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5

알라딘: 11 역사가에게 묻다 - 굴절된 한일 현대사의 뿌리 찾기 김효순 (지은이)

 알라딘: 역사가에게 묻다 - 굴절된 한일 현대사의 뿌리 찾기  

김효순 (지은이)
서해문집2011-10-20

440쪽
책소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책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의 저자 김효순의 역사서이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공부하는 한일 역사가 8인과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한일 역사 연구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한일 간 갈등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단추가 어디서 잘못 꿰어졌는지, 전후 청산과 보상은 왜 허공에 떠버렸는지 역사가와 활동가 8명에게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역사가나 활동가들은 평생 난마처럼 꼬인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연구하거나 전후보상이나 재일동포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또한 저자는 역사가들의 연구 동기와 활동에 얽힌 중요한 뒷이야기를 일일이 증언으로 끌어내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사 연구의 기인 야마베 겐타로와 조선인 운동가 김천해의 인연, 북한에서 사라진 재일동포 사학도 김종국, 해방 공간에서 쫓겨 다닌 독립운동가 김선기와 박진목 등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그러나 누구도 관심 없었던 이들의 흔적도 찾아냈다.

목차

추천사  

들어가는 글  

1 야마다 쇼지山田昭次  “일본인은 스스로 죄를 고백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인터뷰 

장면1 조선인 학살 주체 명시한 추도비 건립

장면2 삼중 차별에 시달린 재일동포 여성 한센인





2 강덕상姜德相  “재일 조선인의 역사 연구는 뿌리 찾기다”

인터뷰

장면1 조선사 연구의 기인 야마베 겐타로와 김천해의 인연  

장면2 도쿄의 재일한인역사자료관  





3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시대가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를 원했다”  

인터뷰 

장면1 호즈미 가문과 우방협회  

장면2 일본 군국주의와 싸우다 김일성에 경도된 데라오 고로와 후루야 사다오

장면3 가쿠슈인 대학과 동양문화연구소, 우방문고  

장면4 북한에서 사라진 재일동포 사학도 김종국  





4 조동걸趙東杰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없었던 것 자체가 비극이다”  

인터뷰 



5 하야시 에이다이林えいだい  “강제동원 희생자를 위해 필사적으로 역사 기록 남긴다”  

인터뷰 

장면1 아소 가문과 조선인 강제연행  

장면2 조선인 유골 더미 위에 세워진 아소의 골프장  

장면3 관광특수 누리는 가미카제특공회관  





6 김광열金光烈   “평생 찾아다닌 강제연행 기록, 이제 누가 하나?”  

인터뷰 

장면1 유골 조사에 앞장선 일본 불교 종단 조동종  

장면2 해방 공간에서 쫓겨 다닌 독립운동가, 김선기와 박진목  





7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도쿄 군사재판에서 식민지 문제는 완전히 빠졌으니……”  

인터뷰 

장면1 포로감시원과 포로의 화해 1_이학래와 던롭  

장면2 포로감시원과 포로의 화해 2_박병숙과 바커르  

장면3 한류로 한일 현대사를 배우는 일본 여성  



8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한일 시민단체, 과거사 문제 공유해야”

인터뷰 

장면1 시민의 힘으로 건립한 ‘조선인 노동자상’과 고베 항 ‘평화비’  

장면2 히타치 취직 차별 사건과 재일동포 활동가 김영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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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웃지 못할 희극, 부조화, 부조리’로 범벅된 한일 관계의 본질을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 안병욱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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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효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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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창간에 간여해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2007년부터 취재 현장에서 대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직했고,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한일 관계, 동아시아의 평화, 화해, 시민운동 등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으며, 역사에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저서에 《조국이 버린 사람들》(2015), 《간도 특설대》(2014), 《역사가에게 묻다》(20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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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Blog10월 4주_ 인문MD가 주목한 이주의 인문교양 신간 l 2011-10-18

알라딘 인문, 역사,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먼저 좋은 책을 알아보시는 독자께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도서별 구매자 선착순 50분께 ...



