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1m9 StAouSgiugopsoetl ansto Snreah05iSeg:sgd2f3i ·
도법 스님의 ‘붓다, 중도로 살다’와 라즈니쉬의 ‘42장경 해설’을 보면서, 깨달음의 삶이라는 종교적 영역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적 실천 특히 정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중도는 현실을 자신의 선입관이나 신념체계나 이해관계를 넘어서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며 그 시점에서 가장 옳은 길을 찾아서 실천하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인간의 인식작용을 과학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사실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가는 과정이 중도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치 현실이 엄혹하다보니까, 자연히 그 쪽에 눈이 많이 갑니다.
마침 라즈니쉬를 읽으면서, 중도를 발견하기 위한 심리적 상태에 대한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스로나’라는 온갖 방탕에 절어 살아왔던 부유한 왕자가 붓다를 만나 크게 깨닫고 비구로 받아들여달라고 재촉을 하는데 붓다가 기다리라며 머뭇거리자, 제자들이 말한다.
“왜 주저하십니까? 그는 명망 있는 대단한 왕자입니다. 또 그는 준비가 되어 잇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내맡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붓다가 말했다.
“나는 이것이 또 다른 극단이 아닐까 우려해서 주저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전엔 방탕했다가 이제 그것을 포기하고 그 반대 극단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야기는 스로나가 비구가 되자 이내 다른 극단으로 돌아섰다고 전한다.
스로나는 새로운 에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제가 썼던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중도(中道)의 길은 평탄하게 똑바로 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석가(釋迦)가 깨달음을 얻은 중도의 길도 설산(雪山)의 고행(苦行)을 경험한 후 발견한 길입니다.
개인의 수행이나 깨달음 뿐 아니라 나라와 세계의 경영에 이르기까지 공자의 중용(中庸)의 길도 치열하게 양 극단을 두들겨서(叩其兩端而竭) 도달하는 길입니다.
여기서 두들긴다는 것은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경험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도는 역동적인 길입니다.
개인의 수행이나 깨달음도 양 극단을 넘어서는 과정이지만, 그 출발점이나 도착점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한 극단(極端)을 경험하고 나서 중도(中道)로 가는 대신 그것에 반발해서 다른 극단(極端)에 머물러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사회나 국가 나아가 세계라는 집단이 나아가는 길은 더욱 이 중도를 향한 험난한 길을 갑니다.
서양에서 발전한 변증법이라는 것도 그 길을 나타냅니다.
다만 지나치게 도식화하거나 그 추진의 원동력을 단순화하는 잘못을 범해 온 것도 역사를 통해 보아 왔습니다.
중도의 중(中)은 가운데라기보다 적중(的中)의 중(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점과 그 사회에서 가장 적절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고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도는 동적 개념입니다.
무엇인가 한 쪽에 치우쳐 그 모순이 나타나게 되면 그 반작용이 일어납니다.
그 때 그 반작용은 중도를 향한 작용으로 됩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것이 반대 방향으로 지나칩니다.
이 과정이 실제의 역사 속에서는 전쟁이나 혁명 같은 유혈이 낭자한 참극을 동반하면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민주주의는 이 작용 반작용의 진폭을 줄이면서 보다 부드러운 방법으로 중도(中道)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진보란 바로 이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가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개혁은 부드럽게 중도를 향한 길입니다.
우리의 지난 70년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들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내부의 갈등 또한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저는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중도를 향한 길을 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보수 진보 중도 등의 정치 성향을 나타내는 그런 중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역사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보수가 중도를 견인하는 경우도 있고, 진보가 견인하는 때도 있습니다.
시대의 중(中)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위기 국면과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풀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제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 진폭이 크게 움직이는 그런 낭비(?)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정세를 보면서 이 말씀을 간곡히 드리고 싶습니다.
중도를 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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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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