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Between, 2006
개봉2006.09.07장르다큐멘터리국가한국등급15세이상관람가러닝타임98분
평점9.2누적관객21,712명수상내역7회 전주국제영화제, 2006
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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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제작
영상/포토
평점
‘신’과 ‘인간’사이에서 그녀가 웁니다……
대무(大巫) 이해경에게 평범한 스물 여덟 해를 살아온 ‘인희’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요즘 들어 자꾸만 몸이 아프고, 집안에도 안 좋은 일들이 생긴다고 말하는 그녀.
“맑고 순수한 영이 들었네……”
찬찬히 인희의 눈을 바라보다 차분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이해경은 말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른 사람의 앞날이 보이게 되면서 힘들어하지만,
신이 자신을 찾아 왔다는 것을 거부하는 인희.
대무 이해경은 이러한 인희를 측은하게 여기고 옆에 두며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30년간 암을 비롯한 갖은 무병을 앓고 50살이 되어서야 신내림을 받게 되면서 고통에서 벗어난 손영희,
원인도 없이 왼쪽 눈을 실명하고 신이 보인다는 8살 동빈이,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은 아들을 달래기 위한 굿을 하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희는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신의 그려 놓은 숙명을 따르도록 다른 이들을 이끄는 ‘소임’에 눈물 흘리는 대무 이해경.
그리고 가슴 속 묻어두었던 ‘신의 딸’로서의 숙명을 따르는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는 이야기가 밝혀지는데……
나는 사랑 받은 것일까?
버림 받은 것일까?
손금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손에는 신이 그려 놓은 선이 있습니다.
이 선은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줍니다.
우린 그것을
운명이 아닌
‘숙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
우리와는 다른 손을 지닌,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숙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About Movie 】
사랑 받은 자…‘무당’
무려 5,000년이란 세월을 우리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한 ‘무속신앙’의 중심에는 그 오랜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면서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현재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인 ‘무당’이 있다.
‘무당’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하기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뜻이 아닌, 신의 부름에 응답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선택’ 받은 자인 것이다.
인간의 화복(禍福)을 다스리는 신은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이 다른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수행토록 하였다.
이들이 바로 제사와 기도를 바침으로써 신의 응답을 얻고,
인간을 대신하여 신에게 빌어줌으로써 소원을 성취하도록 해 줄 수 있는 존재이자
신을 통한 길흉점복(吉凶占卜)의 예언자의 역할을 하는 ‘무당’인 것이다.
인류애적 구원을 염원하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와 같은 주류 종교와는 달리 ‘무’는 개인의 기복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무당을 찾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었을 때,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끊임없이 위로를 구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어떤 종교보다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무당은 이들의 삶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이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한 반성인적인 존재로써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러한 ‘무당’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해 줌으로써 ‘나와 다른 무언가’에 느낄 수 있는 막연한 거리감을 사라지게 하는 주문을 거는 듯하다. 분명 우리와 다른 능력을 지닌 이들의 삶을 통해 평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면서, 또 다른 시선으로 ‘무당’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여 주는 것이다.
‘이들이 우리와 다른 것은 어쩌면 신이 특별히 사랑한 사람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버림 받은 자… ‘바리데기’
‘무녀’의 시조에 대한 설화 중의 하나인 무조신화 ‘바리데기’ 의 ‘바리공주’는 ‘버리다’의 옛말인 ‘바리다’에서 따 온 이름처럼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는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갖은 고행을 겪는 것을 마다 않는 선택을 한다. 이는 ‘무당’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애환’과 ‘눈물’, 그리고 ‘소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사이에서>는 신과 인간,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삶의 조언자’이면서, 동시에 ‘평범한 인간’이고 싶은 무당들의,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숙명의 무게에 버거워하지만 힘겹게 버텨내는 삶의 눈물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선택 받은 자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버림받은 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이에서>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삶, 그 한복판에 선 무당의 눈물에 주목한다. 우리와 다른 저 먼 세계의 삶이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기에 어쩌면 더 가혹한 그들의 삶은 가슴을 울렁이는 깊은 슬픔을 전한다. 죽은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을 끊임없이 위로하지만, 자신의 슬픔 따위는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운명. “내 목숨과 남의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바로 무당이다”라는 이해경의 말처럼 스스로 자신을 버리고 내던져야 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 이제 위로의 몫은 그들이 아닌 우리에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바리데기 설화’ 』
옛날 이씨주상금마마가 7공주를 본다는 해에 왕비를 맞아들인 후 계속해서 6공주를 낳았다.
