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5

백승종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 동춘당 송준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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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2000/08/25

동춘당 송준길의 편지

16세기의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토론 주제를 열거하라면, 이기설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열기는 애초 「천명도설」에서 불타올랐다고 하겠다. 17세기 초반, 이 주제에 관한 선비들의 관심은 무척 높았다. 1635년(인조 13), 당년 30세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쓴 한 편의 편지가 나의 눈길을 끈다.

송준길은 자신의 스승 김장생을 추모하는 글에서, 이황과 이이의 이기설理氣說을 논평한 적이 있었다. 그 글이 영남의 사림을 자극해 많은 비판이 일어났다. 송준길은 친척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재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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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이황) 선생은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논하면서,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른 것이요(理發而氣隨之),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탄 것(氣發而理乘之)’이라 하였네. 이 주장을 율곡(이이) 선생이 상세히 고찰한 결과, 좀 다른 결론이 나왔네.
‘펼치는 것은 기(氣)요, 펼치게 만드는 것은 이(理)라. 기가 아니면 펼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펼치게 할 수 없다. 하필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는 칠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도 그와 같다.’ 

선사先師(김장생)께서는 율곡의 주장을 따랐지. 선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장인(정경세)도 그러하였지. 일찍이 내가 장인께 ‘퇴계와 율곡의 이기설이 서로 다릅니다. 누구의 주장을 따라야 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네. 

장인께서 말씀하셨지. ‘율곡의 설이 옳은 것 같다. 내가 체험한 것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사당(家廟)에 들어서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것은 존경심(敬)이 나타난 것인데, 그 숙연함은 기가 아니냐.’ 그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네.

어떤 학자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분을 존경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볼 수 있겠는가. 송나라의 정자程子(정씨 형제)는 맹자를 존경하였으나, 성性에 관한 맹자의 주장이 정밀하지 못하다고 하였네. 그래서 정자는 기질설氣質說을 주장하였네. 주자(주희)가 정자를 존경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나, 경전을 해석할 때 정자의 주장을 부정한 곳이 실로 많았네.”

(송준길, 『동춘당 속집』 제6권, 「동춘당연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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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의 글을 읽은 소감을 두 가지만 간단히 적어볼까 한다.

첫째, 전국의 선비들이 자신의 독창적인 주장을 펴기보다는 16세기의 대학자 이황과 이이의 편으로 양분되었다. 서인은 이이를, 동인은 이황을 추종했다. 

둘째, 17세기 전반까지도 송준길처럼 ‘건전한’ 선비들이 적지 않았다. 신봉하는 학설은 달라도 그 때문에 상대편의 학문과 인격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이 되면 그 사정은 급속히 악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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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승종,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사우, 2019; 세종우수교양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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