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6

[한일관계][식민지조선] [책] 친일 협력, 강제 동원, 전쟁 "범죄" - 그 전후 처리에 대하여...

[한일관계][식민지조선] [책] 친일 협력, 강제 동원, 전쟁 "범죄" - 그 전후 처리에 대하여...

[한일관계][식민지조선] [책] 친일 협력, 강제 동원, 전쟁 "범죄"
- 그 전후 처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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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 지난 한달간에 움직이면서 들은 식민지 시대의 한일관계에 관한 전자책 3권이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전자책을 오디오로 귀에 꽂고 다니며 들으면, 집에서 앉아 있지 않고, 움직이는 시간에 책을 읽(듣)는 방식이므로, 책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때로는 50%만 이해하고 때로는 80%까지 이해한다. 혼자서 걷거나 운전할때는 좋으나, 차의 옆자리에 아내가 앉아도 "테입"은 돌아가고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필요하면 어떤 부분은 다시 듣는다. 정 필요하면 전자책을 부분에 한정시켜 눈으로 읽는다.

- 하여간 친일파 문제, 강제 징용 문제, 그리고 조선인 전범 문제, 모두 내가 읽어 싶었던 책을 슬쩍 슬쩍 많이 읽었다. 제대로 된 서평을 쓰자면, 눈으로 다시 읽어야 하나, 우선은 더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 책 3권에 대한 짧은 인상만 적어 놓기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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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1] <친일파는 살아있다 - 자유.민주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역정>
정운현 (지은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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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KBS가 청산 대상인 살아 있는 친일파 백선엽을 다큐를 통해 미화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애초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탓에 엄청난 정치적 비용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불러오며 더디게 민주화를 일굴 수밖에 없었다. 보수의 얼굴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들의 속살은 친일로 덮여 있다.

이승만과 친일파의 반민특위 와해 공작, 박정희와 만주 인맥, 민주화 인사의 빨갱이 사냥, 뼛속까지 친일지였던 《조선》 《동아》의 수구·반공 논리 등 친일의 역사가 불러온 거악은 우리의 의식이 되었고, 부지불식간에 생활로 스며들었다. 이 책은 친일파의 역사적 정의에서부터 살아 있는 친일파들의 반동의 역사는 물론 친일을 청산하고자 하는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끊어내고 이승만의 ‘건국’을 역사로 만들려는 보수의 본질이 왜 친일인지를 이 책은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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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제1장 민족반역의 길로 들어서다
친일파는 민족반역자를 말한다
친일파 제1호, 김인승
의열단의 ‘칠가살’과 ‘오파괴’
친일파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군수’도 친일파다
조선총독부 ‘장관급’에 오른 이진호와 엄창섭
을사늑약과 을사오적
정미7적과 경술국적
일제가 친일파에 안긴 선물, 귀족 작위
작위를 거절/반납한 사람들
신념을 넘어 직업이 돼버린 친일파
‘민족대표 33인’에서 친일로 변절한 3인
3.1만세의거를 폄훼한 배족의 무리

제2장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무심코 쓰는 잘못된 역사 용어들
일왕의 대리권자 조선총독 8인
기원절, 천장절 그리고 황국신민의 서사
내선일체, 팔굉일우 그리고 대동아공영권
창씨개명, 조선인의 혼을 빼앗다
성을 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창씨개명으로 ‘황국신민’이 되다
창씨개명 제1호, 친일 승려 이동인
조선총독도 반대한 현영섭의 ‘조선어 전폐론’
이영근, 일본인이 되지 못하면 죽을 달라
‘일선통혼’을 외친 박남규
영덕 갑부 문명기와 ‘가미다나 보급운동’

제3장 뼛속까지 친일파로 살다
허수아비 감투, 중추원 참의
일제의 특혜로 성장한 친일 기업인
두 아들을 지원병과 학도병으로 팔아먹은 조병상
일제의 주구, 고등계 형사
일제 땐 항일투사 고문, 독재 땐 민주투사 고문
일제의 ‘여우’ 밀정
사명당 비석을 네 조각 낸 친일 승려 변설호
신사참배에 앞장 선 친일 목사들
조선인 유일의 ‘신직’, 이산연
국모 살해 가담,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
한일병탄의 숨은 공로자, 이인직
친일파 김홍집을 ‘애국자’라 부르는 까닭
동학군 접주에서 친일파로 전락한 이용구

