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9

북한정보포털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와 개혁·개방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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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와 개혁·개방 전망

담당부서 : 경제사회분석과(02)2100-5881~8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와 개혁·개방 전망



1. 시장화 현상
(1) 시장화 현상의 대두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은 1980년대 중·후반경부터 이미 부분적으로 계획시스템 작동에 애로가 조성되고 있었다.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원리’에 따른 중앙집중적 계획화 체계 자체가 사실상 곤란해짐으로써 점차 공급 부족 현상이 확대되고 있었다. 계획경제 시스템의 양대 축인 자재공급체계와 배급제도가 원활히 작동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북한 당국이 1958년 이래 허용해왔던 10일장 형태의 농민시장이 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북한 당국은 상설 시장화된 농민시장을 허용·통제를 반복하면서 다른 한편, 공장·기업소 등의 ‘8.3인민소비품’ 생산과 부업밭을 허용해 주었다. ‘8.3인민소비품’ 생산이란 공장·기업소들이 계획지표를 수행하고 남은 부산물로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소비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부업밭은 공장·기업소 등의 소속 노동자들에게 부업으로 부치는 땅을 부여한 밭을 말한다. 협동농장 농민들에게는 합법적으로 약30평 정도의 텃밭 경작이 예전부터 허용되고 있었다. 이 활동들은 계획 외 경제활동, 즉 합법적인 비공식 경제활동들로서 공급 부족 현상에 직면해 외연이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이후 주로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식량 미공급 및 소비제품의 부족 현상이 심화되어 나가자 암시장 형태인 ‘야시장’, ‘장마당’, 밀수 활동이 발달됨과 동시에 농민시장이 합법적 공간의 성격을 뛰어넘어 점차 비합법적 공간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나갔다. 불법거래 상품인 쌀·옥수수 등 식량과 공산품 등이 주요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동요되고, 전반적 배급제 붕괴 현상이 초래되면서 급속도로 진전되어 나갔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에 배급제가 중단될 당시 생존을 위한 식량 획득 목적으로 ‘단순 거래자’로서 농민시장에 등장했었다. 장사 행위를 ‘비사회주의 행위’로 치부했던 과거 인식 때문에 주저했던 주민들은 장사 활동을 통해 생계가 유지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점차 신규 참여자로 진입해 들어왔고, 이런 과정에서 시장 참여자 수도 확대되어 나갔다. 주민들은 여러 차례의 교환활동을 통해 부가가치와 부의 축적을 경험하며 상업자본을 축적해 나가고, 일부는 이른바 ‘돈주’로도 성장해 나갔다.

장마당에는

  • 공장·기업소 자산의 전용·약탈·탈취 등을 통해 유입된 재화, 
  • 텃밭·소토지 등에서 경작된 농축산물, 
  • 개인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물품, 
  • 국제사회의 지원물자, 
  • 북·중 간 공식·변경무역 및 밀수 등을 통해 대규모로 유통된 재화들이 공급되었다. 


북한은 식량난과 계획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하게되자
북·중 접경지대의 통상구를 개방하고,
국가 지정 무역기관 외에 정부 부처인 성(省), 기관, 군부대, 지방의 도인민위원회, 공장·기업소들도 대외무역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었다.

그 결과 1990년대 말에 오면 북한의 시장화 현상은 전국적 규모의 유통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현상으로 진전되었다. 주요 시·도들에 대규모 도매시장과 함께 이 시장들이 특화된 시장으로 발달되어 나갔다. 주민들의 장사 형태도 ‘등짐 장사’로 출발해 점차 지역 간에 부족한 물자를 유통시켜 이익을 얻는 장사인 ‘되거리 장사’, 철도·차량을 이용한 도매 장사인 ‘달리기 장사’ 및 ‘차판 장사’ 등에서 상설시장에서 앉아서 장사하는 ‘매대 장사’로 분화·발전되어 나갔다.









