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천년사] 무엇이 문제인가?① -백제는 지우고 왜는 살리고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승인 2023.05.08
[이덕일의 '전라도천년사' 톺아보기]
■전라도는 왜의 식민지?
《전라도천년사》가 e-북으로 공개되자 많은 물의가 일어나고 있다.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 500만전라도민연대(공동집행위원장 박형준·양경님·김영광)’ 등의 역사운동단체에서는 작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고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안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과 광주광역시의회·전남도의회 의원들도 성명서를 발표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전 순천향대 교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24억의 광주.전남.북 세금을 들여 쓴 《전라도천년사》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라도를 왜의 식민지라고 쓴 부분이다.
야마토왜가 전라도를 지배했다고 쓴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자.
“(영산강 유역이) 왜 세력일 가능성은 이 고분들의 석곽이 일본열도, 특히 큐슈지역에서 성행한 것과 상통하고 갑옷이나 투구가 일본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세기대 일본열도에서는 중국 남조에 사신을 보내는 일이 많았으므로 해로 관리를 위해 파견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전라도천년사》 4권 139쪽)"
야마토왜에서 중국 남조에 사신을 보내면서 그 해로관리를 위해서 전라도에 왜인들을 파견해서 지배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버젓이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광주시민·전라도민들은 물론 전 국민이 경악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한국 역사학계의 뿌리
광주전남북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 500만전라도민연대' 양경님 공동집행위원장이 식민사관과 역사왜곡이 드러난 '전라도 천년사' 폐기를 촉구하며 지난 2일부터 전북도청에서 철야시위를 하고 있다. ⓒ전라도오천년사연대 제공
ⓒ전라도오천년사연대 제공
이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현재 한국 역사학계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한국은 대학 및 역사관련 국가기관에 자리잡은 역사학자들과 자국사를 사랑하는 일반 국민들 관계가 적대적인 유일한 국가이다.
그 이유가 이 뿌리에 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의 외형이 해방되었을 때 ‘역사학계’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은 셋이었다.
첫째는 민족주의 역사학계로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계승하려던 학파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단재 신채호 선생 등의 역사관을 계승하려던 학파이다.
이들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때 친일세력들이 다시 득세해서 독립운동가들을 거세하는 와중에 제거되거나 정인보·안재홍처럼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사라졌다.
둘째는 사회주의 계열 역사학계로서 맑스·엥겔스의 사적유물론에 입각한 사회경제사 서적들을 썼기 때문에 ‘사회경제사학’이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김일성 위원장이 파견원을 내려보내자 월북해서 북한 역사학계의 중추를 이루었다.
백남운, 박시형, 전석담, 김석형 등이 주요 학자들이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역사학계는 모두 일제에 맞서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셋째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국사를 난도질하던 ‘식민사학계’로서 이병도, 신석호로 대표된다.
해방 후 한국현대사가 프랑스같은 정상적인 경로를 거쳤다면 역사학계는 물론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민족주의 역사학계가 친일세력에 의해 제거되고, 사회주의 역사학계가 월북하면서 남한 역사학계를 식민사학계가 거의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은 ‘황국사관’, 또는 ‘식민사관’이라는 이름표를 ‘실증사학’으로 바꾸고 마치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것처럼 80년 가까이 호도해왔다.
■‘우리 학계’, ‘역사학계’라는 용어
'전라도 천년사' 표지그림.
《전라도천년사》에는 ‘우리 학계’ 또는 ‘역사학계’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식민사학계가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전국 모든 대학의 사학과와 역사관련 모든 국가기관을 장악해 한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다.
이들은 “역사는 ‘우리 학계’, ‘역사학계’에 맡기고 ”너희들은 돈이나 대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국고를 주어 서술을 의뢰하면 《전라도천년사》처럼 포장지는 한국산인데 내용물은 일본산이 나온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7년여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역사학자들에게 47억 원의 국고를 주어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북한 강역을 중국에 넘겨주었고 독도는 끝까지 그려오지 않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그 전에 하버드대학에 100만 달러의 국고를 상납해 〈한국 고대사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또한 북한 강역을 모두 중국 땅으로 표기했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모두가 한 통속인 이들은 각종 언론의 학술담당 기자들과 굳센 카르텔을 형성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은 보도조차 되지 않거나 보도되더라도 식민사학자들의 입장만 대변한다.
한국이 OECD 국가 중에 언론신뢰도가 꼴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마토왜 중심사관
광주.전남.북 시민사회단체로 짜여진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 500만전라도민연대(공동집행위원장 박형준 양경님 김영광)'가 지난 2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 식민사관에 더해 중국 동북공정까지 추정한 "'전라도천년사' 34권 전권 폐기와 사업비 24억원 투명공개, 전액환수"를 주장하고 있다. ⓒ전라도 오천년사연대 제공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들의 역사관인 ‘식민사관’ 즉 ‘황국사관’은 일왕을 역사의 주체로 바라보는 역사관이다.
황국사관의 사상적 기반은 남한 강단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스승인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가 만든 ‘기내(畿內) 야마토왜(大和倭) 중심사관’이다.
일본에서 기내라고 불리는 지역은 고대 일본 야마토왜의 수도였던 나라(奈良) 중심의 그리 크지 않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고대부터 강력한 고대국가인 야마토왜가 있어서 세토내해(瀨戶內海)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쓰다 소키치는 그 전까지 한국은 물론 일본 지식인들의 상식이었던 ‘한국민족 도래설(渡來說)’을 부인했다.
