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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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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무성은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비밀리에 전국 경찰에 <점령군 위안시설 설치지령>을 내렸고 국가자금의 특별융자를 지시했으며 도쿄에서는 <전후 처리의 국가적 긴급시설의 일단으로서 주둔군 위안의 대사업에 참가하는 신 일본 여성의 솔선 협력을 구함>이라는 제목으로 ‘여사무원 모집, 18세 이상 25세까지, 숙사·피복·식량 일체 지급’이라는 공고를 붙였다. 나중에 이것이 미군 위안부 모집이라는 것을 알고 많은 여성이 돌아갔지만 1000명은 남아서 ‘정부 공인의 매춘부’가 됐다.(61)
- 유영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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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니까....
제국주의 일본은 한국 무단통치 기간에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 후로 74년. 일본은 전후의 폐허에서 국제 정치경제에서 중요한 국가로 자리잡았지만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전쟁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난징학살도 위안부 문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고집하며 강대국에 걸맞는 (거짓된) 도덕성을 보유하려 한다.
한일협정의 효력 범위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국가 보상과 개인 배상의 차이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반인륜적 국가 범죄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이며 지속적인 인정과 반성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혹자는 한일 간 불행했던 과거를 덮고 전향적인 미래를 지향하자고 한다.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현실을 보자고도 한다. 이들은 지금 "일제에 의한 수백만의 죽음은 선대의 일일 뿐이고 우리 세대의 일이 아니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눈앞의 장사에만 집중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눈앞의 손익계산에만 몰두하자"는 것이다.
그들을 가리켜 누구는 친일파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역사도 민주주의도 휴머니즘도 없다. 있다 해도 그것은 그들에게 속내를 감추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기득권과 가족과 협소한 이익집단 챙기기와 자기우월주의뿐이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친일파도 될 수 있고 친미파도 될 수 있고 심지어 친러파도 될 수 있다. 그들은 한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고 지금 백색테러가 횡행하는 홍콩에도 있다.
내 가장 즐거운 재미 중 하나는 그들을 발견하고 속내를 간파해 살짝 비꼬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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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선생의 <제국의 위안부> 관련 논란은 꽤 오래됐지만 관심이 없어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분의 페이스북 글을 보았다. 무엇보다 서두가 인상적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처리수”(“오염수”의 일본쪽 호칭) 문제에 관한 일본측 설명이 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이걸 읽어 봐도 옳은지 어떤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내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걸 알면서도 강이나 바다에 오수를 흘려보내는 파렴치한 공장주같은 나라는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사고난지 벌써 십 년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을까 싶고 그렇다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믿으려 하는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분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단히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분이 일본을 신뢰하는 만큼이나 나도 우리 조국을 신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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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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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결국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망상과 착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군요.
"그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대해 '인간은 부끄럽거나 나쁜 일을 했다고 느끼는 경우에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스스로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스스로 믿게 된다'고 주장했다."
무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가 자국의 현대사를 편향된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군요.
NEWS.CHOSUN.COM
시오노 나나미 "위안부란 명칭 참 상냥해" 妄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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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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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다. 이제 이 정도 논조의 기사도 포털 메인에 뜨는구나!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도 미국도 북한과의 교류로 북한이 스스로 무너질 것을 바라지 마라."이다. 북한은 정상 국가로서 동독처럼 경제난으로 흡수 통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시나리오를 품고 남북 교류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NEWS.V.DAUM.NET
"美는 무조건 일본편.. 남북 합심해 과거사·독도 문제 대응해야"
[서울신문]“남북한이 한목소리로 일본의 위안부·징용 등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등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 그러면 일본이 지금과 같은 경제 도발을 생각지도 못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남북의 위상이 커지고 대의명분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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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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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래 기사를 보고 무척 황당하고 불쾌했다. 기자가 쓴 기사가 맞나 싶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고 내게 동감하는 사람은 딱 반일 것이다.
