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0

연찬문화연구소 | 남곡,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연찬문화연구소 | 한살림선언 30주년을 축하합니다. - Daum 카페

한살림선언 30주년을 축하합니다.

남곡
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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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선언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식민지⸳해방⸳분단⸳전쟁을 겪고 나서 본격적으로 근대 국가를 만들어 왔습니다.

근대 국가의 첫번째 과제는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물질적 진보'입니다.
짧은 시간에 해 냈습니다.
두번째 과제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군사 독재로부터의 민주화'였습니다.
이른바 '제도의 민주화'인데, 그것도 해냈습니다.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세번째 과제와 만나고 있습니다.
의식과 문화(생활양식)의 진보’입니다.

두 차원이 있습니다. 
  1. 하나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이고, 
  2. 다른 하나는 지구적⸳인류적 차원의 문명 전환의 의식입니다.

이 차원의 진보야말로 우리가 지금 부딪치고 있는 핵심적인 과제로 보입니다.

나라의 민주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인류가 봉착하고 있는 존속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도 의식과 문화의 진보는 필수적입니다.

한살림 선언이 나오고, 한살림 운동이 시작되던 때는 바로 첫째 단계와 둘 째 단계가 교차되던 시기에 시대를 앞서가는 대단히 선구적인 선언이고 운동이었습니다.
이 선언이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 때 한살림을 만났다는 것은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한살림선언’을 만드신 장일순 선생님을 비롯한 분들을 저는 선언이 나올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선언’이 운동으로 될 때, 저는 박재일 선생님을 경동시장의 작은 가게에서 만났습니다.
제 아내가 박 재일 선생님과 동지 여러분과 함께 했던 덕분입니다.
그 후로 한살림과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고, 저는 이 생에서의 귀중한 인연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합원 가족 까지 하면 전체 인구의 3% 가까이 되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한살림선언에 바탕을 둔 한살림운동이 성공해야하는 것은 단지 한살림조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류의 문명 전환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요소, 즉 이제 하나의 상수(常數)로 되었습니다.
한 세대를 경과하면서 물론 지금 여러 조건들이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고 있고 난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마련한 귀중한 밑천을 잘 살려서 새로운 30년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평소 생각하던 것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1. 한살림은 특수한 대안운동을 넘어서 이제는 보편 운동입니다.

한 세대를 지나면서 이제 ‘한살림’은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보편적 과제로 되었습니다.
‘한 지붕 다(多) 가족’이 딴 살림이 아니라 한 살림을 하지 않으면, 복잡하고 중층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토대를 갖추는 것(효율성)과 물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운동성)이 한 지붕 아래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인의 해방(자기중심성의 발현)과 공동체성의 추구(자기중심성의 지양)가 한 지붕 아래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욕구(지적 능력)와 자연의 순환이 한 지붕 아래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살림’은 우선 자기 운동 안에서 이것을 연습하고 숙성함으로서 나라 전체에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한살림은 화해 운동입니다.

요즘 우리는 극심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산이나 척결 같은 말보다는 ‘정상화’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면 합니다.
부정이나 비리를 처벌하거나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내용 면에서 비록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 서 있는 입장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청산이나 척결은 과거에 방점(傍點)이 찍히는 것이고, ‘정상화’는 현재와 미래에 방점이 찍히는 것입니다.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실재’와 배제하고 증오하는 ‘관념’의 불일치를 극복해야 합니다.
추상적으로는 인류애나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구체적인 실제와 부딪치면 참으로 어려운 것이 어쩌면 인간의 실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한살림’이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무지(無知)의 자각’ 운동입니다. 저 축(軸)의 시대의 위대한 선각자들이 한결같이 깨달았던 것을 이제 보편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각을 바탕으로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이 깊어지면, 비로소 ‘관용’과 ‘구동존이(求同存異)’가 가능해집니다.

