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6

위안부 피해자 조형물, '소녀상'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 - 불교닷컴

위안부 피해자 조형물, '소녀상'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 - 불교닷컴


위안부 피해자 조형물, '소녀상'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

오마이뉴스 윤성효
승인 2018.03.02 10:25

통영 '정의비', 창원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진주 '평화기림상', 교육청 '기억과 소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 사진 왼쪽부터 통영 '정의비', 창원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진주 '평화기림상',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 '기억과 소망'.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정의비'(통영).
'인권자주평화다짐비'(창원).
'평화기림상'(진주).
'기억과 소망'(경남도교육청 제2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며 세운 조형물의 이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들이 '평화의 소녀상'이라 해서 유독 '소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정의비'는 2013년 4월 6일 통영 남망산공원, '인권자주평화다짐비'는 2015년 8월 27일 창원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거리, '평화기림상'은 2017년 3월 1일 진주교육지원청 뜰에 세워졌다. 모두 시민 성금이 보태졌다.

경남도교육청은 제2청사 입구에 3·1만세의거 99주년을 맞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기억과 소망'이란 이름의 조형물을 세우고, 2월 28일 제막식을 열었다.

이 조형물들은 왜 '소녀상'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3·1만세의거 99주년을 맞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조형물을 세워 제막식을 갖기도 한 가운데,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송도자 "소녀상은 역사인식의 오류가 될 수 있다"
▲ 통영 남망산공원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조형물인 '정의비'.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서울 일본대사관 앞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보다 먼저 조형물을 세웠던 곳이 통영이다. '정의비'를 세우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송도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는 이 문제와 관련해 할 말이 많았다.

송 대표는 "초기에는 자료가 많이 발굴되지 않았고, 대부분 증언자들이 '10대에 끌려갔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가 더 나오고, 추가 등록자도 생겨났다"며 "피해자들이 20대와 30대도 있었고, 심지어 결혼한 유부녀라든지 아이를 낳은 여성도 있었던 것"이라 했다.

그는 "'소녀상'이라 하면, 피해자들이 10대였다는 사실로만 받아들일 것이고, 대상자들이 굉장히 제한이 된다"며 "후대 세대도 그렇게만 받아들일 것이다. 이는 역사인식의 오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직접 경험한 일도 있다. 송 대표는 "아이들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10대 소녀만 일제에 강제로 끌려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몇 년 전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보니 그렇게 나왔다"며 "심지어 피해자의 호적 자료 신청을 해보면 공무원들도 '나이 많은 분들도 있었느냐'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송 대표는 "지금도 그러한데, '소녀상' 세우기를 통한 위안부 운동을 전개한다면 피해 대상자가 소녀로 국한되는, 역사적 오류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라 했다.

'순결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도 있다는 것. 송 대표는 "소녀는 결국 처녀이고, 처녀는 순결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게 된다"며 "소녀상은 결국 남성 이데올로기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성인권, 성차별, 젠더폭력에 대한 대항도 들어 있다. 그런데 그런 운동을 하면 '소녀'를 들고 나오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정의비'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송 대표는 "피해자들의 정의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당당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두 팔을 벌리고 '나는 당당하다'고 하는 형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 우리한테 자발적으로 갔다고 하는데, '몰라서' '속아서' 갔고, 그렇기에 나는 당당하다는 의미다"며 "피해자들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조형물을 세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의 역사 교훈을 배워야 한다"
▲ 창원시 마산오동동 문화거리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인권자주평화 다짐비'에 겨울이 되면서 누군가 털모자와 목도리를 씌워놓았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 1일 오후 진주교육지원청 뜰에서 열린 '평화기림상' 제막식.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창원 인권자주평화다짐비를 세우는데 앞장섰던 이경희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는 "이름을 정하는데 내부 토론을 치열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소녀상'이라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내부에서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소녀상이라고 하면 소녀가 갖는 순결 이데올로기가 있어, 가부장적 관점이 들어간 것이라 보았다"며 "이제는 거기서 벗어날 때가 되었고, 위안부의 역사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소녀상'이란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인권, 자주, 평화는 어느 것 하나라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그래서 그것을 다짐하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정했다"며 "다짐비가 단순히 와서 사진을 찍고 마는 것으로 끝나버려서는 안된다. 교훈을 적극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진주 평화기림상도 비슷한 의미다. 서도성 '일본군강제성노예피해자 진주평화기림상사업회' 공동대표는 "기림상이 일본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평화를 이루는 단초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일제에 강제로 끌려갔던 여성 중에는 10대도 있었지만, 20대와 30대도 있었고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며 "조형물을 세우자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소녀'라는 이름에 국한하지 말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경남도교육청은 제2청사 입구에 조형물을 세우면서 공모 과정을 거쳤고, 이름을 '기억과 소망'이라 정했다. "우리는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고 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생전 오록도 새겨 놓았다.

박종훈 교육감은 "기억과 소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해 오랜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해 이 땅의 평화통일을 기원하자는 소망을 담았다"고 했다.
▲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 입구에 세워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기억과 소망' 조형물.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 입구에 세워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기억과 소망' 조형물(김학순 할머니 말씀).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의 제휴에 의해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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