이에 실망한 왕과 왕비는 일곱번째는 꼭 왕자를 보기 위하여 온갖 치성을 다 드리지만
일곱째 아이도 역시 공주였다.
이에 노한 대왕은 일곱번째 공주를 옥함에 담아 강물에 띄워 버렸다.
아기는 석가 세존의 지시로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게 구출되어 자라났다.
바리공주가 15세가 되던 해에 대왕마마가 병이 들었다.
청의동자가 대왕마마의 꿈속에 나타나 하늘이 정한 아기를 버린 죄로 죽게 되었다며
살기 위해서는 버린 아기가 구해다 준 무장신선의 불사약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이에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려지고 한 대신의 충성으로 바리공주를 찾았다.
바리공주는 아버지의 불사약을 구하러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로 갔다.
그곳에서 무장신선을 만나 불사약을 받는 값으로
나무하기 3년,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등 9년 동안 일을 해주고
무장신선과 혼인해 아들 일곱을 낳아주었다.
그리고 돌아와보니 이미 대왕마마는 죽어 있었다.
바리공주가 가지고 온 불사약과 꽃 덕분으로 다시 살아난 대왕마마는 공주의 은공에 감사했다.
이후 바리데기 공주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사령(死靈)과 죽음을 다스리는 무속의 여신이 되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리얼 감동 드라마!!!
12년에 걸쳐 제작된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 <송환>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 무(巫)를 성실히 고증한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낄 수 있는 신비감처럼 다큐멘터리는 종종 사실적인 모습이 표현해내는 진실의 힘으로 그 어떤 영화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사이에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그러나 실재하는 모습이 전하는 가슴 설레는 감성과 드라마틱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준다
다큐멘터리는 작품성에 집중한,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존재하는 장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이에서>는 이러한 무겁고 진지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따스한 시선으로 그 어떤 장르영화보다 더 격정적인 드라마를 선사한다. <송환>과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전하는 진실된 감동을 잇는 <사이에서>는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영화제의 화제작으로 떠올랐었다. 그리고 ‘CGV 한국장편영화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됨으로써 리얼 감동의 힘을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울음을 끌어안고 사는 인생, 이해경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두 여자.
젊은 여자는 힘들고 두려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 지켜보며 다그치는 또 다른 한 여자는 가슴으로 울고 있다.
대무(大巫) 이해경은
교통사고로 죽은 재일동포 청년의 혼을 달래기 위한 굿에서 그가 미처 남기지 못한 말들을 부모에게 전하고, 죽어서도 자신을 모시지 않는 후손들을 향한 조상신의 한을 풀면서, 이들의 아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인희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며, 8살 밖에 안 된 소년을 찾아 온 신께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조금 더 클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며, 자신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안쓰러워 하며, 숙명을 전해야 하는 자신의 소임을 원망하며 뜨거운 울음을 하염없이 토해낸다.
영화 <사이에서>의 감동의 중심에는 대무(大巫) 이해경이 있다. 가냘픈 몸과 한 없이 선한 모습이지만 신과 마주하는 그 순간에는 그 누구도 감히 바라볼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기운을 내뿜는 그녀는 언제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끊임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은 오롯이 자신의 것만이 아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숙명의 무게에 짓눌린 상처를 닦아내고, 가슴 속 담아두었던 한스러움과 답답함을 비워 내면서 새로운 희망과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나가기에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가슴속을 깊게 파고들며 자리한다.
