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zabeth Keith
Elizabeth Keit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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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 30 April 1887 Aberdeenshire, Scotland |
Died | 1956 (aged 68–69) London, England |
Occupation | Artist |
Elizabeth Keith (30 April 1887 – 1956) was a Scottish artist and writer. She was a print-maker and watercolorist whose works were significantly influenced by her travels to Japan, China, Korea and the Philippines.
Early life[edit]
Keith was born in Aberdeenshire, Scotland.[1] She was a cousin to Sir Arthur Keith.[2] It is uncertain, however, if Keith was born in 1887 or 1888.[3]
Career[edit]
Keith's work consists of prints depicting Asian life and culture,[4] a fascination she acquired when she travelled to Tokyo at the age of 28 and remained there for nine years. In her first year in Japan, she had a small exhibition with caricatures of foreign residents in Tokyo, which she published as a book benefiting the Red Cross entitled Grin and Bear It.[2] From a trip to Korea she brought some watercolors back and exhibited them in Tokyo--she claimed it was "the first exhibition of Korean subjects ever held there."[5] Watanabe Shōzaburō, the Shin-hanga publisher saw her exhibition and convinced Keith to transform one into a woodblock print - a view of the East Gate in Seoul.[1][6]
Keith would continue her travels throughout Asia, visiting China, Korea, and the Philippines, gathering more subjects for her artwork. She learned the methods of traditional Japanese woodblock printing, emulating the work of Katsushika Hokusai, Ando Hiroshige, and Kitagawa Utamaro. Keith’s work gained popularity not only in Japan, but also in London and New York. Landscapes, people in traditional and common dress, and cultural rituals were central to her imagery. She also created portrait prints in the vein of a Chinese painted portrait tradition called xingle tu or "pleasure portraits."[7]
In 1924 Keith returned to Britain where she started to learn colour etching techniques, and in 1925 began to print her own works, using an initial seal "in the oriental manner" to sign them.[7] In 1928, she published an illustrated travel diary of her time in Asia called Eastern Windows.[7] Keith was back in Asia and Japan from 1929 to 1932, then again in 1934--in between these visits she was elected a Fellow of the Royal Society of Arts in London.[7]
In 1936 and 1937 Keith had exhibitions in America, supported by California-based collector of Asian art Grace Nicholson, as well as an exhibition at the Beaux Arts Gallery in London which was visited by Queen Elizabeth the Queen Mother. [1][5][8] During World War II, Keith raised money to assist Chinese women affected by Japan's military violence, though she apparently "retained warm feelings for her many Japanese friends."[5] In 1946 she and her sister Elspet published a book titled Old Korea: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which included criticism of Japan's colonisation of Korea before and during the war and was dedicated to General Douglas MacArthur, Lord Louis Mountbatten, and Admiral Chester Nimitz.[5]
Personal life and legacy[edit]
Keith died in London in 1956 after a prolonged illness.[9][2]
Keith prints are both rare and expensive, as the number of printed copies was small and in her lifetime she could not sell larger editions. Some of her prints were published in only 30 or 50 copies. During her lifetime some of her works were acquired by the British Museum, the Musée Guimet in Paris, the National Gallery of Canada, and the Honolulu Academy of Arts.[6] Queen Elizabeth The Queen Mother bought several of Keith's prints in 1937.[10] Her portfolio consists of more than a hundred woodblock prints and about a dozen color etchings. All of her woodblock prints are signed in pencil. The signatures are however today often very faded.[1] Significant holdings of Keith's work can be found at the Jordan Schnitzer Museum of Art at the University of Oregon.[citation needed]
References[edit]
- ^ ab c d "Biography of Elizabeth Keith (artist) - artelino". www.artelino.com. Retrieved 16 March 2019.
- ^ ab c An old friend. "Miss Elizabeth Keith." Times, 13 April 1956, 13. The Times Digital Archive (accessed 11 March 2020). https://link.gale.com/apps/doc/CS219371149/TTDA?sid=TTDA&xid=385c6b13
- ^ Chun, Dongho (2020). "Selling East Asia in Colour: Elizabeth Keith and Korea". 미술사와시각문화 (25): 6–33. doi:10.22835/AHVC.2020..25.001.
- ^ "Viewing Japanese Prints: Elizabeth Keith Woodblock Prints". viewingjapaneseprints.ne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2 July 2016. Retrieved 18 April 2016.
- ^ ab c d Sakai, Naoki; Yoo, Hyon Joo (24 October 2011). The Trans-Pacific Imagination. doi:10.1142/7911. ISBN 978-981-4324-13-7.