제4장 대한민국은 친일공화국이다
역대 대통령/국무총리의 친일 전력
역대 각료/정치인들의 친일 전력
부자/형제, 대를 이어 충견이 되다
친일 세도가, 윤보선 가문
배정자와 여성 친일파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
친일파, 국립묘지에 눕다
친일파가 심사하고 수상한 3.1문화상
낯 두꺼운 작태, 친일파 기념상
친일파 동상을 고꾸라뜨리다

제5장 친일파는 살아 있다
황군 장교, 반민법정에서 면죄부 받다
간도특설대 출신, 반공주의자로 둔갑하다
전쟁영웅으로 미화된 친일파 백선엽
박정희는 친일파 선정에서 왜 빠졌나
학도병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다
만주 벌판을 누빈 친일 거두 12인
만주 관료 인맥의 요람, 대동학원과 건국대
재일 친일 거두 2인, 박춘금과 이기동
일제의 나팔수가 된 친일 언론인
《동아》와 《조선》, 민족지의 탈을 쓰다
방응모와 김성수 그리고 홍진기
‘항일 언론인’ 장지연, 서훈이 취소된 까닭
프랑스는 나치 언론인을 어떻게 청산했나

제6장 친일 청산, 역사의 숙명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의 다양한 논의들
반민법, 우여곡절 끝에 제정되다
반민특위 검거 제1호, 친일 기업인 박흥식
반민법정에서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았나
‘당연범’ 김연수는 어떻게 무죄판결을 받았나
이승만과 친일 세력,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다
‘제2의 반민특위’, 친일규명위는 뭘 했나
국민과 함께 만든 《친일인명사전》
친일재산조사위, 친일파 토지 환수하다

제7장 친일 청산, 기록하는 자와 변명하는 자
임종국, 친일 연구에 평생을 바치다
친일파 연구의 주요 저작들
구차한 친일 변명/변호론
춘원 이광수의 변명, ‘홍제원 목욕론’
역사와 국가 앞에 참회한 친일파들
친일파 후손들은 책임이 없을까
고당과 인촌의 학병 권유 글, 조작일까 변명일까
이병기와 정지용의 친일 시 한 편
‘교사’였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속죄한 김남식
대한민국 극우/보수의 뿌리는 친일파

제8장 우리는 부끄럽고, 그들은 부럽다
북한, 친일 청산 우리보다 잘했다
중국, 신속한 재판으로 ‘한간’ 청산
프랑스, 나치 청산의 모범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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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와 김문집을 능가할 정도로 친일이 농후한 창씨개명의 사례가 또 있다. 일제 경찰의 경시(현 총경) 출신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지환(崔志煥)은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富士山)과 ‘정한론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이름을 따서 ‘후지야마다카모리’(富士隆盛)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또 ‘불놀이’로 유명한 시인 주요한(朱耀翰)은 일제의 황도(皇道) 정신인 ‘팔굉일우’를 따서 ‘마쓰무라고이치’(松村紘一)로 창씨개명을 하였으며 친일 승려 출신으로 현 조계종의 종조(宗祖) 격인 이종욱(李鍾郁)은 일본 근위 내각의 외무대신 히로다(廣田弘毅)의 성을 본따 ‘히로다쇼이쿠’(廣田鍾郁)로 창씨했다 ‘일선통혼’을 주장한 박남규朴南圭는 ‘대일본제국의 진짜 신하’라는 의미에서 ‘오오토모사네오미’(大朝實臣)로 창씨를 하기도 했다. - 98-99쪽에서

