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상’과 ‘마부장’이 오가는 韓日… 청년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 조선일보
‘다나카상’과 ‘마부장’이 오가는 韓日… 청년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아무튼, 주말] [장부승의 海外事情]
한일 양국의 미래 지향성?
청년 아닌 기성세대 문제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3.18. 03:00업데이트 2023.03.19. 07:46
일러스트=한상엽
처음엔 나도 깜빡 속았다.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약간 어눌하지만 일본말도 꽤 한다. 일본에서 온 호스트라는데, 행색이 십 수년 전 일본 스타일이다. 옛날 스타일을 좋아하는 일본인인가? “독도가 누구네 땅이야?”라는 질문에 “독도? 너네 땅”이라고 심드렁하게 답하는 데선 놀라기도 했지만, 일본인들 중에는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는 한국에 줘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나카상은 한국인이다. 개그맨 김경욱이 자신의 ‘부캐’(자신의 원래 정체성과 별개로 새로 만든 인물)로 만든 캐릭터이다. 그는 ‘부캐’의 논리에 충실하다. 다나카상의 상징인 염색 가발과 아르마니 셔츠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끝까지 자신은 일본인이라 주장한다.
그 ‘일본인’이 요즘 핫하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시작된 ‘다나카상’ 열풍은 이제 케이블과 공중파에까지 상륙했다. ‘다나카상’으로서 인터뷰를 하고, 음악 채널은 물론 공영방송에까지 나가 ‘다나카상’으로서 ‘와스레나이’(잊지 않겠어)라는 일본어 제목의 노래를 부른다.
과거에도 일본인을 흉내 내는 코미디언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다나카는 다르다. 일본어 발음을 희화화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유행 가요들을 정확한 일본어 발음으로 부른다. 일본의 문화 코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다나카를 보는 한국인들의 반응 역시 과거와 다르다. 예전 같았으면, 왜색 문화라며 손가락질이 쏟아졌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나카’에게 열광한다. 다나카의 콘서트장은 젊은 관객들로 가득하다. 다나카가 일본 노래를 부르면 객석에서는 합창으로 화답한다.
다나카상의 유튜브 채널은 대한민국 유명 연예인들의 집합소가 됐다. 줄줄이 다나카상이 일하는 호스트 클럽(유튜브 채널)을 찾아가 다나카를 ‘지명’한다. 상당수는 다나카상과 유창한 일본어로 대화한다. 이들은 대개 일본 활동 경력이 있어 일본 문화에 친숙하다.
다나카는 급기야 일본 공중파TV에도 진출했다. ‘샤베쿠리007′이라는 일본 니혼TV의 간판 예능 프로에 나왔다. 일본인 흉내를 개그 소재로 삼으니 일본인들로서는 불쾌해할 줄 알았는데 웬걸, 스튜디오는 폭소 연발이다. 한국의 개그맨이 일본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인 ‘다나카’를 캐릭터로 내걸고 일본어로 개그를 하니 오히려 친밀감을 느낀 것이다.
다나카와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가 ‘마부장’이다. ‘마부장’은 마쓰다 부장을 줄인 말이다. 마쓰다 부장 역시 처음에는 깜빡 속았다. 한국인인 줄 알았다. 일본어 억양이 전혀 없는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하지만 그는 마쓰다 아키히로라는 이름의 일본 여권을 소지하고 오사카에서 부동산 업체 부장으로 근무 중인 일본인이다. 한일 커플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 한국에서 자라고 군 복무도 했지만 현재는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아마도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일 것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오사카 맛집들을 소개해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맛집들을 경쾌한 영상미로 소개해주는 그의 채널은 마쓰다 부장의 ‘꽃중년’ 미모에 능통한 한국어까지 시너지를 일으키며 이제 구독자 100만을 바라본다.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오사카에 달려가 ‘마부장’과 함께 밥과 술을 즐긴다.
과거에 이렇게 유명한 일본인이 있었나? 더욱이 한일 혼혈은 웬만하면 자기 정체성을 숨기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학창 시절 ‘독도는 누구 땅이냐?’라든가 ‘일본은 왜 사과를 안 해?’ 같은 질문을 받으면서 ‘이지메’(괴롭힘)를 당한 아픈 기억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부장은 자기가 일본인이고 한일 혼혈이라는 점을 밝혔다.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들 역시 마부장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니, 마부장이라는 캐릭터뿐 아니라 그가 다루는 오사카 맛집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나 친숙해서 도무지 외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달 50만 이상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고 그중 절반은 오사카로 향한다. 이들의 이미지 속 오사카는 외국이라기보다는 한국 어디쯤 되는 건 아닐까?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협력 파트너라 선언하고, 3월 6일 정부가 징용 문제 해결책을 발표한 후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이 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한일이 이젠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성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젊은 세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은 ‘이미’ 미래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수백만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문화에 익숙하다. 그러니 ‘다나카상’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마부장’의 오사카 음식 소개 채널을 100만명 가까이 구독하는 것 아닐까? 지난 8일 국내 영화 예매율 1위에서 3위가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정부의 징용 배상안에 대해 전 국민의 53%는 반대라지만 20대의 51%는 ‘잘한 결정’이라 답했다(KBS-한국리서치, 3월 7~8일).
미래로 가야 할 것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만 집착하며 일본의 말과 문화를 금기시해온 것이 누군가? 기성세대가 이제 더 이상 말로는 ‘미래’를 말하며 실제론 브레이크만 걸 것이 아니라, 이미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서 진지하게 한일 관계의 미래상을 배워야 할 때가 됐다.
