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주성하기자 2015-09-21 6:56 am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의 변화를 보려면 저녁에 젊은이들로 붐비는 개선청년공원이나 릉라유원지에 가보면 된다. 처녀들의 옷차림은 한껏 야해졌고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활보한다. 목걸이 귀걸이에 금반지를 끼고 다녀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5년 전만 해도 볼수없었던 광경이다”
지난해 탈북한 평양 출신 탈북자의 말이다. 그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남녀가 팔짱을 끼고 다니는 ‘부르주아 날라리바람’이 주민 대상 강연의 단골 비판 소재였는데, 김정은 부부가 팔짱을 끼고 나타난 뒤부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화사해진 평양 거리
김정은 등장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여성들의 패션이다. 여기엔 패선 리더로 떠오른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의 공이 크다.
그가 하는 목걸이, 귀걸이, 반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 명품가방은 곧 전국에 유행이 된다. 지금 평양의 젊은 여성들은 짧은 스커트에 몸에 꽉 붙는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즐기고 있으며 명품 브랜드라면 짝퉁도 마다않는다.
한 대북 소식통은 “당국에서 초기엔 길거리에 규찰대가 나와 ‘패션 단속’도 했었다. ‘김정은 동지와 이설주 동지의 머리모양은 따라 해도 좋지만, 목이 깊게 파인 옷이나 짧은 치마, 발목을 드러나는 바지(7부 바지) 같은 옷은 따라 입지 말라’고 했지만 막을 수가 없다보니 곧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만난 한 탈북자는 “지난해 말 북한에 사는 친척이 남쪽 헤어 패션잡지를 제목까지 불러주며 구해달라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친척이 ‘고객에게 잡지를 보여주며 한국 스타일대로 머리를 해준다고 하면 돈을 3배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평양엔 수천달러짜리 고가의 옷을 파는 상점도 생겨났다. 고급 상점들이 몰려 있는 평양 모란봉구역 북새거리에서는 1만 달러가 넘는 한정판 롤렉스시계까지 팔고 있다.
달라진 것은 패션뿐만 아니다. 스마트기기 열풍도 불고 있다. 끼리끼리 모여서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는 학생들이나 젊은이들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2013년 8월 북한산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리랑’ 생산 공장을 찾아가 독려하는 등 집권 이후 최단 정보통신기기 보급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평양의 정보화 바람은 더 거세졌다.
평양에는 올해부터 국영 모바일 홈쇼핑(옥류)에서 상품을 사고 전자카드(나래)로 결제하는 서비스까지 도입돼 성황 중이다. 옥류를 통해 해당화관·해맞이식당과 같이 유명 식당 음식을 국영 운수사업소를 통해 배달해 먹을 수 있다. 아직은 구매할 수 있는 품목이 많지는 않지만 확장 가능성은 크다.
올해 김일성대에서 경제 관련 강의를 했다는 북미권의 한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는 “인터넷이 없는 데도 신입생 상당수가 싱가포르에서 수입한 애플 노트북을 갖고 와서 놀랐다.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노트북에 꼼꼼히 메모하는 모습은 외국 여느 대학 강의실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젊은이들이 외부 문화 컨텐츠를 접하기도 쉬워졌다. 당국이 통제하는 외국 영화나 책을 파일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물결을 막을 수없다보니 북한 당국은 과거 야외에서 한국 노래를 들을까봐 이어폰 사용을 금지시켰지만 최근에는 공공장소에서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허용했다고 한다.
● 군대에서 한국 노래 더 불러
평양의 정보화 확대는 전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다수 북한 발전소들은 여전히 가동되지 않고 있지만, 대신 개인들이 중국산 태양광 전지판을 구입해 경쟁적으로 집에 설치하고 있다.
20W용 태양광 전지판 가격은 35만원(약 40달러)인데, 발전용량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태양광 전지판 보급은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암흑 속에서 밤을 보내지 않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 나온 평양 주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평양은 물론 남포를 포함한 서해안에선 밤에 문을 걸어 잠그고 몰래 한국 TV 방송을 시청하는 주민들이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낮에 태양광 전지판으로 충전한 전기를 이용해 밤에 한국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소형TV도 중국에서 꾸준히 밀수로 북한에 들어간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2011년 이후 탈북한 주민 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 방송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80% 이상에 달했다. 조사대상 중 고학력, 고소득, 젊은 연령일수록 남한 문화 체험 경험률이 높았다.
중국에서 통화가 이뤄진 평양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현재 북한에서 한국 노래를 가장 많이 유통시키는 세대는 중학생, 그중에서도 여학생들”이라며 “평양의 모 중학교 학생들의 가방을 불시에 수색했는데, 한국 노래가 적혀 있지 않은 수첩이 하나도 없었을 정도였다. 개중에는 수백 개의 한국 가요가 적힌 것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사회보다는 군인들이 한국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대가 어우러져 있는 일반 사회 조직보다는, 비슷한 연령대가 모여 10년 동안 하루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청년 집단인 군인들이 서로를 더 허물없이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부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
최근 북한을 다녀온 외국인들은 제한적이기는 하나 일상 속 자유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전한다. 이들을 만난 북한 당국자들의 태도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매년 3차례 북한을 방문해 행정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독일 프레드리히 나우만 재단 관계자는 “강연을 하면 과거엔 사전 질문 몇 개만이 형식적으로 오갔지만 최근엔 즉석 질의응답이 허락됐으며 간부들이 저마다 손을 들고 질문을 쏟아내 놀랐다”며 “교육을 담당하던 간부들이 우리와 점심식사 하는 것도 허용됐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전달된다.
