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주남훈 워싱턴 지부장
[기획 인터뷰]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주남훈 워싱턴 지부장
재미동포 이산가족들의 북한 고향방문이 10년만에 다시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97년 뉴욕에서 조직된 대북민간교류단체인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한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로부터 허가를 받아, 오는 9월, 스무 명 규모의 추석 성묘단을 구성해 북한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현재 신청자를 접수하고 있는 워싱턴 지부의 주남훈 지부장으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어봅니다.
Q : 재미동포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 지난 92년에 중단됐는데 언제부터 진행됐었습니까? A : 89년부터 92년 2월까지 무제한으로 진행되다 중단됐다.
Q : 다시 시작된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A : 가기 원하는 재미동포들이 많았고, 그동안 전국연합에서 북한에 꾸준히 요구해서 허가가 나왔다.
Q : 북한측의 연결 단체는 누구인가요? A : 해외동포원호위원회다.
Q : 전국연합이 단독으로 추진하는 이번 방북의 인원 제한이 있습니까? A : 미국과 캐나다 등 미주 지역에서 20명을 시범적으로 선정한다
Q : 어떤 기준으로 방문단을 선정하게 되는지요? A : 현재 북한에 가족이 살아 있고 가족들의 주소가 확인된 재미동포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들이 갈 수 있다.
Q : 가족의 생사확인작업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A : 97년 이후로는 전국연합에 의뢰해서 찾은 사람들이고, 89년에서 92년에는 캐나다의 정충림 씨가 담당했다.
Q : 방문단의 북한 체류 일정이 나왔습니까? A : 개인이 원하는 데로 7일에서 10일까지 머무른다.
Q : 북한에서 단체로 움직이게 되나요? A : 각자 고향이 다르기 때문에 단체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직접 가족의 집에서 자고 성묘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방문은 10년만에 처음이다.
Q : 북한방문에 공백기가 있었던 이유는? A : 89년에서 92년 사이 북한에서 해외동포들에게 호의적으로 잘 대해줬으나, 다녀온 사람들이 체제 비판을 많이 했다. 그래서 중단됐다.
Q : 개인적인 상황을 소개해 주시지요. A : 고향은 함흥이고 형님이 살아 계시다. 1941년에 이남했다
Q : 북한 방문 때 개인적인 감회는 어떠셨어요? A : 담담했다. 50년 만에 만나보니 형님 얼굴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똑같았다. 사진을 놓고 보는 게 아니라 한 눈에 알아봤다.
Q : 형님 쪽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A : 내가 4살 때 헤어졌으니 서로 기억은 없다. 친척들 안부를 물었다.
Q : 처음 만나고 나서 계속 연락하고 계시는지요? A : 계속 연락하고 1년에 한 번 이상 기회만 있으면 들어가고 있다.
Q : 북한의 가족들을 도와주게 되겠죠? A : 물론이다. 또 미국에서 경제적 여건으로 못가는 사람들 중 함흥에 가족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편지를 전하고 생활비도 전해준다.
Q : 이번 방북단의 신청자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A : 주로 나이 많은 분들이다. 부모는 대개 돌아가셨고, 형제나 부인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Q : 북한에 다녀오는 비용은? A : 요즘 평양까지 가는 비행기표가 1500달라이고, 북경에서 고려민항기를 타고 들어간다.
Q : 그 외 체제비가 얼마나 드나요? A : 하루 호텔비가 100달라, 점심 저녁은 사먹어야 하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도 주고와야 하니까 7천 달라에서 만 달라 정도 있어야 한다.
Q : 북한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 소개해 주시지요. A : 사람들이 때묻지 않고 친절하고 순진하다. 생활은 그쪽 사정대로 하고 있고, 깊은 사정은 몰라도 편안하게 있다고 느꼈다. 60년간 반공교육을 받은 바로는 이남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공행에서 다 쫓겨 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형님도 함흥시가 완전히 폭파된 뒤 원래 살던 그 자리에 집을 지어 계속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재미동포 추석 성묘단 모집과 관련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워싱턴지부를 맡고 있는 주남훈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취재에 최윤정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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