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전자책] 조국이 버린 사람들 :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기록 김효순 (지은이)
서해문집2015-09-20
440쪽
책소개
440쪽
책소개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해인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는 “모국 유학생을 가장해 국내 대학에 침투한 재일동포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언론에 공표했다. 이 사건은 당시 재일동포 사회를 공포와 충격 속에 몰아넣었고, 그 상처는 지금도 온전히 아물지 않은 채 봉합돼 있다.
이 책은 2010년부터 시작된 재심을 계기로 재일동포 사건의 실체를 재조명하기 위해 쓰였다. 재일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가혹한 운명이 어떤 시대적 맥락,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했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역사학자 박경식과 26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 이회성, 일본 사법연수소 국적 조항의 장벽을 뚫고 첫 재일동포 변호사가 된 김경득의 삶을 통해서 1970년대 재일동포 청년들이 놓였던 특수한 처지와 성장환경 그리고 그들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큰 그림으로 그렸다.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과 성고문을 폭로한 권말자와 고순자. ‘11·22사건’으로 구속돼 법정에서 경제학도로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존경한다는 말로 ‘반공이 국시’라는 허구성을 폭로한 김원중. 201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아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가 된 이종수, 그는 가혹 행위의 절정은 성기 고문이었다고 토로한다.
목차
추천의 글 | 이석태
들어가는 글
1 학자, 작가, 변호사의 삶으로 본 1970년대 재일동포
2 두 재일동포 여성의 용감한 폭로
3 학문의 자유와 김원중
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5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 이종수
6 야쿠자 두목 양원석과 한·일 우익의 동맹 맺기
7 김정사 사건과 한민통 불법화
8 중앙정보부의 민단 장악과 민단 내 ‘자주파’ 거세
9 서 형제 사건과 전향공작
10 사형수의 삶_강종헌, 이철, 김달남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12 일본의 구원운동과 한일 시민사회의 만남
13 일본인 구원활동가들은 누구인가
나오는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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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효순 (지은이)
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창간에 간여해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2007년부터 취재 현장에서 대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직했고,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한일 관계, 동아시아의 평화, 화해, 시민운동 등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으며, 역사에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저서에 《조국이 버린 사람들》(2015), 《간도 특설대》(2014), 《역사가에게 묻다》(20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 더보기
최근작 :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인권, 세계를 이해하다>,<리영희를 함께 읽다>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재일동포 조작 간첩 피해자들이 당한 억울한 사정과
당시 군사 정권의 어두운 그늘과 부도덕성이 낱낱이 드러나다”
올해는 ‘11·22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된다. 그러나 201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 ‘11·22사건’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1·22사건’은 한국인의 기억에서 지워져 있다. 아니 애초부터 입력돼 있지 않았으니 지워졌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해인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는 “모국 유학생을 가장해 국내 대학에 침투한 재일동포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언론에 공표했다. 이 사건은 당시 재일동포 사회를 공포와 충격 속에 몰아넣었고, 그 상처는 지금도 온전히 아물지 않은 채 봉합돼 있다.
불행히도 ‘11·22사건’은 단막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독재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져 정국이 불안해지거나, 대학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활발해질 조짐이 보이면 유학생 사건은 마치 주문생산이라도 하듯 어김없이 나타났다.
물론 재일동포 유학생이 간첩 사건에 휘말린 것은 ‘11·22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1971년 4월 대통령선거 직전 발표된 서승·서준식 형제 사건이다. 형제가 함께 구속된 데다 가혹한 고문 의혹이 제기돼 일본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다. 서승의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서준식의 목숨을 건 옥중 전향공작 고문 폭로와 장기간의 보안감호처분으로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또한 재일동포 사건은 유학생만이 전부가 아니다. 학자, 교수, 기술자, 언론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됐다. 멀리는 1961년 민족일보 사건, 집권당 국회의원이 간첩으로 구속된 1969년 김규남 사건 그리고 2014년 봄 <상처꽃>이란 연극 상연으로 다시 조명을 받은 1974년 울릉도 사건도 다 연관이 있다.
