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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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최근 수정 시각: 2023-03-20



분류 1965년 설립
보훈
특수법인
국가보훈처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내용은 대한광복회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광복회
光復會
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설립
1965년

전신
광복구락부

회장
장호권

사업비
정부지원금 및 민간기부금 등


홈페이지
광복회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와 유래3. 사건사고 및 논란
3.1. 만화가 윤서인 독립운동가 비하 사건 발언 고소 사건3.2. 김원웅 회장 시기
3.2.1. 김원웅 회장의 정치 중립 위반 관련 논란3.2.2.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 적격성 논란3.2.3.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에게 수상 논란3.2.4. 고문변호사의 독립운동가 후손 비하 논란3.2.5. 광복회장실 오물 투척 사건3.2.6. 김원웅맥아더 장군 관련 역사왜곡 두둔3.2.7. 김원웅의 광복회 사유화 및 비리행위4. 역대 광복회장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후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현직 회장은 장호권이다.

대규모 국가보조금, 민간 기부금 등의 사업비(각종사업에서 수억~수십억 사업비투입)가 운영되는 보훈단체이다.

2. 역사와 유래[편집]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직후에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원호) 제도를 마련할 형편이나 여유가 되지 않았고, 6.25 전쟁을 거치며 '군사원호'라는 명칭하에 전몰군경의 유족 및 상이군경에 대한 원호 제도를 간신히 마련함에 그쳤다. 그러다 196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립유공자에 대한 훈·포장이 수여되고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후손에 대한 원호제도가 구상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생존한 독립유공자나 독립유공자의 유족·후손이 모여 1965년에 처음으로 광복회를 결성하였는데, 이 당시의 광복회는 단순한 민법상의 사단법인에 불과하였고,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원호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73년이 되어서야 종전의 「군사원호대상자단체설립에관한법률」이 개정되어 「원호대상자단체설립에관한법률」이 되면서 기존의 사단법인 광복회가 위 법률상의 법인으로 간주되었고, 광복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이 광복회의 설립 근거 법률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관하는 3·1절 기념식에서 기미독립선언서의 낭독은 생존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 하는 관례가 이어졌는데, 마지막 생존자인 이갑성 애국지사가 1981년 타계하자 그 이후부터는 광복회장이 낭독하는 것이 새로운 관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1965년 설립 당시의 초대 광복회장은 이갑성 애국지사였으며, 회장은 총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이전에는 생존 독립운동가들이 회장을 맡다가 이들이 고령으로 대부분 사망한 이후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회장을 맡고 있다.

김원웅 회장 취임 이후에는 적극적인 反 보수야당(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활동을 벌였다. 이에 아래 문단에서와 같은 다양한 논란 및 사건사고가 발생했고, 보수야당은 '광복회 사유화'라며 반발했다. #

김원웅 전 회장의 횡령 의혹과 사퇴로 내홍을 겪은 광복회가 2022년 3월 1일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분골쇄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

2022년 5월 31일 장호권 회장이 선출되었으나 선출 과정에서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와 관련된 설전을 하는 과정에서 권총으로 보이는 물건을 보이며 협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장호권 회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김진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직무대리를 맡기로 했으나 일부 회원들 임시총회 소집 무효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자 2023년 1월 13일 국가보훈처에서 최광휴 변호사를 직무대리로 지정하였다.

3.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이전에는 정치적 중립 스탠스 전통을 지켜나가며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기에[1] 이미지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비판항목이 전무했으나 2019년에 당선되어 부임한 김원웅 회장이 좌편향 발언과 비리도 저지르면서 온갖 논란이 형성되었다. 하술된 비판중 윤서인 관련만 빼고 다 김원웅 회장 재임시기에 등재된 사건사고이다.

