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7

“나는 보수·진보 모두에 이방인…‘북한 사람’만 본다” - 시사저널

“나는 보수·진보 모두에 이방인…‘북한 사람’만 본다” - 시사저널

“나는 보수·진보 모두에

이방인…‘북한 사람’만 본다”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승인 2022.01.02


[랭면과 철조망 ⑯] 北 인권 지킴이 활동하다 ‘민주당의 입’으로 변신한 전수미 변호사


“더불어민주당에서 그 사람을 영입했다고?”

전수미 변호사가 최근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으로 임명되자 주변에서 보인 반응이다. 15년 넘게 북한 인권 문제 대응에 앞장서온 전 변호사다. 2005년부터 비정부기구(NGO)에 몸담았다가 2014년 법조인이 된 이유도 더 체계적으로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그가 그저 순수하고 치열하게 활동하는 동안 ‘북한 인권’이란 키워드는 보수 정치권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진보 정치권은 북한 인권 문제에 아예 손을 놓았다’는 인식까지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전 변호사가 민주당에 둥지를 튼 것은 의외였다.
ⓒ시사저널 박은숙

15년 넘게 북한 인권 문제에 매진

요즘 전 변호사는 여당 부대변인으로서 다양한 사안에 관해 논평하는 동시에 이재명 대선후보의 대북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 논의를 위한 플랫폼인 화해평화연대 운영, 탈북민 법률 지원 등 기존 업무도 병행한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이다. 2021년 12월29일 서울 영등포의 화해평화연대 사무실에서 전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손에 짐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막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표창장에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는 수여 이유가 적혀 있었다.

현 정부·여당이 북한 인권과 탈북민 문제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상근부대변인직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북한 인권 관련 단체나 활동가들은 아무래도 국민의힘 등 야당 쪽과 많이 협업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인권 이슈에 대한 관심도와 자본력 면에서 보수 정치권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은 보수 정치권이든 진보 정치권이든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수 정치권은 북한 인권을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성향이 강했다. 내가 가장 문제시해온 부분이다. 적어도 민주당은, 노력하면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어떤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한 명 한 명을 귀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고민하다가 제의를 수락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이번에 민주당 당직을 맡기 전부터 NGO에서 일하는 지인들은 ‘정당 활동의 기회가 오면 일단 들어가고 봐라’라고 강하게 조언했다. 원래 정치 입문에 뜻이 없었고 스스로 여러 기회를 차단하기도 했다.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모습을 본 한 여성단체 관계자가 화를 낸 적이 있다. ‘필드에 오래 있는 동안 바꾼 게 뭐가 있느냐’는 거다. 남한 사회에서 피해를 본 탈북민들을 도우며 승소하고 가해자들을 법정 구속되도록 하는 등 성과가 없진 않았다. 그런데 정말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었다. 당장 민주당으로부터 제안을 받기 전날에도 내가 지원하던 여성 탈북민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남한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그 여성은 내게 전화해서 ‘이런 문제에 아무도 관심 없고 경찰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여성 탈북민들을 다 버린 것 같다’며 절규했다. 법·제도 개선으로 피해를 유발하는 구조를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북한 인권의 정치적 도구화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상사 1명과 중령 1명이 여성 탈북민을 성폭행한 혐의와 관련해 2019년 고소 대리를 맡았다. 군 1차 수사팀에서 ‘이길 확률이 없으니 포기하라’는 식으로 전화를 하는 등 사건을 덮으려는 움직임이 있어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어느 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더구나 북한 인권을 중시한다는 보수 정치권의 냉담한 모습을 보고 ‘탈북민에 대한 존중 없이 어떻게 북한 인권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겼다. 다른 한편에선 국내외 보수 정치권과 결탁한 일부 탈북민이 북한 인권을 도구로 삼아 돈과 명성을 얻고 있다. 그것이 탈북민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해 여성 탈북민 성 착취 등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앞서 전 변호사는 2020년 8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인권단체에 들어가는 후원금의 전용 실태를 폭로한 바 있다. 그는 해당 단체들을 안팎에서 면밀히 지켜본 결과 대북 전단 살포는 돈벌이(후원금 모금)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후원금 일부가 유흥비로 쓰이는 등 회계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 변호사는 북한 인권 NGO 활동 당시 룸살롱 회식 도중 남성 탈북민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개인사를 털어놨다. 그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 탈북민들과 마주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당하지 않은 것처럼 태연히 그들을 위로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며 “공감이 최고의 위로라는 생각에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선에 담겨 날아가는 대북 전단(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연합뉴스

대북 전단 무용론 주장하는 이유도 ‘사람’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전 변호사의 진술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탈북민은 그에게 전화로 협박하거나 사무실과 집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했다. 성폭력 피해 고백으로 남편 등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도 컸다. 전 변호사는 “‘그런 일’을 당한 여자를 아내로, 며느리로 둔 걸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에 온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면서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지 절절히 느꼈다”고 회상했다.