출판사 소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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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연필>,<밤에만 문을 여는 마음 상담소>,<평화가 온다>등 총 433종

대표분야 : 역사 8위 (브랜드 지수 293,469점), 고전 13위 (브랜드 지수 212,800점), 청소년 인문/사회 14위 (브랜드 지수 43,25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8人의 역사가 심층 인터뷰



한일 간 갈등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단추가 어디서 잘못 꿰어졌는지

전후 청산과 보상은 왜 허공에 떠버렸는지

역사가와 활동가 8명에게 집중적으로 물었다



‘한일 신시대의 도래’라는 그럴 듯한 선언을 수없이 들어도 망언은 왜 계속되는 걸까? 일본 전역에 방치돼 있는 강제연행 희생자들의 유골은 고향 땅에 돌아올 기약이라도 있는 건가? 교과서 기술 등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을 극복 해소하는 방안은 없는가? 일본과 한국의 시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굴절된 한일현대사, 뒤틀린 한일관계의 뿌리에 들어 가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역사가나 활동가들은 평생 난마처럼 꼬인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연구하거나 전후보상이나 재일동포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냉전과 분단상황에 휘둘리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이들의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와 식견이 역사를 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1. 야마다 쇼지 “일본인은 스스로 죄를 고백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야마다 쇼지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분석하는 문제의식은 과거의 어느 특정 시기에 한정돼 있지 않다. 그는 당시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 못지않게 ‘전후 책임’, ‘사후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해왔다. 그의 문제 제기는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와 방관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묵인해온 일본 민중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주저 없이 말한다. 그만큼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야마다 교수의 자세는 결기에 차 있다. 그는 잘못된 과거를 따지는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않고 생각만 한다면 도피하는 것이다.”



2. 강덕상 “재일조선인의 역사 연구는 뿌리 찾기다”

재일동포 사학자 강덕상은 1923년 간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배후에 일본 정부의 조직적 관여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1960년대 초반 도쿄의 국회도서관에서 우연히 미국이 보낸 ‘반환 자료’(미군이 점령 초기에 압수한 일본 육군과 해군의 문서)를 볼 수 있었고, 이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성장한 그는 여느 조선 아이들처럼 자기부정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청소년기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이겨내고 뿌리를 찾기 위한 역사 연구에 들어갔다. 그가 오랜 강사 생활을 거쳐 대학 교수로 취직한 것은 예순을 몇 해 앞둔 때였다. 재일동포로서는 그가 처음이다. 은퇴를 생각할 늘그막에 교수가 된 그의 역정은 식민지 출신이 옛 종주국에 남아서 겪었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3. 미야타 세쓰코 “시대가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를 원했다”

미야타 세쓰코는 전후 일본에서 한국, 조선에 대한 연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돼왔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중요한 증인이다. 조선에 대한 주류 학계의 관심이 아주 낮았던 1954년 와세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몇 가지 일이 겹치면서 조선사 연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여러 모임의 결성이나 사건에 참여했다. 그에게는 어느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수많은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대학에 정착할 자리를 잡지 않은 것은 순수한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시대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4. 조동걸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없었던 것 자체가 비극이다”

조동걸은 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국사학계의 원로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후 일본에서 온 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초기부터 관여했다. 당시 주요한 구실을 했던 인사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때의 우여곡절을 얘기해줄 수 있는 소중한 증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1949년 6월이 통탄스럽다. 반민특위가 와해됐고 ‘남로당 프락치 사건’으로 제헌의회에서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이 쫓겨났다. 게다가 백범 김구까지 암살됐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지 청산이나 독립운동사 정리 작업이 모두 중단됐다. 그 결과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오랜 기간 아예 없었고,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한다.