3.1. 만화가 윤서인 독립운동가 비하 사건 발언 고소 사건[편집]
윤서인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조롱하고 친일파에 대한 두둔 발언을 하여[2] 김원웅 광복회장과 광복회의 자문변호사인 정철승 변호사가 그를 고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3.2. 김원웅 회장 시기[편집]


3.2.1. 김원웅 회장의 정치 중립 위반 관련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김원웅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2019년 취임한 김원웅 전 회장은 전두환 정부 당시의 민주정의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이후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정당을 옮겨 다니며 국회의원 생활을 해 왔다. 김원웅 회장은 취임 이후 광복회장으로서 정치 중립 위반으로 언론으로부터 비판받고 있고 있다. 또 김원웅 회장이 광복회의 이름으로 친북·반미 성향 노선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회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발생하고 있다. 김원웅 회장이 정당 성향이 다른 지회장을 커트하겠다고 하고 이석기를 칭송하는 등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정관을 위반한 이유로 내부 상벌위원회에 제소되는 등 내분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 논란
김 회장은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며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을 완수하지 못한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친일 행적이 드러난 안익태가 작곡한 노래가 애국가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파의 무덤을 파헤쳐 묘를 이장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일민족반역자 비호하는 미래통합당은 해체하라]
한국 사회의 모순은 친일 미 청산에 기인한다.
친일 청산은 적폐 청산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의 분열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이 조장하고 있다.
해방 후, 집권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하여 반민특위를 폭력으로 해체시켰고, '독립운동이 죄가 되는 나라'에서 우리 후손들은 눈물과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광복회 김원웅 회장의 광복절 75주년 기념사는 광복회원들의 가슴에 맺힌 한과 후손들의 애국 열정을 담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김원웅 회장의 친일 청산 요구를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민족 반역세력임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이에 광복회 전국 지부장들은 이러한 친일 반민족 사고에 뿌리를 둔 미래통합당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한다.
2020년 8월 19일

서울특별시지부장 장호권, 부산광역시지부장 권병관, 인천광역시지부장 김우영, 광주광역시지부장(代) 문대식, 전라남도지부장 송인정, 대구광역시지부장 노수문, 울산광역시지부장 이경림, 경기도지부장 황의형, 강원도지부장 이종호, 충청북도지부장 장기영, 충청남도지부장 안상우, 전라북도지부장 이강안, 경상북도지부장 이동일, 경상남도지부장 장상진, 제주특별자치도지부장 김률근, 세종특별자치시추진위원장 이공호.

광복회는 정부의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과거 종북단체인 ‘위인맞이 환영단’의 (김정은이) ‘왜 위인인가’를 주제로 공개세미나에 참석해서 “한미동맹은 거짓말이다. 미일동맹에 남한을 종속시킨 것이 한미동맹의 핵심”이라며 “친일의, 친일에 의한, 친일을 위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게 나라냐. 이런 나라를 지킨다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느냐”, "‘김정은 찬양’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반미종북성향의 축사를 한 전력이 있는 김원웅을 선거를 통해 회장으로 당선시켰었기에 광복회 회장 자격으로 행한 이번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와 맞물려 광복회라는 단체의 성격에 대한 세간의 의혹과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2021년 4월엔 아예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의 손자마저도 토착왜구같이 행동한다(...)며 비난받는 일까지 터졌다. 정치 중립을 건의했다는 이유로 독립지사 후손인 광복회원들을 교묘히 친일파로 몰아세웠다고 한다. 인터뷰

3.2.2.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 적격성 논란[편집]

광복회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후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하지만 인우보증을 통해 독립운동자로 등재된 전월순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은 조선의용대와 광복군 사료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으며, 개혁모임에서 (김 회장의 부친) 김씨가 자신의 공적서에서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비서관 직책을 거쳐 1935년 5월 난징에서 조선의열단에 입단했다'고 했지만 당시 임정에는 경무국도 없었고 경무국 비서관이라는 직책도 아예 없었다.

이에 '김원웅 광복회장 부(김근수), 모(전월선) 가짜독립가 의혹 진상조사 청원' 에 만명에 가까운 청원인이 몰리기도 하였다.

