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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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나는 퇴마사 였다>
소개 :
대한불교태고종 불광정사 주지.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기수련가로 영적 치유가로, 그리고 비구니 스님으로 변신하면서 영의학과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왔다.
도학자이며 탁월한 영능력자로서 놀라운 치유능력을 지녔던 조부의 혼령이 이생에서의 못 다한 소명을 다하고자 열다섯살 손녀의 몸에 깃들어 혹독한 시련과 수련의 과정을 거치게 하며 빙의에 의한 질병과 고통의 어둠을 물리치는 퇴마사로서의 삶을 살게 했다.
장구한 세월 온갖 질병을 수반한 고난과 고통의 삶을 직접 겪으며 칠흑 같은 어둠의 세계를 체험한 것은 그 어둠을 이기는 빛의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마침내 의통과 영통을 이루어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왔으며 이제 조부의 혼련과의 완전한 합일체로서 대광명의 불법을 통한 새로운 차원의 영의학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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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靈)의학’ 발전에 기여하길 발원하며도원, <나는 퇴마사였다>
정성운 기자
승인 2015.05.08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3289
도원 지음∥한빛서원∥296쪽, 15000원
60이 넘어 출가했으면 늦깎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튼 3년 전 출가해 도원이란 법명을 얻었다. 그는 퇴마사였다.
어릴 적부터 병고에 시달렸지만, 가정을 꾸려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다. 자식도 두었다. 40대 후반, 왜 수많은 병고에 시달려야 했는지, 우주와 나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원스님은 최근 펴낸 <나는 퇴마사였다>는 책에서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떠올린다.
“어흠, 어흠, 어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네 할아비다, 할아비. 이제 너를 통하여 이 할아비가 하늘 일을 대신할 것인즉, 다만 몸하고 입만 빌려주면 될 것이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철커덕’하며 몸 전체의 골격이 바뀌었고, 얼굴도 다른 얼굴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일 이후 일상은 깨졌다. 이 당황스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뿌리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의통(醫通)과 영통(靈通)의 순간임을 안 것은 1년여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몸은 그 사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을 치유했다. 그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한 번의 전환이 찾아왔다. 난치병 치유를 위한 수련장을 내려고 계획하고 있던 중 한 괴팍한 스님을 알게 되었고, 불교 공부에 관심이 높아졌다. 분당 대광사에서 불교대학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등록했다.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강의를 듣는 순간 강당이 환하게 빛났다. 도원스님은 이때의 경험을 “우주의 본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도원스님은 <나는 퇴마사였다>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삶을 담았다. 출가 후에 시작한 광명진언 기도 중 “내 몸 안에서 시커먼 덩어리가 탁 터져나갔다. 천지사방이 온통 빛으로 충만했고, 그 안에 오롯이 존재하는 나에게는 환희심이 샘솟고 있었다”는 체험도 드러냈다.
도원스님은 출가 전 자신의 치유 경험을 ‘심령치료의 원리와 실제’라는 논문으로 정리해 한국정신과학학회 2002년도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1998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로서, 단순히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면서 ‘영(靈)의학’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지금은 서울 길동에 불광정사를 열어 ‘영(靈)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길 발원하며 광명정진 기도 정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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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靈)의학’ 발전에 기여하길 발원하며도원, <나는 퇴마사였다>
정성운 기자
승인 2015.05.08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3289
도원 지음∥한빛서원∥296쪽, 15000원
60이 넘어 출가했으면 늦깎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튼 3년 전 출가해 도원이란 법명을 얻었다. 그는 퇴마사였다.
어릴 적부터 병고에 시달렸지만, 가정을 꾸려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다. 자식도 두었다. 40대 후반, 왜 수많은 병고에 시달려야 했는지, 우주와 나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원스님은 최근 펴낸 <나는 퇴마사였다>는 책에서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떠올린다.
“어흠, 어흠, 어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네 할아비다, 할아비. 이제 너를 통하여 이 할아비가 하늘 일을 대신할 것인즉, 다만 몸하고 입만 빌려주면 될 것이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철커덕’하며 몸 전체의 골격이 바뀌었고, 얼굴도 다른 얼굴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일 이후 일상은 깨졌다. 이 당황스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뿌리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의통(醫通)과 영통(靈通)의 순간임을 안 것은 1년여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몸은 그 사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을 치유했다. 그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한 번의 전환이 찾아왔다. 난치병 치유를 위한 수련장을 내려고 계획하고 있던 중 한 괴팍한 스님을 알게 되었고, 불교 공부에 관심이 높아졌다. 분당 대광사에서 불교대학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등록했다.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강의를 듣는 순간 강당이 환하게 빛났다. 도원스님은 이때의 경험을 “우주의 본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도원스님은 <나는 퇴마사였다>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삶을 담았다. 출가 후에 시작한 광명진언 기도 중 “내 몸 안에서 시커먼 덩어리가 탁 터져나갔다. 천지사방이 온통 빛으로 충만했고, 그 안에 오롯이 존재하는 나에게는 환희심이 샘솟고 있었다”는 체험도 드러냈다.
도원스님은 출가 전 자신의 치유 경험을 ‘심령치료의 원리와 실제’라는 논문으로 정리해 한국정신과학학회 2002년도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1998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로서, 단순히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면서 ‘영(靈)의학’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지금은 서울 길동에 불광정사를 열어 ‘영(靈)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길 발원하며 광명정진 기도 정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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