5.하야시 에이다이 “강제동원 희생자 위해 필사적으로 역사기록 남긴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다큐멘터리 르포를 쓰는 작가다. 징용으로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자살특공대(가미카제), 일본군위안부, 이중 징용,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학살 등 주제도 아주 다양하다. 그의 무기는 무엇보다도 끈질김이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 편에 섰던 사람, 뭔가 감추려는 사람들을 찾아가 말을 건넨다. 답변을 회피하면 수십 번이라도 집요하게 찾아간다.

일본 국내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뉴기니 등 광활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모은 그는 누구보다도 강제연행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강제연행은 없었다’거나 ‘당시 조선인은 법적으로 일제의 신민이었기 때문에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는 우익의 주장을 들으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6 김광열 “평생 찾아다닌 강제연행 기록, 이제 누가 하나?”

재일동포 김광열은 일제강점기에 지쿠호 탄전 지대에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었던 동포들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없어 1969년 탄광 도시였던 다가와로 아예 이사를 했다. 발로 뛰어다니며 이름을 확인한 조선인 희생자는 약 2000명, 찾아낸 유골도 약 500위에 이른다. 그가 모아놓은 자료들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가 구식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증언을 수록했던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77세에 《발로 본 지쿠호, 조선인 탄광노동의 기록》를 출간했다. 30년을 넘긴 집념의 결실이었다.



7 우쓰미 아이코 “도쿄 군사재판에서 식민지 문제는 완전히 빠졌으니……”

우쓰미 아이코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의 전문가다. 1970년대 20대 후반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현지의 포로감시원이던 한 조선 청년의 기막힌 삶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전기가 됐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아직 이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 현실적으로 연구에 30여 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 격차가 좁혀질 전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생의 과제인 B·C급 전범 문제 해결을 위해 해외 취재를 하고 지원 활동을 벌인다.



8 히다 유이치 “한일 시민단체, 과거사 문제 공유해야”

히다 유이치는 전후 보상 운동에 관여해온 일본의 활동가, 연구자, 단체들이 호응해서 만든 조직인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의 공동 대표다. 재일동포 차별 등 인권 문제, 전후 보상이나 강제연행 희생자 조사 등을 다루는 시민운동에서 이 단체의 이름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각 지역의 전문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자료 입수, 피해 사례 조사, 유골 소재 확인 등에 주요한 구실을 했다. 식민지 피해 조사에서 한국의 정부 기관과 일본 시민단체 사이의 연계 활동이 처음으로 실현된 셈이다.



여느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실을 기록하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책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의 저자가 이번에는 역사가들의 연구 동기와 활동에 얽힌 중요한 뒷이야기를 일일이 증언으로 끌어내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과의 대화에서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잇따라 튀어나온다. 단지 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조선사 연구의 기인 야마베 겐타로와 조선인 운동가 김천해의 인연, 북한에서 사라진 재일동포 사학도 김종국, 해방 공간에서 쫓겨 다닌 독립운동가 김선기와 박진목, 포로감시원과 포로가 만나 화해한 이학래와 던롭,박병숙과 바커르 등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그러나 누구도 관심 없었던 이들의 흔적도 찾아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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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현대사에 대해 보다 깊은 내용이 담겨있는 책 이걸 읽고 저자 김효순의 팬이 되어 '나는 일본군,인민군,국군이었다'까지 사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구매

Hujiro 2012-03-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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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알본은 왜 그렇게 양심적이지 못한가? < 역사가에게 묻다 > 새창으로 보기

