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 식민지 조선, 강제 동원의 역사
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 식민지 조선, 강제 동원의 역사
정혜경 (지은이) | 서해문집 |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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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강제로 내몰린 사람들. 누워서 탄을 캐야 하는 광부로, 군수공장 노동자로,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 이름 모를 섬에서도 감시와 차별을 견디며 참혹하게 살아야만 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머나먼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나?
이 책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사람들, 특히 재일한인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그간의 노력으로 밝혀낸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사할린, 중국, 일본 본토로 내용을 나눠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의 말
제1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막이 열리다
일본제국으로 가는 길 / 식민지에 대한 야욕을 품다 / 아시아태평양전쟁, 중국을 삼키다 / 전쟁의 확대, 일본 정부의 딜레마 / 패전의 불씨가 드리우다
제2부 전쟁은 일본이 일으켰는데, 왜 우리를?
일본이 일으킨 전쟁, 물자처럼 공출되는 조선 민중 / 왜 ‘모집’, ‘지원’이 아닌 ‘강제’인가? / 돈과 권력으로 징용을 피하다 / 학도지원병 기피자 계훈제와 오노다 시멘트 회사 / 돌아온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제3부 ‘굶주림의 땅’이 된 남양군도
태평양으로 진출한 유럽의 맹주들 / 남양군도를 탐낸 일본의 속셈 / 늘어나는 남양군도의 조선인 / ‘아이고 다리’와 ‘티니언 농장’ / 군속이 된 조선인 / 살아남았지만 남겨진 전쟁의 상흔
제4부 동남아시아에 뼈를 묻게 될 줄이야!
포로와 다를 바 없는 조선인 포로감시원 /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쓴 조선 청년들 / 인도네시아를 독립으로 이끈 빛, 양칠성 / 조선 청년들, 전투 없는 군인이 되다 /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 전쟁의 아픔을 안은 채 고향으로
제5부 동토의 땅, 사할린에 얼어붙은 눈물
악마의 섬, 사할린 / 동토의 땅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 / ‘이중 징용’에 두 번 우는 가족 /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노래, ‘사할린 아리랑’ / 전쟁은 끝났지만 일본의 계속된 조선인 사냥 / 사할린 교포, 아픈 역사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제6부 중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
중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 / 빼앗긴 조국을 떠나 간도로 / 중국 곳곳을 전전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 중국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 / 돌아가야 하는 조국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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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버티거나……
전쟁과 노동, 가장 위험한 곳에 내몰린 식민지 조선인
식민지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강제로 내몰린 사람들. 누워서 탄을 캐야 하는 광부로, 군수공장 노동자로,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 이름 모를 섬에서도 감시와 차별을 견디며 참혹하게 살아야만 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머나먼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나?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름,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삶
최근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강제 노역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 협상 의지를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강제 동원될 당시 꽃다운 나이였던 분들 가운데 일부는 참혹한 노동과 전쟁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였고,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잊히지 않는 고통에 눈물겨운 삶을 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강제 동원’ 문제를 미쓰비시중공업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지 민중이 겪은 뼈아픈 역사로서 좀 더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은 미쓰비시중공업 이야기처럼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사람들, 특히 재일한인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그간의 노력으로 밝혀낸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한일병합 100년째가 되는 올해 우리가 이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면 이들의 아픔과 눈물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남양군도’에서 동토의 땅 ‘사할린’까지, 전쟁에 내몰린 조선인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도 모자라 아시아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931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에선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였고, 새롭게 탄생한 정부에겐 국력 강화가 필요하였다. 이런 일본 내부 정치 상황과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제국주의 열풍에 휩쓸린 일본 정부가 극단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전쟁에서 크게 피해를 봐야 했던 것은 일본인보다도 식민지 조선인들이었다.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을 견디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일으킨 제국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인력과 물자다. 이를 위해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였다. 이 법은 의회의 동의 없이도 전쟁에 인력과 물자, 자금 등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44년 2월부터 일본은 국민징용령을 개정하여 더 많은 조선인을 전쟁에 내몰았다. 본격적으로 식민지 조선인에게도 황국 신민이 되어 전쟁에 나서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렇게 전쟁에 내몰린 조선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사할린, 중국, 일본 본토로 내용을 나눠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남양군도’라 불린 중부 태평양의 여러 섬. 이 머나먼 곳에도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고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다리. 팔라우 현지인들이 붙인 이 이름으로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아이고’라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음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 남양군도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이처럼 건설 현장과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농장 등에서 힘겨운 노동을 견뎌야 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은 주로 연합국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감시원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몰려 억울한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강제 동원 때문에 전쟁에 내몰린 피해자였다. 개중엔 이런 억울함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서 삶을 이어간 사람도 많았다. 특히 인도네시아 지역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다가, 일본이 패전한 후에도 현지에 남아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에서 큰 업적을 세우고 희생된 ‘양칠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에선 그를 ‘독립으로 이끈 빛’으로 부르면서 양칠성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한편 ‘동토의 땅’이라 불린 사할린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석탄을 채취했다. 또 이들은 전쟁이 깊어지면서 다시 일본 본토로 징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아픔은 지금도 ‘사할린 아리랑’이라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일본 본토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처한 상황도 이들 못지않았다. 오죽했으면 ‘착취 지옥’이라 불렀을까. 아이누족도 견디지 못한 홋카이도에 광부와 군인으로 끌려가기도 했고, 도쿄로 강제 동원되었다가 ‘간토 대지진’과 이어진 조선인 학살에 희생당하기도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처럼 일본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한 여성근로정신대도 있고, 군인으로 징집되었다가 ‘가미카제’로 희생된 청년들도 많다.