아픔을 딛고 웃음과 희망의 신명나는 축제로 우리를 인도하는 그녀가 ‘대무(大巫)’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 Production Note_이창재 감독의 <사이에서> 이야기 】
무당 이야기의 시작
전작 ‘EDIT’로 다양한 실험을 선보인 이창재 감독은 이로 인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그를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망으로 이끌었고, 지금까지의 실험적인 스타일과 나름의 숙련된 방식으로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성 있는 다큐멘터리로 독립 다큐계에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레 가슴에 품게 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무당’은 마치 영매가 접신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카메라에 담고픈 이야기였다.
한국의 무는 샤머니즘과 민속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전통과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세계적인 유산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굿’은 일종의 종합예술로 드라마적 요소와 제례적 요소, 미학적 가치와 존재론적 의미 등을 포괄하는 매우 폭넓은 이야기를 내재하고 있는 소재였던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다큐 작업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담고자 했던 이창재 감독은 이렇게 ‘한국의 무’를 향해 진심을 다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이해경과의 만남
‘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은 이창재 감독은 작품을 위한 첫 선결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의 세계로 자신을 안내해 줄 무당을 찾아 나섰다.
무작정 눈 품, 발 품을 팔아가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허나 ‘신’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면서 그들의 세계로 자신을 온전히 이끌어 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3개월을 팔도의 굿과 60여명의 무당을 만나면서 보낸 후 이창재 감독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강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큰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하자’ 이 결론에 다다른 순간 만난 만신이 이해경이다. 그 누구도 쉬이 이해시킬 수 없었던 ‘무당’의 삶을 이해경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게 만든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촬영을 허락하면서 이해경은 한 달간 자신을 단지 지켜만 보라고 요구하였고, 이창재 감독은 그 말대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을 겪으면서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무당’의 업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 전하는 진실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그의 손은 카메라를 안을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140시간의 분량을 촬영, 두 달간의 편집……만족감은 있으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기운을 다 한 시간이었다. 인터뷰 중간 침묵 사이에서 전해오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통해 한두 번 건질 수 있는, 혹은 편집 모니터에서 언뜻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 접신되듯 전해오는 본질로부터의 가느다란 떨림에 귀 기울였다는 이창재 감독. 관객들에게 그 떨림이 전율처럼 전해진다면, 지금까지의 고난이 작은 미소로 화할지도 모르겠다며 조용히 말을 맺는 그는 분명 <사이에서>를 통해 진심 어린 시선이 얼마나 큰 감흥을 주는지 증명해 내었다.
출연진
이창재감독
이해경주연
황인희주연
손영희주연
김동빈주연
이창재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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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2006
전주국제영화제CGV 한국장편영화 개봉 지원상(이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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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극장 개봉하는 이창재 감독
등록 2006-08-3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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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사이’ 중재자의 삶 담담히”
큰무당 이해경씨와 주변인물 신과 사투하는 과정 기록
국외용 기획 국내 상영 “행운”
7일 개봉하는 <사이에서>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다큐멘터리다. 큰 무당 이해경(50)을 오롯이 카메라 안으로 끌어온 이 98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신과 인간의 사이에 놓인 무당의 직업적 삶과 고뇌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지난 여름, 나는 나와 다른 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라는 감독 이창재(39·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서른다섯살에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길을 걸어온 이해경씨의 운명을 길게 설명하거나 애써 설득하지 않는다. 자기를 찾아온 신을 끝까지 거부려는 스물여덟 살 처녀의 안간힘과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기도 전에 신을 만난 꼬마, 30년 동안 무병을 앓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신내림을 받기 위해 찾아온 여성 등 이씨를 둘러싼 인물들과 그가 벌이는 고된 굿판이 ‘신과 인간의 중재자’라는 직함 속에 묵묵히 가둬온 겹겹 갈등과 눈물을 드러낸다.
“이해경 선생이 밥을 먹거나 장을 보는 등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은 일부러 피했어요. 방송 다큐를 찍을 때부터 인물의 사적인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면서 드라마를 만들어 보는 이를 설득하려는 방식이나 모든 걸 다 벗기면 진실이 나온다는 식의 교조적 시네마 베리테 경향을 경계했거든요. 무당 이해경에 대해서만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유추할 수 있기를 바랬지요.”