한편, 1990년대 말 이렇게 전국적 규모의 유통 네트워크가 구축될 정도로 북한의 시장화 현상이 확산된 이면에는, 북한의 당·군 등 주요 특권기관들이 시장공간에 본격 진입해 들어와 특권을 활용해 외화벌이 및 계획지표 수행 활동을 함으로써 가능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경 자재공급체계가 전반적으로 마비되자 각 경제단위들에 물량지표가 아닌 액상(금액)지표를 부여하고 독립채산제를 확대해 나갔다. 특히 특권기관들에는 주요 외화벌이 원천들을 장악해 무역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공장·기업소들이 본래 생산·경영 활동과 상관 없는 무역활동 및 상업활동 등을 통해 금액지표 납부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특권기관들은 대규모 무역기으으로서 북한 내 유통망을 장악해 나갔다.

(2) 시장의 확산 및 통제

1990년대 시장화 현상은 ‘아래로부터의 시장화’ 현상으로서 북한 경제체제에 제도와 현실간의 괴리라는 큰 모순을 야기했다. 1998년 공식 출범한 김정일 정권은 선군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제도와 현실간의 괴리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제도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국가의 통제 밖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장을 국가 관리 내로 유도해 체제 정비와 함께 선군경제정책 시행의 재원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김정일 정권은 2002년 시장을 부분 제도화하는 이른바 ‘7.1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를 시행했다. 7.1조치는 간략하게 정리하면,

① 국영기업소, 협동농장 등 각 경제 단위의 경제 활동에서 경영 분권의 부분 허용,
② ‘번수입(수익)’을 기준으로 하는 경영지표 변경,
시장가격 수준으로 국정가격의 현실화,
④ 협동농장 분조 축소(20명 내외 단위→ 7∼8명 단위로 축소)와
개인경작지 규모 확대(30평→ 400평),

⑤ 공산품·식량 거래를 공식 허용하는 종합시장 도입(2003년),
기업소 간 원자재 거래를 허용하는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 도입(2002년),
수입물자들의 시장 거래를 허용하는 수입물자교류시장 도입(2004년),

⑥ 물질적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조치였다.

이 조치는 경제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시장 기능을 부분 활용하고, 궁극에는 계획경제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의도를 내포했던 ‘체제내적 개혁’의 성격을 가진 조치였다.

따라서 국영기업소와 협동농장에 부분 허용했던 경영분권화 조치는 경제개혁의 성격이 약했으며, 본래 의도했던 경제단위의 효율성·생산성 제고와 가동 정상화를 유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존에 비합법적 영역이었던 소비재 시장을 종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제도화하고, 기업간 원자재·생산재 교류를 허용하는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의 합법적 등장은 북한의 시장화 현상을 북한 경제내에 구조화하는 역할을 했다.

주민이 국가에 정식으로 ‘장세’를 내고 종합시장에서 매대장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장·기업소들은 ‘기업소 자체계획’에 따라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에서 원자재를 조달해 생산품을 만든 다음 종합시장에서 상품판매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합법화되었다. 물론 공장·기업소들은 계획지표 달성의 명목으로 계획당국의 관리하에 이와 같은 경제활동을 하고, 국가기업이익금을 내야 했다.

그렇지만 과거 불법이었던 장사활동이 합법화되고, 경제단위들이 계획지표 수행이라는 명분하에 시장을 활용하는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면서 계획경제와 비공식경제간의 경계가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려워져 갔다. 주민들은 종합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활동을 해나가며, 종합시장 바깥의 장사활동(메뚜기 장사, 주택가·골목 장사, 방문판매) 및 사경제 활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특히 다양한 서비스업종(노래방·PC방·숙박업·운송·목욕탕·식당, 개인 수리업, 자전거·오토바이 배달 등)들이 발전되어 나갔다. 공장·기업소들은 기존 업종·생산 활동을 아예 변경해 국가기업이익금을 내거나, 돈주의 투자를 유도해 일체의 경영·생산 활동은 돈주가 행하고, 돈주로부터 수익금의 일정 몫을 받아 국가기업이익금을 내기도 했다