두 번째는 ‘양보의 이니시아티브’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서로 양보하고 싶어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수양이나 수행을 넘어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는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큰 공동체를 ‘한살림’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한살림은 ‘인문(人文) 생산물’을 많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금의 조합원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되기 위해서 이러한 활동이 크게 역할을 하리라고 봅니다.
양(量)에서 질(質)로 전화하기도 하지만, 질(質)이 양(量)을 창출하기도 합니다.
물질이 정신을 이끌기도 하지만, 정신이 물질을 이끌기도 합니다.


3. ‘살림’은 즐거운 운동입니다.

물질이 풍요로워지고 자유도가 높아진 사회에서 이제 운동은 즐거워야 확산됩니다.
아무리 숭고하다해도 사명감이나 의무감으로는 새로운 ‘살림’의 문화를 보편화하기 힘듭니다.
프레드릭 뷰크너의 말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과 세상의 허기가 만나는 것’이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쁨이야말로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빈이락(貧而樂)’과 과 ‘부이호례(富而好禮)’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가난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피한 가난이라도 ‘도(道)’를 즐긴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단순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생태적인 가치관의 핵심이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가난이 아니라 자발적 풍요입니다.
부유해지면 탐욕이 느는 것이 아니라 그 부(富)를 나누고 베푸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자입니다.
이 ‘기쁨’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야말로 ‘한살림 운동가’가 아닐까요?


4. 한살림은 정치운동입니다.

진보 진영의 이른바 ‘보편적 복지론’은 보수 진영이 우려하는 ‘재정의 위기’에 대한 대책이 함께할 때 비로소 현실성 있는 주장이 될 것입니다. 복지의 확대는 재정의 확대를 의미하고, 재정의 확대는 세수 확대를 말하는데, 이때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생산 주체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결국 가진 사람들의 실질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진보진영의 일각에서 잘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사회민주주의제도도 이런 중간층 이상의 의식이 얼마나 진화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시대의 개혁의 성패는 중간층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양(의식과 문화의 진보)’을 갖춘 ‘신중간층’의 지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한살림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이런 점에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 한살림은 교육운동입니다.

'한살림대학' 설립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실력 있는 교수진들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은퇴하고, 사회적 기여를 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핵심은 창의적이고 열성적인 학생들이 '고시촌'이라고 하는 '청년의 무덤'에서 나와 청춘의 꿈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꿈꿀 수 있는 그런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안'이라는 말이 갖는 비보편성(非普遍性)과 졸업해 봐야 결국 낡은 사회에 편입되고 마는 ‘전망 없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잘못 인식되어온 '대안'이란 수식어를 떼고, 실질적으로 새로운 사회와 이어지는 대학이 설립되어야 하는데, 어떨까요?

인구 3%에 육박하는 한살림공동체야말로 이런 대학의 꿈을 꿔볼만하지 않을까요?
규모에 관계없이 대학 설립을 생각해 봄직합니다.
교육, 연구, 창조의 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6. 한살림은 평화적인 체제변혁운동입니다.

헌 부대에 새 술을 담는 방식을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평화적 변혁을 그려봅니다.

‘한살림’이 다양한 생산협동조합의 새로운 모델들을 만드는 배경으로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잘 살리면서도 내부의 동기가 ‘이익과 경쟁’을 넘어설 수 있다면, 다른 말로 ‘협동과 연대’의 동기로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상 제가 생각하던 것을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

바닷물의 짠 맛은 3%의 소금이 낸다고 합니다.
한살림 조합원 가족, 이미 전체 인구의 3%에 육박합니다.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조합원이 되면 됩니다!
생산물이 소비자를 만듭니다.
한살림은 새로운 ‘인문 생산물’을 만들 수 있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한 달에 만원 씩 이 생산을 위해 낼 수 있는 조합원이 만 명만 되어도 우수한 인력을 이 분야에 많이 모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생각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살림 방송’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요즘은 유튜브 방송이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 한살림운동가들이 운영하는 밝고 맑은 방송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축하의 말씀을 거듭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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