5년 넘게 다큐전문 방송국 ‘큐채널’에서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2001년 시카고예술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이 감독은 귀국 직후 해외에서 주목받을 만한 다큐를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무당이라는 소재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종교학자와 민속학자들에게 추천받은 무속인 60여명을 검토하면서 이해경씨도 만나게 됐다. “굿의 완성도나 예술성에서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면의 갈등이 남아 있고 또 완성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았어요.” 카메라 없이 만나고 들여다보기를 한달동안 하면서 자연스럽게 촬영을 허락받았다. “이 선생과 다투기도 엄청 많이 했죠(웃음). 한번은 제가 밥상을 엎으면서 촬영포기를 선언했고, 또 가편집본을 보면서는 이 선생이 완성을 허락할 수 없다고 더 이상의 작업을 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지금은 친구처럼 가까워졌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남아 있지만 <사이에서>를 만들며 무당의 존재가치를 믿게 됐다는 게 변한 점이다. 그러면서 무당이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게 된 애처로움도 작품 안에 녹아 있다. “목사나 사제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도 못받고 신한테도 이용 당하는 미묘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들에게는 외로움이 뼛속 깊이 박혀있어요.”
다큐 시장이 전무하다시피해 포기했던 한국에서의 개봉은 예상치 못하게 이뤄졌다. 편집본을 보여달라고 졸랐던 제자가 전주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추천을 했고, 출품 마감기한이 끝난 다음 막차를 타 ‘씨지브이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에 선정됐다. 이 감독은 개봉 자체보다 “모니터가 아닌 스크린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게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운좋은” 개봉을 기뻐했다. <사이에서>는 씨지브이 강변, 상암, 서면, 인천 등 인디영화관 네 곳에서 개봉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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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감독 이창재(법학 94년 졸) 동문
인터넷 한양뉴스
입력 2006.12.01
한양 동문이 뛴다 126 :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 감독을 만나다
영화 「괴물」이 천삼백만 관객을 기록하던 때, 같은 극장의 작은 상영관에서는 신 내림을 받아 살아가는 무당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스크린을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2만 3천 838명. 숫자와 1등이 모든 것을 점령하는 시대에 천삼백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지만 역대 다큐멘터리 흥행사상 최고의 기록이 조용히 달성됐다. 영화 「사이에서」는 지난달 7일, 개봉 꼭 두 달 만에 「송환」이 세운 기존 흥행기록을 넘어 섰다. 다큐멘터리를 “모니터가 아닌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조차 감사했다”던 감독 이창재(법학 94년 졸) 동문은 “신기하며”는 짧은 말로 최고흥행 감독의 소감을 전한다.
일상 아닌 ‘굿’으로 무당을 이해하는 영화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사이에서」는 CGV의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됐다. 그래서 아트플러스와 같은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통해 상영됐던 이전의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달리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체인 CGV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이었다.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알만한” 관객들의 평가만 받았던 것과 달리, 아무런 정보 없이 멀티플렉스를 찾았다가 우연히 발걸음 했던 관객들은 낯선 다큐멘터리의 화법과 충격적인 무당의 삶을 맞닥뜨리고 당황해하기도 했다.
