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의 사회 구조를 국민 이익에 맞게 바꿔야
기자명 등록일 2022.07.04 19:59 게재일 2022.07.05 지면 16면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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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
신평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으로 봐서는 실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분하면 실체를 선명히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학연·혈연·지연으로 엮인 연고주의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기득권층의 횡포가 특히 심하다. 이건 보수뿐 아니라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사욕 추구에 매몰된 탐욕적 기득권자들에서도 예외가 없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장관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맨 처음 주장한 신평 변호사는 “세상을 보는 국민의 눈이 ‘조국 사태’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고 했다. “세상은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 변호사는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시킨 사회적 구조를 전 국민의 이익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사법제도의 핵심은 국민이 공정한 수사를 받고, 또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는 것
표준교과과정제 실시·등록금 하향 등 우리 실정에 맞는 법조인 양성제도 개발 필요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선 이순신 장군의 ‘산하재조’ 본받은 ‘국가대개조’까지 나아가야”
- 사법제도 개혁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올바른 사법제도의 핵심은 국민이 공정한 수사를 받고, 또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제도개선 혹은 개혁을 한 적이 없다. 그 결과 수사나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 수가 많고 또 그 중에는 명백히 부당한 수사나 재판의 희생이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을 ‘사법피해자’라고 한다면 이들이 내뿜는 피맺힌 절규가 전국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사법신뢰도는 국제적인 조사에서 매년 OECD 37개국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 우리 법률 중 현실과 맞지 않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률은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 지금으로 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행한 소위 검찰개혁, 또는 ‘검수완박’으로 이루어진 여러 법률들을 다시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정권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막기 위해 행한 것으로 검찰의 권력 핵심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본질이다.
나는 진정한 사법개혁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두고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당선됐을 때 직접 의원회관으로 찾아가 사법개혁 강의를 해주기도 했다.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 케이스별로 처리하겠지만 폐지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 물론이다.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법이다. 유엔에서도 그렇게 한국에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 처벌하지 않아야 하고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이라도 벌금형에 그쳐야 한다는 식이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고귀한 가치에 비추어 심각하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 여전히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인 것 같다. 갈수록 변호사 의존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고 세상이 변호사 중심으로 바뀌는 것 같다.
△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의 일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법조인의 과다배출이 야기한 과열경쟁에 의해 초래된 측면도 있다.
- 현재의 로스쿨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지금 한국의 로스쿨 제도는 철저하게 기득권층을 위한 제도다. 많은 부분이 중·하위층 자녀들의 계층 상승 사다리를 봉쇄하고 있는 집안 자녀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 지금의 로스쿨을 우리 사회의 진보 귀족들이 만들기는 했으나 보수와 진보 기득권층이 모두 로스쿨 제도 개혁을 반대하고 있다.
교육과정도 훌륭한 법관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이기보다 교수를 위한 교육과정으로 편성돼 있다. 이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먼저 표준교과과정제를 실시하여 교과과정을 충실히 할 일이다. 또 등록금도 대폭 낮춰서 중하위 계층에서도 법조직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실정에 맞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서 자질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법고시 부활론이 나오기도 한다.
△며칠 전 현직 중견 법관을 만났더니 현재 판사 자질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하더라. 판사가 법 이론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부실한 로스쿨 교육 때문이라 생각한다. 거기에다 법원의 규율은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큰일이다. 사법제도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 같다.
개인적 의견으론 사시부활론의 가리키는 사회적 사다리의 복구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사법시험제도, 로스쿨 제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제도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본다.
- 로스쿨뿐 아니라 대학입시나 공무원 임용에서도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정하지 못하다. 공정하게 돌아가야 할 사회 시스템이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불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586 운동권 세력들은 명예와 권력에 이어 이번 정부에 들어와서는 재물까지 탐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탐욕은 자신들을 위해서라면 국가제도를 바꾸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던 아름다운 사회적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 차 버렸다. 뻔뻔스럽고 보수 기득권보다 더 교활하고 탐욕적이었다.
계층 상승을 위한 사다리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돼야 한다. 그 사다리가 없어지면 불건전사회가 되고 압력이 폭발하게 된다. 있는 사람, 기득권 자녀를 좋게 고쳐놓은 법이나 대학입시 공무원 임용 등에서 기득권층의 탐욕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대학입시에서부터 불공정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수시 전형의 많은 부분이 기득권 자녀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그것이다.
공직 사회의 경우에도 외교부에는 많은 직원들이 특채로 들어와 있다. 과거 외무고시를 통해 들어왔을 자리들이다. 현대판 음서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우리 사회가 공정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우리 사회가 공정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혁을 넘어 이순신 장군의 ‘산하재조’(山下再造)를 본받은 ‘국가대개조’(國家大改造)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기득권자들이 그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시킨 사회적 구조를 전 국민의 이익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예산 뒷받침이 없이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기득권 자녀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대학입시 제도를 되돌려야 한다. 또 사무관 이상 공무원 특채를 줄이고 공정하게 선발하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를 바꾸는 것도 방안 중 하나다.