안전한 한국? ‘책임자 색출’과 ‘비난의 정치’로는 안 된다
[아무튼, 주말-장부승의 海外事情]
참사·사고에도 반복되는 비극
한국의 ‘안전’이 진전없는 이유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2.18. 03:00
업데이트 2023.02.18. 07:47
/일러스트=한상엽
/일러스트=한상엽
1995년 난생처음 일본에 갔을 때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일본 버스의 승객 안전 배려였다. 일본에서는 버스를 탈 때 달릴 필요가 없었다. 버스는 정류장 앞에 와 섰고, 문이 열리면 그때 올라타면 됐다. 당시 우리나라 버스는 정류장이 멀찍이 남아 있는데도 문을 열곤 했다. 그럴 땐 우선 달려야 한다. 때를 놓치면 버스는 떠나기 때문이다. 북새통 속에서 승객들은 서로 부딪히기 일쑤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에서 버스는 올라타자마자 승객이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쫓기듯 출발하곤 했다. 버스 안은 관성의 법칙을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 물리학 현장’으로 변했다. 일본 버스는 느긋했다. 자리에 앉을 시간이 충분했다. 승객이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이다.
일본 버스의 안전 배려가 가장 돋보일 때는 내릴 때였다. 정거장을 앞두고 미리 일어나 대기하는 승객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차가 서면 그때 일어나라고 했다. 한국 버스에서 그랬다가는 큰일이다. 정거장을 놓치지 않으려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엉금엉금 움직여 문 앞에 가 있어야 했다.
30년 가까이 지났다. 일본 버스의 배려는 여전하다. 한국 버스는 달라졌나? 최근 서울 시내에서 겪은 일이다. 비가 오는 저녁 무렵이었다. 여행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타는데, 미처 교통카드를 찍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했다. 넘어질 뻔했다. 버스는 급제동과 급출발을 반복했지만, 승객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결국 사달이 났다. 가방을 끙끙 밀어 하차 대기를 하다가 문이 열리고 내리려는데, 갑자기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했다. 문 사이에 가방과 함께 끼여 버린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단말마 같은 비명에 놀랐는지 버스는 그제야 멈췄다. 나의 항의에 운전사는 “입구에 서 계시길래 안 내리시는 줄 알았잖아요”라고 볼멘소리다. 졸지에 나는 제때 하차도 못 하는 사람이 됐다.
작년 발생한 핼러윈 압사 사고 조사 결과가 지난달 나왔다. 경찰은 특수본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고, 관련자 6명을 구속했다. 국회는 국정조사 특위를 만들어 55일간 조사 끝에 900페이지가 넘는 결과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제 우리는 핼러윈 사고의 아픈 교훈을 딛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별로 그러는 것 같지 않다. 국회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비난과 처벌이다. 누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누구를 처벌해야 한다 등등…. 책임자 색출과 ‘비난 정치’가 주를 이룬다. 물론 대안도 있지만, ‘컨트롤 타워 부재’ ‘관련 법령 미비’ 등 천편일률적 일반론이다.
사실 대규모 압사 사건이 인류 역사상 작년 10월 한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다. 1989년 영국에서는 축구 경기장 압사 사고로 94명이 사망했고, 2001년에는 일본 효고현에서 불꽃놀이 인파가 몰려 11명이 깔려 죽었다. 2010년 독일에서는 음악 축제 도중 21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났고, 불과 2년 전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콘서트 도중 8명이 사망했다. 외국에서만 있던 일도 아니다. 멀리는 1959년 부산 공설운동장 사고(67명 사망), 1960년 서울역 사고(31명 사망)가 있었고, 2005년에도 경북 상주시 콘서트장에서 11명이 사망한 바 있다. 압사 사고 연구도 많다. 국내외 논문이 한둘이 아니다.
많은 유사 사건이 이미 있었음에도 또 사고가 난 것은,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위험을 위험으로 느끼고 끈기 있게 구체적 대안을 만들기보다는 책임 소재 따지기에만 급급한 ‘비난 정치’에 골몰했기 때문은 아닐까?
세월호 사건으로 수많은 이가 슬퍼하던 것이 불과 9년 전 일이다. 세월호 인양에 1000억원 이상, 사건 조사에 5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다짐이 무색하게 우리의 바다는 더 위험해졌다.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통계에 따르면 세월호 발생 직전인 2013년 1093건이던 해양 사고는 2021년 2720건으로 거의 3배가 되었다. 같은 기간 인명 피해 역시 307명에서 512명으로 67% 늘었다. 재난에 대한 위험 의식을 높이고 구체적인 매뉴얼을 정비하기보다는 ‘비난의 정치’만을 거듭한 결과 아닐까?
사실 압사 사고 예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위험 요소를 사전에 인지하고, 군중 분산과 일방통행 원칙만 잘 지켜도 좀처럼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상황별 위험 평가 기준과 인파 통제를 실행할 구체 지침을 만들어, 홍보와 교육을 통해 국민이 스스로 지침을 체화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책임자 색출과 ‘비난 정치’만으로는 절대 안전한 세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구체적인 생활 속 대응책을 익혀 나가야 한다. 수십 년째 계속되는 한국 특유의 버스 난폭 운전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으면서 무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관련자를 더 많이 처벌하고, ‘진상 파악’에 더 많은 돈을 쓰면 정말 안전 사회 구현이 가능할까?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애도와 추모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생활 속 안전 의식과 그에 기반한 실행 개선이 없다면 6명이 아니라 600명을 구속해도, 수조원을 쏟아붓는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재난에 대한 진정한 방벽은 우리의 생활 속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바보별님
2023.03.18 11:49:55
미래는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 친일 반일하며 축창가 부를 것인가.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향한 바른 생각에 감사하고 격려를 보낸다
답글작성
307
16
닥터제프
2023.03.18 14:58:45
내용 100프로 동감.
답글작성
251
10
최성호
2023.03.19 07:06:10
정말 좋은 글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