19세기 말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국가와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사과, 그리고 후속조치가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반성, 사과는 커녕 상당수 학자와 정치인들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거나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일부 우익 인사들은 자국의 헌법을 바꾸어 '정식 군대'를 창설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량(비양심적)국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비교해보면 180도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독일은 냉전으로 인해 동,서독으로 갈라지는 굴욕을 당했으면서도 2차대전 패전 후 국내외 군사재판을 통해 상당수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하였고 진심을 담아 피해국가와 민중들에게 사과했으며 상당액의 배상금을 지불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대전에서 패배했음에도 동서냉전의 최전선, 소련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내기위한 미국의 전초기지를 받아들이면서 피해국들보다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정치경제적 혜택을 받았다. 미국은 사회주의 이념의 태평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좌파진영의 정치사회 세력을 극심하게 탄압하였고 전쟁범죄자들을 대부분 석방하고 천황제를 제외한 기존의 인물들과 정부체제를 존속시켰다. 그리고 일본에 엄청난 원조를 제공하고 경제적 기회를 부여하였다.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과 60년대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천황제 군사국가 시대의 인물과 체제를 기초로하여 전후에도 보수우익 세력이 경제권력과 손잡고 수 십년 동안 국가권력을 배타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서냉전의 최전선이라는 외적 조건으로만 보면 독일과 일본이 큰 차이가 없음에도 왜 전후 처리는 정반대일까? 나에게 있어 이 의문은 일본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풀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 일본에 대한 감정과 경멸은 또 다른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립대학에 대부분 존재하는 일본어학과가 서울대학교에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우리나라의 정치계, 학계 등 권력층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승만처럼 극렬하게 일본을 배타시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박정희처럼 일본을 고향처럼 생각하는 정치인도 있다. 일제 식민지의 후퇴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내에 식민지 하수인들과 친일파들이 득세하여 국가권력을 좌우했음에도 자신들의 아킬레스건 때문인지 오히려 일본에 대한 학구적 연구를 배제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일본 내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전후처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중에서 한일관계라는 맥락에서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에 대한 태도와 차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와 더불어 한국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저자 김효순은 "‘한일 신시대의 도래’라는 그럴 듯한 선언을 수없이 들어도 망언은 왜 계속되는 걸까? 일본 전역에 방치돼 있는 강제연행 희생자들의 유골은 고향 땅에 돌아올 기약이라도 있는 건가? 교과서 기술 등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을 극복 해소하는 방안은 없는가? 일본과 한국의 시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찾고자 굴절된 한일현대사, 뒤틀린 한일관계의 뿌리에 들어 가보고자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일본 내 역사가나 활동가들은 평생 난마처럼 꼬인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연구하거나 전후보상이나 재일동포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냉전과 분단상황에 휘둘리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이들의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와 식견이 역사를 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야마다 쇼지] “일본인은 스스로 죄를 고백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야마다 쇼지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분석하는 문제의식은 과거의 어느 특정 시기에 한정돼 있지 않다. 그는 당시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 못지않게 ‘전후 책임’, ‘사후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해왔다. 그의 문제 제기는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와 방관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묵인해온 일본 민중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민중책임론'을 주저 없이 말한다. 그만큼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야마다 교수의 자세는 결기에 차 있다. 그는 잘못된 과거를 따지는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않고 생각만 한다면 도피하는 것이다.”



[강덕상] “재일조선인의 역사 연구는 뿌리 찾기다”

재일동포 사학자 강덕상은 1923년 간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배후에 일본 정부의 조직적 관여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1960년대 초반 도쿄의 국회도서관에서 우연히 미국이 보낸 ‘반환 자료’(미군이 점령 초기에 압수한 일본 육군과 해군의 문서)를 볼 수 있었고, 이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성장한 그는 여느 조선 아이들처럼 자기부정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청소년기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이겨내고 뿌리를 찾기 위한 역사 연구에 들어갔다. 그가 오랜 강사 생활을 거쳐 대학 교수로 취직한 것은 예순을 몇 해 앞둔 때였다. 재일동포로서는 그가 처음이다. 은퇴를 생각할 늘그막에 교수가 된 그의 역정은 식민지 출신이 옛 종주국에 남아서 겪었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야타 세쓰코] “시대가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를 원했다”

미야타 세쓰코는 전후 일본에서 한국, 조선에 대한 연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돼왔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중요한 증인이다. 조선에 대한 주류 학계의 관심이 아주 낮았던 1954년 와세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몇 가지 일이 겹치면서 조선사 연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여러 모임의 결성이나 사건에 참여했다. 그에게는 어느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수많은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대학에 정착할 자리를 잡지 않은 것은 순수한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시대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조동걸]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없었던 것 자체가 비극이다”

