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형 is with Fukumi Kur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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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의 기원에 대해서>
일본 극우파들의 맹목적 폭력적 한국 혐오 현상을 두고 흔히 '혐한嫌韓'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혐한 감정'은 일본 극우파의 레토릭을 넘어 최근에는 일본 사회 전반에 '혐한 분위기'가 대세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 또한 어디까지나 한국의 '반일감정'이 가공해 낸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독도 주권' 문제를 비롯, 위안부와 강제징용노동자 동상 세우기 운동을 주도하는 무리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자신들에 의해 가공 왜곡된 일본 사회의 혐한 감정을 퍼뜨려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 간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민족 간 대결로까지 몰고간다는 점에서 그 배후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다음은 그런 '혐한 감정'의 실체에 대해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짚고 있는 내용이라 소개한다. 일본 사회의 혐한 감정은 감정적 '미움'이 아니라 과잉으로 인한 '싫증' 또는 '질림'일 뿐이라는 것.
최근 번역 출판된 친한파 원조 한류 전도사인 일본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의 저서 [#그래도_나는_포기하지_않는다] 제2장 '혐한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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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한국과 이어진 경위를 간단히 소개해 두기로 하자.
첫 한국 방문은 1984년이었다. 나는 다소 엉뚱한 계기로, 일본에서 사는 재일 한국인이나 남북한에 대한 차별의식에 강한 반발과 의문을 품게 되었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매스컴에서 한반도에 관한 보도 자체가 ‘다룰 수 없는 테마’였다.
이 책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므로 이야기를 자르겠지만, 1980년대 당시의 일본에서는 정치와 경제를 제외하고는 매스컴이 외면함으로써 한반도에 관한 정보, 특히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상이나 문화 현상 등이 일본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이웃나라에 대해 무지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지야말로 ‘차별의식을 온존溫存시키는 원인遠因’이라고 판단한 나는 좀 더 폭넓은 한국 보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보도에 간여하고 싶다는 뜻을 굳혀 갔다.
그렇긴 하나 나 역시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지라 우선 스스로를 ‘인재人材’로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라디오 강좌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방문을 거듭하면서 먼저 내 자신부터 무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식으로 수시로 한국을 찾아가는 사이에 ‘여행,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이드북을 만들거나, 단체여행을 기획하거나 하면서 여행을 통한 교감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이 꿈을 꾼 1991년’이 어떤 해였던가 하면, 우선 서울올림픽이 끝나 ‘혐한’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일본 사회에 선보인 시기였다.
독자 여러분으로서는 요즈음 들어 과열하는 ‘위안부 문제’나 ‘역사 문제’를 에워싸고 소위 혐한 서적이 범람하게 됨으로 해서, ‘혐한’이라는 단어를 최근의 유행어처럼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30여 년에 걸쳐 한국을 바라보아 온 나로서는, 서울올림픽을 정점으로 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무렵이 일본에서의 첫 ‘한류韓流’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까지 매스컴 스스로 규제해 온 한국 보도가 이웃나라에서의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단숨에 둑이 터졌다. 한국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하루에도 두어 개씩 방송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제1차 한류’로 본다. 한국 보도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그 무렵 나는 ‘여배우인데도 한국통’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떠받들려져 리포터 등으로 활약할 기회가 한층 늘어났다.
그러나 엄청나게 불어났던 한국 보도도 올림픽 종료와 더불어 급격히 줄어들었다. 흔들리는 추시계가 자연스레 반대쪽으로도 가듯이, 넘쳐난 한국 보도에 사람들은 식상해 갔다. 하필 그럴 무렵 등장한 것이 ‘혐한 무드’였다.
이때의 혐한은 지금처럼 명확한 팩트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한국 보도의 과잉으로 지치고 만 것이었다. 질렸다고 할까. 따라서 혐한이 아니라 ‘혐한 무드’라는 표현이 종종 쓰였던 것이리라.
- [#그래도_나는_포기하지_않는다] p.22~p.24 9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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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_나는_포기하지_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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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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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_나는_포기하지_않는다 #구로다_후쿠미
“태평양전쟁 때 한국의 많은 분들이 만리타국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분들의 영혼이나마 그리워하던 고향 산하로 돌아와 편안하게 잠드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_ 2009년 10월 26일 구로다 후쿠미 (黒田福美)
한 꿈에서 비롯된 인연으로 지난 27년 동안 조선인 출신 일본군 병사들의 영혼을 귀환시키는 일에 몰두한 후쿠미(일본 여배우)씨.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소망이었던 귀향기원비가 마침내 완성되었지만 법륜사(용인) 한쪽에 누운 채로 세워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꿈의 주인공이 가미카제 특공대원이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헌법을 욕되게 해서?
그래서 이런저런 시민단체들은 ‘법통’을 지키려 귀향기원비 건립 저지에 나선 것인가.
후쿠미 씨는 자신의 책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타임라인) 후기 “지혜와 용기로 한일의 상극을 넘어서고 싶다”에서 자신이 목도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는 반론할 수 있을까.
△몬스터처럼 되어 가는 시민단체에 의해 국가의 방향타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
△반일을 국시처럼 여긴 나머지 시민운동가들과 일반 시민의 괴리가 큰 점
△목청 높여 반일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활동만이 두드러지며, 두 나라 언론도 그것을 지조 없이 보도하고 부추기는 점
△한국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합병한 시대의 일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만약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고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용인 - 이 반대가 되어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면 오늘날 반일과 같은 수준의 반미 민족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득세할 수 있을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난 일제 ‘식민지’ 시기를 ‘일제강점기’혹은 ‘대일항쟁기’라고 불러도 엄존했던 그 역사는 어디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안부에서 징용공 문제를 되풀이하며 한일기본조약까지 무위로 돌리려는 듯한 이 무모한 역사 지우기의 끝자락이 심히 암울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에 나타난 후쿠미 씨의 진솔한 기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귀향기념비 작업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는 지식인, 정치인, 그리고 이른바 시민단체들의 민낯은 우리의 얼굴을 차마 들 수 없게 만든다.
최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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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_후쿠미 #그래도_나는_포기하지_않는다
“사실을 직시하고, 실제로 어떤 시대였던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예전에 문화를 함께 해온 사람끼리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역사적인 상극에서 생겨난 아픔과 고통을, ‘서로 보듬고 위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하고 절실하게 바랍니다.”
_ 구로다 후쿠미 씨의 제안
대한민국은 모든 사안이 ‘정치’로 귀결되는 정치 과잉의 사회다. 그리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상대 세력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변별점의 중심이 ‘친일 vs 반일’ 프레임으로 설정되다 보니 역사적 사실관계가 온통 누더기가 되고 만다.
복잡다단한 지구촌 사회에서, 그것도 얽히고설킨 역사를 지닌 한·일 관계에서 후쿠미 씨의 말처럼 ‘서로 보듬고 위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인과와 외교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2019년 새해, 내수용 ‘반일反日종족주의’ 정치로 인해 한·일간 외교참사가 더 이상 반복 · 확대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후쿠미 씨의 바램에서 다시 한 번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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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선인 가미카제 대원의 영혼을 귀향시키기 위한 어느 일본인 여배우의 지극한 마음의 기록
구로다 후쿠미 지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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