3.2.3.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에게 수상 논란[편집]
법무부장관 재임 시절 친일재산 국가환수 노력을 했다는 명목으로 추미애에게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최재형기념사업회 측에서는 특정 정치인 수여는 정치활동에 속한다고 반발하였다. #

3.2.4. 고문변호사의 독립운동가 후손 비하 논란[편집]
광복회 고문변호사인 정철승 변호사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립운동가 후손을 비하하는 듯한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정 변호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대개가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온전한 직업도 갖기 어려웠다”며 “그러다 보니 더러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서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치기도 하고, 더러는 광복회관 앞에서 ‘김원웅 빨갱이’라고 시위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

더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바로 그 윗윗 문단의 광복회 고문변호사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을 비하하던 윤서인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똑같은 논리를 사용했다.자기 자신과의 싸움

지난 11일 광복회 행사에서 김원웅 회장의 정치적 행보에 항의하며 멱살을 잡은 광복회원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 외에 자신을 드러낼 성취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도 하였다. # 심지어 항의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에게 이 하룻강아지 같은 작자야 와라, 전부 유치장에 처넣어줄 테니라는 문자메세지를 보내서 더욱 사람들에게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어떻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국민의힘민주당 사이에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정철승 변호사는 '보수정당=친일'이라는 전제를 깔고 편향된 당파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광복회원 김임용씨는 독립운동가 김붕준 선생의 후손으로 김붕준 선생은 6.25 전쟁 때 북한군에 강제 연행되어 비참하게 사망했다. 따라서 그 후손으로서는 북한에 적개심을 갖거나 친북 성향의 인사나 정당, 정권에 반감을 갖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정철승 변호사의 외조부인 윤기섭 선생도 광복 후 국학대학 학장을 지내고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권에서 주류적 인물로 활동하던 중 6.25가 터지면서 납북되었다. 윤기섭 선생이 납북된 후 장녀(정철승 변호사의 모친)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화교환원으로 집안 생계를 꾸려야 하는 고생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독립운동가가 전쟁 중에 납북되었으며, 또 납북 피해를 받지 않았더라도 피흘려 쟁취한 독립국가가 분단되고 전쟁을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반공 성향을 갖거나 친북에 반대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홍영표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신기남, 김희선 등 민주당 내에 친일파 후손들이 있으며 김원웅 광복회장도 "민주당 내에 친일을 비호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했고[3] 또 소속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 이용·학대 의혹과 논란을 일으키는 등 독립운동가 후손이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왜곡돼 있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보수 정당에 들어가 당선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2.5. 광복회장실 오물 투척 사건[편집]
6월 28일에 광복회 개혁모임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부모가 허위유공자라고 분개하여 광복회 회장실에 처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김원웅이 없어서 광복회장실에 오물 두 병을 투척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벌인 광복회 개혁모임 대표 이문형은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한 김원웅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3.2.6. 김원웅맥아더 장군 관련 역사왜곡 두둔[편집]

김원웅 광복회장이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고 발언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광복회가 1일 공식 보도자료로 김 회장을 두둔했다. 그 공식자료엔 맥아더가 한국인을 ’개무시'했다는 표현이 담겼다. 또한 "해방 후 한반도에 진입한 미군과 소련군은 각각 포고령을 발표했다. 소련군 치스차코프는 스스로 '해방군'임을 표방했지만, 미군 맥아더는 스스로 '점령군'임을 밝히고, 포고령 내용도 굉장히 고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차이가 크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당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을 보면,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에 곧바로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맥아더군이) 명심하고"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고 적시했는데도 이 내용은 쏙빼고 마치 맥아더 장군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해 점령한 것처럼 왜곡했다.#

3.2.7. 김원웅의 광복회 사유화 및 비리행위[편집]

조선일보에서 전 광복회 간부를 인터뷰를 통해 김원웅이 광복회가 운영하는 국회의사당 지점 카페의 수익금(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지원예정인 금액)을 개인용도로 4500만원 가량 착복하였다며 보도하였고 그 다음날 광복회 건물 4층에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자리까지 제공해주고 공공기관과의 거래 및 골재사업을 주도했다는 추가비리까지 폭로하였다.

당연히 김원웅은 "난 모르는 사안이고 맡겼던 부하의 일탈"이라며 꼬리자르기성 발언을 하며 부정, 조선일보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겁박하는 와중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국가보훈처에서 감찰을 진행하기로 한다.

