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남북관계사)의 김대중 정부 시기, ‘포용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니다’라는 부분을 쓰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보수 야당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유화정책이라고 비판했다는 기사들이다.
유화정책은 그렇게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참고로 나는 지금까지 대북정책에 관해 글을 쓰면서, 한번도 ‘유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 말은 정말 무시무시한 말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면 안된다. 책에 들어갈 일부분을 소개한다. (아래 내용은 새 책에 들어갈 내용이기 때문에, 공유를 하더라도 인용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유화’는 ‘달래다’라는 뜻의 ‘appease’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은 ‘공격적인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혹은 ‘분쟁을 피하기 위해 적국에 양보하는’정책이란 뜻으로 ‘특정한 외교정책’에 해당되는 용어다. 바로 1930년대 후반 영국의 체임벌린(N. Chamberlain)내각의 외교정책, 구체적으로 1938년 뮌헨협정을 지칭한다. 바로 히틀러의 전쟁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평화에 집착하여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화정책’은 전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1950년 트루만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때, 1965년 존슨이 베트남 전쟁을 시작할 때, 1990년 조시 부시가 걸프 전쟁을 시작할 때, 2000년 조지 W. 부시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할 때, 놀랍게도 똑같은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유화정책의 상징인 ‘1938년 뮌헨 협정’을 맺은 체임벌린의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별 짓고자 하는 대비가 바로 ‘유화정책’이다.
‘유화정책’이라는 개념은 1938년의 뮌헨 협정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위한 강경파들의 개념이다. 그러나 당시 체임벌린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체임벌린의 외교를 ‘국력의 상대적 하강국면에서 재무장의 시간을 벌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1938년이 아니라 1939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히틀러가 패배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외교정책인 ‘유화정책’을 일반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특정한 ‘의도’ 때문이다. ‘유화’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온건한’ 혹은 ‘부드러운’ 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없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라는 뜻이고, 그 말을 사용하는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바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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