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 Jae Lee
June 22, 2015 at 6:42pm ·
번역서를 읽다보면 사회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일본어 번역투에 대한 문제제기 종종 나온다. 서양서의 일본어 번역판에 대한 이중 번역 문제도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일본어는 나쁜 것일까? 일본어 번역투는 꼭 나쁜 것일까? 일본어와 무관한 순수한 한국어와 한글은 있는 것일까?
조선어의 형성에 일본이 끼친 영향은 없을까?
우리말, 즉 조선어는 언제부터 쓰게 된 것일까? 물론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조선어의 공식화 과정 말이다. 공식화 과정은 왜 중요한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편지나 국문소설 등의 형태로 조선어가 사용되지만, 중요한 문서를 조선어로 사용할 때, 비로소 조선어가 안정화되고 자리를 잡는다. 조선어를 글로 사용할 때, 정해진 규칙이 있어야 한다.
서양어의 발전 과정에서 성서 번역이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이나 셰익스피어가 중요한 이유도 그것이고.
그렇다면 현대 한국어의 모태가 된 조선어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어독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에는 이렇다할 책도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보급되지 않았다.
1894년 [갑오경장]을 통해, 법률 등에서 국문을 사용할 것이 공표되지만, 실제로 어떻게 얼마만큼, 사용되었는지, 대중에게 보급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 시기에 국문(한글)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언론매체(신문)을 통해서 였고, 한글학자 주시경도 독립신문의 교열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글쓰기가 어떤 전범이나 규정도 없이 각자 알아서 진행되면 누군가 규칙을 정해야 한다.
1907년 학부에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가 설치되고 약 2년 여의 토의를 거쳐 1909년 말에 [국문연구의정안(國文硏究議定案)]이 나오게 된다. 물론 1905년의 [신정국문(新訂國文)]이 있었지만, 물의만 일으키고 실패하게 된다. 국문 연구에 대한 관심이 제기되던 시기는 1905년 제2차 한일협정(을사늑약)으로 1906년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으로 부임하고,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실제 시정에 관한 일체의 권한 및 주요 고위직 임명 조차 일본 통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일본의 입김이나 의향과 무관할 수 없고, 실제 국문연구소가 시작될 때에 上村正己라는 일본인도 참여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1910년 한일병합 시기에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나서 1912년 비로소 한글에 대한 최초의 법령인 [보통학교용언문철자법(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조선인 4인, 일본인 4인 참여)이 나오고, [조선어독본]이 발간된다. 이 부분 부터가 미스테리다. 일제는 조선어 사용을 장려한다. 일본인(교사와 공무원)들에게 조선어를 배우도록 하고, 3.1운동 이후에는 더욱 그렇게 한다. 1934년에 비로소 "국어상용(일본어)"을 장려하고 1942년에 조선어교육을 금지할 때까지 30년간이다. 이 기간 동안 비로소 현대 한국어의 뼈대가 만들어진다. 사실상 현대 한국어는 일제가 만든 것이다. (당연하지 많지만 당연하게도 이 [조선어독본]이 해방 후 [초등 국어교본]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미스테리하다. 왜 일제는 일본어를 공용어로 한국에 강제하고, 조선인에 대한 보통교육(초등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어를 허용하고, 또 사용했을까? 일제가 강력하게 일본어를 강제했으면 보다 빨리 일본어가 확산될 수 있었을 텐데. 조선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지 불과 15년 되었을 시점이 아닌가? 물론 문어가 아닌 구어에 손을 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만, 어차피 무력으로 통치하는 식민지에 불과한데.
혹시 제1차세계대전 연합국의 일원이며, 영일동맹의 당사자로서 무력에 의한 조선 지배의 정당성을 외국(서양제국)에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조선어와 일본어의 구별이라는 벽을 만들어서 일본을 통해 전해지는 서양문물이 조선에 바로 전해지지 못하도록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 서양과 접하기 위해 반드시 일본을 통해야만 하도록 하는.
일본이 국어를 상용하도록 하고, 일본어를 강제한 시기는 15년 전쟁이 본격화되어가던 시기이다. 일제는 자원의 동원이나 노동자의 동원(징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 징병(군복무)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제까지 총칼로 다스리던 식민지 2등 국민에게 총을 들려주는 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동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조선어도 폐지되고, 또 참정권 논의도 생겨난다. 군대를 보내서 죽게 하려면 투표권도 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모든 일의 또 하나의 아이러니.
이유야 어쨌건 조선어는 사실상 일제에 의해서 형성되고, 보급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어 및 일본어 문법과 구조는 우리의 말과 글에 깊이 침투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선어독본]이 2010년에 강진호, 허재영 교수에 의해 모아져서 출판되었다. 소장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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