1달간의 감찰결과 조선일보가 보도한 비리내용이 전부 사실로 밝혀졌는데 광복회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허위발주와 원두원가 조작을 통해 6100만원을 비자금 착복을 가족회사건도 김원웅이 관여됐고 광복회 건물에 사무실 부지 제공이 사실로 밝혀지며 서류도 등재되지 않은 문서가 발견됨에 따라 수사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도 김원웅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광복회장 해임안을 표결하는 총회까지 잡히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다 2월 16일, 김원웅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4. 역대 광복회장[편집]
초대 이갑성
2대 이화익
3대 조시원
4대 안춘생
5대 박시창
6, 7대 김홍일
8대 김상길
9대 유석현
10, 11대 이강훈
12대 김승곤
13대 권쾌복
14대 윤경빈
15대 장철
16대 김우전
17대 김국주
18대 김영일
19, 20대 박유철
21대 김원웅
22대 장호권[4]


[1] 다만 친일 관련 논란이 있었던 교학사 교과서 사태나 국정교과서 사태 등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한 적이 있다.[2]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걸까? 100년 전에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3] 물론 이 발언 역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4] 전임회장 김원웅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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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영등포구 광복회 건물

광복회(光復會, Liberation Association)는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 유족들이 구성한 단체로서 '민족정기 선양 및 회원간 친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65년에 설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에는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이갑성이 취임했다. 2002년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함께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2008년 12월 29일 임시정부의 정통성 논란을 촉발시킨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용 책자 내용에 항의하는 뜻에서 건국훈장을 반납키로 결의했다.[1]

설립 근거[편집]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1조[2]에 의해 성립한다.

연혁[편집]

  • 1962년 3월 1일: 건국유공자 204명 건국훈장 추서 및 서훈 (국가유공자 보훈사업 시작)
  • 1965년 2월 27일: 사단법인 광복회를 창립

조직[편집]

광복회장[편집]

  • 총회
  • 고문
  • 자문위원
  • 이사회
  • 부회장
  • 감사

사무총장[편집]

  • 총무국
    • 총무팀
    • 경리팀
  • 의전복지국
    • 의전복지팀
  • 홍보부
    • 홍보팀
  • 시설관리부
    • 시설관리팀

지부[편집]

  • 서울특별시지부
  • 부산광역시지부
  • 인천광역시지부
  • 광주·전남연합지부
  • 대구광역시지부
  • 대전광역시지부
  • 울산광역시지부
  • 경기도지부
  • 강원도지부
  • 충청북도지부
  • 충청남도지부
  • 전라북도지부
  • 경상북도지부
  • 경상남도지부
  • 제주특별자치도지부

역대 회장[편집]

정치적 주장[편집]

2020년 4월 9일 더불어민주당의 설훈 의원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제강점기에 관한 미화 표현을 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친일찬양금지법'의 제정과 친일반민족인사를 이장하고 친일행적비를 설치하는 '국립묘지법' 및 '상훈법' 개정을 추진할 의향을 밝혔다.[3]

특히 동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광복회장 김원웅'친일 반민족 인사 69명이 현충원에 묻혀 있다'고 언급하며 친일파 파묘법을 해당년 가을까지 제정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에 야당은 '반인륜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여 논란이 일었다.[4] 소위 '친일파 파묘법'은 여러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언급되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이다.[5] 김홍걸 민주당 의원은 백선엽 전 장관을 들어 파묘법의 적용 대상이라고 언급했다.[6]

논란[편집]

광복절 경축식[편집]

2020년 광복절 기념행사의 경축식 자리에서 광복회장은 '친일이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고 기생한다'며 "초대부터 21대까지의 참모총장은 한명도 예외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들"이고 "민족반역자들이 국가요직을 맡아 한평생 떵떵거리고 살았다, 대한민국은 친일파를 위한 나라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에 야당 측에서는 축사를 명목으로 이념 편향적인 발언을 했다며 반발하여 논란이 확산되었다.[7] 각지의 광복절 행사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우리 국민 대다수와 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다"며 반박하는 연설을 펼쳤고 경북도지사는 대독을 거부했다.[8]

각주[편집]