재일동포 사건은 오랜 기간 국내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정보기관들이 요란하게 발표했던 사건들이 있는 반면, 1심부터 상고심까지 사형선고의 행진이 계속된 사건조차 재판 과정이나 선고 내역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들도 제법 있다. 그래서 20대 젊은이들이 감옥에서 수갑을 찬 채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어도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들은 법정에서도, 언론에서도 외면받았고, 옥중에서도 국내의 ‘민주인사’와 분리돼 고립됐다. 재일동포 사건의 피의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줄 사람은 국내에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재일동포 사건에도 뒤늦게나마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 2010년 말 재일동포 간첩조작의혹 사건의 재심을 전담하는 법률가 조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이석태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변호사들로 ‘재일동포재심변호단’이 꾸려져 재심을 통해 피해자의 무죄판결과 명예회복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결국은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 책은 2010년부터 시작된 재심을 계기로 재일동포 사건의 실체를 재조명하기 위해 쓰였다. 재일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가혹한 운명이 어떤 시대적 맥락,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했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역사학자 박경식과 26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 이회성, 일본 사법연수소 국적 조항의 장벽을 뚫고 첫 재일동포 변호사가 된 김경득의 삶을 통해서 1970년대 재일동포 청년들이 놓였던 특수한 처지와 성장환경 그리고 그들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큰 그림으로 그렸다.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과 성고문을 폭로한 권말자와 고순자. ‘11·22사건’으로 구속돼 법정에서 경제학도로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존경한다는 말로 ‘반공이 국시’라는 허구성을 폭로한 김원중. 201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아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가 된 이종수, 그는 가혹 행위의 절정은 성기 고문이었다고 토로한다.
오랫동안 재일동포 취재 경력으로 ‘조선기자’라는 별칭을 얻은 무라오카 히로토. 그의 생생한 회고담에서 진보당 사건과 민족일보 사건 그리고 망명객 이영근의 흔적을 읽는다. 보국훈장을 받은 야쿠자 두목 양원석, 그가 어떻게 보안사령부의 정보꾼 노릇을 하면서 한일 우익 동맹의 연결고리가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또한 모국 정권과의 관계 정립을 둘러싼 민단 내부의 오랜 갈등과 한민통 불법화 과정, 서 형제 사건을 통한 전향공작 제도와 폐지 운동 그리고 구속된 유학생 가족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한다.
더불어 사형수의 삶을 살았던 강종헌, 이철의 기구한 사연이 펼쳐진다. 중학교 2학년 때 지문날인의 정신적 충격을 겪은 뒤 민주화와 통일을 바라는 재일한국인 청년으로서 모국 유학을 결심했다는 강종헌과 약혼자와 함께 구속되어 12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린 이철. 둘 다 사형 확정을 받고 10여 년이 넘게 수감돼 있다가 감형으로 일본으로 돌아간 경우다.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으로 기억될 울릉도 사건을 일본에서 정치범 석방운동을 주도한 이좌영의 삶을 통해 돌아본다.
그밖에도 모국의 민주화 운동에 소극적이나마 동참하고 싶었던 동포청년의 의식과 정치범 구원활동을 통한 한일 시민사회의 만남 등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엄혹했던 시절을 드러낸다.
저자는 결국은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과 좌절과 흘러간 세월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희망을 찾으러 모국에 왔다가 가혹하게 버림받은 재일동포 정치범 희생자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민 적이 없었다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재일동포 피해자들이 비로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한때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애정을 갈구했으나 결국은 이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버린 조국의 구성원들,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창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분단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이 책이 재일동포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치유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믿는다. 재심 재판에 참여한 우리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재판 과정에서는 미처 알지 못한 여러 숨겨진 진실들을 알게 되었다.”
- 이석태(변호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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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타자의 자리를 잡고 있는 재일 유학생에 대해 슬픈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구매
JEDIHONG 2015-08-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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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되풀이된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을 보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은 한적한 오후 시간대, 하루에 단 한 번, 그것도 단 일주일만 상영하는 영화.. 오늘이 그 마지막날이었다..
역시 바삐 일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시간대라서인지, 극장 안은 한산했다..
