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8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 by박인식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
by박인식
10시간전

박유하
뿌리와 이파리
2020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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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목소리가 정리되기까지

이 책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는 2005년 발간한 <화해를 위해서>에서 한일 양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양국의 ‘역사 기억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역사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신사, 독도와 같은 현안에 발이 묶여 화해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결국 잘못된 ‘역사 기억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화해는 요원하다는 것이니, 내 관점만 고집할 게 아니라 상대 관점에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고 회피하고 싶은 모습까지, ‘함께 기억’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위안부 문제를 집중 조명한 <제국의 위안부>를 2013년에 발간한다.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를 발간하고 나서 이듬해인 2014년 봄까지 위안부 할머니 몇 분을 인터뷰한다. <제국의 위안부>는 오래 전에 나온 증언집과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위안부를 총체적으로 조명한 것이었고, 그에 더해 당사자들이 일본의 사죄와 보상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 4월에 몇몇 일본 전문가와 언론인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심포지엄을 열어 그분들의 목소리 일부를 세상에 내보낸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반 후 ‘나눔의 집’ 할머니에게 피소되고, 더 이상 그 작업을 이어가지 못한다.

오독의 결과

‘나눔의 집’에 거주하시던 생존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은 <제국의 위안부>에 들어 있는 일부 표현으로 인해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됐으므로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이로 인한 심리적 피해를 보상하며, 이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을 요구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지목한 109곳은 크게 다음 세 가지 내용이었다. (이후에 이를 53곳으로 변경한다.)

○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가 아님에도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했다.

○ 위안부가 일본과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표현했다.

○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서술했다.

사람마다 책 읽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처음부터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는가 하면, 대충 줄거리를 확인하고 관심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책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다. 특정한 이유로 책을 골랐다면 그 부분을 먼저 읽을 수도 있겠다. 이번 경우가 그랬다. 저자의 전작을 읽어오면서 관심은 온통 소송의 대상이 되었던 <제국의 위안부>의 이러한 표현에 꽂혀있었다. 그러니 이 책을 펼치면서 이 사실에 대해 할머니들이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지에 시선이 먼저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 책의 주요 화자인 배춘희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사람들에게 붙들려 간 것이 아니라 대구에 있는 소개소에 취직하러 갔다가 위안부로 가게 된 것이며, 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따라나섰는데 알고 보니 위안부였더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한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일본사람들이 어느 집에 딸이 있는 줄 알고 데려가겠느냐며 마을사람들이 앞잡이가 된 것을 고발하기도 한다. B 할머니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아이보기로 일본에 팔려갔다가 집이 그리워 눈물짓는데 어떤 한국여인이 집에 데려다준다고 속이고 위안부로 다시 팔아넘기더라고 말하고, 충남에 살던 C 할머니는 공출을 피해 도망가 있다가 결국은 시모노세키로 끌려갔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의아했다. 그것이 내가 찾던 증언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프롤로그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 책이 일본의 사죄와 보상에 대해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인터뷰 기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죄와 보상에 대한 당사자의 견해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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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사사에 안(案)’과 2015년 ‘외교장관 합의안’ 사이

일본은 1992년 7월 가토 관방장관 담화와 1993년 8월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통해 위안부 강제동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1994년 무라야마 총리가 사죄를 표명하며, 이는 1995년 7월 아시아여성기금으로 이어지고, 1996년 8월 하시모토 총리 명의의 사죄편지를 보낸다.

나는 이후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가 2015년 양국 외교장관 사이에 위안부 문제가 타결되고, 이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되고 기금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배 할머니와 통화하는 중에 2012년 협의안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모르던 내용이라 관련 근거를 찾아봤지만 구하지 못하고 결국 저자께 물어 2012년 ‘사사에 안(案)’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이 방한해 제시한 방안으로, 1) 일본 총리의 직접 사과, 2) 주한 일본 대사관의 피해자 면담 및 사과, 3) 일본 정부의 예산을 통한 피해자 보상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며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곧이어 일본도 민주당 정부가 자민당 정부로 바뀌면서 없던 일이 됐다. 그리고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양국 외교장관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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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2년부터 시작된 일본 각료의 담화나 제안이 (왜 우리 정부에서 수용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우리 요구를 상당히 수용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정부에서 이를 거절했는데, 그 이유와 함께 담화나 제안을 다시 살펴보니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은 하되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아 결국은 배상이 아닌 보상에서 그치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2015년 외교장관 사이에 타결된 내용도 큰 틀에서는 이와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현 정부나 위안부 지원단체에서 반대하는 것 역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결국 양국 합의가 문턱을 넘지 못한 건 ‘법적 책임 인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국가배상은 국가나 국가공무원의 불법행위 때문에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뜻한다. 국가보상은 넓은 의미로는 손실에 대한 보전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좁은 의미로는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인한 손실 보전을 의미한다. 즉,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한다는 것은 위안부를 불법적으로, 강제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에도 관여했다는 ‘형사적 책임’을 인정한 결과가 되는 것이고, 보상을 한다고 하면 법적 책임 인정의 성격은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