이처럼 일본은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장소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내몰았고, 지금도 이들의 아픔은 그곳에 남아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은 1945년 미국이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면서 끝났다. 식민지 조선도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전쟁터로 내몰렸던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날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조국이 자유를 찾았다고 이들에게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은 이들도 많았다. 그중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인 1945년 8월에 일어났다. 교토 부근 마이즈루 만에서 우키시마호는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태우고 조선으로 향했다. 한데 항구를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우키시마호는 원인 모를 이유로 침몰하고 말았고, 배에 탔던 조선인 7000명 가운데 4000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큰 화제였지만, 아직도 사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더욱 애달프다. 특히 이 사건을 다룬 방송과 영화, 책도 여럿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강제 동원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찾아내어 진실을 밝혀, 그들의 힘겨운 삶을 이해하고 아픔을 덜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2010년 3월 11일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은 “일본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 수는 245명”이라고 보도했다. 그 외에는 모두 자유의사로 온 사람들이라는 내용이다. 전시체제기 이전의 일반 도일자를 의미하는 것인지, 현재 재일동포 가운데 남은 피해자를 지칭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왜곡이자 허황된 주장이다. 왜곡을 해도 너무한다. 일본 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고 결코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무관심이 면피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은 당사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 ‘글을 나오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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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 식민지 조선, 강제 동원의 역사
정혜경 (지은이) | 서해문집 |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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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강제로 내몰린 사람들. 누워서 탄을 캐야 하는 광부로, 군수공장 노동자로,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 이름 모를 섬에서도 감시와 차별을 견디며 참혹하게 살아야만 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머나먼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나?
이 책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사람들, 특히 재일한인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그간의 노력으로 밝혀낸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사할린, 중국, 일본 본토로 내용을 나눠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의 말
제1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막이 열리다
일본제국으로 가는 길 / 식민지에 대한 야욕을 품다 / 아시아태평양전쟁, 중국을 삼키다 / 전쟁의 확대, 일본 정부의 딜레마 / 패전의 불씨가 드리우다
제2부 전쟁은 일본이 일으켰는데, 왜 우리를?
일본이 일으킨 전쟁, 물자처럼 공출되는 조선 민중 / 왜 ‘모집’, ‘지원’이 아닌 ‘강제’인가? / 돈과 권력으로 징용을 피하다 / 학도지원병 기피자 계훈제와 오노다 시멘트 회사 / 돌아온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제3부 ‘굶주림의 땅’이 된 남양군도
태평양으로 진출한 유럽의 맹주들 / 남양군도를 탐낸 일본의 속셈 / 늘어나는 남양군도의 조선인 / ‘아이고 다리’와 ‘티니언 농장’ / 군속이 된 조선인 / 살아남았지만 남겨진 전쟁의 상흔
제4부 동남아시아에 뼈를 묻게 될 줄이야!