- ^ ab arts, Women in the (22 November 2011). "Visions of the Orient Artist Spotlight: Elizabeth Keith". Broad Strokes: The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Blog. Retrieved 11 March 2020.
- ^ ab c d Claypool, Lisa (10 September 2014). "Feminine Orientalism or Modern Enchantment? Peiping and the Graphic Artists Elizabeth Keith and Bertha Lum, 1920s–1930s". Nan Nü. 16 (1): 91–127. doi:10.1163/15685268-00161p04. ISSN 1387-6805.
- ^ "Court Circular." Times, 25 November 1937, 17. The Times Digital Archive (accessed 11 March 2020).
- ^ "Elizabeth Keith Biography | Annex Galleries Fine Prints". www.annexgalleries.com. Retrieved 16 March 2019.
- ^ "Elizabeth Keith woodcuts". www.rct.uk. Retrieved 11 March 2020.
External links[edit]
엘리자베스 키스 일어 한역
엘리자베스 키스 ( Elizabeth Keith, 1887-1956 년 4월)는 영국 여성 판화가 . 일본에서 우키요 에를 배우고 아시아 각지를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내력 [ 편집 ]
스코틀랜드 에서 태어난다. 키이스는 독학으로 수채화 등을 그렸다. 1915년 에 28세가 된 키스는 도쿄에서 '신동양(The New East)'이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있던 로버트슨 스콧(en:JW Robertson Scott)이라는 남성과 이미 결혼 한 누나 엘스핏을 찾아 첫 일본 방문했다. 거기서 일본 의 풍경이나 풍속이 실로 회화적인 것에 매료되어, 우키요 에의 기법을 배웠다. 이후 9년간에 걸친 장기 체류 기간 중과 1929 년 부터 1933년 에 재래일을 했을 때, 언니와 함께 일본을 시작해 일본 통치 시대의 조선, 중국 , 싱가포르 , 필리핀 , 동남아시아 등 을 여행 그리고 각국의 풍경과 사람들의 극히 흔한 일상을 목판화 에 남기고 있으며, 1938 년경 까지 1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키이스는 1917년 11월 22일부터 24일의 3일간, 시아버지 로버트슨 스콧의 회사, 신토요샤로부터 '쓴웃음을 지어 참아라'(게이오 요시카쿠 도서관 소장)라는 풍자 화집을 간행, 화족 회관 (현·카스카이칸)에 있어서 1권 5엔으로서 배포회를 실시하고 있다. 이 화집에서는 헨리 8 세 모습 의 고토 신헤이 , 「아가씨」라고 제목을 붙인 기모노의 딸 차림의 신도토 이나조, 「푸른 새」라고 제목을 붙인 미국 대사 참사관의 윌러, 추장 모습의 영국 대사 그린의 그 외 도쿠가와 가문 등 62명의 인물이 풍자로 그려져 있다. 이 반포회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당시 적십자사 주최의 자선 으로서 상병병 구조를 위한 의연금을 모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전시회가 키스에 있어서 화가로서 최초의 전람회이며, 동시에 많은 기부금을 모을 수 있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1919년 에 미츠코시 에서 한반도를 그린 수채화의 개인전을 실시했을 때, 키이스는 판원의 와타나베 쇼자부로를 만나 목판화의 제작을 추천받아 같은 해부터 목판화를 만들기 시작 하고 있다 . 같은 해 3·1운동 발발 직후 누나와 함께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해 3개월간 체류한 뒤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선에 머무는 동안 키스는 조선인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서울, 원산, 함흥, 평양, 링간산 등을 여행하면서 각지의 풍경과 풍속 을 주제 로 작품 을 제작 했다 . 키이스는 1921년 9월 20일과 22일 양일간 서울 하세 천장(현·소공동)의 은행 집회소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개최, 1934년 2월경에는 미츠코시(현 · 신세계 ) 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도쿄에서도 조선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귀국의 도상, 미국에서 순회전을 성공시켜, 1924년에 런던에 귀향, 왕립 예술원에서 전람회를 개최한 후, 1926년에는 파리에서도 개최했다 [ 1 ] . 런던의 Central School of Arts and Craft에서 에칭 등을 배우고, 1930년대에는 2번의 일본 방문을 했다 [1] .