신사참배는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천도교 등 다른 종교에도 적용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마찰은 적었다. 반면 기독교는 교계 전체가 동참했던 만큼 갈등과 후유증이 컸다.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일부 교계 지도자들은 해방 후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계는 신사참배에 동참한 사실에 대해 제대로 참회하지 않았다. 개인 차원에서는 한경직 목사가 1992년에 템풀턴 상 수상 축하 행사 때 인사말을 통해 자신의 신사참배를 회개한 바 있다. 또 2006년에는 소장파 목회자들이 결성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한 일과 독재정권 시절에 권력층과 야합해 정의를 뒤엎기도 한 죄악에 대해 마음을 찢으며 참회한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교단 차원에서는 여태 공식적인 참회가 없었다. - 159쪽에서

3.1문화재단은 2011년 3월 1일 제52회 3.1문화상을 시상했는데, 시상 분야는 학술·예술·기술·특별상 등 모두 네 분야였다. 수상자는 학술상에 김두철(63) 고등과학원 원장, 예술상에 서예가 조수호(87) 예술원 회원, 기술상에 김문한(81) 서울대 명예교수, 그리고 특별상은 조선일보사가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김두철 원장은 30년 동안 통계물리학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로 한국 물리학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서예가 조 화백은 우리 서예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로, 김 명예교수는 건설 분야 신기술·신공법을 개척한 공로로, 또 특별상을 받은 조선일보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마다 정론직필로 3.1운동의 정신적 본질을 고취하는 데 진력했다”고 밝혔다(동아일보사는 2008년 제49회 시상식 때 특별상을 수상했다). 일제 말기 친일 보도는 물론 평소 보수 편향 보도로 논란이 돼온 《조선》《동아》에 3.1문화상 특별상을 준 것은 논란의 소지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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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의 정체가 “뼛속까지 친일·친미”라는 미 대사관의 전문이 공개되자 온라인은 들끓었다. ‘친일’로 인해 우리 현대사가 피로 얼룩진 사실은 그만두고라도 역사를 되돌리려는 망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어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다. 극우·보수의 이승만 재평가, 살아 있는 친일파 백선엽의 영웅 만들기, 뉴라이트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작업 등 친일의 역사가 방송과 언론, 정치권, 대학을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민주정부 10년간 미약하게나마 친일 청산 노력을 기울인 탓에 우리는 친일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법령 등을 만들어 ‘단죄’를 시도했다. 하지만 친일이 본질인 MB정권의 역사 되돌리기 작업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적·역사적 논쟁을 다시 벌여야 하고 국론 분열을 불구경하듯 해야 한다. 청산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후대에게 성과 알리기 작업이 미약한 탓도 분명 있으리라. 이처럼 반동의 역사를 되살리지 못하도록 지금부터라도 성과를 알리고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를 치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친일의 역사를 다시 만들려는 친일파들의 부단한 ‘노력’에 대한 일침이다. ‘친일파’의 역사적 개념에서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펴져 있는 친일의 잔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극우·보수가 그처럼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해 마지않는 이승만의 친일파 감싸기 모습에서 왜 이들이 임시정부를 부정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한다. 첫 단추가 친일의 역사로 채워진 탓에 끊임없이 피를 불러왔고, 결국 친일 전력자 박정희로 인해 대한민국은 친일공화국이 되었다. 책에는 역대 대통령, 총리, 각료, 그리고 정치인들의 친일 전력이 낱낱이 공개된다. 오늘날 우리 국회에서 친일 청산을 막으려는 부단한 노력들이 왜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 있는 뼈아픈 대목이다.

뼛속까지 친일이라는 현직 대통령 말고도 친일 골수팬이 또 있다.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보수의 대변지로 자처하는 이들 신문의 친일 행각은 이미 많은 부분 밝혀졌지만 한때 민족지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책에서는 이들이 친일을 감춘 채 잠시 민족지 흉내를 냈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친일을 뿌리로 둔 탓에 오늘날 이들 신문은 자유·민주의 탈로 바꿔 쓴 채 ‘빨갱이’ 사냥에 여념이 없다. 청산하지 못한 대표적 친일 언론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짓밟혔고, 민주화는 더뎠다.