  1.  김귀근 (2008년 12월 29일). “광복회, 건국훈장 반납결의”. 연합뉴스. 2008년 12월 29일에 확인함.
  2.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복회,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및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를 설립함으로써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이 상부상조(相扶相助)하여 자활(自活) 능력을 기르고 순국선열과 호국전몰장병의 유지(遺志)를 이어 민족정기를 선양(宣揚)하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3.  설훈 의원+광복회, '친일찬양금지법 제정' 공동 기자회견
  4.  광복회장의 '친일파 파묘' 논란…野 "반인륜적" 반발
  5.  https://the300.mt.co.kr/newsView.html?no=2020081516527637318
  6.  '친일파 파묘법' 발의 김홍걸측 "법 통과시 백선엽 장군도 이장 대상"
  7.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란 광복회장의 주장에 논란 확산
  8.  원희룡, ‘보수=친일’ 광복회장 기념사에 즉석 연설로 반박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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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復会 (韓国)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光復会 광복회
設立1965年2月27日
本部大韓民国の旗 韓国 ソウル特別市永登浦区
国会大路70道12 大山ビル6階[1]
座標北緯37度31分46秒 東経126度55分11秒座標北緯37度31分46秒 東経126度55分11秒
ウェブサイトwww.kla815.or.kr/dexin.asp
テンプレートを表示

光復会(こうふくかい、광복회、クァンボクフェ)とは日本からの朝鮮独立運動にかかわった独立運動家、その子孫や遺族からなる団体。光復会は盧武鉉政権時代の親日派708人名簿の作成・発表に関与し[2]、第20代会長の金元雄は元大統領李承晩韓国国歌作曲家である安益泰朝鮮戦争で活躍した予備役陸軍大将の白善燁などを「親日派」と罵倒したこともある[3]

歴代会長[編集]

氏名在任期間備考
漢字表記ハングル表記着任退任
1李甲成朝鮮語版이갑성1965年2月27日1970年9月20日
2李和翊이화익1970年9月20日1971年2月13日
3趙時元朝鮮語版조시원1971年2月13日1973年5月28日
4安椿生안춘생1973年5月28日1976年5月20日
5朴始昌박시창1976年5月20日1977年5月20日
6金弘壹김홍일1977年5月20日1979年6月28日
7金弘壹김홍일1979年6月28日1980年8月8日再任、在任中に死亡
8金相吉김상길1980年9月3日1984年9月3日
9劉錫鉉朝鮮語版김상길1984年9月3日1987年8月28日在任中に死亡
代理宋志英송지영1987年9月3日1988年6月1日
10李康勲朝鮮語版이강훈1988年6月1日1988年9月3日
11李康勲이강훈1988年9月3日1992年9月3日再任
12金勝坤김승곤1992年9月3日1996年9月4日
13權快福권쾌복1996年9月4日1999年1月27日
14尹慶彬朝鮮語版윤경빈1999年1月27日2002年6月1日
15張鐵장철2002年6月1日2003年2月13日
16金祐詮김우전2003年2月13日2005年6月1日
17金國柱김국주2005年6月1日2008年6月1日
18金永逸김영일2008年6月1日2010年6月1日
19朴維徹박유철2011年6月1日2019年5月31日
20金元雄김원웅2019年6月1日2022年2月
代理許鉉허현2022年2月現職

主張・評価・批判[編集]

光復会の会員とその同伴家族は、光復節各種の優遇措置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

2019年に就任した金元雄光復会長はしばしば「政治偏向的」と批判される[4]。金会長は盧武鉉政権時代に国会議員を務めながら、北朝鮮のミサイルは米軍基地を攻撃するためのモノでしかないと弁護し、「生ける伝説」「韓米同盟の象徴」「唯一信頼できる韓国軍将校」「最良の野戦指揮官」とアメリカでも呼ばれて米軍と共に朝鮮戦争で最後の戦線を守り抜いた白善燁将軍を親日派と罵っている。そのため、韓国の右派である朝鮮日報在郷軍人会会長は日本統治時代に生まれて教育を受けて日本の体制で勤務したことを理由に罵倒する韓国左派に対して、韓国人本人や先祖の圧倒的多数派が日本統治に順応していたのであり批判する資格のある韓国人はいるのかと語っている。朝鮮日報は韓国に銃口を向けた北朝鮮軍人を称賛し、護国の英雄を非難する人々を批判している[5]。しかし、金会長は光復会が国会議事堂内に運営しているカフェの収益を横領した疑惑があり、2022年2月に「管理の不行届」により会長を辞任した[6]