V.MEDIA.DAUM.NET
[숨은 역사 2cm] 약자 짓밟는 일본..'오쓰 사건'엔 온 국민이 싹싹 빌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99세)이던 이순덕 할머니가 4월 4일 별세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인정하라, 사죄하라, 보상하라"고 목청껏 외쳤지만 별 성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위안부 진상 규명과 손해배상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도 진심 어린 사과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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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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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i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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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람들을 위하는게 뭘까'
중학교 3학년때 처음 자살시도를 했다. 자살 실패 후, 어차피 죽으면 없어질 몸이니 다른사람을 위해 살다가 가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봉사활동을 했다. 당장 도울 수 있는 아이들을 돕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방에서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다 왔다. 사회의 거대한 폭력을 바로잡지 않고서 사랑만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또 내가 죽고나면 또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사람들을 위한 최선이 뭘까 고민했다. 내린 결론은 아이들이 애초에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공부하기 위해 사회복지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사회복지과는 정치는 건들지 말자고 했다(하는 것 같았다). 마침 2008년 촛불집회가 열렸고, 그때 세상이 이렇게 바뀔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거의 매일 아고라를 보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만 든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진 않았다. 문제의 근원을 바꿔야 한다. 그 근원은 정치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정책을 생산하는 정치, 역사의 정의를 세우지 않는 정권이 문제다. 그래서 MBout을 외쳤다.(그들은 불순세력의 선동으로 변질된거라 했지만) 여러 방법 중에서 제도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해 정당에 가입했다.
그때부터 진보정당활동을 시작했다. 진성당원제로 운영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정당. 진보정당이라는 깃발아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노동당은 엘리트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정당이어서 좋았다. 노동자.농민. 대학생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 농민회, 한대련 등 조직된 시민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었기에 그랬다.
당활동도 중요하지만, 진보정당의 기반인 대중조직이 활성화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학생운동을 했다. 사회과학, 인문학을 두루 공부할 수 있는 사회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여러 방법과 전략들이 있는데, 주요모순이 자본인지 통일인지에 따라 정파가 나뉘고 전략도 달라졌다. 운동방법과 인식의 위계는 하나의 조직, 하나의 전략, 하나의 방법만이 최선이라는 태도를 가져왔다. 이게 맞을까, 고민도 들었지만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다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단 정권교체는 꼭 해야하기 때문에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명박의 임기가 끝나면서 바라본 한국사회는 충격적이었다. 사대강으로 온나라 강바닥이 폐허가 됐다. mbc, kbs사장이 바뀌고 시사프로그램이 모조리 없어졌다. 보도지침이 일상이 됐고, 방송은 편향된 소식만 전했다. 종편이 시작됐고 정치는 예능으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종북몰이가 시작됐다. "빨갱이"라는 케케묵은 단어에서 "종북"의 등장을 보고 처음엔 웃었다. 누가 이런걸 믿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북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숨막히는 여론의 공기 속에서 통합진보당은 해산됐다. 동시에 4년간 만나던 연인과 증오로 가득찬 이별을 했다. 무기력했다. 세상은 쉬이 바뀔 것 같지 않았고, 성급히 봉합했던 과거의 상처는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16살때 버리고 왔던 내가 찾아왔다. 삶의 목적이었던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 수 없게 된 나는 살아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두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 실패 후 도무지 힘이 안났다. "사람들을 위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된 내 오늘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했다. 누구도 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고독했고 스스로 고립됐다.
그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글로 다 뱉어내지 못했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물감으로 튀어나왔다. 밤새 요동치는 마음을 색깔로 질감으로 뱉어내면서 하루하루 버텼다. 숨막히는 세상에서 캔버스는 내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 자유 속에서 영혼의 허리띠가 풀어졌다. 내일이나 미래를 위해, 세상을 위해서 이전에 오직 '지금' 존재하는 감각을 캔버스가 가르쳐줬다. 이 해방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정말 사람들을 위하는 건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하는거다. 예술이라는 자기실현방식이 그 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언니와 함께 감성노리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사회적경제조직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미술로 마음을 소통하는 공간에서 나도 치유되어갔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것이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게됐다. 건강해지기 위해 이곳 저곳에 상담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기성 상담이론은 삶을 다 담지 못했다. 상담치료를 거부하고 정신분석과 꿈분석, 미술치료와 사회심리학을 공부했다. 실존주의에 바탕을 둔 실존미술치료가 온전한 삶을 돕는 좋은 방법이었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다 아프다. 누가 누굴 구원하고 누가 누굴 돕는가? 사람들을 위한다는 오만이 문제였다. 내 존재를 배제하고 세상을 위하다니. 나는 오늘 인간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스스로를 메시아적 위치에 놓았던 것이다. 내 실존을 사유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세월호참사가 일어났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대낮에 일어났다. 해경은 vip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없었고, 구조하는 것 보다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기 바빴다. 수상한 행적이 많고, 언론은 의도적으로 물타기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살아온 것인데, 모든게 무너졌다. 내 삶이 통째로 부정당했다. 이 나라가 이정도는 아닐줄 알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이런 일이 있음에도 출근하고 시험을 보러 나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영혼과 양심을 집에 두고 나와야하는 현대인의 삶이 낯설고 이상했다. 당장 내 삶을 구해내지 않으면 그 위험한 굴레에 빠져들어갈 것 같다. 그건 내 영혼과 양심에 대한 기만이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이 끔찍한 폭력 앞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야속했다. 그림을 그려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실존은 방 안이 아니라 거리에 있었다. 거리에서 뱉어내야 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울면서 다시 노래 부를 수 있었다.
