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6

손민석 삼성전자의 성공,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 전자산업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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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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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역시나.. 죽은 건 이건희인데 왜 사람들이 서로 죽일듯이 싸우고 있는지 참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이재용조차도 자기 상속분 때문이면 몰라 이건희 자체를 두고는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무슨 심오한 내용이 있으면 몰라, 고작 이건희가 대단한 사람인가 죽일 놈인가를 두고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이유가 있나. 이건희를 평가할거면 이건희 개인보다도 그 개인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 조건을 먼저 따져야 한다. 그 구조 속에서의 인간의 실천적 행위라는 관점으로 보아야지, 개인에게 집중하기만 하면 그 배경이 되는 무수한 맥락들이 사라지고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과장된 평가만 남는다. 사실 이런 과장된 평가 자체도 개인이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일이기는 하다만..
 아무튼 삼성전자의 성공,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 전자산업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으로 20세기 한국 경제사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사 그리고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정치경제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안되니 자꾸 이건희 하나를 두고 대단한 사람이네 죽일놈이네 어쩌네 하는건데 의미없는 소리들이다. 한국의 경제개발 자체도 그러했지만 한국 전자산업의 발흥 자체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한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용과 그 과정 속에서의 한국의 전략적 위치의 상승, 바이코리아 정책, 바텔기념연구소 등의 개입,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대규모 투자, 전후 신新국제분업의 전개, 박정희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육성정책, 과학기술 인재 육성 정책, 권위주의적인 개발동원체제, 내자동원을 위한 한국인들의 희생 등의 수많은 조건들이 겹친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자산업 자체가 미국이 1966년부터 작정하고 국가기구, 민간연구소, 다국적 대기업, 금융 등을 붙여주면서 계획적으로 육성한 분야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압력 속에서 외국 자본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지만, 미국 자본은 그리 쉽게 한국에 투자하지 않았다. 일본, 대만, 동남아 등지에 진출하려는 미국 자본을 미국 정부가 개입해 한국을 추천하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했으며 기술 이전 또한 상당히 적극적으로 행해줬다. 한국 같은 후진 사회가 무슨 기술력과 자본이 있다고 1966년 2차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할 때 전자산업에 뛰어들겠나.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했고 박정희 정부 또한 적극적으로 이 기회를 이용했다. 과학기술분야를 개척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산업정책을 펼쳤다. 미국은 심지어 수요까지 섬세하게 계산하고 구성해서 한국이 전세계적 분업체계에 편입될 수 있게 배려했다. 한국은 단순히 선진 사회의 사양산업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선진 사회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세계시장으로 편입했다. 그 편입을 가능하게 한 여러 조건들이 있다. 삼성전자의 성공 또한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이병철과 이건희와 같은 한국의 자본가들은 한국의 권위주의적 국가기구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무無노조 전략,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획득하면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삼성의 긍정적인 면모와 어두운 면모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서 존재해온 것이다. 지난 시기 한국의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자유민주주의의 축소, 보수 헤게모니의 인민 포섭, 내셔널리즘의 발흥, 진보 정치 세력의 무능력 등등의 여러가지 국내적 조건들이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동향이라는 구조와 결합하면서 기업집단으로서의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창출해냈고 이건희는 그 공간을 적극 활용했다. 그의 아들 이재용 또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 보여주듯이 한국 사회의 여러 구조 속에서 창출된 공간을 활용하려다가 그 꼴이 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건희가 황제경영을 할 수 있었던 건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할 수 있게 해준 한국의 개발동원체제의 특질 덕이다. 노동배제적인 경영이었기에 민주화된 지금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룹을 이끌던 삼성 비서실 같은 컨트롤타워도 사라졌다. 이재용한테는 이건희처럼 자기 대신 감옥까지 갈 봉건적 가신家臣이 없다. 이재용이 이건희보다 못나서.. 못난 건 맞지만 능력이 부족해서"만" 저러는 게 아니다. 이건희의 삼성경영을 가능하게 해준 시대적 조건이 있는 것이고.. 그런 얘기를 해야지. 이건희가 노동자를 어떻게 탄압했고.. 조안 로빈슨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지적했던 것처럼 착취당하는 괴로움은 착취조차 당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많은 후진 사회들은 더 심하게 착취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설명이 필요한 곳을 비난으로 채우는 건 개인 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
 좌익들이 설명을 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인민한테 설명을 해주나. 부정적인 것만 들추고 있으니 대체 그 비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인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계기업 삼성의 부정적인 면모를 그렇게나 잘 알고 있는 친노동적인 '나'를 위한 것인가? 학문이란 기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어났다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한국의 좌익들은 맨날 무슨 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일어났다는 도덕적 비난만 한다. SNS에 들어왔더니 한쪽에서는 개인숭배를, 다른 한쪽에서는 저주를 하며 싸우고 있으니.. 답답하다. 우리 좌익들이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인민은 능력주의와 같은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포섭된다. 학문이 망했다.
