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경 통일신학의 靈 이해와 ‘여성’(세계)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4)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
승인 2019.10.26
한국여신학자협의회와 박순경의 여성신학
1980년에 창립되어 곧 4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는 1989년 참으로 의미 깊은 자료집을 냈다. 그것은 당시 김윤옥 공동대표의 머리말과 더불어 1987년부터 3년간에 걸쳐서 ‘민족통일’을 주제로 해서 ‘한국여성신학정립’을 위해 집중 활동한 것을 기록한 것을 말한다.(1) 당시 이 회의 총무는 유춘자였는데,(2) 이들 한국여성신학 초기 개척자들인 열성적인 활동가들은 바로 1988년 한국교회협의회 남성 신학자 주도의 ‘88선언’(1988.2.29)에 대해서 즉각 응답하면서 여성들만의 고유한 “민족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여신학자 선언”(1988.3.30)을 발표한 것이다.(3)
박순경은 이와 같은 여신협의 초대회장으로서 1980년부터 여성신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1988년부터는 민족·민중·여성을 통합적으로 “한국신학으로서의 통일신학의 주제로서 특징화”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4) 즉 그녀에게서의 통일신학은 이후로 여성신학을 포괄하는 것을 말하며, 그 역으로 말하면 여성신학적 시각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참다운 한국 통일신학, 한국 민중신학이 될 수 없다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녀의 관점에 따르면 해방신학이든 민중신학이든 그것이 여성신학적 문제제기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계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파헤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성들이야말로 그 지배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중신학도 마찬가지이고 오늘의 통일신학에서도 신학은 거의 남성들에 의해서 대변되고 있어서 그 남성 지배의식과 구조가 은폐되면서 지속되기 때문이다.(5) 또한 이 성(性)과 젠더의 불평등과 억압 문제는 여전히 세계 보편의 문제이며, 그러한 억압적 구조가 의식적으로 문제화되지 않고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제1세계’의 사람이든 ‘제3세계’의 사람이든 마치 “서양 기독교가 제3세계의 신음소리를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듯이, 모든 남성은 여성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밝힌다.(6)
▲ 북조선그리스도교연맹 고기준 목사와 만난 박순경 명예교수 ⓒ월간 말
하지만 박순경은 자신의 여성신학 성찰을 시작하면서 일반적인 여성신학적 입장과는 달리 먼저 여성들의 이론적 성찰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보통 여성들의 인식방식과 세계 관계의 방식으로 ‘체험’과 ‘경험’, ‘실천’, ‘직관’ 등이 강조되지만 박순경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실천이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올바른 실천이라 하더라도 그 실천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의의가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해방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보다 정치한 이론적 정초작업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시각인데, 그래서 어느 신학이든 “신학적 정초작업은 이론이라고 해서 도외시되는 풍조”가 된다면 그것은 사실상 “자기기만이거나 자기은폐”가 될 수 있다고 일갈한다.(7) 또한 박순경은 강조하기를, 남성신학과 여성신학이 나란히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그 둘이 ‘신학’으로 하나이어야 하지만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고 한다. 그래서 여성신학이 신학전통에서의 가부장적 요인들을 극복하는 일에 주력하지만, 전통 신학에 함축된 진리들을 다양하게 새롭게 되살려내고 재해석하면서 신학의 모든 주제들을 다루는 “신학의 통일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밝힌다.(8)
성령론으로서의 박순경 여성신학과 그리스도론, 그리고 마리아론
하지만 이러한 박순경 여성신학에서의 전거도 그의 민중신학 이해에서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초월성과 그 하나님의 “유일회적”(once-for-all) 성육신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9) 그래서 그녀의 초기 여성신학적 성찰에서는 이 유일회성에 대한 집중으로 메리 데일리나 로즈마리 류터 등의 서구 여성신학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거나 ‘주님’으로서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성 지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탈각시키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 박순경에 따르면 거기서 쓰인 칭호들은 비록 그것들이 세계의 가부장적 의식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해도 