서기 전 3세기에서 서기 3세기경의 야요이문화는 물론 4세기 무렵부터 시작하는 고분시대는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만든 문화였다.
그러나 쓰다 소키치는 이를 부인하고 일본민족은 일본 열도에서 자생했다고 주장했다.
쓰다 소키치는 1913년 〈(일본서기) 신대사(神代史)의 새로운 연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황실과 여러 민족, 즉 국민은 동일한 부모에서 나온 동포이며 황실은 그 동포의 종가이기 때문에 황실과 국민은 본래 일체이며 멀리 떨어진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양자는 뼈와 살처럼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래 끊을 수 없는 관계, 끊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만세일계(萬世一系)이다.”
쓰다 소키치가 《일본서기》 〈신대사〉를 부정한 이유에 대해 가천대 동양어문학과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 교수는 아래와 같이 간파했다.
“본질적으로는 일본민족의 선조가 한반도에서 도래했다는 당시의 정설을 부정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일본인의 형성과 한반도 도래인》, 경인문화사, 2020)”
이는 일본 고대사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역사를 지우고, 거꾸로 왜가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조작하려는 것이었다.
고대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를 정벌해 임나일본부를 설치했고 임나4현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제철기술이 없는 군사강국?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이 지난 3일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라도 천년사' 의 심각한 역사왜곡을 지적하고 집필책임자의 대국민 해명, 충분한 열람기한 보장, 왜곡 기술 내용 수정 등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경만, 이용빈 이형석, 신정훈, 이병훈, 윤영덕 의원. ⓒ이병훈 의원실 제공
야마토왜는 서기 6세기까지 제철기술도 없었다.
그러나 ‘기내 야마토왜 중심사관’은 불가능이 없다.
제철기술은 없지만 백제에서 덩이쇠인 철정(鐵鋌)을 갖다 바쳤기 때문에 강력한 군사강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허황된 논리를 《전라도천년사》가 추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라도 서남해안과 인근 도서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왜계 고분의 주인공들은 백제와 왜를 연결하는 항로상의 요충지와 관련되어 특별한 역할을 하였던 인물들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현지 세력자도 있었을 것이지만 왜인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전라도천년사》 4권 146쪽)”
전라도에 있는 ‘왜계’ 고분들은 왜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한 증거라는 것이다.
식민사관=황국사관=‘기내 야마토 중심사관’은 학문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선전이자 침략이론에 불과하다.
《전라도천년사》는 이 쓰다의 ‘기내 야마토 중심사관’에 의해서 쓰여졌다.
그러니 전라도는 야마토왜가 남조에 보낼 사신들의 뱃길을 관리하는 왜인들의 지배지역이자 심지어 야마토왜와 정권투쟁에서 패배한 왜인들이 망명해서 전라도를 차지했다고 쓸 수 있는 것이다.
■백제사를 부정해야 전라도가 왜의 식민지가 된다.
일본 나라현 석무대고분(소아마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전라도천년사》를 관통하는 큰 줄기는 ‘백제 죽이기’다.
백제는 대륙·반도·열도를 아울렀던 대제국인데 《전라도천년사》는 대제국은커녕 530년까지 전라도도 차지하지 못한 지방정권으로 크게 축소했다.
백제에서 야마토왜에 하사한 칠지도(七支刀)에서 “후왕(侯王:제후)에게 공급할만하다(供候王)”고 쓴 것처럼 야마토왜는 백제의 제후국이었다.
중국의 《양서(梁書)》는 이를 담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라도천년사》는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을 ‘북큐수형(北九州形)’, ‘히고형(肥後形)’ 등으로 분류하면서 ‘왜계 고분’이라고 단정 짓는다.
히고형은 큐슈의 구마모토(熊本)를 뜻하는데 북큐슈·히고할 것 없이 큐슈(九州) 전역의 고분들은 대부분 가야계 아니면 백제계 고분들이다.
4세기에는 주로 가야계 고분이 많고 5세기에 접어들면 백제계 고분이 많아진다.
구마모토에 있는 에다 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은 5세기 말~6세기 초에 만든 전방후원분이다.
오사카시립대학의 나오키 고지로(直木孝次郞) 교수는 “이 고분에서는 신라와 백제계의 금동관, 금동 신발, 금귀고리 등 풍부한 부장품이 동시에 출토됐다.”면서 그 주인공은 “신라, 백제 어느 쪽인지 확정할 수 없으나 남조선에 종속했던 사람”(《일본신화와 고대국가(日本神話と古代國家)》, 1993)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월 22일 전북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 가야고분군에서 바른역사시민연대 역사답사 참가자들과 전라도오천년사연대 회원들이 '전라도 천년사' 역사왜곡을 규탄하고 있다. ⓒ광주인
북한의 김석형(金錫亨:1915∼1996)은 백제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 세운 백제 분국(分國)의 후왕(侯王:분국의 왕)의 무덤으로 보았다.
대륙·반도·열도를 아우른 대제국 백제의 시각으로 보면 고대 야마토왜 자체가 백제의 분국(分國)이다.
백제의 눈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들을 ‘기내 야마토왜 중심사관’이란 일본 극우파의 정치선전으로 보니 전라도를 왜의 식민지로 그려놓은 것이다.
《전라도천년사》는 고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관점 자체가 왜인들의 시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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