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8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 - 배춘희 말하고 박유하 정리하다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 - 배춘희 말하고 박유하 정리하다
배춘희,박유하 (지은이)뿌리와이파리2020-08-28
306쪽
책소개
"딴 말 할 건 없고… 밖에서 누가 듣는다." 2014년 3월 28일 오후 5시 지나서, 배춘희 할머니가 전화 통화 중에 한 말이다. 상대는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박 교수는 그 책을 낸 뒤에 일본의 사죄/보상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러나 할머니들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박 교수에게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적은 100만, 이쪽은 한 사람"이라는 말로 토로했던 배 할머니는 이후 자주 전화를 걸어왔고, 박 교수는 그 첫 만남을 녹화할 때와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통화를 녹음했다.
이 책은 배춘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오는 그 대화의 기록이다. 그 무렵 만났던 다른 세 분 할머니의 생각도 함께 담은, 양쪽 다 우리가 일찍이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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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목소리’에 응답하기
01. 배춘희 할머니와의 대화
2013년 12월 18일 오후 6시 19분
사진/ 운명/ 귀국/ 침묵/ 일본?가치관/ 보상금/ 하고 싶은 일/ 기부금/ 고독/ 능력/ 지원단체
2014년 1월 4일 오후 6시 52분
김복동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2014년 2월 1일 오후 3시 18분
옛날 생각/ 일본인 친구/ 방/ 미국/ 일본군 위안부/ 여파/ 지원단체
2014년 2월 11일 오전 11시 22분
증언/ 관리/ 목소리/ 폭력의 기억/ 아시아여성기금/ 두려움
2014년 3월 6일 오후 2시 4분
병/ 추위
2014년 3월 7일 오후 4시 30분
호소/ 눈치
2014년 3월 8일 오후 7시 29분
소동/ 비밀/ 탄식
2014년 3월 11일 오후 5시 12분
불만
2014년 3월 11일 오후 6시 36분
유언
2014년 3월 13일 오전 9시 19분
고민/ 통곡
2014년 3월 19일 오후 7시 7분
간호사/ 안 소장/ 병원
2014년 3월 24일 오전 10시 4분
검사/ 나눔의 집/ 수면제
2014년 3월 28일 오후 5시
남기고 싶은 말
2014년 4월 13일
자기증명
2014년4월16일 오후 6시 42분
보호자
2014년 4월 23일
의구심/ 배상/ 불신
2014년 5월 3일 오전 10시 31분
분노
2014년 5월 3일 오후 2시 35분
장사/ 비난/ 방치/ 꿈
2014년 5월 7일 오전 8시 49분
이동 전야/ 기부
2014년 5월 16일 오전 8시 24분
발각
2014년 5월 18일 오전 9시 43분
체념
02. 또다른 목소리: 사죄.보상.기억
A 님
2013년 가을
B 님
2013년 초겨울
C 님
2014년 4월 10일
2014년 4월 25일
2014년 4월 27일
에필로그 |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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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2013년 11월, 위안부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찾아간 '나눔의 집'에서 나는 배춘희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P. 40 그러니까 막, 학생들이 나중에 보면 그걸 알고 막 울고 간다고. 아이고, 내가 막, 그러니까 [불명] 할마니들이 막 본 대로 말하고 나온 대로 [불명] 일본 사람한테, 뭐 속이야 어찌 됐든지 말았든지, 오면은 그저 ようこそいらっしゃいました(잘 오셨어요) 카고 인사나 하고, 일본도 참 이런 일 저런 일 고생이 많죠, 카고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안 하고, ‘느그들 뭐하러 왔는데? 느그들 뭐하러 왔는데? 여기 뭐 할머니들 다 죽었나 안 죽었나 망보러 왔나?’, 일본, 뭐, ○○○이 그카면서 달려든다니까, 손님한테. 접기
P. 83 그니까 전부 그래가지고 옛날, 옛날에 집이 입장이 곤란해가지고 간다고 갔는 기(간 것이) 돈 때문…. 위안부라 카는 건 뭐냐 카면(하면), 위, 안, 부, 카는(하는) 글자 고대로(그대로) 옛날에 일본 군인들 お世話する(이것저것 챙겨주는), 그 母親たちが(어머니들이), [불명] 일본군 전선에 갈 때 전부 お世話お世話、前掛け 입고 お世話하는(이것저것 챙기고 앞치마 입고 돌보는) 그런 사람들을 위안부라 캤거든(했거든). 접기
P. 217 나는 오늘 죽어도 이판사판이라. 난 오늘 죽어도 괜찮아. 그렇지만 가만히 누워가지고 내일 죽을라는지(죽으려는지) 모레 죽을라는지 모르지마는, 밥도 못 먹는 게…. 그래도 오늘 가만히…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얘기하지만, 윤미향, 그거는 얼마나 재미있어. 일본에서 팬들이 돈도 몇십억씩 해서 부쳐주지, 그리고 ‘나눔의 집’은 ‘나눔의 집’대로 할매들 얼굴 팔아가지고, 그래가지고 돈 벌지. 그런 商売(장사) やめられないわけや(못 그만둔다고), 그게 가만히 생각하면…. 접기
P. 222 “우리들이 지(지원단체) 마음을, 見ておる(보고 있지). 사람들이(사람들의) 속을 다 안다고. 정대협이는 어째가지고 해먹는다, ‘나눔의 집’은 할머니 얼굴 팔아가지고 전부 돈 받아가지고 집 짓고 땅 사고 전부 저런 데다 그런다는(돈 쓴다는) 거…. 人情もクソも(인정이고 나발이고) 없다 카는 거. 그걸 아니까 腹が立つわけ(화가 난다고)….” 접기