결코 “삭제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10) 그녀에 의하면 그것은 성서적 증언의 “일회적인 역사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칭호가 어떻게 “초가부장적 의미”로서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로의 육화와 그 인격적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11)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집중으로 그녀의 여성신학이 지금까지 한국 여성신학자들에게 경원시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마르크시즘 이해에서는 그 마르크시즘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위해서 ‘유물론’ 대신에 거기서 ‘유’(唯)자를 빼고 ‘물질론’으로 칭하자고 제안하지만, 그리스도론에서는 남성 예수의 ‘유일회적’ 육화를 고수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관찰에 따르면 바르트가 이미 지적한 대로 19세기의 자연신학이나 히틀러의 나치주의 예에서도 보듯이, 자신들의 ‘자연’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과 기독교를 독점하려는 오류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서의 그의 특수 계시가 자연과 역사 일반에서의 계시행위를 판별하게 하는 척도”인 것이라고 강조한다.(1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본인은 박순경 여성신학이 점점 더 성령론적으로 전개되어 가면서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집중이 변해간다고 판단한다. 그녀 스스로가 밝히기를, 통일신학, 한민족의 신학, 민중신학, 남미의 해방신학, 여성신학과 같은 주제들은 “신학의 세계성 문제들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성령론의 차원에 직결되어야” 한다고 한다.(13) 이것은 여성신학의 차원에서 그녀의 통일신학이 더욱 더 보편적인 세계 문제에로 확장되는 것을 말하고,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구원적 영(靈)의 관점에서 여성이라는 성(性)을 매우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호칭과 ‘아들’ 예수의 그리스도성에 대한 유일회성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령의 차원에서, 새 피조물의 탄생의 어머니의 표상”으로 재해석될 수 있고,(14) 거기서 더 나아가서 ‘어머니’ 이미지는 “남자와 여자를 포괄하는 총체적 칭호가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그 어머니 칭호도 ‘하나님 어머니’라는 차원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밝힌다.(15)
박순경은 로마서 8장 18-27절을 자신의 성령론적 여성신학 정초를 위해서 가져온다. 그러면서 여기서 ‘모든 피조물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대망하는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남성 언어이기는 하나, 결코 옛 세계의 가부장적 남성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히고, 여기서 드러나는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비전이 특히 “몸들의 구원”(23절)을 말하는 것에 주목한다. 신음하고 진통하는 피조물은 바로 “몸의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고, “몸들의 구원은 종말적로 ... 물질의 잘못된 세계질서 혹은 법의 변혁의 필연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한다.(16) “성령이 역사내적 역사하심은 바로 몸과 물질의 질서의 구원을 의미”하고, 거기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여인의 해산과 신음과 진통에 비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이 피억압상황에서 새 인간성의 탄생을 위한 역사 내의 성령의 활동을 표시하는 “더 적합한 표징”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남성도 그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힘입어 여성 인간성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밝히면서(17) 그녀의 급진적인 여성신학적 성찰을 드러낸다.
이러한 크게 통합하면서 기초와 토대를 중시하는 열려진 시각에서 박순경은 개신교 여성신학자이지만 가톨릭 전통의 ‘성모 마리아’ 이상을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새 피조물의 탄생의 중재자, 마리아”라고 하고,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눌린자, 가난한 자의 해방자, 마리아”라는 표현들을 쓰면서 특히 ‘교회론’의 입장에서 개신교회에서의 마리아론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즉 그녀에 따르면 가톨릭교회 전통에서는 마리아를 신(하나님이신 예수)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인격”으로서는 받아들였지만 그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마리아의 “여성 인격”은 탈각시켜버렸다. 그에 반해 개신교 교회에서는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 성령의 표징으로서 “교회의 인격”이라는 것을 망각하여 자신들이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 아들됨의 의미가 너무 편파적으로 “남성적 성격과 기능에로 치우쳐 버렸다”고 하면서 두 교회의 공과 화를 대비적으로 분석한다.(18)