1925년 에 그려진 신 판화「남쪽과 흰색」에서는, 도기점의 쇼케이스를 바라보는 여성이 그려져 있어, 가게의 난초, 매장의 염색, 여성이 가리키는 일본 우산이나 유카타 등 남색과 흰색 의 조합에 의해, 일본의 여름의 일상의 모습을 능숙하게 파악하고 있다. 또한 가게의 쇼케이스에는 카츠 시카 호쿠사이 의 금 사진「가나가와 오키 나미리」가 장식되어 있으며, 키이스가 호쿠사이의 남쪽 슬라이드 「토미타카 36경」을 강하게 의식 해 , 또, 호쿠사이를 경모하고 있다 라고 생각된다. 또한 1928년 에는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키스의 작품은 뛰어난 묘사력과 원색에 의한 신선하고 장식적인 색채, 안정된 구도 등 선명한 현장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우키요에를 배운 경험을 갖지만, 조선의 풍속을 그린 작품에서는 그 영향을 전혀 느끼게 할 정도로 조선적인 선묘가 되고 있다. '설날의 쇼핑(서울)'에 그려진 모자를 보면 같은 시기에 활약한 헬렌 하이드의 작풍에도 통하는 점이 보인다 .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으로 일본이 구미 국가에 비판되는 가운데 1956년 런던 에서 실의 속에 몰렸다. 대전 중의 1946년에는, 언니와 공저로 「Old Korea」를 출판했다 [1] .
작품 [ 편집 ]
- 「사의 활기(조선, 금강산)」 와타나베 판화점 1920년경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조선의 학자”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모토야마의 학자와 그 제자들”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정월의 쇼핑(서울)」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아침의 말(조선, 함흥)”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조선의 사람」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재봉」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설경” 와타나베 판화점 1921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쇼기」 와타나베 판화점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 「남쪽과 흰색」 와타나베 판화점 1925년 지바시 미술관 소장
친족 [ 편집 ]
누나의 엘스펫(Elspet, 1875-1956)은 극작가 [2] . 1906년에 저널리스트의 로버트슨 스콧(John William Robertson Scott, 1866-1962)과 결혼해, 남편 모두 1915년에 일본에 온 4년 반 체재, 여동생의 엘리자베스와 함께 아시아 각지를 여행해, 공저로 「Old Korea'를 간행했다 [3] .
누나의 남편 로버트슨 스콧은 영국 캠버랜드 의 태어난 [4] . 부모는 스코틀랜드 저지방 출신으로, 아버지는 행상인으로 금주운동 의 권유원을 하고 있었다 [4] [5] . 몇몇 잡지 기자를 거친 후, 농촌 연구를 명목으로 1915년에 내일, 1916년 3월에 주일 영국 대사 윌리엄 카닝엄 그린의 요청으로 반독 친영 선전을 위한 프로파간다 요원 이 되어 , 선전 팜플렛 『일본, 영국급 세계』나, 독일 의 전쟁 범죄를 선정적인 삽화와 함께 듬뿍 쓴 일영 2개국어의 『The Ignoble Warrior(방제·부디라도 사무라이인가) (1916)을 마루젠 에서 간행, 영국의 자금 원조에 의해 다음 1917년에는 일본 영어 병기의 월간지 「The New East(신동양)」를 창간했다[6][ 7 ] . 일본 번역 「부디라도 무사인가」를 담당한 친구의 야나기타 쿠니오와는 일본 각지의 농촌을 조사해, 1919년에 귀국한 후, 야나기타와의 여행을 바탕으로 「The Foundation of Japan」(1922 년간 ) 을 쓰기 [8] [7] . 같은 해 영국 여성회 (en:Women's Institutes )의 활동에도 관련되었지만, 다음 1923년에 코츠월즈에 전거해 시골 생활의 잡지 「컨트리 맨( en:The Countryman )」을 창간, 1947년까지 편집에 종사했다. 과거의 활동으로부터 컴패니언즈 오브 오너 훈장을 수훈.
참고도서 [ 편집 ]
- 아시아에의 눈 외국인의 우키요에사 요코하마 미술관편, 요코하마 미술관 요미우리 신문사, 1996년
- 부활하는 우키요에 우루와시키 다이쇼 신판화전 도쿄도 에도 도쿄 박물관 편, 도쿄도 에도 도쿄 박물관 아사히 신문사, 2009년
- 야마다 마야「엘리자베스·키스 『쓴웃음으로 참아』--아시아에 매료된 외국인 그림사」 『Medianet』 제16호, 게이오 기주쿠 대학 미디어 센터 본부, 2009년, 52-54페이지, ISSN 09198474 , NAID 40016899024 .
각주 [ 편집 ]
- ↑ a b c Britain and Japan: Biographical Portraits, Vol.6, Global Oriental, 2007/05/31, p285
- ^ "Yanagita Kunio and the Folklore Movement (RLE Folklore): The Search for Japan's National Character and Distinctiveness" Ronald A. Morse, Routledge, 2015년 10월 24일
- ↑ Old Korea Old Korea (1946년간)
- ^ a b Scott, John William Robertson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 ^ "Yanagita Kunio와 민속 운동(RLE Folklore): 일본의 국가적 특성과 고유성에 대한 검색"Ronald A. Morse, Routledge, 2015
- ↑ 천한 무사 마루젠, 1916년
- ^ a b 하시모토 준코 「일영에서의 이동과 충돌「보고・논문집」2013년 3월, 3-13페이지.