P. 290 하지만 동시에 배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용수 님의 ‘목소리’와 꼭 같지는 않다. 특히 ‘운동’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운동의 방향을 결정해온 ‘위안부에 대한 이해’에서 두 분의 생각은 오히려 꽤 많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이 그저 반대나 옹호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즉 운동과 정치의 틀에 가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저 차분히 마주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실 전자-운동의 내용과 향방-를 생각하고 논하는 데에는 후자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후자에 관한 논의는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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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배춘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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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12일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연로한 할머니의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만 19세 때인 1942년 대구의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이후 해방될 때까지 만주 하얼빈과 동안(東安) 등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 남아 있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뒤로 30년 가까이 일본에서 지냈다. 엔카 가수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1979년에 귀국해 경북 왜관에서 살다가, 93년에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신고했다. 97년에 ‘나눔의 집’에 입소했다.
별명이 예술가였을 만큼 노래도 잘하고 그림 솜씨도 뛰어났다. 캔버스 외에 ‘나눔의 집’ 돌멩이에 그린 그림도 남아 있는데, 미술지도교사가 그 돌멩이를 모아 벽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다른 할머니들에게 “총명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았으나 아이들과 동물을 좋아했다. 재산을 전부 절이나 승가대학에 기부하고 2014년 6월 8일에 작고했다. 위패는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접기
최근작 :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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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지은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비판하는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구조를 발견한 이후 국가와 젠더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근대 일본과 식민지 조선을 연구해왔다.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의 연구/이론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어선 시민연대와 역사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나쓰메 소세키로 읽는 근대』,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귀환문학론 서설引き上げ文学論序説-새로운 탈식민주의로』(일본어)과 공편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 … 총 3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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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눔의 집’에서 살다가 6년 전 작고한 배춘희 할머니는 말한다
“위안부 핑계대고 (운동을) 잡고 있는 기라.”
“위안부는, ‘어머니’처럼 ‘군인을 보살피는’ 그런 사람들을 위안부라 캤거든.”
할머니가 우리에게, 30년의 ‘운동’, 30년이 만든 ‘상식’을 다시 묻는다!
“위안부 핑계대고 (운동을) 잡고 있는 기라.”
“이기 말이 안 되는데 싶으만, 난 말 안 한다고.”
―‘나눔의 집’에서도 고독했던, “적은 100만, 우리 편은 나 한 명”이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배춘희 할머니의 목소리, 작고 6년 후에야 세상에 나오다!
“딴 말 할 건 없고… 밖에서 누가 듣는다.” 2014년 3월 28일 오후 5시 지나서, 배춘희 할머니가 전화 통화 중에 한 말이다. 상대는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박 교수는 그 책을 낸 뒤에 일본의 사죄/보상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눔의 집’과 정대협의 ‘가드’는 탄탄해서, 경계 대상이 된 박 교수는 할머니들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박 교수에게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적은 100만, 이쪽은 한 사람”이라는 말로 토로했던 배 할머니는 이후 자주 전화를 걸어왔고, 박 교수는 그 첫 만남을 녹화할 때와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통화를 녹음했다. 이 책은 배춘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오는 그 대화의 기록이다. 그 무렵 만났던 다른 세 분 할머니의 생각도 함께 담은, 양쪽 다 우리가 일찍이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담긴.