80년대 박순경의 여성신학은 개신교에서의 마리아 의미화가 특히 삼위일체 이해와 그리스도론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녀에게 성령은 새 인간성의 탄생의 어머니이고, 마리아는 그 새 인간성의 탄생을 고대하는 몸의 현실로서 교회의 어머니이다. 거기서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어머니’가 되시기도 하다는 것을 제시해주며,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서 새 인간성을 대표한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마리아는 “모든 여성들의 중재자요 변호자”라는 것이다.(19) 하지만 여기서 ‘중재자’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박순경은 마리아가 ‘하나님’(예수로 오신 신)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결코 ‘예수’와 동격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시 강조한다. 그리하여 남미의 여성해방신학자들이 특히 성모 마리아에 집중하면서 남성 중심의 남미 해방신학을 비판하는 것은 좋게 보지만, 자칫하면 거기서도 다시 19세기 역사적 예수 연구가 가졌던 오류에 빠지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예수의 유일회적 종말적 의미는 해소되고 일반화 되어버린다”는 것이다.(미주 20)
이렇게 박순경에게 있어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신을 낳았지만 결코 그 아들처럼 신이 될 수 없고, 그래서 “새 인간성 자체는 아니”고, 새 인간성을 낳는 ‘어머니’일뿐이며, 그런 맥락에서 마리아(의 영)은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구별”된다고 분명히 밝힌다.(21) 박순경 여성신학이 성령을 새 피조물의 탄생의 어머니로 보면서 성령론적으로 정초 되어있다 해도 그 어머니의 영도 다시 아들과 아버지의 영에 의해서 먼저 ‘중재’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여성신학적 성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박순경 여성신학과 토착화신학, 그리고 민족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박순경 신학에 있어서 시간이 가면서 이러한 전통 그리스도론에 대한 집중은 점점 더 느슨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 주된 이유를 나는 민중과 한민족의 역사와 분단 상황에 대한 보다 강도 높은 관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녀는 이미 “민족이 민중이라는 것”, “민중의 문제가 바로 민족의 문제라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강하게 언술하기를, “피억압 민족의 여성은 남성 대 여성의 권리 주장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한국여성신학이 어떠한 여성신학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했다.(22)
박순경에 따르면 여성신학이 요청하는 여성의 권리와 자유는 “여성만의 특권을 위해서가 아니다.”(23) 한국 여성신학이 그렇게 “통합된 한민족”을 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한민족 해방의 의의와 방향을 부각시킬 수 없고, 그럴 때 “분단 주역들에게 예속된 핵무기 볼모로서 동족끼리 적대할 수밖에 없”으며, 그 해방의 “세계사적 사명의 의의”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순경은 한국 여성신학은 “(미국 여성들의) 관점의 반복이 한국 여성신학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한국 여성신학은 “우선 한민족의 핵심문제에로 수렴”되어야 하고, 한국에서 여성신학을 대변하는 여성들은 “우선 한민족의 통합을 위한 문제 설정에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24)
그러한 맥락에서 박순경은 가톨릭교회 제2 바티칸 공의회는 받아들이지 않은,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라는 것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신부가 있다면 수녀들도 ‘신모’라고 불러야 하고, 교황이 꼭 남성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평신도들’도 다른 의미에서 교회의 아들과 딸로서 ‘교회의 어머니들’이라고 언급한다.(25) 박순경은 사실 자신이 성모 마리아의 의미를 재발견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 개신교 초대교회에서 헌신한 전도 부인들을 ‘교회의 어머니들’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거기서 더 나아가서 자신의 육친의 어머니, 교회와 상관없을 뿐 아니라 배척까지 했던 어머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어머니’로서 되살아나서 매우 “감읍했다”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하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육친의 어머니는 ‘민족’의 어머니로서 “우리 민족의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리아에게서 구원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26)