그렇게 거리에서 그림그리고 유랑하며 지냈다. 다시, 이 위태로운 땅에서 온전한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하루를 어떻게 재구성해야하는가 고민했다. 허허당스님께 끊임없이 흐르고, 방랑하는 삶,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오늘을 배웠다. 그 후 인도로 갔다. 명상하고, 산책하고, 그림그리고, 책읽고 글을 쓰면서 삶의 생기를 회복했다. 특히 방치해뒀던 죽음과 화해하기 위해 죽음을 사유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삶의 본질과 가까워졌다. 삶은 한번뿐이고 유한하다는 단순한 진실이 지금 존재하는 것들을 사랑하게했다. 나를 포함한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말이다. 어서 사람들과 이 영감과 생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람들과 만나고 퍼포먼스를 하고다녔다.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삶으로 맘껏 그림그리는 게 예술이다. 이 과정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파장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예술은 내게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됐다.
그러나 진심을 뱉어낼수록 언론과 미디어에서 나는 특별한 존재로, 사람들과 다른존재로 비춰졌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고립되는 건 같다. 의미를 독점한 한사람은 온전할 수가 없다. 깜깜한 시대일수록 한사람의 영웅이나 독재자나 범죄자가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 굴레를 깨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없을까. 모든 사람들이 주인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모바일과 SNS와 같은 온라인플랫폼은 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다. 그래서 온라인플랫폼을 개발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활동했다. 새로운 정치활동과 삶의 방식을 반영한 정치혁명이자 문화혁명이다.
하지만 시스템만 구축한다고 세상이 변하는게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사상의 빈곤이 문제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각개의 힐링이나, 관념의 경전이나 기존의 대중문화나 통념으로 해결한다. 모여야할 변화의 에너지가 그렇게 흩어지고, 자살은 늘어간다. 그래서 작년 말 인도의 오르빌 영성공동체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동학혁명을 추동한 동학이 있었듯, 지금 한국사회에 맞는 온전한 삶과 세상을 담보하는 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 명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영성공동체에서 예술로 자기를 표현하고,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온전한 삶의 방식. 이 사유를 정리해서 공유하는게 모든 삶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목격한 폭력을 못본체 할 수 없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한일협상은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효녀연합 퍼포먼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처음엔 사람들과 의미가 공명되어 너무 신나고 좋았다. 하지만 진심이 가공되고 재단되는건 시간문제였다. 일베 뿐 아니라 기성언론에서도 도구화하는 한국사회의 짙은 여성혐오를 발견했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게 아니다. 인간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대상화하는 모든 인식과 태도다. 성녀로 찬양하거나 창녀로 모욕하는 여성혐오가 진심을 압도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과 문화, 삶의 정서가 이 모든걸 뒷받침하고 있다.
끔찍한건 여성혐오를 만들어온 구조와 문화에 나역시 기여해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소비되는 것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한다. 국가권력 앞에서 발톱을 드러내고 싸우고자 했던 내가 은밀한 자본권력에 길들여진 것이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소비되고 소모되는 방식에 순순히 기여하고 있었다. 이 굴레에서 외치는 "우리 나와서 함께 싸웁시다"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폭력으로 다가갔을거다. 당장 오늘 대상화된 삶을 살고 있는데, 나와서 대승적인걸 해결하기 위해 구호를 외치라고 하다니.