그리고 1시간 43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말 그대로 지옥을 보았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의 자기부정, 합리화를 다룬 영화라면(하지만 그 합리화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피해자 역을 맡은 살인자가 그 공포를 참아내지 못하고 구역질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이 다큐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재조명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권좌에 앉아 있는 현실, 그리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억압과 공포가 드리워져 있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살아간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형 람디의 죽음을 추적하며 관련자들을 찾아가는 동생 아디에게 그들은 "왜 평화로운 이 세상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들쑤시느냐",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잊어라"라고 말한다.. 아니, 때로는 "너같은 놈들이 숨어있는 빨갱이라며" 대놓고 위협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살인행위를 뉘우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웃으며 자신이 했던 살인을 무용담처럼 지껄여댄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자신이 한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는 아디는 가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거대한, 굳건한 장벽과 같은 것을 실감한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며,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들쑤시고 있다며 위협하는 가해자들 앞에서 아디는 점점 말을 잃어간다.. 눈물이 고인 채 멍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의 슬픈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해자/학살자는 여전히 승리를 멈추지 않고 있고 피해자는 여전히 패자로, 두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닫은 채 살 수밖에 없는 사회.. 아니 이것도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게 비단 머나먼 저 동남아시아의 이야기일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기극의 피해자들이었던 이들의 질곡의 삶을 그려낸 이 책(<조국이 버린 사람들>)을 읽노라면, 그것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도, 그리고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이미 서승, 서경식 선생의 글들을 통해 서씨 형제의 사건은 한국사회에도 조금이나마 알려졌지만, 우리는 그 외 수십 명의 자이니치 청년들이 과거 70년대 군부 독재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왜 일본에서 살수밖에 없었는지, 왜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모국어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들이 70년대 풍요로운 일본 사회를 뒤로 한 채 독재의 서슬퍼런 한국사회로 유학을 왔는지, 우리 사회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남과 북의 사회를 바라보던 그들은 공안당국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예전 <제 5공화국>이라는 드라마에서 이학봉 역을 맡은 탤런트가 실감나게 말했던 명대사, <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들은 정말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엮여서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별로 없었던 그들은 형무소에서 자행되는 온갖 폭력을 몸소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세상이 정말 좋아졌을까..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들의 활동으로 그나마 우리는 과거 군부 독재시절의 폭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법적으로 많은 이들이 다시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잃어버린 청춘의 세월을, 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시의 가해자들이 진정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한 적 있었던가.. 그들은 여전히 승리자로, 권력의 상층부에 앉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침묵의 시선>을 보면서 내내 느꼈던 불편함, 역겨움, 그리고 비참함은 그 현실이 바로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느낌이었다.. 우리네 현실이 그나마 영화 속의 그 지옥보다 나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소름끼치는 폭력에 맞서 계속해서 말하고 또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계속 과거의 상처를 응시하고 말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상처를 왜 들쑤시느냐>,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하는 <양식 있는> 사람들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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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스뜨 2015-09-0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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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조국은 존재했었나? 새창으로 보기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핍박받아온 사람들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현재 우리 국가의 국시는 자유민주주의이겠죠? 한때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일때가 있었죠. 경쟁적으로 간첩을 만들어야할때가 있었나봅니다. 민혁당이네, 4.3사건, 보도연맹..등등.
21세기 들어와서 무죄로 판명나 돌아가신 영혼이라도 마음을 달랬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재일동포이면서도 조국이 그립고, 조국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고자 한국에 들어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그 모진 세월을 감옥에서 썩히다니요..분하고 분하고 제가 너무나도 미안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도쿄경제대 교수이자, 저술가인 서경식 교수의 두 형들의 일은 너무너무 가슴아파 눈물이 나더군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우리나라를 떠날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밑에서 자라난 죄밖에 없는 것을..강상중교수가 독일로 유학갔기망정이지 그도 한국으로 왔다면 감옥에 들어갔을 겁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습니다. 재일동포들이 한국인에게 왜 그리 쌀쌀맞게 대했는지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늦게나마 책으로라도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운나빴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그러한 판결을 내렸던 판,검사들이 아직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걸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것같습니다. 아프지만,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대신해서 진실규명에 애쓰셨던 선한 일본인들에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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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너그러움 2019-11-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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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시민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든다 새창으로 보기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에 재일동포의 국적은 대부분 '조선'이었다. 그것은 남과 북 어느 한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반도(조선반도)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한국 정부는 일본 영주권을 보장받으려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도록 하고 남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했다. 이런 과정에서 정보부 요원은 자연스럽게 동포사회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민단의 간부나 사업하는 상공인은 정보부 요원의 눈치를 살피고 접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눈 밖에 나는 언동을 했다가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민단의 각급 조직은 선거를 통해 집행부를 선출하는 데 경쟁 후보를 제거하기 위해 정보부 요원을 이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경쟁 후보가 총련 쪽 인사와 비밀접촉을 한다든지 가족 중에 북한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밀고해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있었다. (210)