조동걸은 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국사학계의 원로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후 일본에서 온 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초기부터 관여했다. 당시 주요한 구실을 했던 인사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때의 우여곡절을 얘기해줄 수 있는 소중한 증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1949년 6월이 통탄스럽다. 반민특위가 와해됐고 ‘남로당 프락치 사건’으로 제헌의회에서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이 쫓겨났다. 게다가 백범 김구까지 암살됐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지 청산이나 독립운동사 정리 작업이 모두 중단됐다. 그 결과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오랜 기간 아예 없었고,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한다.



[하야시 에이다이] “강제동원 희생자 위해 필사적으로 역사기록 남긴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다큐멘터리 르포를 쓰는 작가다. 징용으로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자살특공대(가미카제), 일본군위안부, 이중 징용,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학살 등 주제도 아주 다양하다. 그의 무기는 무엇보다도 끈질김이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 편에 섰던 사람, 뭔가 감추려는 사람들을 찾아가 말을 건넨다. 답변을 회피하면 수십 번이라도 집요하게 찾아간다.

일본 국내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뉴기니 등 광활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모은 그는 누구보다도 강제연행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강제연행은 없었다’거나 ‘당시 조선인은 법적으로 일제의 신민이었기 때문에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는 우익의 주장을 들으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김광열] “평생 찾아다닌 강제연행 기록, 이제 누가 하나?”

재일동포 김광열은 일제강점기에 지쿠호 탄전 지대에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었던 동포들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없어 1969년 탄광 도시였던 다가와로 아예 이사를 했다. 발로 뛰어다니며 이름을 확인한 조선인 희생자는 약 2000명, 찾아낸 유골도 약 500위에 이른다. 그가 모아놓은 자료들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가 구식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증언을 수록했던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77세에 [발로 본 지쿠호, 조선인 탄광노동의 기록]를 출간했다. 30년을 넘긴 집념의 결실이었다.



[우쓰미 아이코] “도쿄 군사재판에서 식민지 문제는 완전히 빠졌으니……”

우쓰미 아이코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의 전문가다. 1970년대 20대 후반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현지의 포로감시원이던 한 조선 청년의 기막힌 삶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전기가 됐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아직 이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 현실적으로 연구에 30여 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 격차가 좁혀질 전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생의 과제인 B?C급 전범 문제 해결을 위해 해외 취재를 하고 지원 활동을 벌인다.



[히다 유이치] “한일 시민단체, 과거사 문제 공유해야”

히다 유이치는 전후 보상 운동에 관여해온 일본의 활동가, 연구자, 단체들이 호응해서 만든 조직인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의 공동 대표다. 재일동포 차별 등 인권 문제, 전후 보상이나 강제연행 희생자 조사 등을 다루는 시민운동에서 이 단체의 이름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각 지역의 전문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자료 입수, 피해 사례 조사, 유골 소재 확인 등에 주요한 구실을 했다. 식민지 피해 조사에서 한국의 정부 기관과 일본 시민단체 사이의 연계 활동이 처음으로 실현된 셈이다.



결국 이 책은 한일 양국의 여느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부모임의 한 참가자가 제안하여 세미나 교재로 선택된 이 책과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책 <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의 저자는 동일인이다. 저자는 일본 내 한일관계 역사가들의 연구 동기와 활동에 얽힌 중요한 뒷이야기를 일일이 증언으로 끌어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이들과의 대화에서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잇따라 튀어나온다. 단지 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조선사 연구의 기인 야마베 겐타로와 조선인 운동가 김천해의 인연, 북한에서 사라진 재일동포 사학도 김종국, 해방 공간에서 쫓겨 다닌 독립운동가 김선기와 박진목, 포로감시원과 포로가 만나 화해한 이학래와 던롭,박병숙과 바커르 등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그러나 누구도 관심없었던 이들의 흔적도 찾아냈다. 그동안 방치해 온 한국의 근대사 연구에 있어 더 없이 소중한 자료일 것이다.