전 변호사는 두려움과 우울감 등으로 정상 생활이 힘든 중에도 사명을 놓지 않았다. 2021년 4월에는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개최한 한국의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화상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법 시행을 비판하는 시각이 지배적인 청문회에서 전 변호사는 화상을 통해 대북 전단을 들어 보이며 “이것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고 울부짖는 탈북민들을 종종 본다.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보다 그들의 고통만 가중시킨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논의에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인이 다양한 탈북민, 북한의 탈북민 가족과의 소통에 열려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수미 변호사(왼쪽)가 2019년 12월30일 국회에서 현 역 군 간부들의 여성 탈북민 성 착취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북 전단에 관해 표현의 자유나 남북 관계 등 일반적인 논의 틀을 벗어나 북한 주민을 거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국방부 소관이었던 대북 전단 살포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에 넘어왔다. 오래된 일인데, 유독 최근 들어 북한 당국이 전단에 반발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탈북민을 대대적으로 색출하는 등 과격하게 반응하는 게 이상했다. 알아보니 몇몇 북한 인권단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사용한 마스크, 수건, 휴지 등을 모아 대북 전단과 함께 북한으로 보내자. 그래서 북한을 궤멸하자’고 계획한 정황이 확인됐다. 북한 당국도 이를 파악해 그렇게 노발대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정권이 아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북한 주민 대부분은 취약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대북 전단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가면, 대북 전단이 생화학무기나 다름없게 돼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북한 주민들이 대북 전단을 주워서 볼 리도 만무하다.”



모든 대북 전단을 ‘생화학무기’로 치부해선 안 되지 않나. 법으로 무조건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게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물론 (후원금 모금이 아닌)선교 등 순수한 목적으로 조용히 대북 전단을 보내는 단체들이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급박한 상황이 지나가면 논의를 거쳐 재허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남한 내 북한 인권 관련 정보가 1990년대 기준에 머물러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의 인권 의식이 다소 개선됐다’고 지적해 왔다. 북한 정권을 인권 문제로 비판하지 말자는 건가.

“전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투 트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에 참여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기 원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일본 등처럼 북한을 공격하는 형태로 인권 문제에 대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논의는 탈북민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선결과제는 탈북민 인권 개선이란 말로 들린다.

“탈북민들에게 대뜸 ‘통일의 주역’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면 정말 싫어한다. 남한에 정착해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고 종종 멸시와 차별까지 당하는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겠나. 탈북민들에 대해 무지하고, 그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통일도 멀어질 뿐이다. 탈북민들은 자신의 가족 등 북한 주민들과 수시로 통화한다. 북한 주민들이 탈북민들로부터 ‘남한에 오니 괴롭다’는 말을 계속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화해평화연대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

“한반도 문제는 남북(南北) 갈등, 남남(南南) 갈등, 남한 내 탈북민 간 갈등 등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터져나오고 있다.
화해평화연대는 탈북민과 비탈북민 모두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평화에 이를 수 있도록 담론의 장을 제공하고자 2021년 8월 설립됐다.”

‘화해’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렇다. 우리 사회가 탈북민들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슈화·도구화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아닌 다른 지역, 성별 등을 놓고도 비슷한 일이 펼쳐진다. 나 역시 서울에 와서 지방 출신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이 있다. 탈북민, 특히 여성 탈북민들은 오죽할까. 화해평화연대의 시작은 ‘나 같은 사람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차별을 넘어 전쟁의 상흔까지 보듬는 화해가 선행돼야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도모할 수 있다.”

앞으로의 비전은.

“양 진영으로 나뉜 대한민국에서 나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소신대로 북한 인권운동을 하며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아울러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선인장,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탈북민들을 보듬느라 피를 뚝뚝 흘려 왔다. 그래도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가 서로 차별하지 않고 환대하며, 얽히고설킨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볼 것이다. 지금은 정당에 들어왔으니 평소 정치권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해소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얼마 전 민주당 대선 선거대책위원회에 북한 인권을 도구로 삼지 않고 신실하게 활동해온 탈북민들을 적극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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