという勇気にも感心しました。

わたしは、この出版に際して、東大出版会の編集長・竹中英俊さんと知り合い、それがきっかけで、メールでやりとりする友人になりました。Facebookでは、いつも私のブログ『思索の日記』に「いいね」を付けてくれます。

東大出版会から本を出すにあたっては、またまた大変な難産でした。この金泰昌さん編集の『ともに公共哲学する』は、金さんの膨大な日本での対話の中から選出したものですが、わたしとの往復書簡がメインで、全体の四分の一(90ページ)を占めています。目次には(1)から(30)までの書簡の小見出しがズラリと並び、(5)【学校序列宗教=東大病の下では、自我の内的成長は不可能】という文字も目立ちます。

よく出せたものだな、と思いましたが、実は、竹中編集長の不屈の闘いがあってのことでした。東大出版会から本を出すには、教授会の賛成が得られなくてはなりませんが、やはり始めは「ボツ」になったのだそうです。それを再度の挑戦で竹中さんは出版にこぎ着けたのですが、彼らをどのように説得したのか、詳しいことは不明です。今度聞いてみましょう(笑)。
はじめボツになった理由は、推察するに、オリジナルすぎる思想でしょう。わたしも金さんも、自身の具体的経験から立ち上げた思想で前例がありませんから、東大という官知の大学人は、どのように遇したらよいかが分からないのです。意味ある反対論はなく、ただ「勝手なことを言っている」程度の言葉しか出なかったようです。

わたしは、東大教授のみならず大学人との交流が多くありますが、彼らは書物に頼るのみで、自身の具体的経験から立ち上げ自身の頭で考える力が弱いので、オリジナルの思想を構築することが出来ないのです。哲学教師はいても哲学者(恋知者)はいません。自分の力で哲学したい方は、大学ではなく、「白樺教育館」の大学クラスにお出で下さい(笑)、と最後に宣伝して、この裏話をおわりにします。

武田康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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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学教師はいても哲学者はいません (荒井達夫)
2012-05-1209:43:11

日本国憲法の制定に深く関わり、さらに内閣法制局長官、人事院総裁を務めた故佐藤達夫氏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

「昭和22 年新憲法の実施とともに、公務員は〝天皇の官吏″から〝全体の奉仕者″となり、その結果、公務員制度についても根本的改革が行なわれました。」(「人事院創立15 周年にあたって」『人事院月報』昭和38 年12 月号)

佐藤氏は、法制的に我が国の公務員の原点を指摘したわけですが、この佐藤氏の言葉を哲学的に掘り下げて「官」の存在意義を説明する学者は誰一人出てこなかったのです。それを成し遂げたのが、武田康弘さんの次の言葉です。

「公(おおやけ)という世界が市民的な公共という世界とは別につくられてよいという主張は、近代民主主義社会では原理上許されません。昔は、公をつくるもの=国家に尽くすものとされてきた『官』は、現代では、市民的公共に奉仕するもの=国民に尽くすもの、と逆転したわけです。主権者である国民によってつくられた『官』は、それ独自が目ざす世界(公)を持ってはならず、市民的公共を実現するためにのみ存在する。これが原理です。」(武田康弘

未来永劫消えることのない、人々の魂に響く言葉といえるでしょう。

「書物に頼るのみで、自身の具体的経験から立ち上げ自身の頭で考える力が弱いので、オリジナルの思想を構築することが出来ないのです。哲学教師はいても哲学者(恋知者)はいません。」(武田さん)

これは、まったくそのとおり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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みなさん、ありがとう。 (武田康弘)
2012-05-1214:13:41

荒井達夫さんの大活躍、古林治さんの支え、
コメントを寄せてくれているみなさん、とりわけ、わたしの教え子の綿貫信一さんや染谷裕太さんや青木里佳さんや西山祐天さん・・・愉しい哲学の会の清水光子さんや川瀬優子さんや楊原泰子さん・・・mixiの仲間たち、
鎌ヶ谷市公民館のとわの会のみなさん、
わたしを金さんに紹介してくれた山脇直司さん、竹中英俊さん、わたしを高く評価してくれた金泰昌さん、
同志の福嶋浩彦さん、旧友の竹田青嗣さん、
恩師の竹内芳郎さん、討論塾のみなさん、
内田卓志さん、
熱心に講義を受けられ、ディスカッションに参加された参議院調査室のみなさん、
人間性豊かな心、愛ある人たちの共同がなければ、根源的な変革は不可能です。みなさん、これからもよろしく。
悦びの生、意味充実の知、日本を魅力ある社会に変えるために、ぜひ共に!




