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경연장’에 뛰어든 한반도…기후정의 위한 군축을
입력2023.03.25. 오후 9:37
[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신냉전과 기후위기
지난 9일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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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는 냉전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수만개의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소련이 ‘나를 건들면 너도 죽는다’며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생존을 의존했다. 공교롭게도 줄임말이 매드(MAD)다. 최근 들어 냉전 시대의 ‘미친 짓’이 부활하고 열기도 더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적대감과 짝짓기가 냉전을 방불케 하고 군비경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기후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미 여러차례 경종이 울렸음에도 주요국들은 기후위기 대처를 뒷전으로 미루고 편협하고도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매몰돼 있다. 보다 못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화석연료 중독이야말로 상호확증파괴에 해당된다”며 인류가 “몽유병자처럼 기후재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탄소 배출국 미·중, 경쟁적 군비지출
이처럼 글로벌 복합위기의 양대 축은 전쟁을 머금고 군비경쟁을 격화시키는 ‘신냉전’과 실존적 위협으로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군비경쟁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와 국제협력의 저해를 초래하고 있다. 또 악화된 기후위기는 분쟁의 주된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위기는 불평등과 저성장 등 다른 위기로도 이어진다. 이는 거꾸로 신냉전과 기후위기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집계한 2021년 세계 군사비는 2조1천억달러를 돌파했다. 냉전 시기 화폐가치를 환산해도 군비지출이 가장 컸던 1980년대 중반보다 약 5천억달러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 세계 군사비 상승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세계 양대 군비지출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이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국방비를 늘려온 중국은 올해에도 약 2400억달러를 국방비로 책정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7.2% 늘어난 것이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5%)보다도 높다. 미국은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리겠다고 작심한 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국방비를 끌어올리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4년도 국방예산안은 무려 8860억달러에 이른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마저도 적다며 더 끌어올리자고 한다. 국방비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가 제출한 국방예산안에서 2022년에 250억달러, 2023년에 450억달러를 증액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 내 분위기를 감안할 때, 2~3년 안에 미국 국방비는 1조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처럼 미·중이 군비증강에 혈안이 된 이유는 서로를 사실상 주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 고개를 들기 시작한 ‘대중 봉쇄론’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초당적인 전략으로 굳어졌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이 “전면적인 봉쇄”를 추구하고 있다며 경계심을 강화하고 있다. 이 와중에 1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킬 방안도, 글로벌 복합위기의 중핵으로 떠오른 기후위기 대처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세계 양대 경제대국이자 군비지출 국가이며 탄소 배출국인 미·중에 ‘뭣이 중한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매드 경연장’ 한반도
이뿐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들로 재무장을 자제했던 독일과 일본도 대대적인 군비증강에 착수하고 있다. 냉전기에도 없었던 이들 나라의 군사대국화는 신냉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요구한다. 한국도 밀리지 않는다. 20년 사이에 우리나라 국방비는 무려 3배가 껑충 뛰었고 그 결과 3년 연속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도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나라들이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군비경쟁은 기후변화에도 치명적이다. 우선 군사활동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연구자들은 세계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5~6%를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이를 뭉뚱그려 국가별 탄소 배출과 비교하면 인도 다음으로 많은 전체 4위 수준이다.