이런 현상 속에서 돈주가 중심인 사금융 시장도 발달되어 나갔다. 돈주는 상당한 규모의 화폐자산(주로 달러·위안화 등 외화)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시장화 현상이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상업금융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음을 이용해 실물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본을 대출·융통해 주고 이자수익을 획득하는 북한판 화폐자산가라 할 수 있다. 초기에는 주로 사채놀이를 행하였으나 북한의 시장화현상이 질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북한의 계획경제 부문, 즉 공식경제 부문도 경제활동 유지를 위해 시장을 활용하며 큰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2000년대부터는 돈주들이 비공식 경제부문 뿐만 아니라, 공식경제 부문에도 투자행위를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북한이 단기 업적 시현 차원에서 대규모로 추진하고 있는 평양 아파트 건설 같은 부동산 분야에도 돈주의 투자 없이는 건설이 어려울 정도로 돈주들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북한이탈주민에 의하면, 최근 돈주들의 사금융 행위는 예금, 자금이체, 송금, 담보 대출 등 일반 상업 금융기관이 행하는 금융행위로까지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돈주로 불리는 사람은

  • 재일동포 출신, 
  • 외화벌이 일꾼, 화교, 
  • 특권을 이용해 화폐자산을 축적한 간부(주로 부인들), 
  • 장마당에서 화폐자산가로 성장한 일반 주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돈주가 국영상점, 국영기업소 등에 투자해 ‘사회주의 모자를 쓰고’ 자본주의식 경영을 하게 되면서, 초기 형태의 임노동도 나타났다. 수산업 분야의 어부, 대규모 소토지 경작분야의 소작인, 벌이 버스의 개별 운전수, 상점의 점원, 국가 기관·기업소 명의를 갖고 사실상 개인이 경영하는 외화벌이 회사의 임금 노동자, 물류업에 종사하는 종업원 등 이른바 ‘시장 일공(日工)’이 등장한 것이다. 소속 기관·기업소·공장에 대신 자기 월급을 납부하고 사경제 활동을 하는 이른바 ‘8.3 노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적으로 고용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북한이탈주민들에 따르면, 국가로부터 받는 공식임금인 월급(생활비)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나갔다고 한다.

한마디로 7.1조치는 계획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시장기능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지만, 북한의 시장화 현상이 경제부문별(사금융, 노동, 생산, 유통, 건설, 서비스 등)로 더욱 심화·발전되어 나가게 하고, 의도치 않게 공식경제와 비공식 경제가 상호 공생하는 시스템을 구축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초래해, 북한은 2005년 하반기 이후 7.1조치 시행을 중단, 점진적으로 시장을 통제해 나갔다. “시장은 비사회주의의 서식장이요, 자본주의의 본거지”라고 주장하며, 2006년부터 점진적으로 시장활동을 단속·억압해 나갔다.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 전격 화폐개혁을 시행하며 종합시장도 철폐하려 시도했었다. 화폐개혁은 신·구 화폐를 1:100 비율로 교환하는 화폐교환 조치이지만, 북한은 이 조치를 시행하면서 중앙집중적 계획경제를 강화하고 공식 허용되었던 종합시장을 축소·철폐시키려 했다.

그러나 종합시장을 축소·철폐하려는 화폐개혁은 북한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2개월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미 주민들의 가계경제가 시장활동을 통해 대부분 유지되고 있고, 계획경제 공간도 시장에 의존해 작동하고 있으며, 국가의 재정수입조차 많은 부분 시장의 토대위에서 성취되는 경제현실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경부터 발전되기 시작한 북한의 시장화 현상은 결국 합법적·공식 경제 영역에까지 침투해 계획경제와 시장이 상호 활용하는 구조로까지 발전하였다. 북한이 적극적인 시장화 개혁을 취하지 않은 결과 경제구조가 이원화되는 모순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제는 결코 중앙집중적 계획경제체제로 회귀할 수 없는 현실이다.


(3) 시장의 활용과 재확산


2012년 4월 공식 출범한 김정은 정권이 직면한 북한경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일 정권 말기 전주민 동원정책을 시행해 2012년 강성국가 건설을 상징하는 희천발전소 건설 등 몇몇 대규모 건설사업 들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산업생산력이 아직 1980년대 후반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해 주민들에게 약속한‘먹는 문제’ 해결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2000년대 이후 구조화된 시장화 현상속에서 크게 확대된 경제의 양극화 해결과 함께 민생경제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김정일시대의 선군경제정책과 시장의 부분 활용→ 통제→ 묵인의 반복은 민생경제를 더욱 악화시켜 3대 세습정권의 명분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셋째, 경제관리 체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북한경제의 위기 상황이 더욱 확대되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었다. 제도와 경제현실간의 격차 확대는 경제의 양극화와 더불어 특권 세력들의 지대소득 확대만을 초래하고 있었다. 즉 시장 활동에서 산출되는 부가가치 및 잉여가치가 국가의 재정으로 유입되어 산업경제 정상화에 투입되는 경로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암시장만을 확산시켜왔을 뿐이다.