- 문재인 정부 탄생에 많은 역할을 했다.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에 몸담았고 친문 성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지난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것이 안 돼 삐쳤다는 소문도 있다.
△민주당 씽크탱크인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이기도 했고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중앙선대위 위원장도 맡았다. 그래서 대법관이나 감사원장 법무부장관 등에 하마평이 있었고 상당히 진전되기도 했었다. 그러니 삐친 것은 사실이 아니고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결정적 계기는 조국 법무부장관 때문이다.
- 그렇다고 곧바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게 됐나.
△그가 검찰총장일 때 비판하는 글을 써 주목을 받았고 비판 언론들과 의기투합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위선을 그대로 두고는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문 정권은 뉴욕타임즈가 지적한 ‘내로남불’ 정권이다. 그런 문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운동권 세력들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586운동권, 촛불 정부의 탄생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니 위선적이고 잇속 챙기는 사람들이었다. 진보 귀족이라 불릴 이들 운동권은 국정을 담당할 실력이나 식견은 없으면서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는 어느 부패 보수 세력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 주위에서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괜찮으니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실제 만나봤더니 사람이 믿을 만했다. 거기에다 주변에 필체 분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윤 후보의 필체를 분석해 본 결과 신뢰하게 됐다.
무능하고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을 옹위하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진보 귀족들에 대한 청산은 윤석열 후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 윤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다. 잘 해 나갈 것 같나.
△통합과 개혁의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통합은 잘 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가정에서 훈육받은 성장 과정을 볼 때 우리사회의 모순에 대한 감수성이 약하지 않을까 생각도 된다. 지난 5년간 정치 사법 교육 부동산 등 국가 사회 전반에 걸쳐 헝클어진 질서를 수습해 줬으면 하고 기대한다.
- 조국 전 장관과는 어떤 관계인가.
△서울대 법대학보(Fides) 후배 편집위원이었고 나를 대법관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장관 후보가 됐을 때 내가 처음으로 ‘후보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그 때부터 조국과 문 정부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면서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됐다. 조 전 장관 입장에서는 내가 야속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 사퇴했더라면 지금은 아마 조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고 싶다.
- 판사 재임용에 탈락했다. 사전에 사표를 썼나, 탈락했나? 왜 그런 일이 생겼나.
△탈락한 것이 맞는다. 당시 법관 사회에 돈 봉투가 횡행했다. 구체적으로 적시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그걸 비판하는 정풍 운동을 벌였다. 발단은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재판소에 파견됐고 그 때 쓴 책 ‘일본 땅 일본바람’에서 우리 법원 실정을 폭로했기 때문일 것이다.
- 변호사 개업했을 때 전관예우는 좀 받았나. 경북대 로스쿨에서는 왜 사퇴했나.
△예우는커녕 사건수임조차 없었다. 대가대 교수시절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맡아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인사하러 갔더니 “전관예우도 못 받아본 변호사”라고 하더라. 그게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로스쿨 제도는 설계부터 잘못 되어 있음을 느꼈고 학교에 계속 있는 것이 불편했다.
- 판사로, 교수로, 변호사로 여러 직업을 편력했다. 최근 정치인으로, 정치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요즘은 아주 농부, 농업인을 자처하고 있다.
△그 중에서 지금의 일이 가장 마음에 맞고 제일 낫다. 변호사 사무실은 몇 달 전부터 사건 수임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자유스럽게 독서하고, 농사를 짓고, 틈나는 시간에 어디에 얽매임 없이 글을 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아 사물을 보는 눈이 밝아진 것 같다.
□신평(申平·66)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변호사.
대구출생. 경북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석사. 영남대 법학박사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판사(서울 인천 대구 경주의 법원에서 근무)
대구가톨릭대 법대 교수. 경북대 로스쿨 교수·학장.
미국 중국 일본의 여러 대학에서 연구.
한국헌법학회장, 한국교육법학회장, 엠네스티 법률가위원회 위원장. 국공립대학 교수회 연합회 정책위원장. 경북대 법학연구원장 역임.
시와 수필로 등단한 한국문인협회 회원.
2018년 대한민국법률대상 2016년 국회의장공로장, 2013년 철우언론법상. 2012년 일송정문학상 수상.
현재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중국 런민(人民)대학 객좌교수. 한일비교헌법학회 한국회장.
30여년 전엔 허허벌판이었던 경주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짓고 있다.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땅에 대한 동경으로 농업인을 자처한다.
하지만 흘리는 땀에 비해 수확은 터무니없는 보통 농부들에 비하면 농사를 직업이라 부르기에는 부끄럽다고 한다.
최근에는 고 심정민 소령 추모사업회 회장을 맡았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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