2019年に日本が輸出管理の運用の見直しを始めた際の声明[編集]

2019年7月、日本が韓国への輸出管理の運用を見直しを始めたことは、日本側の経済報復であるとして次の声明を発出した[7]

  • 「韓国大法院が日帝強制徴用被害者の強制労働で富を築いた反人道的犯罪を犯した日本企業が損害賠償をするよう判決を下したのは国境を超えた21世紀文明社会で通用する基本的な法理」
  • 「過去の時代、親日反民族政権の対日低姿勢外交で間違ってしつけた日本のごり押しに、文在寅政府は後退してはならない」
  • 「この機会に日本が韓国を見下す癖を直しておかなくてはならない」
  • 「日本全国にクモの巣のように敷かれた鉄道枕木一つ一つは、朝鮮人強制労働者の死体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 「日本政府が韓国裁判所の判決を、日韓関係を著しく損なうものだと言って経済報復に出るということは容認できないごり押し」

親日派子孫が所有する財産の国家帰属支援[編集]

韓国では2007年以降、親日反民族行為者財産の国家帰属に関する特別法に基づき親日反民族行為者財産調査委員会が認定した親日派の子孫が所有する土地を国家帰属とする作業が進められてきた。光復会は2020年8月30日、さらに12人の親日派の子孫などが所有している土地(約82万㎡)について国家帰属とするよう法務部へ申請を行った[8]

「韓国の参謀総長はすべて親日派」[編集]

2020年8月15日、金元雄光復会長は「8.15光復節慶祝式」の祝辞で、「韓国21人の歴代参謀総長はすべて韓国独立軍を討伐した者である」「大韓民国は親日派の国、親日派のための国になった」などと主張し、保守派を中心に大きな波紋を呼んだ。済州特別自治道知事元喜龍は地方代表の代読が終わった後、「私たち国民の大多数と道民が決して同意できない非常に偏った歴史観が入っている」と批判した[9]

脚注[編集]

  1. ^ 오시는 길” (朝鮮語). 光復会. 2018年7月29日閲覧。旧住所表記:ソウル特別市永登浦区汝矣島洞14-27
  2. ^ 조선일보 (2020年8月13日). “광복회 "친일명단 정치-감정적 처리"” (朝鮮語). 조선일보2022年3月20日閲覧。
  3. ^ 조선일보 (2022年1月26日). “사설 김원웅도 횡령 의혹, ‘反日 팔이’ 윤미향과 판박이 아닌가” (朝鮮語). 조선일보2022年3月20日閲覧。
  4. ^ '정치편향' 논란 아랑곳 않던 김원웅, 횡령 의혹에 백기” (朝鮮語). 매일경제 (2022年2月16日). 2022年3月20日閲覧。
  5. ^ 조선일보 (2020年7月17日). “6·25 영웅 깎아내리기” (朝鮮語). 조선일보2022年3月20日閲覧。
  6. ^ ‘횡령 의혹’ 김원웅 광복회장 자진 사퇴” (朝鮮語). www.hani.co.kr (2022年2月16日). 2022年3月20日閲覧。
  7. ^ 韓国光復会「日本が韓国を見下す癖を直しておかなくては」”. 中央日報 (2019年7月2日). 2019年7月2日閲覧。
  8. ^ 韓国光復会、156億ウォン相当の親日財産の国家帰属を申請…「民族を裏切った代価」”. 中央日報 (2020年8月30日). 2020年8月30日閲覧。
  9. ^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란 광복회장의 주장에 논란 확산” (朝鮮語). monthly.chosun.com (2020年8月15日). 2020年10月1日閲覧。

外部リンク[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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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복회 (光復會)
정치 단체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

광복회관
광복회관

목차
정의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
내용

일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기 시작한 1895년 을미사변으로부터 광복 때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였거나, 옥고를 치른 사람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건국훈장·독립유공건국포장·독립유공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과 그들의 유족으로서 연금(年金)을 받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의 총집합체이다.

