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31

손민석 - 노동 정치

(1) 손민석 - 가만 보면 이제는 개나소나 민주노총 비판하면 자기가 무슨 대단히 노동문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 Facebook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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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이제는 개나소나 민주노총 비판하면 자기가 무슨 대단히 노동문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거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정규직 이기주의", "비정규직을 방기하는 지도부", "상위 20% 이상의 기득권" 등의 말을 늘어놓기만 한다. 진보 진영에 속한 이가 그렇게 말하면 더 대단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황당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느니 어쩌니. 아무 쓸데없는 소리들이다. 

중요한 건 이들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분석하여 인식하고 그 연장에서 무엇을 이뤄낼 것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파악할지가 잡혀야 어떻게 묶어낼지도 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와 별개로 같은 배달기사라고 해도 배민라이더에 속해 있는 사람과 대리기사는 엄연히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론적인 분석을 하자면 유통과정에서 종속된 '생산자=노동자'와 생산과정에서 종속된 생산자 간의 이해관계의 차이를 어떻게 통합하여 공동의 의제를 추출해낼 수 있는지는 상당히 복잡하다. 

근세 상업자본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 플랫폼에 종속된 노동자와 재벌 대기업에 종속된 사무직 노동자는 말만 같은 임금노동자로 묶일뿐 함께 하기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거리가 멀다. 이들 노동 간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불평등을 딱히 문제삼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게 왜 문제인지부터 말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앞서 말한 이론적 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 

굉장히 단순하게 말해서 혁명을 할거냐? 개량을 할거냐? 그 목적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주체화가 필요한가? 정당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며, 시민과의 연대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등등 이런 잡다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역사적 맥락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국가가 어떻게든 정치성을 박탈하고 레닌 식의 표현에 따르면 경제주의의 영역에 머물도록 강제해온 역사가 있다. 심지어 자유주의자인 김대중조차도 그렇게 했다. 민주당 정부든 국힘당 정부든 역대 정부들은 무슨 연례 행사처럼 검찰 등을 동원하여 노조를 폭력적으로 제압하거나 하려고 시도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유효했다. 

일본도 비슷하지만, 한국에서 노동계급의 형성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결국 국가의 헤게모니와 탈정치화 작업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계급형성의 지표가 바로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경제적 이해를 넘어 "집합적 주체"로서의 노동자 조직의 존속 그 자체를 추구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시 말해서 노동자 조직의 자립성과 정치성의 확립을 지표로 본다면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계급형성의 과정에 놓여 있다. 

 이 부분을 좀더 잘 다루려면 지식인의 문제와 방송-언론매체의 문제 등등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입장도 정리를 해야 한다.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이란 무엇이며 한국적 특질이 뭐고 언론매체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언론을 만들어내야 하고 당기관지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하고 등등의 무수히 많은 논의들이 있다. 

내가 좌파 계열의 정치인 혹은 정치지망생들과 만나서 이런 걸 물어보면 인간들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보수우파부터 민주당, 좌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계열의 정치인 혹은 정치지망생들이 관료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 

마치 외과의사와 같다고 해야 할까? 자기가 집도의야. 모든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초월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과 그에 적합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고 그 지점만 얘기해서 실천하면 되는데 양당제라는 '극한의 대립'이 그걸 가로막고 있고 어쩌고.. 그러면 그걸 어떻게 없앨건데? 자기네들이 새로운 주장을 하면 사람들이 몰릴거고 어쩌고.. 얘야, 나부터 가고 싶지 않다 얘.. 정신차려라.. 

 얘기하는 걸 보면 저 지경인데 어떻게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건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윤석열을 보면..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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