이렇게 ‘마리아’라는 신의 ‘어머니’ 상징을 통해서 ‘민족’과 ‘세계’와 ‘타자’에 대해서 더욱 널리 열리고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 박순경은 그래서 “어머니라는 칭호가 아버지라는 칭호보다 더 근원적으로 교회의 인간성에 부합하는 상징성을 갖는다”라고 언설한다. 물론 여기서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민족’을 매개로 하여 ‘교회의 어머니’로 생각한 것이 종전의 타협할 수 없는 그리스도 중심주의(80년대의 여성신학)와 어떻게 다른 길이었는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90년대의 생각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1995년의 또 다른 글에서 그녀는 자신이 불교에 심취할 수 있는 가정적 배경과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절당의 수많은 불상들 보살들이 다 나 이외의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또 한번의 놀라운 고백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서 자신의 신학을 구성한 것이고, 그래서 자신은 기독교인이며 불교인은 아니지만 “역사적 과정에서는 종교들이 다원적으로 개별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녀 자신에게 제일 문제되는 것은 “기독교를 포함해서 종교들이 신이니 불성이니 영성인 하면서 추상적 영성에 매몰되어 이것들이 처해 있는 민족사회와 분단문제를 외면하거나 오판하고 역사적 세계사적 책임을 이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라고 분명하게 밝힌다.(27) 즉 그녀에게도 ‘정론’(orthodoxy)보다는 ‘정행’(orthopraxis)이 더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이며, 그것이 특히 민족분단과 관련한 “비역사성 문제”라고 보는 것이므로 그녀가 토착화 신학과 종교신학에 대해서 제일 문제시 하는 것이 바로 이 우려 때문인 것을 확실히 드러냈다.(28) 이것은 박순경 여성신학이 앞으로 토착화신학과 더욱 가깝게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이렇게 박순경의 통일신학과 민족․민중․여성 주체의 여성신학은 여성신학적 의의를 궁극적으로 한민족의 민족사적 시각에서 고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다른 여성학자들로부터 어떤 세찬 비판을 받아도 “민족적 과제 앞에서는 (여성의 독자적 운동과 주체성 강조보다는) 결의와 헌신이 주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통일운동 단체들이 다 연합해도 역부족이기 때문에 “분리주의적 여성통일운동은 있어서는 안되며 또 분리주의가 페미니스트 원칙론처럼 주장되어서는 안된다”고 강변한다.(29)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을 옭아매 왔던 여러 ‘모성신화’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순경은 ‘어머니’는 가부장 남성 이데올로기 이전에 또는 그것을 넘어서 “남성과 여성을 포괄하는 인륜관계 혹은 사회성의 정신적 근원에 뿌리박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의 칭호를 좁은 가족의 한계로부터 해방시켜서 “역사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로 보편화시켜야 한다”고 주창한다.(30) 어머니는 여성을 그 생리적 출산여부에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표식하는 칭호”라는 것이 그녀의 인식이고, 조국과 조상이라는 말이 이제 모국과 민족의 어머니라는 말로 상대화되고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인류 민족의 시원을 “원시 모신상들 혹은 여신상들에게서 찾아 헤매서는 안”되고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해서 “유관순 처녀”나 “정신대 처녀”가 우리의 “구세주 같은 어머니들”이 되는 것이므로 “민족의 어머니는 남성지배 이데올로기의 신비화가 아니라 민족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인륜 관계성의 시원을 의미한다”고 박순경 통일신학과 여성신학은 강조한다. “민족의 어머니는 통일모국과 통일민족공동체의 산출을 미래 목표로 삼고 역사 현장에서 투쟁하고 노동하는 여성들을 총칭하는 상징”이라는 것이다.(31)
한국 여성신학이 제기하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 한민족의 명맥과 운명을 짊어지고 세계에서의 민족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대변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민족, 민중의 어머니 됨의 의미를 획득하고 한민족의 역사적 영성의 의미를 성취하게 되리라, 여성신학은 원시 여신들, 무신들, 영혼들의 여성적 의미에 몰입하고 과거에로 퇴행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통일과 새역사 창출을 위하여 그러한 과거적 영성의 상징들이 오늘과 내일의 역사의 신명(神明)으로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민중과 여성은 민족의 구성원들이다. 한민족은 민중과 여성의 어머니이다. 한민족은 한국신학의 주체요, 한국신학은 한국 여성신학이고 한국 여성신학은 한국신학이다.(32)
미주
(미주 1)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여성신학과 민족통일-제4,5,6차 여성신학정립협의회 보고서』, 1989.