コメン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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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었던 『철학왕복서간』(김태창과 다케다 야스히로·동대출판회간)의 뒷 이야기.

2012-05-11  |  서평

 김태창씨로부터의 제안에 의해, 5년전, 2007년의 5월부터 행해진 타케다·김의 철학 왕복 서간 34회(출판된 것은 30회분)의 뒷 이야기를 이하에 기재합니다(김씨 는, 동대 출판회의 시리즈 「공공 철학」전 20권의 편자이며 국제적인 정치 철학자입니다).

 서한의 전반 부분 (특히 3회와 5회의 다케다 서간)은, 메이지 정부 작성의 일본의 사상을 부감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정치·사회·교육의 전체를 지배한 【근대 천황제=천황교·동대병=관료주의】에 대한 나의 견해를 제시했습니다만, 그것은, 그 전후의 서한으로 설명한 바와 같이, (1 ) 교육과 지식의 목적은 「주관성의 지」에 있다는 본질론과, (2) 현상학과 실존 사상(「나」로부터의 출발)에 입각한 철학에 뒷받침된 역사와 현실사회의 분석 그래서, 정리해 「다케다 사상」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합니다).

 후반부는 공공이란 무엇인가? 의 본질론과 거기에 깊게 관계하는 김씨가 주도한 동대출판회의 기본방침=「공・나・공공의 삼원론」을 둘러싼 것입니다. 나는 실존론에 입각하는 다케다의 공공사상을 말하고 현대에 있어서는 근대민주제(인민주권을 원리로 한다)를 철저히 하는 것 이외에 「공공성」을 실현할 길은 없다고 삼원론은 , 민주주의의 원리론 차원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현실 차원에서는 유용하다)고 비판했지만, 그 결과 큰 지지를 얻었다. 공적(2008년 1월의 참의원에 있어서의 패널 토론 등)에도, 사적(사신이나 나의 행사회 등)에도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이 블로그 "사색의 일기"에서 소개했습니다.

 이 철학 왕복 서한은 2005년 6월 김태창씨가 나의 자작나무 교육관을 방문한 이후 김씨와의 2년간에 걸친 일상적인 전화 대화 끝에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공개 되고 출판되기까지는 굉장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파트 1(「악학」과 「연지」의 철학 대화·제1회~제21회)에 대해서는, 스무스였습니다.
우선 「공공적 양식인」지의 7월호에 (1)부터 (11)까지가 실렸습니다. 전례가 없는 특별 취급으로, 8 페이지의 지면 중 일면으로부터 5면까지를 사용해, 활자의 단조나 체재도 바꾸어의 게재였습니다. 다음 8월호에는 그 계속(12)부터 (21)까지가 게재되어, 파트 1은 완결되었습니다.

 문제는 파트Ⅱ의 「삼원론」(「공」과는 구별되어 차원을 달리하는 「공공」을 두는 이론)을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원론이나 삼원론이라는 발상(일원론? 사원론?) 그 자체에 이화를 느끼고 기존의 국가주의적 발상을 넘기 위해서는 민주제의 원리를 명석하게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고 , 제3극을 둔다·제3의 길을 걷는다고 하는 뛰어난 실천은, 그 원리를 밟지 않으면 진정으로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도립 고교생시에 전학 의장으로서 학교 개혁을 성취시킨 체험에 시작되는 수많은 공공적 운동의 성공 체험(아손자시에 있어서의 실천이 주)에 근거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삼원론은, 「공공적 양식인」지와 그것을 모체로 해 만들어져 있던 시리즈 「공공 철학」(도다이 출판 회간)의 포장마차 뼈였으므로, 그것에 대한 원리 차원에 있어서의 강력 한 반론인 나의 서한은 편집부 전원의 반대로 게재를 거부된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파트Ⅱ의 왕복 서한은, 실은, 발표된 30회가 아니라 34회 행해졌습니다만, 내 반론에 대해 자극을 기억한 김씨가 감정적이 되어, 공표할 수 있는 레벨을 넘는 하고 버렸기 때문에 30회까지가 되고 있습니다.일단, 냉각 기간을 두기로 하고, 왕복 서한은 중단했습니다.)