“「사이에서」가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최고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지만 2만 3천명입니다. 프랑스는 최고 기록이 2백만이고요. 사실 제작 단계에서는 해외 마케팅을 생각했었어요. 한국의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은 사실 굉장히 열린 분들이거든요.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CGV의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됐고,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수 있었죠. 그리고 많은 분들이 보실 기회를 얻었죠. 필터링된 관객들만 접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반응을 만날 수 있어 더 즐거웠어요. 사실 다큐멘터리가 개봉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만 명 정도 봐준다면 부끄럽진 않겠다고 생각하긴 했죠. 영화의 흥행이 1명이든 2만 명이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여름, 나는 나와 다른 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라는 이 동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서른다섯에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길을 걸어온 이해경 씨의 운명을 설명하거나 애써 설득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그의 굿판을 비출 뿐이다. 찾아온 신을 끝까지 거부하려 눈물겨운 울음을 터뜨리는 스물여덟의 처녀, 인간의 세계에 눈을 뜨기도 전에 신을 받아들인 꼬마, 30년 동안 무병을 앓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신내림을 받기 위해 찾아온 이. 이렇게 이 씨의 주변에서 숨쉬는 인물들과 그들과 함께 벌이는 굿판이 스크린 위에 흐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을 가진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아닌,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다른 운명을 가진 사람으로 이 씨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해경 선생의 일상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어요.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시장에서 장을 볼 때 나는 그저 옆에서 얘기만 나눴죠.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며 ‘봐라,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사람의 가장 신기한 부분을 바라보며 그 안의 내면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무당 이해경에의 굿만 보여 주며 그 안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일상의 한 구석에서 시작된 6개월의 「사이에서」
대학졸업 후 유명한 광고회사와 일간지 기자의 직함을 던지고, 이 동문은 5년 동안 다큐전문 방송국 ‘큐채널’의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던 1인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주목받았다. 이 동문이 1인 제작 시스템을 생각했던 이유는 취재원에게 가장 밀착해 내면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이에서」를 촬영한 6개월 역시 이경해 씨와의 만남 역시 그렇게 일상의 한 구석으로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카메라를 가지고 가죠. 어색하고 굳어진 표정 앞에서는 카메라를 내리고 그냥 농담을 건네죠. 밥도 같이 먹고, 졸리면 방구석에 누워 잠도 잡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좀 더 큰 카메라를 들고 갑니다. 그의 굿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익숙해지고, 끊임없이 보고 나면 어느새 시나리오를 쓰고 있죠. 다음에는 스탭과 함께 큰 카메라를 들이대요. 개의치 않고 굿판을 벌이죠. ‘이 시점에 여기를 비추면, 칼이 앵글안에 꽉 차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어김없죠. 그렇게 6개월을 지냈어요. 이 선생과 다투기도 엄청 많이 했죠(웃음). 내가 밥상을 엎으면서 촬영포기를 선언하기도 했고, 편집본을 보며 이 선생이 더 이상의 작업을 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을 좇는 감독과 운명을 좇는 무속인의 만남
그 6개월은 이 동문에게 비단 영화를 만드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유학 시절, 우리의 무속신앙에 대한 찬사를 전하는 외국인 교수의 말을 듣고 카메라를 잡게 된 이 동문이지만 이 동문의 인생관과 이 씨의 인생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거부도 선택도 없는 운명’을 살아야 하는 무속인의 세계는 늘 원하는 것을 이루려 노력했던 이 동문의 인생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좇으며 살아왔어요. 대학 졸업 이후 기자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그리고 이제는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이 씨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을 사는 사람이었죠. 영화를 본 관객에게 질문을 받았어요. 당신에게 신이 찾아온다면 당신은 거부할 수 있겠냐고. 그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마흔을 넘기면서 그렇게밖에 되지 않는 세상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말이죠.”
이 동문에게 대학시절은 스스로를 테스트했던 4년이었다. 부모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법학과에 진학했고, 그래서 ‘한이 맺힌’ 이 동문은 이후 자신이 정말 개성이 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모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법조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이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며 기분나빠하겠지만, 사법고시는 최후의 보루였어요.(웃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학보사에 입사했지만 1년 정도 견디었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문예공모전에 시를 출품했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죠. 소설로 방향을 바꿔 한대신문 학술문예상에 공모해 대상을 받았어요. 역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언론사 입사시험을 위한 모임을 스스로 조직하기도 했고, 졸업 후에 언론사 기자와 광고회사를 거쳤죠.”