위안부, 지원단체, 그리고 배춘희 할머니의 ‘또 하나의 목소리’
2020년 5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정의기억연대)과 윤미향 의원(전 이사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나눔의 집’에서 일해왔던 이들의 내부고발이 터져나왔다. 당초의 엄청난 충격 이후 석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본격적인 조사와 우리 사회의 대응이 어떻게 진척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 무렵, 할머니들이 지원단체를 어떤 식으로 비판했는지가 명료하게 담긴 이 기록을 6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박 교수가 고민 끝에 이 책을 엮을 수밖에 없게 만든 또다른 기사가 나온다.
「故배춘희 할머니 ‘마음 상하셔 병원 간 날’ 전 재산 나눔의집 기부?」(『한국일보』 5월 23일자) “나눔의집 내부고발 직원들에 따르면 배 할머니의 기부약정서는 2014년 4월 10일 작성됐다. 이 약정서는 전 재산을 나눔의집에 기부하겠다는 사실상의 유언장이다. (…) 담당 간호사가 작성한 간호일지에는 기부약정서가 작성된 4월 10일에 ‘OO 님 때문에 마음이 상하셔서 병원에 가보신다고 하여 목욕하시고 근처 OO요양병원에 입원하심’이라고 적혀 있다. 직원들은 이날 119 구급차를 불러 배 할머니가 입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배춘희 할머니는 2014년 6월 8일 세상을 떠났고, 박 교수는 1주일 후 위안부 할머니들 아홉 분의 이름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 민·형사 고소’를 당했다.
이 책의 대화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첫째, 2020년 5월 이후 공론화된 ‘지원단체’의 문제들이다.
이미 알려진 ‘돈’의 유용뿐만 아니라 그렇게 돈을 모으기 위해 할머니들이 동원된 구체적인 정황, 할머니들의 건강 유지에 가장 중요한 식사와 돌봄, 진료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지원단체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당사자가 생각할 만큼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정황, 할머니들이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관리되고 ‘다수’ 할머니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채로 운동이 전개되어왔던 정황, 당사자들이 지원단체에 대해 반발/비판하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정황 등이 그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피해자’를 보살피고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했고 우리 사회가 위임해온 ‘대변자’-지원단체 문제에 대해 다시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위안부란 성노예도 매춘부도 아니었고, ‘어머니처럼’ 군인을 보살피는 존재였다고 말하는, 그래서 소녀상에 비판적인 당사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운동’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운동의 방향을 결정해온 ‘위안부에 대한 이해’에서 배춘희 할머니와 이를테면 이용수 할머니의 생각은 꽤 많이 다르다. 위안부 ‘피해자’는 하나가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제 우리 사회가 당연시하고 지지해온 그 ‘운동’을 근본적으로 돌아볼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알려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다시 마주한다, 스피박의 문제제기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단순히 그저 반대나 옹호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즉 운동과 정치의 틀에 가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차분히 마주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는 정녕 무엇이었던가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대의’와 ‘운동 30년’이란 그렇게 또다른 당사자의 ‘침묵’과 병행되어온 30년이기도 했다. 이 모든 문제의 저변에는 위안부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깔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발당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가 왜, 누구에게 고소고발당했는지에 대해서도 짚어볼 대목들이 명료하게 떠오른다.
출간 당시 여러 언론매체가 호의/중립적인 서평을 냈던 책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과 저자가 10개월이 지나서 고소고발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박 교수가 위안부 배춘희 할머니와 가까워졌고,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심포지엄을 통해 바깥으로 내보냈으며, 가장 가까웠던 바로 그 배 할머니가 작고해 더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박 교수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배춘희 할머니의 보호자가 되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나눔의 집’으로 ‘강제이동’당했고, 더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할머니 작고 후 일주일 만에 박 교수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소고발당했는데, 그중에 의식이 또렷한 할머니는 세 분에 불과했고, 그렇게 말한 할머니조차 눈이 불편했다. ‘나눔의 집’에서는 할머니들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여러 차례 읽어드렸다”고 했고, 고문변호사와 로스쿨 학생들은 320쪽 책 가운데 109곳에 ‘명예훼손’이라고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이 ‘사태’의 또 한 측면은 최근에 두드러지고 있는, 30년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주축이었던 ‘정대협’을 비롯한 ‘진보진영’, 혹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어떤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배춘희 할머니를 통해 우리는 국가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이룬 세력들의 약자 억압, ‘다른’ 목소리에 대한 폭력적 억압, 그렇게 표출된 반민주적인 행태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벌어져온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로부터 배춘희 할머니와 만나는 모든 이가 함께 ‘다시’, ‘제대로’ 우리 사회의 향후를 모색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정리한 ‘배춘희 할머니와의 대화’다.
(책표지의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는 줄들은 모스 부호로 ‘위안부 핑계대고 (운동을) 잡고 있는 기라’라는 배 할머니의 말을 담은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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