이에 김정은 정권은 2013년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선포하면서, 이른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점진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다. 즉 김일성 시대 이래 북한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인 경제·군사 병진노선을 고수하면서, 북한경제 내에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시장화 현상 일부를 수용해 경제의 효율화와 생산성 증대를 도모하려 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확립하는 것은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을 다그치는 관건적 고리”라고 하며,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일부 경제단위에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시범 시행하며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었다.

북한은 2016년 5월 개최된 제7차 당대회의 당사업총화 보고를 계기로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의 전면 확립을 공식화하고 있다.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은 과거 7.1조치가 농업·국영기업·가격·재정·유통 등 경제 각 부문별로 종합적·체계적으로 추진되었던 것과 달리, 아직 대외적으로 그 전모가 체계화된 내용으로 공표되어 있지 않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신보, 해외 언론과의 북한 경제학자 인터뷰 등을 통해 일부분 알려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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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농업분야에서 ‘분조관리제 하의 포전담당책임제’를 일부 지역과 협동농장에서 시행하고 있다.

포전담당책임제는 협동농장의 최종 작업조인 분조(15~20여 명, 50정보) 내에 포전을 담당하는 최종 노동단위를 3~5명으로 구성하고, 1인당 약 1정보씩 토지를 분배해 당국이 제공한 농자재 비용과 국가 몫 납부 후 초과생산물을 국가와 농민간에 일정 비율로 현물 분배를 시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제도는 현재 일부 지역에서 지역별로 변형된 방식으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즉 군량미 수매 우선 원칙, 현실에 안 맞는 계획 수매량, 기존 협동농장 조직체계의 유지,분배 토지등급의 차이, 분배 토지면적의 편차, 여전한 주체농정의 강조 등 문제로 인해 그 효과가 불명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째, 공장·기업소에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해 독립채산제 및 경영분권화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방공장의 경우 국가계획 외 기업소 자체 계획을 허용해 생산량, 생산물의 품질, 가격·임금 결정 등에 있어서 일부 권한을 부여하고, 초과 생산품의 시장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대안의 사업체계’라는 북한식 기업관리 체계가 유지되고 있고, 전력·자본·원부자재 부족 등으로 인해 일부 수출기업 외에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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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제관리개선조치 내용들은 사실상 2002년 7.1조치 및 2004년 확대 조치 방안을 대부분 재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7.1조치의 실험 중단과 시장의 통제와 묵인의 반복 속에 제도와 현실간의 격차가 더욱 확대된 상황을, 사후적으로 일부 수용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기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시장활용 정책 하에서 북한의 시장화 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내수시장이 확장되고, 이를 겨냥한 계획경제 부문의 ‘사회주의 모자를 쓴’ 경제활동이 확대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시장화 초기에 계획경제 부문의 상품·자원들이 시장에 유출됨으로써, 시장은 계획경제 부문을 잠식하는 경제공간 성격이 지대했다. 그러나 이제 시장은 계획경제 부문이 계획지표 수행에 필요한 원자재·자본 조달 및 판매시장의 역할을 함으로써, 시장은 계획경제 공간과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대외 개방 정책
(1) 모기장식 개방과 4대 특구 개설

북한은 1990년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로 산업연관 관계의 단절 현상이 야기되자 대외경제 개방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소련으로부터 우호가격으로 제공받아왔던 원유, 코크스, 기초 원자재 등을 이제는 국제시장에서 정상 교역의 무역 관계로 조달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체제 위협요인으로 인식하는 북한은 “문은 열되 모기장을 치고 연다”는 의미의 ‘모기장식개방론’을 내세우고 1991년 12월 처음으로 함경북도 최북단 항구 도시인 나진·선봉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외국인투자관련법 등을 제정하였다.