- ^ 일본 건국
외부 링크 [ 편집 ]
- Elizabeth Keith 작품예 - 우키요에 검색
- Elizabeth Keith (British, 1887-1956) 작품 예 - artnet
- Old Korea - 누나 부부와의 공저 (1946년 간행)
- The Foundation of Japan - 삽화를 키스가 담당한 형제 로버트슨 스콧의 저작 (1922년 간)
한국어 위키
엘리자베스 키스
엘리자베스 키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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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7년 4월 30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
사망 | 1956년 4월 (68세) 영국 런던 |
성별 | 여성 |
직업 | 화가 |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년 ~ 1956년)는 동북아시아, 동아시아의 풍속을 소재로 다양한 목판화를 남긴 영국의 여성 판화작가이다.
생애[편집]
1887년 스코틀랜드의 에버딘셔에서 태어나[1][2] 1898년에 런던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세관장을 지낸 사람으로 부유하지는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지는 않았다.
언니 엘스펫과 형부 죤 로버트슨 스콧의 초청으로 일본을 두 달간 방문하는 계획으로 1915년에 일본에 도착하였지만, 곧 무기한으로 체류하기로 하고, 홋카이도를 포함한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다. 언니 내외가 영국으로 귀국하기 전 자매는 한국 여행을 하기로 하고 방문한 것이 1919년 3월 28일, 아직도 3·1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한국에서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모델을 구하고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언니가 일본을 경유하여 영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계속 한국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
1919년 가을에 도쿄에서 수채화 전시를 하게 되었고, 그 때 신판화 운동에 앞장 섰던 와타나베의 권고로 '달빛 아래의 동대문'을 목판화로 만들었다.[3][4] 이 그림의 성공 이후로 엘리자베스 키스는 평생에 약 120 여점의 목판화 또는 동판화 작품을 제작한다. 언니가 귀국한 후에도 엘리자베스는 계속 한국, 중국과 동남아의 필리핀 군도를 포함한 여러 곳을 방문하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목판화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과 특별한 관계로 한국에서 전시회를 1921년과 1934년에 하였고, 한국인과 한국 풍경을 그린 작품을 80 여점을 남긴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약 30점을 판화로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은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세기 초에 동양을 찾아와 여러 판화로 남긴 화가로 인정받는다. 1946년에 출판된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은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 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규탄하고 한국사람들의 고통을 동정하는 글을 실었다. 이 책은 2006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5] 그 전 1928년에 출판된 《Eastern Windows》 라는 책에서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언니에게 쓴 편지를 편집하며 12 점의 그림을 소개하였다.[6] 《Eastern Windows》는 2012년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키스의 작품목록도 첨부하였다.[7]
엘리자베스 키스는 1956년 4월 런던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8][9]
우측의 그림은 한국의 신부를 그린 것으로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참관한 전시회에서도 전시되었으며, 목판화로도 제작되었다.[10][11][12] 엘리자베스는 자기의 결혼식날 얼굴에 백색으로 분을 바르고, 눈을 감듯이 내려뜨고, 온종일 제대로 먹지고 못하고,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차라리 슬퍼 보였다고 소감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세 차례 디자인한 바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씰의 창시자인 셔우드 홀 박사가 이 그림의 모델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가 많지 않은 대한민국에 서양인 여성 화가가 와서 많은 그림을 그려 세계각국 유수 도시에서 전시회를 가졌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는 잘 몰랐지만, 2006년에 전북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독 전시회를 하게 됨으로써 한국에서도 차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는 20세기 초 판화의 대가로 인정 받은지 오래이다.[13]
책과 도록[편집]
- Masters of the Colour Print :'Elizabeth Keith (London Newyork, 1933)
- Eastern Windows(London, 1928). 송영달 편역,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 영국 화가가 그린 아시아, 1920-1940' 책과함께, 2012. ISBN 978-89-97735-05-1 03910,
- Elizabeth Keith, Elspet K. Robertson Scott. Old Korea : The Land of Morning Calm 1946.
- 송영달 역,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책과함께. 1946/2006 ISBN 89-91221-14-9
- Grin and Bear it. 1917.
- 배유안 글. 송영달 그림제공,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찾기, 책과함께 어린이. 2008.
- Richard Miles, 'Elizabeth Keith: the Printed Works,'Asia Pacific Museum,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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