이 외에도 각종 기념상들이 친일에 기반하고, ‘3.1문화상’을 친일파들이 심사하고 수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살펴본다. 창씨개명에 따른 친일파들의 군상, 독립운동가와 나란히 묻혀 있는 친일파들의 묘역,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들의 구차한 변명과 몰염치한 행각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은 친일 청산의 역사도 살펴보고 있다. 반민특위의 설립과 해체, 친일규명위의 노력, 임종국 선생의 친일 연구, 국민과 함께 만든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친일파 토지의 환수 작업 등 친일 잔재 청산의 험난한 역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또 북한과 중국의 친일 청산 작업과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시행한 프랑스의 청산 노력도 오롯이 그려내고 있다.

‘신판 친일파’들이 발호한 지금, 다시 이 책이 지나간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건 미래의 역사에 한 점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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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식민지 조선, 강제 동원의 역사>
정혜경 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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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하는 강력한 근거, '강제 징용'

뉴라이트는 일본 식민지 시절 우리역사를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설명했다. 착취는 당했으나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은 '착취'보다는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 어쨌든 경제발전을 했고 근대로 이행하지 않았냐는 설명이다. 과연 일본에 강제로 징용당한 군인과 노동자에게도 이러한 설명이 가능할까.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며 방대한 규모로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했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은 이들도 많았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일제의 폭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일본에서 미군의 수뢰 때문에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주장하지만, 여러 모로 의심이 많은 인재였다.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강제 징용자가 탄 배를 폭파시킨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처럼 강제 동원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찾아내어 진실을 밝혀, 그들의 힘겨운 삶을 이해하고 아픔을 덜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책을 썼다고 한다. 일본은 여전히 강제로 끌고 온 사람은 불과 24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유의사로 식민지 모국에 건너왔다고 주장한다.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후세가 할 수 있는 일은 희생당한 피해자를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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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막이 열리다
일본제국으로 가는 길 / 식민지에 대한 야욕을 품다 / 아시아태평양전쟁, 중국을 삼키다 / 전쟁의 확대, 일본 정부의 딜레마 / 패전의 불씨가 드리우다

제2부 전쟁은 일본이 일으켰는데, 왜 우리를?
일본이 일으킨 전쟁, 물자처럼 공출되는 조선 민중 / 왜 ‘모집’, ‘지원’이 아닌 ‘강제’인가? / 돈과 권력으로 징용을 피하다 / 학도지원병 기피자 계훈제와 오노다 시멘트 회사 / 돌아온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제3부 ‘굶주림의 땅’이 된 남양군도
태평양으로 진출한 유럽의 맹주들 / 남양군도를 탐낸 일본의 속셈 / 늘어나는 남양군도의 조선인 / ‘아이고 다리’와 ‘티니언 농장’ / 군속이 된 조선인 / 살아남았지만 남겨진 전쟁의 상흔

제4부 동남아시아에 뼈를 묻게 될 줄이야!
포로와 다를 바 없는 조선인 포로감시원 /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쓴 조선 청년들 / 인도네시아를 독립으로 이끈 빛, 양칠성 / 조선 청년들, 전투 없는 군인이 되다 /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 전쟁의 아픔을 안은 채 고향으로

제5부 동토의 땅, 사할린에 얼어붙은 눈물
악마의 섬, 사할린 / 동토의 땅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 / ‘이중 징용’에 두 번 우는 가족 /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노래, ‘사할린 아리랑’ / 전쟁은 끝났지만 일본의 계속된 조선인 사냥 / 사할린 교포, 아픈 역사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제6부 중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
중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 / 빼앗긴 조국을 떠나 간도로 / 중국 곳곳을 전전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 중국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 / 돌아가야 하는 조국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제7부 일본 본토, 착취 지옥이 되다
일본 속에서 조선을 꿈꾸다 / 아이누족도 견디지 못한 홋카이도에서 광부와 군인으로 / 도호쿠 지방의 조선인 강제 동원 / 여전한 미궁,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 분야를 가리지 않은 노동착취 / 도쿄를 덮친 죽음의 그림자 / 군수공장 조선인 청년들의 희생 / “쇼잔 지하호에서 희생된 조선인을 기억해주세요” / 조선의 소녀들을 총후보국에 동원하라! / 돌아오지 못한 영혼, 이름을 남기다 / 간사이 지방의 조선인 학살 /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조선인 / ‘뿔난 바다’에 매장된 희생자들 / 노예와 다름없는 조선인 광부 / ‘가미카제’로 사라진 조선 청년들 / 오키나와에 세워진 ‘평화의 초석’ / 돌아온 자와 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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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죽음보다 힘든 고통을 눈물과 그리움으로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름, ‘강제 동원’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