이후 이 동문이 다다른 곳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1인제작 시스템을 도입하며 주목받았던 이 동문은 이후 시카고예술학교로 유학을 떠나 영화를 공부했고, 귀국과 함께 중앙대의 첨단영상대학원의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됐다. 다른 세계를 찾아 쉼없이 움직였던 이 동문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움직였을 뿐이란다. 정말 좋아하면 노력을 하기 마련이고, 결국은 잘 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늙어갑니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합리화 하는 순간 늙어갑니다. 많은 조건과 현실이 우리의 삶을 제약합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잃어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눈앞에 수만가지 펼쳐져 있을 때 누구나 혼란스럽죠. 어떤 것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겠죠. 하지만 선택해야 해요. 당위성에 떠밀려 ‘좋아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것과, 고뇌를 통해 선택하는 것은 다릅니다. 누구나 게으르고 싶어요. 나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이것만은 놓칠 수 없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 동문과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며 함께 있던 사진기자와 뒷담화를 나눴다. 사법고시를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고, 몇 개의 언론사 기자로 합격했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동문. “뭐든지 잘 하는 뛰어난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여유부리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사실 이 동문이 전하는 말들을 100% 이해하지 못했다. 기자 역시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혼란스러운 시절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해답은 오히려 운명을 좇아야만 했던 이해경 씨에게서 얻는다. 일상이 아닌 굿을 통해 바라본 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긍정하며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무속인의 모습, 놓칠 수 없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기에 원하는 것을 찾아냈던 이 동문의 모습,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과연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기자의 마음.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자하는 그 모습이 어느새 닮아있기 때문이다.
무속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극장 개봉하는 이창재 감독
등록 2006-08-3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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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사이’ 중재자의 삶 담담히”
큰무당 이해경씨와 주변인물 신과 사투하는 과정 기록
국외용 기획 국내 상영 “행운”
7일 개봉하는 <사이에서>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다큐멘터리다. 큰 무당 이해경(50)을 오롯이 카메라 안으로 끌어온 이 98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신과 인간의 사이에 놓인 무당의 직업적 삶과 고뇌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지난 여름, 나는 나와 다른 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라는 감독 이창재(39·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서른다섯살에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길을 걸어온 이해경씨의 운명을 길게 설명하거나 애써 설득하지 않는다. 자기를 찾아온 신을 끝까지 거부려는 스물여덟 살 처녀의 안간힘과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기도 전에 신을 만난 꼬마, 30년 동안 무병을 앓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신내림을 받기 위해 찾아온 여성 등 이씨를 둘러싼 인물들과 그가 벌이는 고된 굿판이 ‘신과 인간의 중재자’라는 직함 속에 묵묵히 가둬온 겹겹 갈등과 눈물을 드러낸다.
“이해경 선생이 밥을 먹거나 장을 보는 등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은 일부러 피했어요. 방송 다큐를 찍을 때부터 인물의 사적인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면서 드라마를 만들어 보는 이를 설득하려는 방식이나 모든 걸 다 벗기면 진실이 나온다는 식의 교조적 시네마 베리테 경향을 경계했거든요. 무당 이해경에 대해서만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유추할 수 있기를 바랬지요.”
5년 넘게 다큐전문 방송국 ‘큐채널’에서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2001년 시카고예술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이 감독은 귀국 직후 해외에서 주목받을 만한 다큐를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무당이라는 소재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종교학자와 민속학자들에게 추천받은 무속인 60여명을 검토하면서 이해경씨도 만나게 됐다. “굿의 완성도나 예술성에서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면의 갈등이 남아 있고 또 완성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았어요.” 카메라 없이 만나고 들여다보기를 한달동안 하면서 자연스럽게 촬영을 허락받았다. “이 선생과 다투기도 엄청 많이 했죠(웃음). 한번은 제가 밥상을 엎으면서 촬영포기를 선언했고, 또 가편집본을 보면서는 이 선생이 완성을 허락할 수 없다고 더 이상의 작업을 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지금은 친구처럼 가까워졌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남아 있지만 <사이에서>를 만들며 무당의 존재가치를 믿게 됐다는 게 변한 점이다. 그러면서 무당이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게 된 애처로움도 작품 안에 녹아 있다. “목사나 사제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도 못받고 신한테도 이용 당하는 미묘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들에게는 외로움이 뼛속 깊이 박혀있어요.”