또 폭등하는 군사비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수반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처를 돕기 위해 매년 1천억달러의 기후금융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이 약속은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군비증강에 탕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미·중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처에는 협력을 다짐하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어떨까? 가히 ‘매드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동맹과 북한은 극단적인 언어와 최강의 무력시위를 동원해 상대방에게 절멸의 두려움을 안겨주려 한다. 전쟁이 터지면 한-미 동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북한은 ‘대한민국’을 지도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한·미는 공식 문서를 통해 북한이 핵을 쓰면 “북한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협을 하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 사용 조건을 세세하게 공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다른 지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한-미 동맹과 북한의 의도는 상대방에게 최대의 두려움을 안겨줘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전쟁불사론에 기대어 전쟁을 예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결코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매드의 원조 격인 미국·소련은 다양한 대화 채널이라도 있었지만, 한-미 동맹과 북한 사이에는 마땅한 소통 구조도 없다. ‘한반도식 매드’가 더 불안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양쪽이 무기와 장비를 동원해 벌이는 훈련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수시로 전개되고 있는 미국 전략폭격기 1대가 1시간 동안 내뿜는 탄소는 자동차 1대가 7년 동안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 한·미 해병대가 벌이는 쌍룡훈련에 참가한 미국의 강습상륙함 마킨아일랜드함(4만2천t급)이 연료를 완충해 이를 다 소비하면 자동차 10만대가 배출하는 탄소와 비슷한 양이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과 함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미사일의 화염 속에는 탄소가 잔뜩 들어 있다. 지도자들이 미래 세대를 ‘냄비 속의 개구리’로 만들면서 미래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세계를 신냉전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냐는 반론도 나오지만, 적어도 군사 문제에 있어서는 냉전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의 군비경쟁은 냉전기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고, 이 와중에 유럽에선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냉전기에도 있었던 군축 조약이나 담론이 오늘날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탕트 등 ‘군축 가능’ 역사가 증명
냉전기의 ‘매드’는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일은 벌이지 말자는 인간 이성의 최저치에 대한 호소로 이어졌다. 경쟁은 하더라도 전략적 안정이라도 취하자는 것이었고, 군비통제와 군축 조약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1970년대 미-소 데탕트 시대를 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미사일방어체제를 사실상 금지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 그리고 유럽 탈냉전의 시작점이었던 헬싱키 프로세스와 다양한 군축 조약, 핵무기 감축 시대를 연 중거리핵전력(INF) 조약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 조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실 끝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사상 최악의 군비경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23년 세계 군사비는 2조3천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추세로 볼 때, 세계 군사비는 2030년에는 3조달러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 될까? 영국·이집트 정부의 공동 의뢰로 작성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2조달러에서 2조8천억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이러한 천문학적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선진국들이 매년 1조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도 한다.
큰돈이지만 선진국들 중심으로 비상한 결단을 내리면 불가능한 액수도 아니다. 세계 군사비를 내년부터 2030년까지 2조달러 수준으로 동결하고, 이를 예상되는 군사비 증액과 비교하면, 7년 동안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이 5조달러에 육박한다. 이 돈을 기후위기 대처에 사용하면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참고로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 세계 군사비는 1조6천억달러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조1천억달러까지 떨어졌다. 군축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는 냉전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수만개의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소련이 ‘나를 건들면 너도 죽는다’며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생존을 의존했다. 공교롭게도 줄임말이 매드(MAD)다. 최근 들어 냉전 시대의 ‘미친 짓’이 부활하고 열기도 더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적대감과 짝짓기가 냉전을 방불케 하고 군비경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기후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미 여러차례 경종이 울렸음에도 주요국들은 기후위기 대처를 뒷전으로 미루고 편협하고도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매몰돼 있다. 보다 못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화석연료 중독이야말로 상호확증파괴에 해당된다”며 인류가 “몽유병자처럼 기후재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탄소 배출국 미·중, 경쟁적 군비지출
이처럼 글로벌 복합위기의 양대 축은 전쟁을 머금고 군비경쟁을 격화시키는 ‘신냉전’과 실존적 위협으로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군비경쟁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와 국제협력의 저해를 초래하고 있다. 또 악화된 기후위기는 분쟁의 주된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위기는 불평등과 저성장 등 다른 위기로도 이어진다. 이는 거꾸로 신냉전과 기후위기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집계한 2021년 세계 군사비는 2조1천억달러를 돌파했다. 냉전 시기 화폐가치를 환산해도 군비지출이 가장 컸던 1980년대 중반보다 약 5천억달러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 세계 군사비 상승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세계 양대 군비지출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이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국방비를 늘려온 중국은 올해에도 약 2400억달러를 국방비로 책정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7.2% 늘어난 것이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5%)보다도 높다. 미국은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리겠다고 작심한 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국방비를 끌어올리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4년도 국방예산안은 무려 8860억달러에 이른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마저도 적다며 더 끌어올리자고 한다. 국방비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가 제출한 국방예산안에서 2022년에 250억달러, 2023년에 450억달러를 증액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 내 분위기를 감안할 때, 2~3년 안에 미국 국방비는 1조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처럼 미·중이 군비증강에 혈안이 된 이유는 서로를 사실상 주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 고개를 들기 시작한 ‘대중 봉쇄론’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초당적인 전략으로 굳어졌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이 “전면적인 봉쇄”를 추구하고 있다며 경계심을 강화하고 있다. 이 와중에 1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킬 방안도, 글로벌 복합위기의 중핵으로 떠오른 기후위기 대처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세계 양대 경제대국이자 군비지출 국가이며 탄소 배출국인 미·중에 ‘뭣이 중한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매드 경연장’ 한반도
이뿐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들로 재무장을 자제했던 독일과 일본도 대대적인 군비증강에 착수하고 있다. 냉전기에도 없었던 이들 나라의 군사대국화는 신냉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요구한다. 한국도 밀리지 않는다. 20년 사이에 우리나라 국방비는 무려 3배가 껑충 뛰었고 그 결과 3년 연속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도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나라들이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군비경쟁은 기후변화에도 치명적이다. 우선 군사활동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연구자들은 세계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5~6%를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이를 뭉뚱그려 국가별 탄소 배출과 비교하면 인도 다음으로 많은 전체 4위 수준이다.