죽거나 버티거나……
전쟁과 노동, 가장 위험한 곳에 내몰린 식민지 조선인

식민지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강제로 내몰린 사람들. 누워서 탄을 캐야 하는 광부로, 군수공장 노동자로,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 이름 모를 섬에서도 감시와 차별을 견디며 참혹하게 살아야만 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머나먼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나?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름,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삶

최근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강제 노역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 협상 의지를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강제 동원될 당시 꽃다운 나이였던 분들 가운데 일부는 참혹한 노동과 전쟁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였고,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잊히지 않는 고통에 눈물겨운 삶을 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강제 동원’ 문제를 미쓰비시중공업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지 민중이 겪은 뼈아픈 역사로서 좀 더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은 미쓰비시중공업 이야기처럼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사람들, 특히 재일한인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그간의 노력으로 밝혀낸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한일병합 100년째가 되는 올해 우리가 이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면 이들의 아픔과 눈물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남양군도’에서 동토의 땅 ‘사할린’까지, 전쟁에 내몰린 조선인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도 모자라 아시아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931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에선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였고, 새롭게 탄생한 정부에겐 국력 강화가 필요하였다. 이런 일본 내부 정치 상황과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제국주의 열풍에 휩쓸린 일본 정부가 극단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전쟁에서 크게 피해를 봐야 했던 것은 일본인보다도 식민지 조선인들이었다.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을 견디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일으킨 제국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인력과 물자다. 이를 위해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였다. 이 법은 의회의 동의 없이도 전쟁에 인력과 물자, 자금 등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44년 2월부터 일본은 국민징용령을 개정하여 더 많은 조선인을 전쟁에 내몰았다. 본격적으로 식민지 조선인에게도 황국 신민이 되어 전쟁에 나서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렇게 전쟁에 내몰린 조선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사할린, 중국, 일본 본토로 내용을 나눠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남양군도’라 불린 중부 태평양의 여러 섬. 이 머나먼 곳에도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고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다리. 팔라우 현지인들이 붙인 이 이름으로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아이고’라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음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 남양군도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이처럼 건설 현장과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농장 등에서 힘겨운 노동을 견뎌야 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은 주로 연합국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감시원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몰려 억울한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강제 동원 때문에 전쟁에 내몰린 피해자였다. 개중엔 이런 억울함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서 삶을 이어간 사람도 많았다. 특히 인도네시아 지역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다가, 일본이 패전한 후에도 현지에 남아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에서 큰 업적을 세우고 희생된 ‘양칠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에선 그를 ‘독립으로 이끈 빛’으로 부르면서 양칠성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한편 ‘동토의 땅’이라 불린 사할린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석탄을 채취했다. 또 이들은 전쟁이 깊어지면서 다시 일본 본토로 징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아픔은 지금도 ‘사할린 아리랑’이라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일본 본토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처한 상황도 이들 못지않았다. 오죽했으면 ‘착취 지옥’이라 불렀을까. 아이누족도 견디지 못한 홋카이도에 광부와 군인으로 끌려가기도 했고, 도쿄로 강제 동원되었다가 ‘간토 대지진’과 이어진 조선인 학살에 희생당하기도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처럼 일본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한 여성근로정신대도 있고, 군인으로 징집되었다가 ‘가미카제’로 희생된 청년들도 많다.

