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백년’ 이래경 대표 인터뷰 : 한국사회 대변혁은 가능하다현재 한국 사회경제상황은 천박한 성장주의2016-01-21
편집국 edit@catholicpress.kr
- (김근수 편집장) 선생님께서는 ‘구한말 서세동점이 우리 민족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외부적 충격이지만, 이에 대한 대항으로 동학의 사회변혁사상, 갑오농민전쟁이 어느 나라 역사보다 위대하고 진보적’이라고 하셨는데요. 선생님이 보시는 동학의 사회변혁사상, 갑오농민전쟁의 민족사적 의의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이래경 대표) 19세기 동아시아는 세습적인 봉건제, 특히 전제군주인 왕의 지배 하에서 전통적인 농업을 기초로 한 사회였습니다. 반면에 유럽은 17~18세기를 거치며 거대한 산업혁명과정으로 인해 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두 지역(동아시아, 유럽)은 압도적인 생산력과 정치적 경로의 차이가 생기면서 다방면에서 비동시성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부딪히는 시점이 구한말 서세동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 천 년 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살아온 동아시아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 충격이 소위 한국 백성들에게 근대적 각성이 되고 동학으로 표현이 되었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시민들의 자각은 천주교 등 종교 및 서양의 인식론적 내용과 산업문명적인 결과물들이 결합된 충격 속에서 형성되었고 특히 동학은 천주교라는 서학과의 대응하는 상호관계 속에서 태어났다고 보여집니다. 시천주‧양천주 사상은 천주교의 인자론에서 온 것처럼 느낍니다. ‘한울이 내 몸 안에 있고, 내 몸 안에 있는 한울을 평생 모시고 끊임없이 실천하고 성찰하면서 한울을 닮아가겠다’는 각성은 예수님 시대의 예수님 선언과 거의 같아요.
동학의 창시자이자 제1대 교주 최제우는 기존의 민속신앙이나 인식의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2대 교주 최시형은 본인이 무학자이며 무지랭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내용을 대단히 근대적으로 전개시켰다고 보여집니다. 삼경(三敬)사상(경천, 경인, 경물)과 천주님이 내 몸 안에 모시고 인간 스스로 신의 품격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실천적 경지에 이르면서 동학에서의 인간존엄성은 서양의 천부인권사상을 능가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이 시대에 경물사상을 이야기한 것으로 현대적으로도 손색없는 ecology, 생태환경학적 자각입니다.
삼경사상을 기초로 해서 최시형은 사람들이 사는 일상사, 즉 사건, 인연, 맺음 속에 하느님의 섭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내 주위 모든 형상 속에서 하느님 뜻과 의미를 찾아가려는 노력에 있습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하늘을 모시듯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서양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인간 존엄성을 극대로 끌어올린 위대한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 언덕에서 행하신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같다고나 할까요. 최시형이 30여 년 간 도피생활을 하면서 깨달음을 전파하는 동안 삼남의 농민 상당수가 동학교도의 지지자였죠. 백만을 넘어섰다는 평가입니다. 동학은 어떤 종교라기보다는 시대상황 속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변혁운동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기초로 현실에 대한 각성운동에서 출발하여 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면서 동아시아를 뒤흔든 갑오농민전쟁으로 연결된 사건은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을 것 입니다.
- 동양의 인내천과 개벽사상은 예수 운동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정도의 동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천주와 양천주, 인내천의 내용은 매우 다릅니다. 시천주와 양천주는 인간이 신에 대한 원형적 모습을 갖췄고, 끊임없이 신을 향해 다가가는 실천적 과정에 있는 존재라고 평가한다면 인내천은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완성적 선언’입니다. 완성적 단계는 더 나갈 수 없는 마지막 곧 ‘죽음’이며 현재정지형 내지는 과거회귀형이 됩니다.
제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와 인내천을 선언하면서 동학이 가졌던 사회변혁에 대한 동력이 많이 상실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혹독한 일제 탄압 속에서 인내천사상이 관념화‧제도화 되어 천도교로 변경되면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제한하는 보호막으로 천도교라는 종교 속에 묶이는 과정이죠. 동학과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 유사한 역사적 맥락의 공집합을 갖습니다. 예수와 초기제자들이 최제우와 최시형을 닮았다면, 손병희의 천도교라는 외피와 바울의 황제순응사상이 비슷하죠. 바울은 한편에서는 선교와 사랑의 실천에 모범을 보이면서도 이 세상이 아닌 사후의 내세를 내세우면서 현실에 끊임없이 순응하고 타협합니다. 현실의 고통 받고 억압 받는 민중의 삶의 변혁적 내용성들을 상실해나가는 과정으로 나가는 겁니다.