1980년 9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견하기도 했던 이카리는 서 형제 사건과 관련해 국내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혹독한 남북대립 속에서, 그리고 공산주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박 정권 아래서 서 형제는 '비국민' '비인간' 취급을 받았다. 당국의 규제를 받은 한국의 매스컴은 형제의 공판정에 나와서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형제를 보고, 자신들의 귀로 형제의 얘기를 들어려고 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재판 진행 중에 형제를 실명으로 등장시킨 스파이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까지 했다. 서 형제는 이런 방법으로 중요한 한국의 민중으로부터 고립되어져 갔다." (261)
"우리 재일한국인 정치범 가족은 지금 박정희 일당으로부터 자신들의 육친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이 투쟁은 결코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다. 우리 가족을 진정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조국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의 체험과 역사를 통해 아프도록 교훈을 얻고 있다." (354)
그래서 자이니치가 놓인 여러 가지 정치 상황과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일본인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6년 이후 석방운동 관련 집회가 시작되면 오사카 민단의 간부와 청년들이 찾아와 격렬히 항의했다. 이들은 구원운동 활동가에게 "너희들은 36년 식민통치를 잊었냐. 식민통치를 반성한다면 이런 집회를 할 수가 없다. 스파이로 잡힌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시비를 걸었다. 활동가들은 "식민통치에 대한 반성이 있기 때문에 구원집회를 한다"고 반박했다. 집회당 입구에는 젊은 사람들로 방위대를 편성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민단 내부에서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는 체제파와 비주류의 대립도 격렬했다. (423)
굶어죽다시피 한 박정기의 사례에서 보듯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의 피해자들은 구속 기소돼 장기간 감옥에 수감됐던 사람들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기관에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채 풀려난 사람들, 수사관의 가혹행위와 회유를 이겨내지 못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대야 했던 사람들, 검찰 쪽 증인으로 법정에 불려나와 조작사건의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야 했던 사람들, 자신의 친구와 동료가 간첩으로 몰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며 침묵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 이 모두가 피해자다. 이들이 입었던 정신적 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의식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하지도 않았다.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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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스토커 2018-11-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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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0년부터 시작된 재심을 계기로 재일동포 사건의 실체를 재조명하기 위해 쓰였다. 재일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가혹한 운명이 어떤 시대적 맥락,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했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역사학자 박경식과 26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 이회성, 일본 사법연수소 국적 조항의 장벽을 뚫고 첫 재일동포 변호사가 된 김경득의 삶을 통해서 1970년대 재일동포 청년들이 놓였던 특수한 처지와 성장환경 그리고 그들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큰 그림으로 그렸다.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과 성고문을 폭로한 권말자와 고순자. ‘11·22사건’으로 구속돼 법정에서 경제학도로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존경한다는 말로 ‘반공이 국시’라는 허구성을 폭로한 김원중. 201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아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가 된 이종수, 그는 가혹 행위의 절정은 성기 고문이었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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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이석태
들어가는 글
1 학자, 작가, 변호사의 삶으로 본 1970년대 재일동포
2 두 재일동포 여성의 용감한 폭로
3 학문의 자유와 김원중
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5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 이종수
6 야쿠자 두목 양원석과 한·일 우익의 동맹 맺기
7 김정사 사건과 한민통 불법화
8 중앙정보부의 민단 장악과 민단 내 ‘자주파’ 거세
9 서 형제 사건과 전향공작
10 사형수의 삶_강종헌, 이철, 김달남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12 일본의 구원운동과 한일 시민사회의 만남
13 일본인 구원활동가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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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지은이)
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창간에 간여해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2007년부터 취재 현장에서 대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직했고,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한일 관계, 동아시아의 평화, 화해, 시민운동 등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으며, 역사에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저서에 《조국이 버린 사람들》(2015), 《간도 특설대》(2014), 《역사가에게 묻다》(20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 더보기
최근작 :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인권, 세계를 이해하다>,<리영희를 함께 읽다> … 총 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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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재일동포 조작 간첩 피해자들이 당한 억울한 사정과
당시 군사 정권의 어두운 그늘과 부도덕성이 낱낱이 드러나다”
올해는 ‘11·22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된다. 그러나 201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 ‘11·22사건’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1·22사건’은 한국인의 기억에서 지워져 있다. 아니 애초부터 입력돼 있지 않았으니 지워졌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해인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는 “모국 유학생을 가장해 국내 대학에 침투한 재일동포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언론에 공표했다. 이 사건은 당시 재일동포 사회를 공포와 충격 속에 몰아넣었고, 그 상처는 지금도 온전히 아물지 않은 채 봉합돼 있다.
