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Favourites · 1tcSprongsohred ·
한국전쟁 연구사만큼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동하는 곳도 없다.
전문연구자조차도 상대방의 주장을 세심하게 살펴서 비판하기보다 후려치기 바쁜 분야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어들어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단순화와 후려치기가 시작된다.
예컨대 박명림은 브루스 커밍스를 '내전론자'로 몰고 가며 마치 커밍스가 미국과 소련의 책임을 한국인들에게 돌린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커밍스의 논지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커밍스만큼 미국 비판하는 학자가 또 있나 싶을 정도로 격하게 비판한다. 베트남전쟁을 두고 아시아의 민족주의에 대한 몰이해로 미국이 "제국주의적인" '부당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한 미국 신좌파의 세례를 받은 브루스 커밍스는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또한 한국 민족주의의 정당한 요구를 미국이 반공을 내세우며 억압했다고 본다. 그래서 커밍스의 한국전쟁관의 패러다임이 내전론이 아니라 "혁명 - 반反혁명"인 것이다. 커밍스의 연구는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한국의 "분단"이라는 외적 규정을 전제로 내적 요인들이 어떻게 발현되면서 미중소라는 주변 강대국의 참전으로 이어졌는지를 밝혀낸 것이지, 외적 요인을 무시하고 내전을 주장한 게 아니다. 박명림도 이를 알기에 커밍스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경계를 한다고 지적하지만 여전히 커밍스가 균형을 잃었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자기정당화를 하려고 한다. 선학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는 후학의 이점을 박명림이 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나는 제대로 비판하는 것이고(웃음).
---
또 다른 예로 이영훈의 뉴라이트적 담론이 있다. 이영훈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입각해 쓰여진 친북적인 혁명서적이라 주장한다. 자칭 "실증주의자"라는 이영훈은 여기서 완전히 비실증적으로 주장을 펼친다. 식반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브루스 커밍스와의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커밍스가 한국전쟁을 북조선에서의 혁명이 남한까지 한반도 전체에 걸쳐 관철되기 위한 사건이었다고 해석한 것처럼 식반론에 입각한 해전사 또한 북조선을 '민주기지'로 인식하며 한국을 부정하는 모택동식의 신민주주의적 혁명사관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해전사> 2권에는 장상환의 논문이 있다. 장상환의 이 논문은 한국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농지개혁이 다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식반론에 입각했든, 커밍스처럼 농민문제에 입각했든 이미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식반론이나 커밍스가 생각했던 남한 인민의 "혁명적 봉기상황"은 이미 소멸했다는 주장이다. 농지개혁으로 농민 문제가 해소되었는데 무슨 혁명? 게다가 4, 5권에서 다루는 한국전쟁에 관한 논문들은 한국전쟁의 발발 주체, 다시 말해서 기획자이자 주도자를 김일성으로 확정짓고 있다. 김일성을 소련의 괴뢰로 보던 관변 이데올로기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커밍스의 입론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커밍스는 전쟁의 발발과 확대를 두고 어느 누구의 책임도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의 입장을 대단히 부정확하게 단순화하자면 1949년 무렵의 국경지대에서의 소규모 전쟁들이 점차로 대규모로 확전되어 전면화 되었다는 '확전론'에 가깝다. 해전사는 이러한 확전론을 비판하고 확실하게 김일성이 전쟁 주도자라는 점을 못박았다. 남침설의 가장 확고한 지지자였다.
온갖 헛소리들이 난무하는 한국전쟁 '해석'사에 이제 중국까지 끼어들어서 항미원조 운운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여기에 대해 왜 왈가왈부 할까? 경제적으로 중국한테 이득은 챙기고 싶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계속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분열적 정신세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한국전쟁에 대해서 여태까지 한국인이 미중 관계에서 그러하였듯이 입을 다무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일이다. 왜들 난리를 치는지..
현명한 이들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데 이 동북아 모지리들은 아직도 과거사로 현실적 이익까지 버려가며 쓸데없는 대립이나 이어가고 있으니..
계속 그렇게 사세요. 언젠가는 다 죽겠지요..
Comments
박성우
예전에 선생님께서 중앙일보였나요? 아무튼 커밍스의 인터뷰를 올리시면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제대로 독해하면 한국의 '진보'쪽에서 호평하는게 이상하다고 하신 기억이 있네요. 그가 조선을 농업관료제로 바라봐서 몇몇 학자들이 그것을 식민사학의 봉건제 부재론과 상통한다고 비판했다..뭐 그렇게 설명해주신 기억도 있고요(틀릴 수도 있습니다ㅠ) 음... 암튼 쓰신 그 글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덕에 약간이나마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 Reply · 1 h · Edited
손민석
박성우 예, 맞습니다. 조선왕조의 사회구성체나 식민지기 조선사회에 대한 인식에서 반발을 낳을 가능성이 대단히 큰데도 환호하는 게 참 웃기지요ㅎㅎ 과찬을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