다큐 시장이 전무하다시피해 포기했던 한국에서의 개봉은 예상치 못하게 이뤄졌다. 편집본을 보여달라고 졸랐던 제자가 전주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추천을 했고, 출품 마감기한이 끝난 다음 막차를 타 ‘씨지브이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에 선정됐다. 이 감독은 개봉 자체보다 “모니터가 아닌 스크린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게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운좋은” 개봉을 기뻐했다. <사이에서>는 씨지브이 강변, 상암, 서면, 인천 등 인디영화관 네 곳에서 개봉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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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감독 이창재(법학 94년 졸) 동문
인터넷 한양뉴스
입력 2006.12.01
한양 동문이 뛴다 126 :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 감독을 만나다
영화 「괴물」이 천삼백만 관객을 기록하던 때, 같은 극장의 작은 상영관에서는 신 내림을 받아 살아가는 무당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스크린을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2만 3천 838명. 숫자와 1등이 모든 것을 점령하는 시대에 천삼백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지만 역대 다큐멘터리 흥행사상 최고의 기록이 조용히 달성됐다. 영화 「사이에서」는 지난달 7일, 개봉 꼭 두 달 만에 「송환」이 세운 기존 흥행기록을 넘어 섰다. 다큐멘터리를 “모니터가 아닌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조차 감사했다”던 감독 이창재(법학 94년 졸) 동문은 “신기하며”는 짧은 말로 최고흥행 감독의 소감을 전한다.
일상 아닌 ‘굿’으로 무당을 이해하는 영화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사이에서」는 CGV의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됐다. 그래서 아트플러스와 같은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통해 상영됐던 이전의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달리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체인 CGV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이었다.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알만한” 관객들의 평가만 받았던 것과 달리, 아무런 정보 없이 멀티플렉스를 찾았다가 우연히 발걸음 했던 관객들은 낯선 다큐멘터리의 화법과 충격적인 무당의 삶을 맞닥뜨리고 당황해하기도 했다.
“「사이에서」가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최고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지만 2만 3천명입니다. 프랑스는 최고 기록이 2백만이고요. 사실 제작 단계에서는 해외 마케팅을 생각했었어요. 한국의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은 사실 굉장히 열린 분들이거든요.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CGV의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됐고,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수 있었죠. 그리고 많은 분들이 보실 기회를 얻었죠. 필터링된 관객들만 접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반응을 만날 수 있어 더 즐거웠어요. 사실 다큐멘터리가 개봉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만 명 정도 봐준다면 부끄럽진 않겠다고 생각하긴 했죠. 영화의 흥행이 1명이든 2만 명이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여름, 나는 나와 다른 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라는 이 동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서른다섯에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길을 걸어온 이해경 씨의 운명을 설명하거나 애써 설득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그의 굿판을 비출 뿐이다. 찾아온 신을 끝까지 거부하려 눈물겨운 울음을 터뜨리는 스물여덟의 처녀, 인간의 세계에 눈을 뜨기도 전에 신을 받아들인 꼬마, 30년 동안 무병을 앓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신내림을 받기 위해 찾아온 이. 이렇게 이 씨의 주변에서 숨쉬는 인물들과 그들과 함께 벌이는 굿판이 스크린 위에 흐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을 가진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아닌,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다른 운명을 가진 사람으로 이 씨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해경 선생의 일상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어요.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시장에서 장을 볼 때 나는 그저 옆에서 얘기만 나눴죠.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며 ‘봐라,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사람의 가장 신기한 부분을 바라보며 그 안의 내면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무당 이해경에의 굿만 보여 주며 그 안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일상의 한 구석에서 시작된 6개월의 「사이에서」
대학졸업 후 유명한 광고회사와 일간지 기자의 직함을 던지고, 이 동문은 5년 동안 다큐전문 방송국 ‘큐채널’의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던 1인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주목받았다. 이 동문이 1인 제작 시스템을 생각했던 이유는 취재원에게 가장 밀착해 내면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이에서」를 촬영한 6개월 역시 이경해 씨와의 만남 역시 그렇게 일상의 한 구석으로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카메라를 가지고 가죠. 어색하고 굳어진 표정 앞에서는 카메라를 내리고 그냥 농담을 건네죠. 밥도 같이 먹고, 졸리면 방구석에 누워 잠도 잡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좀 더 큰 카메라를 들고 갑니다. 그의 굿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익숙해지고, 끊임없이 보고 나면 어느새 시나리오를 쓰고 있죠. 다음에는 스탭과 함께 큰 카메라를 들이대요. 개의치 않고 굿판을 벌이죠. ‘이 시점에 여기를 비추면, 칼이 앵글안에 꽉 차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어김없죠. 그렇게 6개월을 지냈어요. 이 선생과 다투기도 엄청 많이 했죠(웃음). 내가 밥상을 엎으면서 촬영포기를 선언하기도 했고, 편집본을 보며 이 선생이 더 이상의 작업을 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을 좇는 감독과 운명을 좇는 무속인의 만남