 2007년의 11월 모일, 김씨로부터의 전화로 「죄송합니다만, 편집부의 전원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 왕복 서간의 후반은, 게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해져 네.
나는 "알았습니다. 권리는 그쪽에 있기 때문에, 나는 비판한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말 자유로운 대화가 없다. 그것이 일본의 열매에 곤란한 문제다, 라고 항상 말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우리는, 이론·반론을 기운없이 만나면서도 인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는 견본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공표되지 않는다고는,····」라고 말했습니다.
음, 김 씨는 소리내어, 「다케다 씨,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편집 회의를 열고 강하게 말합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다케다씨,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올리고 싶다, 라고 나는 말해, 여러가지 힘들었습니다만, 편집부를 설득했습니다.」라고 김씨로부터의 전화였습니다. 이상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을 느꼈고 마음이 떨렸습니다.

 12월호에 실렸습니다. 6면에서 8면의 3 페이지입니다만, 일면에, 크게 굵은 문자로【「악학」과 「연지」의 철학 대화·다케다 야스히로와 김태창의 왕복 서간 그 3】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호는 큰 반향이었습니다. 발행원의 「교토 포럼」에 많은 메시지가 전해졌다고 합니다만, 참의원 조사실이나 인사원의 관심도 모아, 다음 1월(2008년 1월 22일)의 참의원에 있어서의 패널 토론 「공공 철학 와 공무원 윤리』  (패널러는 나와 김태창씨, 동대 교수의 야마와키 나오시씨와 조사실의 아라이 타츠오씨)에서도 참가자에게 카피가 배포되었습니다.

 덧붙여 이 왕복 서간을 발표하는 단계에서, 김씨는, 자신의 서간을 대폭으로 가필·정정했으므로, 그에 대해 나도 일부 재검토했습니다만, 필요 최소한으로 둡니다. 가필·정정 전의 오리지널은, “자작나무 교육관”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왕복 서한의 일자를 보면, 나는, 김씨의 서한을 받은 다음날에 회신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E 메일이 일상화하고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그 후, 이 철학 대화의 계속을 하고 싶다고 김씨로부터 다시의 제의가 있어, 테마는 「생명」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다케다 씨가 쓰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썼습니다만, 김씨는 내 사상에 응답하기 어려운 것 같아서 답장이 없고 그대로 중단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 김씨와의 교류는 없었습니다만, 2010년 봄에 드물게 김씨로부터 전화가 있어, “철학 왕복 서간을 동대 출판회에서 책으로 하고 싶지만・・」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이야기로 놀랐습니다. '동대병' 비판도 쓴 왕복 서간이 동대출판회에서 나온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상한 기분과 동시에, 김씨에게는 꽤 불리한 내용을 포함한 왕복 서간을 낸다는 용기에도 감탄했습니다.

 나는, 이 출판에 즈음해, 동대 출판회의 편집장·다케나카 히데토시씨와 알고, 그것이 계기로, 메일로 교환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Facebook에서는 항상 내 블로그 "사색의 일기"에 "좋아요"를 붙여줍니다.