(미주 2) 감리교신학대학 출신의 평신도 여성신학자 유춘자 총무는 초기 여신협과 한국여성신학의 정립을 위해서 큰 공헌을 했다. 1988년 초기 여신협 총무로서 8년간에 걸친 혼신을 다한 활동은 여신협뿐 아니라 한국 여성운동 전반을 위한 귀한 물적,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었으며, 나중에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의 창립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한 가운데 레티 러셀이 조직한 Asian Feminist Collegium Group에서 마련한 여성신학박사학위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활동과 연구에서 얻어진 통찰로 한국여성해방신학의 영성에 관한 의미 있는 논문(Liberation Spirituality of Communal Transformation of Korean Feminist Theology)을 제출했다.
(미주 3) 오늘 한국 신학계에서 남성 주도의 한국교회협의회 ‘88선언’은 계속 회자되고 의미화되지만 여성들이 선포한 “분단은 가부장적 지배문화의 결과이다”라는 당당한 항명으로 시작하는 ‘한국여신학자 선언’은 거의 잊혀졌고, 여성들에 의해서조차 잘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21세기 한반도 통일논의에서 여성들의 주체적이고 책임적인 참여와 인도가 더욱 요청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여성신학 선구자들의 업적을 우리는 큰 유산으로 다시 새겨야 한다.
(미주 4)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62쪽.
(미주 5) 박순경, “제3세계와 신학”, 『통일신학의 여정』, 288-289쪽.
(미주 6) 같은 글, 289쪽.
(미주 7) 같은 글, 262쪽.
(미주 8) 박순경,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민족통일과 기독교』, 218쪽; 이러한 여성신학의 방법론과 인식론에 대한 성찰은 여성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물음으로서 90년대 초 ‘한국여성신학회’의 태동에서도 이 주제를 가지고 첫 번째 학술 세미나를 열었었다. 본인은 박순경의 이러한 시각에 매우 찬동하는 입장으로서 당시 “여성신학에서의 여성의 경험에 대한 해석학적 이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서 여성인식의 독특성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전통과의 해석학적 순환을 강조했다. 한국여성신학회가 엮어낸 ‘여성신학사상’ 제1집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한국여성신학회 연구지 제1집, 『한국 여성의 경험』, 1993년, 대한기독교서회; 이은선,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 분도출판사, 1997, 157-182쪽.
(미주 9) 박순경, “제3세계와 신학”, 『통일신학의 여정』, 270-273쪽.
(미주 10) 박순경, 『韓國民族과 女性神學의 課題』, 대한기독교서회, 현대신서 130, 1983, 43쪽.
(미주 11) 박순경, “제3세계와 신학”, 『통일신학의 여정』, 273쪽.
(미주 12)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립과정에서: 「통일신학의 여정」을 위한 홍근수 목사의 비평에 대하여”, 『통일신학의 미래』, 215쪽.
(미주 13)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6-77쪽.
(미주 14) 박순경, “제3세계 여성과 신학”, 같은 책, 268쪽.
(미주 15) 박순경, “통일신학과 여성교회”, 『통일신학의 미래』, 262쪽.
(미주 16) 박순경, “제3세계 여성과 신학”, 『통일신학의 여정』, 265쪽.
(미주 17) 같은 글, 269쪽.
(미주 18) 같은 글, 275-277쪽.
(미주 19) 같은 글, 278쪽.
(미주 20) 같은 글, 279-282쪽.
(미주 21) 같은 글, 283쪽.
(미주 22)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5쪽.
(미주 23) 박순경, “제3세계와 신학”, 같은 책, 289쪽.
(미주 24) 같은 글, 290쪽.
(미주 25) 박순경, “통일신학과 여성교회”, 『통일신학의 미래』, 260쪽.
(미주 26) 같은 글, 260-261쪽.
(미주 27) 같은 글, “통일신학의 정립 과정에서”, 같은 책, 155쪽.
(미주 28) 같은 글, 154쪽.
(미주 29) 박순경, “통일신학과 여성교회”, 『통일신학의 미래』, 273쪽.
(미주 30) 같은 글, 275쪽.
(미주 31) 같은 글, 276쪽.
(미주 32) 박순경, “한국 여성신학의 영성”, 『통일신학의 여정』, 345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leeus@sejong.ac.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