그 6개월은 이 동문에게 비단 영화를 만드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유학 시절, 우리의 무속신앙에 대한 찬사를 전하는 외국인 교수의 말을 듣고 카메라를 잡게 된 이 동문이지만 이 동문의 인생관과 이 씨의 인생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거부도 선택도 없는 운명’을 살아야 하는 무속인의 세계는 늘 원하는 것을 이루려 노력했던 이 동문의 인생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좇으며 살아왔어요. 대학 졸업 이후 기자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그리고 이제는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이 씨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을 사는 사람이었죠. 영화를 본 관객에게 질문을 받았어요. 당신에게 신이 찾아온다면 당신은 거부할 수 있겠냐고. 그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마흔을 넘기면서 그렇게밖에 되지 않는 세상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말이죠.”
이 동문에게 대학시절은 스스로를 테스트했던 4년이었다. 부모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법학과에 진학했고, 그래서 ‘한이 맺힌’ 이 동문은 이후 자신이 정말 개성이 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모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법조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이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며 기분나빠하겠지만, 사법고시는 최후의 보루였어요.(웃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학보사에 입사했지만 1년 정도 견디었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문예공모전에 시를 출품했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죠. 소설로 방향을 바꿔 한대신문 학술문예상에 공모해 대상을 받았어요. 역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언론사 입사시험을 위한 모임을 스스로 조직하기도 했고, 졸업 후에 언론사 기자와 광고회사를 거쳤죠.”
이후 이 동문이 다다른 곳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1인제작 시스템을 도입하며 주목받았던 이 동문은 이후 시카고예술학교로 유학을 떠나 영화를 공부했고, 귀국과 함께 중앙대의 첨단영상대학원의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됐다. 다른 세계를 찾아 쉼없이 움직였던 이 동문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움직였을 뿐이란다. 정말 좋아하면 노력을 하기 마련이고, 결국은 잘 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늙어갑니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합리화 하는 순간 늙어갑니다. 많은 조건과 현실이 우리의 삶을 제약합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잃어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눈앞에 수만가지 펼쳐져 있을 때 누구나 혼란스럽죠. 어떤 것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겠죠. 하지만 선택해야 해요. 당위성에 떠밀려 ‘좋아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것과, 고뇌를 통해 선택하는 것은 다릅니다. 누구나 게으르고 싶어요. 나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이것만은 놓칠 수 없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 동문과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며 함께 있던 사진기자와 뒷담화를 나눴다. 사법고시를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고, 몇 개의 언론사 기자로 합격했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동문. “뭐든지 잘 하는 뛰어난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여유부리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사실 이 동문이 전하는 말들을 100% 이해하지 못했다. 기자 역시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혼란스러운 시절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해답은 오히려 운명을 좇아야만 했던 이해경 씨에게서 얻는다. 일상이 아닌 굿을 통해 바라본 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긍정하며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무속인의 모습, 놓칠 수 없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기에 원하는 것을 찾아냈던 이 동문의 모습,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과연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기자의 마음.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자하는 그 모습이 어느새 닮아있기 때문이다.
글 : 변 휘 취재팀장 hynews69@hanyang.ac.kr
사진 : 김기현 사진기자 azure82@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 동문은 지난 94년 본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영화연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제일기획과 국민일보 기자를 거쳐 Q채널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했다. 예술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현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영화연출을 가르치고 있다. 장편 실험다큐 (2003)와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의 선택 : 비평가 주간’에서 상영된 단편 「미국전쟁략사」등을 연출하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사이에서」로 지난달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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