Comments
김대한
한국에 '좌익'이라고 봐 줄 만한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누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 Reply · 12 h
손민석
감별사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네요..
 · Reply ·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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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wan Eugene Lee
캬 명문입니다. 좌파 대신 좌익 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좌익은 connotation이 그리 좋지 않아서...
 · Reply · 10 h
손민석
Jinhwan Eugene Lee 오잉 좌익의 함의가 좋지 않나요?ㅎㅎ 일본 책을 많이 보다보니 좌익이 더 익숙해졌나 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Reply · 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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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wan Eugene Lee
베트남 전쟁 발발 후 상승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박정희는 잘 이용했고...중국이 반미 중심으로 성장한 지금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데 현 정부는 친중으로 경도되어 있어 안타깝네요...
 · Reply · 10 h · Edited
손민석
Jinhwan Eugene Lee 노무현부터 친노 계열의 역사관은 확실히 패권 교체기라는 걸 깔고 시작해서 좀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분단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 그런 것 같고요. 확실한 친중까지는 아닐지라도 좀 아쉬운 면이 있네요. 굳이 이 상황에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 Reply · 10 h
Jinhwan Eugene Lee
손민석 2000년 기준 미국이 패권을 잡은 게 50년 남짓인데 너무 성급한 예측이었던 것 같습니다. 달러에 기반한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군사판에 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들만의 wishful thinking이 투영되었던 듯요...
 · Reply · 10 h · Edited
손민석
Jinhwan Eugene Lee 뭐 중국 공산당도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패권이 몰락한다고 믿고 이빨을 드러내는 우를 범했으니 한국의 착각정도는 넘길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ㅎㅎㅋㅋ
 · Reply ·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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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Hyun Yang
살면서 수많은 좌파맨을 봤지만.. 말씀하신 그 지점을 꿰뚫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구요. 이건희를 둘러싼 두 가지 이야기들 중 어딘가 가려운 지점이 있었는데 민석님 글을 보니 명확하게 그려집니다. 감사해요. >인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계기업 삼성의 부정적인 면모를 그렇게나 잘 알고 있는 친노동적인 '나'를 위한 것인가? < 이거 너무 킬포 ㅋㅋㅋㅋ
 · Reply · 6 h
SeungHyun Yang
비도덕적인 것에 분노하는건 좋은데, 가만히 보고있으면 도덕-비도덕이라는 프레임 말고 제시하는 바가 없어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 Reply · 6 h
손민석
양승현 설명이 없어요 설명이.. 삼성이 나쁜 기업이라는 걸 아는건 쉽지만 그 나쁜 기업을 모든 이가 선망하게 된 과정을 이해하고 설명해야 헤게모니를 무너뜨릴 수 있는데 말이지요..
 · Reply · 3 h
SeungHyun Yang
손민석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모르지 않을까요..? 모르는거 같습니다.... 모르는게 아니고서야 이해가 안되는..
 · Reply · 1 h
손민석
양승현 뭐..^_ㅠ 모르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관심이 없는 거겠죠..
 · Reply · 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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