북한은 처음에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중계무역, 수출가공, 관광 및 금융 중개 기능을 수행하는 국제 교류의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1993년 1월 31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으로 나선경제무역지대법이 채택되었다. 국제사회의 부족한 관심으로 소강상태에 있던 나선경제특구 개발은 2009년 12월 김정일의 나선시 현지지도와 2010년 두 차례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다시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소 소원했던 북·중 간 경제협력이 강화되기 시작하였고, 북한은 중국 자본을 유치해 나선경제특구를 대외무역 전진기지로 육성하고자 노력하였다.

북한은 2010년에 나선시를 특별시로 격상시켰으며, 2015년 11월 18일에는 북한의 대외매체인 ‘내나라’를 통해 총 154.8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나선경제특구 종합개발계획’를 발표하였다. 나진항물류산업구, 신흥경공업구 등 산업구 9곳 개발에 92.2억 달러를, 비파섬생태관광구 등 관광지 10곳에 62.6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나선경제특구 내 기업 수는 2014년 1월 현재 북한 기업 120여 개, 외국투자 기업 150개 등 총 270여 개에 달하며, 외국 기업의 총 투자액은 2013년 5월까지 약 4.1억 유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투자 기업은 대부분 중국 기업이며, 러시아·미국·이탈리아·태국 등에서도 투자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외국 기업으로는 동북아시아전화통신회사, 나선국제유한회사 등이 있다. 북한 기업들은 공업·농업·수산업 분야들의 회사들로서, 금속가공과 식료품·수산물·피복 등을 생산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북한은 자력으로는 1990년대 붕괴된 산업경제를 정상화시킬 수 없음을 인식하고 변방의 경제특구를 확대해 나갔다. 2002년 7.1조치를 시행하면서 「신의주특별행정기본법」, 「개성공업지구법」, 「금강산관광지구법」 등을 제정하여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신의주·개성·금강산까지 더하여 4대 경제특구를 지정하였다.

신의주는 특수행정 단위로 중앙의 관할 아래에 두지만 자율적인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부여하려고 했다. 정치제도 면에서는 홍콩식을, 경제특구 제도 면에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토양 위에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한 중국의 선천 특구를 선별 혼합한 방식의 내용을 각각 담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당시 계획한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중국의 초대 행정관으로 임명된 화교 사업가 양빈이 중국 당국에 탈세 혐의로 체포되면서 무산되었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는 남한자본이 단독 투자·개발하는 형태의 특구로 개설되었다. 그러나 남북한 합의와 달리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는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과 도발로 인해 중단되어 있는 상태이다.