또 폭등하는 군사비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수반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처를 돕기 위해 매년 1천억달러의 기후금융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이 약속은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군비증강에 탕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미·중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처에는 협력을 다짐하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어떨까? 가히 ‘매드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동맹과 북한은 극단적인 언어와 최강의 무력시위를 동원해 상대방에게 절멸의 두려움을 안겨주려 한다. 전쟁이 터지면 한-미 동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북한은 ‘대한민국’을 지도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한·미는 공식 문서를 통해 북한이 핵을 쓰면 “북한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협을 하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 사용 조건을 세세하게 공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다른 지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한-미 동맹과 북한의 의도는 상대방에게 최대의 두려움을 안겨줘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전쟁불사론에 기대어 전쟁을 예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결코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매드의 원조 격인 미국·소련은 다양한 대화 채널이라도 있었지만, 한-미 동맹과 북한 사이에는 마땅한 소통 구조도 없다. ‘한반도식 매드’가 더 불안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양쪽이 무기와 장비를 동원해 벌이는 훈련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수시로 전개되고 있는 미국 전략폭격기 1대가 1시간 동안 내뿜는 탄소는 자동차 1대가 7년 동안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 한·미 해병대가 벌이는 쌍룡훈련에 참가한 미국의 강습상륙함 마킨아일랜드함(4만2천t급)이 연료를 완충해 이를 다 소비하면 자동차 10만대가 배출하는 탄소와 비슷한 양이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과 함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미사일의 화염 속에는 탄소가 잔뜩 들어 있다. 지도자들이 미래 세대를 ‘냄비 속의 개구리’로 만들면서 미래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세계를 신냉전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냐는 반론도 나오지만, 적어도 군사 문제에 있어서는 냉전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의 군비경쟁은 냉전기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고, 이 와중에 유럽에선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냉전기에도 있었던 군축 조약이나 담론이 오늘날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탕트 등 ‘군축 가능’ 역사가 증명
냉전기의 ‘매드’는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일은 벌이지 말자는 인간 이성의 최저치에 대한 호소로 이어졌다. 경쟁은 하더라도 전략적 안정이라도 취하자는 것이었고, 군비통제와 군축 조약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1970년대 미-소 데탕트 시대를 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미사일방어체제를 사실상 금지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 그리고 유럽 탈냉전의 시작점이었던 헬싱키 프로세스와 다양한 군축 조약, 핵무기 감축 시대를 연 중거리핵전력(INF) 조약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 조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실 끝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사상 최악의 군비경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23년 세계 군사비는 2조3천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추세로 볼 때, 세계 군사비는 2030년에는 3조달러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 될까? 영국·이집트 정부의 공동 의뢰로 작성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2조달러에서 2조8천억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이러한 천문학적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선진국들이 매년 1조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도 한다.
큰돈이지만 선진국들 중심으로 비상한 결단을 내리면 불가능한 액수도 아니다. 세계 군사비를 내년부터 2030년까지 2조달러 수준으로 동결하고, 이를 예상되는 군사비 증액과 비교하면, 7년 동안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이 5조달러에 육박한다. 이 돈을 기후위기 대처에 사용하면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참고로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 세계 군사비는 1조6천억달러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조1천억달러까지 떨어졌다. 군축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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