본부에는 회장과 부회장 2명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의전부(儀典部)가 특설되어 있다. 전국에 11개의 지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는 1999년 현재 4,100명이다. 회원자격은 독립유공 수상자와 그 유족 중 연금 또는 생계부조금을 받는 사람 전원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일투쟁은 한말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하여 시해된 1895년 을미사변을 시발로 국내 곳곳에서 의병항쟁으로 나타났고, 중국의 동북지방과 노령(露領)에서의 독립군의 항쟁에 이어 중국대륙에서의 무력항쟁으로 이어져,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근 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 기간중 수십만 명의 유명무명의 열사와 지사들이 민족의 제단 위에 거룩한 희생이 되었다.

이와 같이, 순국한 사람들의 유지를 현창(顯彰)하고 올바른 국권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애국지사들의 염원이 한덩어리를 이루어, 1946년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 등 삼의사유해봉송사업(三義士遺骸奉送事業)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 뒤 광복 직후의 사회적 혼란과 6·25전쟁 등 계속되는 국가적 시련으로 말미암아 소망했던 광복회의 구성이 미루어져 왔으며,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포상을 본궤도에 올리자는 뜻은 있었으면서도 시행되지 못하였다.

1949년 당시 일차적으로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에게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수여되었고, 이어서 1953년 한국을 방문했던 자유중국 총통 장개석(蔣介石)에게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공로로 대한민국장이 수여된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바쳐 희생된 삼의사와 안중근(安重根)·김구(金九) 등 수많은 애국지사에 대한 보다 큰 규모의 정부포상이 기대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적 소망 속에서 마침내 1962년 삼일절을 기해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을 비롯하여 김구·안중근·윤봉길·이봉창·김창숙(金昌淑)·조만식(曺晩植)·안창호(安昌浩)·신익희(申翼熙) 등 18명에게 대한민국장이, 그리고 김성수(金性洙) 등 58명에게는 대통령장(大統領章)이, 김규식(金奎植) 등 128명에게는 국민장이 각각 추서 또는 수여되었다.

제1차 정부포상에 이어 이듬해인 1963년 광복절에는 독립유공자 774명에게 건국훈장 또는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다. 이로써, 그 동안 수훈하거나 수상한 사람이 무려 1,000여 명에 달하면서 수훈애국지사(受勳愛國志士)와 그 유족 중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을 회원으로 하여, 1965년 2월 27일 사단법인 ‘광복회’가 탄생하였으며, 초대 회장에는 기미독립운동의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李甲成)을 선임하였다.

그 뒤 정부의 포상은 계속되어 1968년 402명, 1977년 1,314명, 1980년 407명, 1982년 428명, 1983년 424명 등 1999년 11월 현재 8,698명에게 포상이 수여되었으며, 이 가운데는 한국독립에 공헌한 38명의 외국인에 대한 포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장을 받은 사람은 장개석·손문(孫文)·송미령(宋美齡)·진과부(陳果夫)·진기미(陳其美) 등 중국인 5명이었다.

회원의 친목단결을 위하여 여러 가지 회원경조지원(會員慶弔支援)을 시행하고, 민족정기의 선양을 위해서 해마다 광복절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무후선열추모제(無後先烈追慕祭)를 지내며, 또한 매년 11월 17일에는 독립운동선열추모제를 가진다. 1981년부터는 애국선열유적지 순례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지역별로 가지는 이 순례행사에는 선열후손 대학생들로 구성된 호우회(護友會)가 회동하여 유허지(遺墟地)를 동시에 돌면서 묘소가꾸기도 정성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의식 계도를 위해서는 국민정신교육추진종합계획 및 통일안보교육실시계획에 따라 광복회에 독립정신홍보위원회를 두고 전국 중·고·대학생 및 군인·예비군을 대상으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국사편찬위원회, 1983)
『독립운동공훈사』(보훈처,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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