이 책이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전문적 연구 성과물은 아니지만, 책 속의 증언과 사실관계 기록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뒤이어 한일 근대사를 연구할 사람들에게 큰 동기와 사실자료를 제공할 것이라는데 공감한다. 책 속의 역사가들이 정리한 것만 가지고 "왜 일본은 양심적이지 못한가?"라는 의문에 대한 연구결과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사항들은 추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그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2차 대전 후 동서냉전에 따른 패전국에 대한 전후처리에 있어 미국의 유럽국가인 독일과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 대한 입장 차이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독일이 유럽사회의 일원으로 미국과 같은 문화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독일의 자율성을 상당부분 인정했고 일본의 경우는 '미개한 동양권'이라는 전제에서 권위적이고 패권적인 방식식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본다.

두 번째로는 독일과 일본의 내부 사정과 수준에 따른 차이.. 다시 말해 독일은 16~17세기 유럽 전역의 르네상스 부흥과 자유주의 사상의 교류, 민주주의 혁명과 파시즘의 태동, 민중들의 조직과 투쟁,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 등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온 반면 일본은 중세시대의 막부통치에서 19세기 중후반 급속하게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사상의 교류나 민중들의 투쟁 없이 곧바로 천황제와 군국주의로 이행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두 가지 차이가 전후 독일과 일본의 자국내 전후처리와 민주주의의 정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마지막은 문제해결을 위한 피해당사자국, 즉 우리나라의 태도와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1965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전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부당한 한일협정'을 통해 배상과 후속조치를 생략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역대정권, 정치권, 학자, 언론 등은 일본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해방 후 동서냉전을 이유로 민중들의 뜻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정이 한국의 지배권력에 배치한 친일파가 잔류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실제 상황이 그러함에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수구우익 세력들이 날뛰면서 초중고교나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과목에서 삭제하려고 시도하는 행위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가 뒤틀리고 회귀하고 있다는 절망감과 분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그동안 미진했던 근현대사 연구에 매진하고 일제에서 비롯된 만행과 버림받은 동포들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에 주력한 후 각각의 사안에 걸맞는 국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2012년 3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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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구름 2012-03-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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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법의 사학사,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학자들 새창으로 보기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때 받은 가슴저린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효순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하지 못하거나 않고 있는 주제들을 건드리면서 우리에게 지난날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이책 또한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친일 인명 사전에도 올라가 있는 이병도라는 역사학자의 제자들이 근현대사 연구를 등한시하고, 무시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근현대사의 공백이 많아졌다. 지금도 한국역사학계의 커다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 교과서에서는 이병도가 일제 식민사학에 대항하기 위해서 진단학회를 만든 것처럼 기술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아닐까????



이책은 이병도의 제자들이 자신의 스승 친일파 이병도에게 아부하며 쓰는 그런류의 사학사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사학자 조동걸부터, 제일교포 역사학자 강덕상, 일본인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 시민운동가 히다 유이치 등등 쟁쟁한 역사학자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에게 잘알려져 있지 않은 자들이다. 그렇지만, 한국근현대사의 공백지대가 되다시피한 강제연행, 즉 징병, 징용 문제와 자이니치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근현대사는 상당부분이 빈 공백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책에서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역사연구를 한, 강덕상과 일본인이면서도 정의감에  역사연구와 시민활동을 하는 많은 일본인 역사학자들의 양심있는 모습이다. 추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모습에 익숙해져있는 나에게 이들 용기인는 일본인 역사학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큰 인상을 남겼다.







또한 나를 슬프게 하는 것도 있었다. 일제의 주구였던 친일파들이 한국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독립운동을 연구도 못하게 만드는 풍토를 만들었으며, 독립운동을 연구한다는 것이 꼬투리가 되어 남산에 끌려가야만 하는 과거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서글펏다.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썩어빠진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기나긴 싸움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백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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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5-08-0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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