‘사사에 안’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일본이 ‘법적 책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이 안으론 국내 여론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보고 사실상 이를 거부했고, 현 정부에서도 같은 이유로 전임 정부에서 타결한 합의를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적 책임’이 어렵게 이끌어낸 타결을 부정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의아하다. ‘법적 책임’은 그 자체로서보다 이어지는 후속 조치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 아닌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고,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후속조치를 취하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정치란 현실인데, 명분에 묶여 실리를 놓치는 정치적 결정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물론 국민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당국자였다면 국민감정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카드로 쓸망정, 그것을 이유로 실리를 저버리는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에 기록된 위안부 할머니들과 대화는 ‘사사에 안’ 제기 이후, 화해치유재단 설립 이전에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대화 당시 할머니들이 알고 있는 일본 정부의 제안은 ‘사사에 안’이었다.

보상에 대한 피해 당사자의 생각

우리 사회에는 약자나 피해자가 많고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도 많다. 피해 당사자나 지원단체가 궁극적으로 얻고자하는 게 같아야 할 것인데, 현실에서는 이것이 서로 달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지원단체는 명분에, 피해 당사자는 실질적인 보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현상은 위안부 문제에도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은 양국이 제안하거나 논의하거나 결정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저자가 내용을 설명해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잘 듣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원단체에 의존하게 되고, 지원단체에서는 나름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내용을 과장하거나 축소해서, 때로는 왜곡해서 설명하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할머니들의 의견이라는 것은 바르지 않은 설명에 바탕을 둔 것이니 그것을 피해 당사자의 진정한 의견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언급된 배 할머니를 포함한 네 분은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모두 실질적인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지원단체나 정부에서 한결같이 합의의 명분인 ‘법적 책임’에 매달리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들이 같은 생각을 밝혔다는 것은 그것이 피해 당사자의 진정한 기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배 할머니는 대화 초기인 1월에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고 정부로부터 떳떳하게 보상받고 싶다며 민간기금에서 보상 받는 방안을 거부한다. (일본과 한국 정부 중 어느 정부를 뜻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저자가 그것이 민간기금이 아니라고 설명하자, (일본) 정부에서 지불하는 돈이라면 왜 안 받느냐고 되묻는다. 이는 배 할머니가 “정부의 보상금이라면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4월에 들어서는 자신이 보상을 거부한 것은 지원단체에서 좀 더 큰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하는 일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비친다. 그리고 대화 내내 정작 피해 당사자는 챙기지 않는 지원단체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다.

A 할머니는 지원단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보상 받고 싶다고 말한다.

B 할머니는 한국정부의 조치도 일본정부의 사죄에도 관심이 없고, 단지 약이라도 마음 놓고 사먹을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보상이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C 할머니는 ‘법적 책임’ 이야기가 나오자 그보다는 자신을 열여섯 당시로 돌려보내달라고 말한다. 70년 동안에 있었던 모든 고통을 보상해달라는 말인데, 나는 이런 요구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할머니가 에둘러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보상하려면 시늉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보상을 하던가, 그렇지 않으려면 차라리 우리 정부가 보상해달라고 말한다.

피해 당사자가 배제된 요구

나는 위안부 지원단체의 활동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요구를 일본 당국을 비롯한 국제기구나 관련단체에 직접 표현했다는 보도는 보지 못했다. 이런 사실이나 할머니들의 불만을 감안할 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피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원단체에서 주장하는 대의나 명분, 또한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피해 당사자에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피해보상에 대한 요구나 협상이 피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협상을 진행하는데 피해 당사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먼저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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