포로와 다를 바 없는 조선인 포로감시원 /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쓴 조선 청년들 / 인도네시아를 독립으로 이끈 빛, 양칠성 / 조선 청년들, 전투 없는 군인이 되다 /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 전쟁의 아픔을 안은 채 고향으로
제5부 동토의 땅, 사할린에 얼어붙은 눈물
악마의 섬, 사할린 / 동토의 땅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 / ‘이중 징용’에 두 번 우는 가족 /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노래, ‘사할린 아리랑’ / 전쟁은 끝났지만 일본의 계속된 조선인 사냥 / 사할린 교포, 아픈 역사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제6부 중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
중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 / 빼앗긴 조국을 떠나 간도로 / 중국 곳곳을 전전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 중국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 / 돌아가야 하는 조국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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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버티거나……
전쟁과 노동, 가장 위험한 곳에 내몰린 식민지 조선인
식민지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강제로 내몰린 사람들. 누워서 탄을 캐야 하는 광부로, 군수공장 노동자로,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 이름 모를 섬에서도 감시와 차별을 견디며 참혹하게 살아야만 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머나먼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나?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름,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삶
최근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강제 노역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 협상 의지를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강제 동원될 당시 꽃다운 나이였던 분들 가운데 일부는 참혹한 노동과 전쟁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였고,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잊히지 않는 고통에 눈물겨운 삶을 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강제 동원’ 문제를 미쓰비시중공업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지 민중이 겪은 뼈아픈 역사로서 좀 더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은 미쓰비시중공업 이야기처럼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사람들, 특히 재일한인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그간의 노력으로 밝혀낸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한일병합 100년째가 되는 올해 우리가 이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면 이들의 아픔과 눈물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남양군도’에서 동토의 땅 ‘사할린’까지, 전쟁에 내몰린 조선인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도 모자라 아시아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931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에선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였고, 새롭게 탄생한 정부에겐 국력 강화가 필요하였다. 이런 일본 내부 정치 상황과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제국주의 열풍에 휩쓸린 일본 정부가 극단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전쟁에서 크게 피해를 봐야 했던 것은 일본인보다도 식민지 조선인들이었다.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을 견디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일으킨 제국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인력과 물자다. 이를 위해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였다. 이 법은 의회의 동의 없이도 전쟁에 인력과 물자, 자금 등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44년 2월부터 일본은 국민징용령을 개정하여 더 많은 조선인을 전쟁에 내몰았다. 본격적으로 식민지 조선인에게도 황국 신민이 되어 전쟁에 나서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렇게 전쟁에 내몰린 조선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사할린, 중국, 일본 본토로 내용을 나눠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남양군도’라 불린 중부 태평양의 여러 섬. 이 머나먼 곳에도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고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다리. 팔라우 현지인들이 붙인 이 이름으로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아이고’라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음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 남양군도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이처럼 건설 현장과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농장 등에서 힘겨운 노동을 견뎌야 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은 주로 연합국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감시원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몰려 억울한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강제 동원 때문에 전쟁에 내몰린 피해자였다. 개중엔 이런 억울함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서 삶을 이어간 사람도 많았다. 특히 인도네시아 지역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다가, 일본이 패전한 후에도 현지에 남아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에서 큰 업적을 세우고 희생된 ‘양칠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에선 그를 ‘독립으로 이끈 빛’으로 부르면서 양칠성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한편 ‘동토의 땅’이라 불린 사할린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석탄을 채취했다. 또 이들은 전쟁이 깊어지면서 다시 일본 본토로 징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아픔은 지금도 ‘사할린 아리랑’이라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일본 본토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처한 상황도 이들 못지않았다. 오죽했으면 ‘착취 지옥’이라 불렀을까. 아이누족도 견디지 못한 홋카이도에 광부와 군인으로 끌려가기도 했고, 도쿄로 강제 동원되었다가 ‘간토 대지진’과 이어진 조선인 학살에 희생당하기도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처럼 일본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한 여성근로정신대도 있고, 군인으로 징집되었다가 ‘가미카제’로 희생된 청년들도 많다.
이처럼 일본은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장소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내몰았고, 지금도 이들의 아픔은 그곳에 남아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은 1945년 미국이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면서 끝났다. 식민지 조선도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전쟁터로 내몰렸던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날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조국이 자유를 찾았다고 이들에게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은 이들도 많았다. 그중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인 1945년 8월에 일어났다. 교토 부근 마이즈루 만에서 우키시마호는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태우고 조선으로 향했다. 한데 항구를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우키시마호는 원인 모를 이유로 침몰하고 말았고, 배에 탔던 조선인 7000명 가운데 4000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큰 화제였지만, 아직도 사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더욱 애달프다. 특히 이 사건을 다룬 방송과 영화, 책도 여럿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강제 동원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찾아내어 진실을 밝혀, 그들의 힘겨운 삶을 이해하고 아픔을 덜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2010년 3월 11일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은 “일본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 수는 245명”이라고 보도했다. 그 외에는 모두 자유의사로 온 사람들이라는 내용이다. 전시체제기 이전의 일반 도일자를 의미하는 것인지, 현재 재일동포 가운데 남은 피해자를 지칭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왜곡이자 허황된 주장이다. 왜곡을 해도 너무한다. 일본 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고 결코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무관심이 면피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은 당사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 ‘글을 나오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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