불행히도 ‘11·22사건’은 단막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독재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져 정국이 불안해지거나, 대학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활발해질 조짐이 보이면 유학생 사건은 마치 주문생산이라도 하듯 어김없이 나타났다.
물론 재일동포 유학생이 간첩 사건에 휘말린 것은 ‘11·22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1971년 4월 대통령선거 직전 발표된 서승·서준식 형제 사건이다. 형제가 함께 구속된 데다 가혹한 고문 의혹이 제기돼 일본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다. 서승의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서준식의 목숨을 건 옥중 전향공작 고문 폭로와 장기간의 보안감호처분으로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또한 재일동포 사건은 유학생만이 전부가 아니다. 학자, 교수, 기술자, 언론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됐다. 멀리는 1961년 민족일보 사건, 집권당 국회의원이 간첩으로 구속된 1969년 김규남 사건 그리고 2014년 봄 <상처꽃>이란 연극 상연으로 다시 조명을 받은 1974년 울릉도 사건도 다 연관이 있다.
재일동포 사건은 오랜 기간 국내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정보기관들이 요란하게 발표했던 사건들이 있는 반면, 1심부터 상고심까지 사형선고의 행진이 계속된 사건조차 재판 과정이나 선고 내역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들도 제법 있다. 그래서 20대 젊은이들이 감옥에서 수갑을 찬 채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어도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들은 법정에서도, 언론에서도 외면받았고, 옥중에서도 국내의 ‘민주인사’와 분리돼 고립됐다. 재일동포 사건의 피의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줄 사람은 국내에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재일동포 사건에도 뒤늦게나마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 2010년 말 재일동포 간첩조작의혹 사건의 재심을 전담하는 법률가 조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이석태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변호사들로 ‘재일동포재심변호단’이 꾸려져 재심을 통해 피해자의 무죄판결과 명예회복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결국은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 책은 2010년부터 시작된 재심을 계기로 재일동포 사건의 실체를 재조명하기 위해 쓰였다. 재일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가혹한 운명이 어떤 시대적 맥락,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했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역사학자 박경식과 26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 이회성, 일본 사법연수소 국적 조항의 장벽을 뚫고 첫 재일동포 변호사가 된 김경득의 삶을 통해서 1970년대 재일동포 청년들이 놓였던 특수한 처지와 성장환경 그리고 그들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큰 그림으로 그렸다.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과 성고문을 폭로한 권말자와 고순자. ‘11·22사건’으로 구속돼 법정에서 경제학도로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존경한다는 말로 ‘반공이 국시’라는 허구성을 폭로한 김원중. 201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아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가 된 이종수, 그는 가혹 행위의 절정은 성기 고문이었다고 토로한다.
오랫동안 재일동포 취재 경력으로 ‘조선기자’라는 별칭을 얻은 무라오카 히로토. 그의 생생한 회고담에서 진보당 사건과 민족일보 사건 그리고 망명객 이영근의 흔적을 읽는다. 보국훈장을 받은 야쿠자 두목 양원석, 그가 어떻게 보안사령부의 정보꾼 노릇을 하면서 한일 우익 동맹의 연결고리가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또한 모국 정권과의 관계 정립을 둘러싼 민단 내부의 오랜 갈등과 한민통 불법화 과정, 서 형제 사건을 통한 전향공작 제도와 폐지 운동 그리고 구속된 유학생 가족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한다.