3월 평양을 방문한 독일 브레머하먼시 전직 시장은 최근 북한 간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관광업 관련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북한 간부들이 ‘브레머하멘시를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독일 총리가 세부적 계획안들을 어떻게 일일이 결정했느냐’는 질문이 나와 자세히 설명해줬더니 잠시 장내가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에선 김정은의 지시가 없이 도시 계획을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개념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평양에 불고 있는 외국어 열풍도 개방바람을 상징한다. 평양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현재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중국어와 영어 과외가 크게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의 경우 강사 수준에 따라 월 20~30달러인데 중국어가 조금 더 비싸다고 한다.
북한 최대 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에는 동호회와 비슷한 아마추어 외국어학습협회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참가자들은 특정 주제를 놓고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외국어로 대화한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역 없이 체크인이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평양 고려호텔에서 최근 직원의 영어실력이 크게 높아져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 ‘좋은 집에서 살아보자’ 열풍
북한사람들도 점점 파견이나 사업형태로 외국생활을 체험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외국처럼 잘 살아보자”는 바람도 불고 있다.
이들의 욕구가 가장 많이 반영되는 분야는 주택이다. 주택 구매 시장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져 국가가 발행하는 주택 사용허가 서류인 ‘입사증(入舍證)’이 거의 자유롭게 매매되면서 돈을 벌어 좋은 집에 살겠다는 것이 주민들의 꿈이 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평양 부동산 가격은 매년 크게 뛰고 있다. 중국을 방문한 한 평양시민은 시내 중심부에서 100㎡(약 30평) 이상 되는 새 아파트 가격이 10만 달러(약 1억1800만 원)를 호가한다고 말했다.
신흥 부촌으로 뜨고 있는 보통강 구역 북한 최고가 아파트는 180㎡(약 50평) 이상의 크기에 20만 달러를 호가한다고 한다.
최근 북한에 건설되는 비싼 아파트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방들이 커지고 베란다가 넓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그림이나 화려한 무늬의 장식장도 부의 상징이 되고 있다.
건설 및 인테리어 자재는 대개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이지만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들은 한국의 삼성과 LG 제품을 최고로 통한다.
가구만큼은 북한산이 제일 비싸다. ‘돈주’들의 투자로 북한 곳곳에 정밀한 수작업으로 옷장같은 가구를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북한산 최고급 이불장과 양복장 등 가구로 벽 한 면을 채우려면 1000~3000달러나 든다고 한다.
다만 아무리 비싼 고급 아파트라도 전기난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하고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샤워하기 힘든 것이 단점이다.
김정은은 체제로 들어서면서 평양에 중국식 대형 슈퍼마켓과 각종 해외 요리 전문 식당, 호화 물놀이장과 놀이장, 극장 등이 잇따라 건설되는 것은 해외 경험을 가진 북한의 부유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말 평양 보통강구역에 1호점을 낸 북한 최초의 편의점 ‘황금벌상점’은 올해 안으로 평양 20호점 개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곳은 국영기업인 ‘황금벌무역회사’가 운영하는 상점으로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식료품과 일용품 등을 팔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현재로서는 평양에만 국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방에선 여전히 하루 벌어 겨우 먹고 사는 주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 간부를 지내다 최근 탈북한 A씨는 “패션이 화려해지고 스마트기기가 보급됐다고 북한이 당장 개방이 되고 김정은 인기가 높아졌다고 판단하면 오판”이라며 “최근 김정은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한 대형 공사들이 늘면서 주민 수탈이 김정일 시절보다 몇 배로 가혹해졌다. 사람들이 젊은 놈이 더 지독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초부터 최소 5명의 해외 파견 북한 고위급 무역일꾼들이 한국으로 온 것도 외화벌이 할당량이 크게 늘어나고 수행하지 못하면 혹독하게 처벌하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반체제 시민봉기는 가능할까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시장경제로 가려는 욕구가 커져도 이것이 곧바로 시민혁명으로 이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2010년 ‘쟈스민혁명’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었을 때 북한에서도 시민 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동과 북한은 큰 차이를 갖고 있다.
북한을 오랫동안 상대해 온 한 대북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시민혁명은 점이 선으로 연결되고, 선이 면을 이루어야 가능하다. 북한엔 체제에 불만을 품은 점은 수없이 많고, 점점 더 많아진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공포통치와 치밀한 감시망으로 이런 점들이 선으로 연결될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선 혁명의 불씨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교훈은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면 점이 선으로 연결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으며, 선이 면이 되는 것은 더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경우 권력 핵심 계층 내부에 심각한 균열과 알륵이 발생하거나 또는 당과 군부,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의 마찰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질 경우 시민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김정은 체제는 과거와 달리 지도자와 핵심 권력 엘리트 간 유대감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김일성 시절엔 지도자와 빨치산 출신 핵심 권력 엘리트 사이엔 강력한 동지적 유대감이 작용했다. 빨치산 출신들은 김정일도 ‘동지의 아들’이란 관점에서 대했다. 하지만 이제 북한에는 그런 유대감이 작용하지 않는다. 김정은과 핵심 권력 엘리트의 관계는 충성을 바치고 권력과 돈을 얻는다는 상업주의적 거래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통치자금이 고갈되는 순간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주성하 zsh75@donga.com ·김정안 기자
상단 우측 흰 블라우스 입은 여성분은 참 세련되네요.
북의 경제에 고도화가 불가능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이 대목이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입니다.
저렇게 조금씩 조금씩 금이가고 삭아서 하루빨리 김가패당 정권이 허물어지기를 손꼽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