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란토스

토마스 피터 "톰" 란토스 (Thomas Peter "Tom" Lantos, 1928년 2월 1일 - 2008년 2월 11일 ) [1] 는 미국 의 정치인. 헝가리 이름, 란토시 페텔 타마쉬(Lantos Péter Tamás).

헝가리 부다페스트 에서 태어난 유태계 미국인이며 홀로코스트 의 생존이기도 하다. 전시중은 강제 수용소를 탈주해, 라울·워렌버그 에 의해 제공된 은신처를 거점으로 반나치 저항 조직으로 활동. 전후, 1946년 에 부다페스트 대학 에 입학. 나중에 유대인 단체의 장학금을 얻어 미국에 초대되어 시애틀 의 워싱턴 대학 에 유학. 이 대학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학교 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캘리포니아주 제12선거구 선출로, 1981년 부터 미국 하원 의원을 맡는다. 민주당 소속. 하원 외교위원회 의 위원장을 맡았다.

인물 편집 ]

구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 에 대해 중국 과 한국 이 주장하는 '강제연행설'을 전제로 하고 미국 하원에서의 결의안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또 중화인민공화국 의 인권침해 에 대한 비난결의에 찬동한 적도 있어 인권파라고도 한다 .

1990년 10월 10일, 스스로가 설립한 미국 국회의회 인권위원회에서, 「나이라」라는 소녀를 초청해 이라크의 만행을 증언(나이라 증언)시켰지만, 후에 쿠웨이트측의 날조 증언  발각 했다.

2007년 아르메니아인 학살 에 관한 미국 하원 결의 때는 위원장을 맡아 지난 1세기 정도 전 사건을 제노사이드라고 단정 했다 . 이 결의에 대해서는 터키 정부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받고, 또 미국 정부나 역대 국무장관들도 의회에 결의를 보낼 것을 서한을 보내고 있었다[2 ] .

북한 에 대해서는 소프트랜딩은 가능하다는 사고의 소유자로, 2005년 8월 에는 공화당 의 짐 리치 와 함께 방북하고 있다. 란토스는 전부터 부시 정권 에 대해 ‘양자간 대화·미·조 국교 정상화’를 강하게 촉구했다. 방북에 동행한 리치는 헨리 키신저 와 로버트 제릭 으로 대표되는 국무성 과 기맥을 통한 공화당 좌파이다.

부시 정권의 중동 정책에 대해서는 조지 부시 대통령 이나 네오콘 세력  가까운 일면이 있어, 2002년 에는 정치적 신념을 180도 달라야 할 톰 딜레이 공화당 하원원 내 간사와 합쳐, 팔레스타인 의 야셀・아라파트 전 의장의 미국 입국 금지를 주도, 이라크 에의 무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결의도 적극 추진했다.

식도암 때문에 2008년 차기 하원선에는 출마하지 않고 정계은퇴를 발표했지만 2월 11일 사망 했다 .

사후 2008년 의회 인권위원회는 "톰 란토스 인권위원회( en:Tom Lantos Human Rights Commission )"로 개명되었다. 이 위원회는 2011년 11월 3일에 티베트의 인권탄압에 대해 공청회를 열고 있다 [3] .

관련 항목 편집 ]

나이라 증언 - 걸프 전쟁 의 선전

각주 편집 ]

  1. ↑ “AP News Alert” . Associated Press . (2008년 2월 11일) . "Rep. Tom Lantos of California, the only Holocaust survivor ever to serve in Congress, died early Monday morning, his spokeswoman said."
  2.  산케이 신문 2007년 10월 17일 기사. 후루모리 요시히 사
  3. ↑ [1] 산케이 신문 2011년 11월 5일 기사. 후루모리 요시히 사 기사.

외부 링크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