더불어 사형수의 삶을 살았던 강종헌, 이철의 기구한 사연이 펼쳐진다. 중학교 2학년 때 지문날인의 정신적 충격을 겪은 뒤 민주화와 통일을 바라는 재일한국인 청년으로서 모국 유학을 결심했다는 강종헌과 약혼자와 함께 구속되어 12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린 이철. 둘 다 사형 확정을 받고 10여 년이 넘게 수감돼 있다가 감형으로 일본으로 돌아간 경우다.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으로 기억될 울릉도 사건을 일본에서 정치범 석방운동을 주도한 이좌영의 삶을 통해 돌아본다.
그밖에도 모국의 민주화 운동에 소극적이나마 동참하고 싶었던 동포청년의 의식과 정치범 구원활동을 통한 한일 시민사회의 만남 등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엄혹했던 시절을 드러낸다.
저자는 결국은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과 좌절과 흘러간 세월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희망을 찾으러 모국에 왔다가 가혹하게 버림받은 재일동포 정치범 희생자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민 적이 없었다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재일동포 피해자들이 비로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한때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애정을 갈구했으나 결국은 이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버린 조국의 구성원들,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창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분단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이 책이 재일동포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치유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믿는다. 재심 재판에 참여한 우리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재판 과정에서는 미처 알지 못한 여러 숨겨진 진실들을 알게 되었다.”
- 이석태(변호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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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타자의 자리를 잡고 있는 재일 유학생에 대해 슬픈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구매
JEDIHONG 2015-08-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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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되풀이된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을 보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은 한적한 오후 시간대, 하루에 단 한 번, 그것도 단 일주일만 상영하는 영화.. 오늘이 그 마지막날이었다..
역시 바삐 일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시간대라서인지, 극장 안은 한산했다..
그리고 1시간 43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말 그대로 지옥을 보았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의 자기부정, 합리화를 다룬 영화라면(하지만 그 합리화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피해자 역을 맡은 살인자가 그 공포를 참아내지 못하고 구역질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이 다큐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재조명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권좌에 앉아 있는 현실, 그리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억압과 공포가 드리워져 있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살아간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형 람디의 죽음을 추적하며 관련자들을 찾아가는 동생 아디에게 그들은 "왜 평화로운 이 세상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들쑤시느냐",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잊어라"라고 말한다.. 아니, 때로는 "너같은 놈들이 숨어있는 빨갱이라며" 대놓고 위협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살인행위를 뉘우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웃으며 자신이 했던 살인을 무용담처럼 지껄여댄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자신이 한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는 아디는 가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거대한, 굳건한 장벽과 같은 것을 실감한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며,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들쑤시고 있다며 위협하는 가해자들 앞에서 아디는 점점 말을 잃어간다.. 눈물이 고인 채 멍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의 슬픈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해자/학살자는 여전히 승리를 멈추지 않고 있고 피해자는 여전히 패자로, 두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닫은 채 살 수밖에 없는 사회.. 아니 이것도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게 비단 머나먼 저 동남아시아의 이야기일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기극의 피해자들이었던 이들의 질곡의 삶을 그려낸 이 책(<조국이 버린 사람들>)을 읽노라면, 그것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도, 그리고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이미 서승, 서경식 선생의 글들을 통해 서씨 형제의 사건은 한국사회에도 조금이나마 알려졌지만, 우리는 그 외 수십 명의 자이니치 청년들이 과거 70년대 군부 독재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왜 일본에서 살수밖에 없었는지, 왜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모국어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들이 70년대 풍요로운 일본 사회를 뒤로 한 채 독재의 서슬퍼런 한국사회로 유학을 왔는지, 우리 사회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남과 북의 사회를 바라보던 그들은 공안당국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예전 <제 5공화국>이라는 드라마에서 이학봉 역을 맡은 탤런트가 실감나게 말했던 명대사, <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들은 정말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엮여서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별로 없었던 그들은 형무소에서 자행되는 온갖 폭력을 몸소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세상이 정말 좋아졌을까..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들의 활동으로 그나마 우리는 과거 군부 독재시절의 폭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법적으로 많은 이들이 다시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잃어버린 청춘의 세월을, 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시의 가해자들이 진정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한 적 있었던가.. 그들은 여전히 승리자로, 권력의 상층부에 앉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침묵의 시선>을 보면서 내내 느꼈던 불편함, 역겨움, 그리고 비참함은 그 현실이 바로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느낌이었다.. 우리네 현실이 그나마 영화 속의 그 지옥보다 나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소름끼치는 폭력에 맞서 계속해서 말하고 또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계속 과거의 상처를 응시하고 말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상처를 왜 들쑤시느냐>,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하는 <양식 있는> 사람들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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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스뜨 2015-09-0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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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조국은 존재했었나? 새창으로 보기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핍박받아온 사람들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현재 우리 국가의 국시는 자유민주주의이겠죠? 한때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일때가 있었죠. 경쟁적으로 간첩을 만들어야할때가 있었나봅니다. 민혁당이네, 4.3사건, 보도연맹..등등.