동대출판회에서 책을 낼 때는 또 다시 힘든 난산이었습니다. 이 김태창씨 편집의 「모두 공공 철학한다」 는, 김씨의 방대한 일본에서의 대화 중에서 선출한 것입니다만, 나와의 왕복 서간이 메인으로, 전체의 4분의 1(90페이지 )를 차지합니다. 목차에는 (1)부터 (30)까지의 서한의 작은 표제가 즐비하게 늘어서, (5)【학교 서열 종교=동대병 아래에서는, 자아의 내적 성장은 불가능】이라고 하는 문자도 눈에 띕니다.

잘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은, 타케나카 편집장의 불굴의 싸움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동대출판회에서 책을 내기 위해서는 교수회의 찬성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만, 역시 처음에는 「보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다시 도전으로 다케나카 씨는 출판에 빠져 들었습니다만,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자세한 것은 불명합니다. 이번에 들어 보자 (웃음).
처음 보츠가 된 이유는, 추찰하기에는, 오리지널 너무 사상이지요. 나도 김씨도, 자신의 구체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한 사상으로 전례가 없기 때문에, 동대라고 하는 관지의 대학인은, 어떻게 대우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의미있는 반대론은 없고, 단지 ‘멋대로 말하고 있다’ 정도의 말밖에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동대 교수뿐만 아니라 대학인과의 교류가 많지만, 그들은 책에 의지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원래의 사상을 구축한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철학 교사는 있어도 철학자 (연지자)는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철학하고 싶은 분은, 대학이 아니고, 「자작나무 교육관」의 대학 클래스에 나와 주세요(웃음), 라고 마지막으로 선전해, 이 뒷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다케다 야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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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사는 있어도 철학자는 없습니다 (아라이 타츠오)
2012-05-1209:43:11

 일본 헌법의 제정에 깊이 관여해, 한층 더 내각법 제국 장관, 인사원 총재를 맡은 고사토 타츠오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쇼와 22년 신헌법의 실시와 함께, 공무원은 “천황의 관우”로부터 “전체의 봉사자” 가 되어 15주년에 있어서」 「인사원 월보」쇼와 38년 12월호)

사토씨는, 법제적으로 우리나라의 공무원의 원점을 지적한 것입니다만, 이 사토씨의 말을 철학적으로 파헤쳐 「관」의 존재의의를 설명하는 학자는 누구 한 사람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이룬 것이 다케다 야스히로 씨의 다음 말입니다.

“공(오야케)이라는 세계가 시민적인 공공이라는 세계와는 별도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원리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공을 만드는 것 라고 여겨져 온 「관」은, 현대에서는, 시민적 공공에 봉사하는 것=국민에게 다하는 것, 라고 역전한 것입니다.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관」은, 그 독자가 눈에 띄는 세계 (공)을 가져서는 안 되고, 시민적 공공을 실현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것이 원리입니다.」(다케다 야스히로

미래 영원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에 울리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 의지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구체적 경험으로부터 시작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오리지널의 사상을 구축할 수 없습니다. 철학 교사는 있어도 철학자(연지자) 아니요.」(다케다 씨)

이것은 완전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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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마워요. (다케다 야스히로)
2012-05-12 14:13:41

아라이 타츠오 씨의 맹활약, 고바야시 오사무 씨의 지지,
코멘트를 전해 주는 여러분, 특히, 나의 가르침의 면관 신이치 씨와 스미야 유타 씨와 아오키 리카 씨와 니시야마 유텐 씨··· 즐거운 철학회의 시미즈 미츠코 씨와 카와세 유코 씨와 양하라 야스코 씨 ... mixi의 동료들, 가마가야시 공민관의 토와의 모임 여러분, 나를 김씨에게 소개해 준 야마와키 나오시 씨,
다케나카
히데토시 씨, 나를 높이 평가해 준 김태창씨,
동지의 후쿠시마 히로히코씨, 옛 친구의 다케다 아오히토씨, 은사
의 다케우치 요시로씨, 토론 학원 여러분,
우치다 타쿠시씨,
열심히 강의를 받을 수 있고, 토론 참가한 참의원 조사실 여러분,
인간성이 풍부한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이 없으면 근원적인 변혁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쁨의 삶, 의미 충실의 지, 일본을 매력있는 사회로 바꾸기 위해, 꼭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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