(2) 대중국 개방 확대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등 연이은 대남도발로 남북경협이 위축되자, 대중국 개방을 더욱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고 외화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대외경제 정책을 변화시켰다. 2011년 황금평·위화도를 새로운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이를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함께 중국과 공동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 3성지역과 북한 북부 접경지역의 교량, 도로, 철도 등 교통 인프라를 확대·연결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북한이 나선,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를 중국과 공동 개발하려 했던 것은 북·중 간 정치적 요인도 있지만 경제적 수요도 작용했다. 우선 중국은 제1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2005년~2010년) 추진 이후 향후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동북 3성 지역을 주목했다. 따라서 동북 3성 지역 개발에 주변 지역인 몽골, 러시아, 북한과의 접경지역 연계발전이 절실했었다. 특히 2009년 9월 중국의 국가전략으로 확정해서 추진하고 있는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개방선도구’의 추진에 북한의 나진항을 이용한 동해로의 출로 확보가 절대 요구되고 있었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돌파, 5.24조치로 위축된 새로운 외화벌이 원천 추구 그리고 2012년 강성국가 달성을 위한 경제건설 등으로 대중국 경제관계 확대가 필요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과 계속되는 북한의 핵실험 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인해 양 지역 경제특구 개발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우선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의 경우 형식상 관리위원회 건물만 건축된 후 사실상 추진되지 않고 있다. 나진·선봉 특구의 경우 중국 자본 투자가 주로 식당·가라오케·물류업 등 서비스 업종 위주이고, 인프라 및 제조업 부문 투자는 적극 추진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나진항을 이용한 자국 남방지역으로의 물류이동에 필요한 원정리-나진간 도로 확장·개선과 제2두만강대교만 건설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중국자본의 대북 투자 역시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경제개발구 신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나선, 신의주, 황금평·위화도, 금강산, 개성공업지구 등 경제특구(개별 특별법에 의한 특수경제지대)외에 지방에도 경제개발구를 개설할 것을 의도하고 있다. 2013년 5월 29일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순차적으로 경제개발구 설치를 발표함으로써 2015년 12월 현재 경제특구 5개, 중앙급 경제개발구 4개, 지방급 경제개발구 17개 등 총 26개에 이른다. 북한이 기존에 발표한 5개의 경제특구(나선 경제특구,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 개성공업지구, 원산·금강산관광지구, 신의주 국제무역지대)를 제외하면, 김정은 정권이 새롭게 지정한 경제특구·경제개발구는 무려 21개나 된다.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발구 추진은 기존 북한의 대외개방 정책보다 확대된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첫째, 중국식 경제특구 정책을 모방해 경제특구·개발구를 중앙급·지방급으로 이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존의 종합 경제특구가 아닌 각 지방 정부들이 보유한 비교우위 요소를 기초로 특화된 경제개발구들(2015년 12월 현재 경제개발구 5개, 공업개발구 4개, 농업개발구 3개, 관광개발구·특구 4개, 수출가공구 3개, 첨단기술개발구 1개, 국제녹색시범구 1개 등)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셋째, 기존과는 달리 경제개발구 지대 밖의 북한 기업이 새로운 경제특구·경제개발구에 진출할 수 있게 하고(경제개발구법 제20조), 지대 내의 외국자본이 지대 밖의 북한 기업들과 연계될 수 있도록(경제개발구 기업창설규정제21조) 제도화하였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나진 및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은 지대 밖 북한의 기업들과 위탁가공 내지는 생산공정의 분업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발구 정책은 근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외자유치가 쉽지 않은 여러 현실 여건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된 북핵 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북한의 시장개혁 지체, 개성공단의 중단 위기 사례, 전력 부족과 열악한 인프라, 낙후된 물류 체계, 시장경제 의지 및 전문가 부족, 김정은 정권의 내부 불안정 요소 등이 외자유치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경제특구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가 국제질서에 적극 편입하는 대외정책을 시행하며, 최고 지도자가 개혁·개방 의지를 확고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특구 지역과 국내 산업·시장의 연계를 위한 대내 시장개혁을 중단 없이 지속해 나가고, 중앙·지방 정부가 외자유치에 필수적인 법제도 및 인프라를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외자유치의 관건은 그 나라 정부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고 인프라 등 자본 유치의 여건이 마련되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이 대외개방과 개혁을 동시에 시행하는 종합계획을 제시하고 핵개발 포기의지를 적극 표명하지 않는 한 경제개발구 정책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3.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 전망

김정은 정권은 1990년대 이후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경제난과 추락한 산업생산력을 복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질서에 적극 편입하여 해외자본을 활용하는 경제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도는 계획경제이지만 현실은 시장화가 확산되고 있는 경제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고, 시장화 확대를 통해 산출되고 있는 부가가치들을 경제 개발을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 김정은 정권은 선대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 기조를 전제로 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 경제개발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핵 능력 강화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모색하는 병행전략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보다는 다소 민생경제 회복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을 거부하며 북한식 변화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체제 유지 분야에 재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두는 경제정책을 여전히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이후 북한식 변화의 모색과 중단을 반복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 대한 통제와 묵인 속에 1990년대 이후 북한 시장화 현상이 양적·질적으로 지속 발전되어 온 양상과 달리, 제한된 개방과 시장 기능의 부분 활용이라는 양면 정책을 시행→ 중단→ 재시도 등으로 반복해 왔다. 이로 인해 북한이 시도하는 ‘변화정책’들은 현실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시장화 현상을 적극적으로 제도화하지 못하고, 아래로부터의 압박을 사후적으로 수용하는 소극적 조치들에 머무르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북한 경제체제는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가 크게 확장되고, 계획과 시장이 병존하는 이중구조적 경제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향후 이러한 모순을 해소할 적극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지 않는다. 북한체제의 내재적 딜레마가 김정은 정권의 선택지에 제한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난 극복과 경제개발을 위해 개혁·개방이 불가피한데, 이것은 북한체제의 내구력에 손상을 입히고 체제전환 요소를 확장시켜 나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정은 정권은 향후에도 ‘북한식 변화경로’를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북한 경제체제의 이행기적 성격도 지속시켜 나갈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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