이처럼 일본은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장소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내몰았고, 지금도 이들의 아픔은 그곳에 남아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은 1945년 미국이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면서 끝났다. 식민지 조선도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전쟁터로 내몰렸던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날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조국이 자유를 찾았다고 이들에게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은 이들도 많았다. 그중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인 1945년 8월에 일어났다. 교토 부근 마이즈루 만에서 우키시마호는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태우고 조선으로 향했다. 한데 항구를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우키시마호는 원인 모를 이유로 침몰하고 말았고, 배에 탔던 조선인 7000명 가운데 4000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큰 화제였지만, 아직도 사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더욱 애달프다. 특히 이 사건을 다룬 방송과 영화, 책도 여럿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강제 동원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찾아내어 진실을 밝혀, 그들의 힘겨운 삶을 이해하고 아픔을 덜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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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3]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우쓰미 아이코 (지은이) | 이호경 (옮긴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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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문제를 연구해온 우쓰미 아이코 교수의 조선인 BC급 전범 출신자들의 삶의 투쟁에 대한 기록이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고발서. 지은이는 이학래, 유동조 등 살아남은 조선인 전범들의 증언과 각종 비밀문서, 재판 기록들을 통해 그들 또한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이중 피해자임을 밝혀낸다.

총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시와 지금까지 재판 과정을 세밀히 재구성함으로써 전범 재판 과정의 불합리함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와 일본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들을 낱낱이 들춰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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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들어가며

제1장 포로수용소의 감시원
01 타이 포로수용소 - 죽음의 태면철도
02 말레이 포로수용소 - 석유 기지 팔렘방
03 자바 포로수용소 - '지상왕국' 속의 지옥

제2장 조선인 군속과 포로수용소
01 왜 조선인을 감시원으로 삼았는가
02 포로수용소의 기구와 실태
03 지원인가? 징용인가?

제3장 전쟁범죄재판과 조선인 군속
01 전쟁범죄란 무엇인가
02 싱가포르의 오스트레일리아 법정 - 이학래 씨 경우
03 싱가포르의 영국 법정 - 유동조·정은석 씨 경우
04 바타비아의 네덜란드 법정 - 최선엽 씨 경우

제4장 전쟁 책임과 전후 책임
01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과 조선인 전범
02 생활과의 투쟁
03 해결되지 않은 전쟁 책임

후기에 대신하여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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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가 포로 관리에 아무리 힘을 들여도, 포로들에게 노동은 강제적인 것일 뿐이었다. 비교적 사망자가 적었다고 말하는 힌똑에서도 포로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때로는 밤 10시까지 가혹한 노동과 영양실조, 말라리아, 이질 등의 전염병으로 고생하였다. 한낱 군속인 이학래 씨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포로들의 원망은 눈앞에 보이는 인간에게 향했다.-p47 중에서

임 씨는 "천황 폐하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저세상으로 갔다. '황국신민'이 되도록 교육을 받은 임 씨에게 조국의 독립과 천황이 머릿속에 뒤죽박죽으로 섞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임영준 씨뿐만이 아니었다.-p20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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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쓰미 아이코의 한 마디
전범-친일파-일본군의 앞잡이. 한국에서 조선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것이 아닐까? 어느 쪽이든 '악'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전쟁범죄란 것은 무엇일까? 누가 무엇을 단죄했는가? 한국인이 떠안아야 했던 전쟁범죄란 무엇일까? 이런 점들이 한국에서 논의되기 위해서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 '왜 조선인이 전범이 되었던 것인가?' 이 책을 읽고 한국의 독자들이 조선인 B·C급 전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전범과 그 유족에게 보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다.

역사에 버림받은 조선인 B·C급 전범들, 그들은 과연 전범이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조선인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전쟁범죄인이 되었다.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일본인은 7명이었던 데 비해, 조선인 23명이 B·C급 전범으로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해졌다. 왜 조선인에게 일본의 전쟁 책임이 전가되었던 것일까?

전범-친일파-일본군의 앞잡이. 한국에서 조선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것이 아닐까? 어느 쪽이든 '악'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전쟁범죄란 것은 무엇일까? 누가 무엇을 단죄했는가? 한국인이 떠안아야 했던 전쟁범죄란 무엇일까? 이런 점들이 한국에서 논의되기 위해서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 '왜 조선인이 전범이 되었던 것인가?' 이 책을 읽고 한국의 독자들이 조선인 B·C급 전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전범과 그 유족에게 보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다.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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