뒤돌아보니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교수님과 철학자와 사상가와 혁명가는 모조리 남자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혁명이론과 사회과학서적의 저자는 대부분이 남자였다. 단순히 남자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다. 나조차도 그들이 남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신뢰와 긍정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젠더감각이 깨어났다. 굳은껍데기가 한꺼풀 벗겨져 조금은 아프다. 카페에서 들리는 노래와 지하철 광고판, 신문의 배열과 서점,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즐비한 여성혐오 정서가 나를 따갑게 찌른다. 보이지 않았던 이슈도 보인다. 3일마다 한명이 여성이 남성의 폭력으로 죽어간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공포의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더더욱 커지고있다. 인간소외가 심화될수록 여성혐오는 극단으로 표출된다. 폭력은 구석구석 존재한다. 나의 오늘에도. 모든 폭력은 사소하지 않다. 이 폭력 앞에서 우리는 선한 행위를 한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이정도면 됐지' 자위해왔던 건 아닌가. 내 의미에 취해 앵무새처럼 희망을 말해오지 않았나. 그런 희망을 얘기하는 것보다 모든 폭력을 직시하는게 더 중요한데.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총선을 앞두고, "아젠다설정을 어떻게 해서 프레임을 어떻게 짜고... 그래서 전략적으로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승리하면 세상이 바뀐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삶이 정말 온전할 수 있을까?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서 내 오늘이 해방될 수 있는가? 국가라는 틀에서 제도정치가 바뀐다고 삶이 해방되는가?
물론, 지금 이대로 가다간 사람들이 다친다. 때문에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건 맞다. 하지만 그 급박한 변화이론에서 거세당해온 젠더이슈는? 항상 미뤄왔던 젠더이슈는 도대체 언제 이야기하는가? 본질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멈추면 안된다. 그걸 멈춰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변화에서 소외되고 있다. 젠더이슈는 나열된 이슈 중 하나가 아니다. 삶의 감각에서 나오는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인식과 태도다. 오히려 젠더를 거세함으로서 우리는 너무 어렵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세상의 변화에서 사적영역이라 분류된 이슈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고, 사회의 변화에서 오늘의 삶은 배제되어왔다. 당연히 사람들의 삶은 변화담론에서, 역사책에서 소외된다. 세상이 바뀌지 않은 이유다.
세상을 바꾸는 본질적인 힘은 공감이다. 멀리있는 이론이나 깃발에 모이라고 외치는게 아니라, 삶의 감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미래나 전략적 성취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어야 한다. 모든 폭력과 모든 차별이 전선이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삶을 담아내야 한다. 삶에 숨겨진 가장 은밀한 폭력-젠더폭력을 들춰내고, 공기처럼 존재하는 폭력을 고발함으로서 모든 인간의 해방을 실천해야한다. 이것은 그동안 세상을 바꾸기 위한 모든 방법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세계를 바꾸는 방법론의 차원이 아니라, 세계와 내가 관계맺는 방식의 차원이다. 방법에서의 혁명이고, 목적에서의 혁명이다.
매드맥스에서 퓨리오사가 그린랜드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들의 족쇄를 풀었듯, 설국열차를 멈추고 소녀와 북극곰이 만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듯, 브이포벤데타에서 이브가 물로 다시 태어나 세상의 다른 변화방식을 이끌기를 주문받았듯, 이 시대가 우리에게 다른방식의 변화를 주문한다. 혁명은 그들이 생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모든 오늘을 배제하지 않는 변화. 희생이나 사명이 아니라. 구호를 외치거나 이론을 갖다 쓰지 않고, 삶의 언어로 만난다. 인간의 고통 앞에 가장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들어온다. 아니, 들어오지 못해 서성이면서 방랑하고 배회하고 사유하고 노래한다.
'정말 사람들을 위하는게 뭘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누구를 위하는가? 노예가 자기가 노예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는데. 이 감각을 계속해서 공유하려한다. 어떻게 오늘을 구성해야 하고,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이론이나 책 말고, 오직 내 몸의 감각을 뱉어내고, 맨발로 선 인간으로 사람들과 만나고싶다. 오늘의 해방을 담보하는 인식과 태도가 아니라면, 무엇이 사회변화와 삶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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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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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네요. 문창극씨의 발언은 개인적인 견해로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표명되고 토론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총리는 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견해가 우리 정부의 견해로 탈바꿈하여 향후 백 년간 일본 극우의 입증 자료로 이용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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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들, 문창극 망언에 '반색'
[한겨레]극우 성향 '산케이', '위안부 문제 사과 필요 없다' 대서특필'아사히'도 문 후보자 '식민지 배상 문제 끝났다' 칼럼 보도일본 언론들은 12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등 '친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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