21세기 들어와서 무죄로 판명나 돌아가신 영혼이라도 마음을 달랬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재일동포이면서도 조국이 그립고, 조국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고자 한국에 들어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그 모진 세월을 감옥에서 썩히다니요..분하고 분하고 제가 너무나도 미안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도쿄경제대 교수이자, 저술가인 서경식 교수의 두 형들의 일은 너무너무 가슴아파 눈물이 나더군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우리나라를 떠날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밑에서 자라난 죄밖에 없는 것을..강상중교수가 독일로 유학갔기망정이지 그도 한국으로 왔다면 감옥에 들어갔을 겁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습니다. 재일동포들이 한국인에게 왜 그리 쌀쌀맞게 대했는지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늦게나마 책으로라도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운나빴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그러한 판결을 내렸던 판,검사들이 아직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걸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것같습니다. 아프지만,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대신해서 진실규명에 애쓰셨던 선한 일본인들에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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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너그러움 2019-11-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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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시민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든다 새창으로 보기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에 재일동포의 국적은 대부분 '조선'이었다. 그것은 남과 북 어느 한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반도(조선반도)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한국 정부는 일본 영주권을 보장받으려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도록 하고 남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했다. 이런 과정에서 정보부 요원은 자연스럽게 동포사회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민단의 간부나 사업하는 상공인은 정보부 요원의 눈치를 살피고 접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눈 밖에 나는 언동을 했다가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민단의 각급 조직은 선거를 통해 집행부를 선출하는 데 경쟁 후보를 제거하기 위해 정보부 요원을 이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경쟁 후보가 총련 쪽 인사와 비밀접촉을 한다든지 가족 중에 북한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밀고해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있었다. (210)
1980년 9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견하기도 했던 이카리는 서 형제 사건과 관련해 국내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혹독한 남북대립 속에서, 그리고 공산주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박 정권 아래서 서 형제는 '비국민' '비인간' 취급을 받았다. 당국의 규제를 받은 한국의 매스컴은 형제의 공판정에 나와서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형제를 보고, 자신들의 귀로 형제의 얘기를 들어려고 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재판 진행 중에 형제를 실명으로 등장시킨 스파이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까지 했다. 서 형제는 이런 방법으로 중요한 한국의 민중으로부터 고립되어져 갔다." (261)
"우리 재일한국인 정치범 가족은 지금 박정희 일당으로부터 자신들의 육친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이 투쟁은 결코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다. 우리 가족을 진정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조국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의 체험과 역사를 통해 아프도록 교훈을 얻고 있다." (354)
그래서 자이니치가 놓인 여러 가지 정치 상황과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일본인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6년 이후 석방운동 관련 집회가 시작되면 오사카 민단의 간부와 청년들이 찾아와 격렬히 항의했다. 이들은 구원운동 활동가에게 "너희들은 36년 식민통치를 잊었냐. 식민통치를 반성한다면 이런 집회를 할 수가 없다. 스파이로 잡힌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시비를 걸었다. 활동가들은 "식민통치에 대한 반성이 있기 때문에 구원집회를 한다"고 반박했다. 집회당 입구에는 젊은 사람들로 방위대를 편성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민단 내부에서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는 체제파와 비주류의 대립도 격렬했다. (423)
굶어죽다시피 한 박정기의 사례에서 보듯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의 피해자들은 구속 기소돼 장기간 감옥에 수감됐던 사람들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기관에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채 풀려난 사람들, 수사관의 가혹행위와 회유를 이겨내지 못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대야 했던 사람들, 검찰 쪽 증인으로 법정에 불려나와 조작사건의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야 했던 사람들, 자신의 친구와 동료가 간첩으로 몰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며 침묵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 이 모두가 피해자다. 이들이 입었던 정신적 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의식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하지도 않았다.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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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스토커 2018-11-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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