- ‘개벽사상을 외친 농민 봉기군들의 투쟁정신이 일제강점기, 민족 동란과 분단, 외세 및 군사독재 120여 년 간의 긴 시기를 거쳐서 3.1운동과 이후의 항일운동, 4.19민주혁명과 광주항쟁 그리고 87년 민주화운동 및 시민운동에서 이어져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시민운동의 흐름이 주춤한 것 같습니다.
▶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영정조 이후 구한말은 외척 세력이나 왕조의 무능에 겹쳐서 민중수탈정책으로 가잖아요. 끊임없이 민란이 일어나지만 사회 폭발력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후에 동학이라는 사회변혁운동과 만나면서 내용성을 갖게 되죠. 사회의 부정부패에서 백성들을 구제하자는 것으로 나타나고, 제국주의의 강압성에 대한 민족적 저항으로 표현됩니다.
갑오농민전쟁은 세상을 바꾸려는 개벽사상으로 전개되는데, 당시 구한말 시대의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개혁혁신파는 민중적‧대중적인 조직이 없었고, 반면에 농민을 장악한 동학조직은 세계정세를 판단할 전략이나 지도력이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시대변혁의 요구는 동학에서 결집됐지만 전략적인 지도성까지는 가지 못했어요. 이 한계가 우금치 전투에서 나타납니다. 십만이 넘는 농민봉기군이 이천도 채 안 되는 (중무장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궤멸을 당합니다. 다만 갑오농민군이 지녔던 치열함, 전국적인 참여와 연대, 개벽세상 대한 열정은 이후 한국 역사에 심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집니다. 근현대사의 주요한 고비인 3.1운동, 항일운동, 6.10민주항쟁 등 속에 갑오농민군의 정신과 열망이 녹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는, 상황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시민들의 폭발은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데, 이것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준비하고 지도할 수 있는 전략적인 지도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87년 민주화 운동과 4.19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존 정치인이 아니라 학생과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그런데 수구세력이 만든 타협적 승부수인 6.29 선언이후, 민주화운동을 시대의 소명, 역사적 맥락 안에서 다음 단계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력이 시민세력 내에 형성되지 못했던 탓에,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성과들이 양김(兩金)등 기존 직업정치 지도자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역사적 우연 속에서 폭발했던 변혁적 열망들이 집권에 대한 개인적 욕심과 같은 방향으로 소진되었습니다.
- 대중들의 변화의 동력이 간헐적으로, 폭발적으로 여러 번 이어져왔는데 그것을 장기적으로 잘 엮을 시민적인 리더십 부족이 현대의 문제군요. 최근 민족사에서 대중의 변혁, 동력, 의지는 종교를 통해 표출됐는데 그 시민적인 리더십을 정치에서 찾으려고 하잖습니까. 현재 한국사회에서 시민적인 리더십을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 자연발생적인 폭발적 시민운동의 민주화 운동 최고정점은 6.10민주항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만한 힘은 다시 만들어내기 어려울 겁니다. 당시에 모두가 공감하는 대통령직선제 등 단일한 정치적 의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 이후 우리의 상황은 정치적인 것에서 사회경제적 의제로 중심을 이동하게 됩니다. 각자 서있는 위치와 분야에 따라 이해와 관점이 복잡하고 흩어질 수밖에 없어요. 사회경제적 의제는 단일한 정치적 의제만큼 폭발적으로 묶어내기가 쉽지 않고, 87년 당시처럼 시민 역량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결집되어 터져 나오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현재 시민단체나 운동은 내부에 지속가능한 역량들이 보충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적 폭발성은 다시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예컨대 저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몇 년 동안 공동대표로 있었습니다. 시민 개개인 삶의 고달픔과 불안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잘 정리해서 시민사회에 내던지니, 복지라는 주제가 휘발유에 불이 붙듯 확 폭발해서 올라왔어요. 이후에도 우리 삶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휘발유를 부으면 폭발할 수 있는 가연성이 항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가다듬어서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면 갑오농민전쟁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이후 해내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대변혁, 대전환을 언젠가는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 현재 빈부격차가 증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언젠가 폭발적으로 큰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새누리당은 올해 총선을 환경, 여성 아젠다로 잡고 있는데 야당은 끌려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노무현 정부이후 야당은 수동적으로 끌려왔죠. 정치인 개인의 이해가 시대적 소명보다 앞서있는 탓입니다.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미래지향적 아젠다를 주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유엔의 첫 번째 아젠다는 인권, 두 번째는 참정권, 세 번째는 사회경제적 권리, 네 번째는 환경, 여성 등 지속가능조건이 될 수 있죠. 그런데 이것을 단계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한꺼번에 뛰어넘겠다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의 열악함을 묵살하고 여성권과 환경문제만 이야기하는 것은 한 쪽의 표를 얻기 위해 사람들의 시각을 돌리는 꼼수입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의 문제를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들어놓은 후에 다음, 또는 동시에, 제4의 아젠다인 여성과 환경 등 지속가능 주제로 넘어가야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처럼 순서 없이, 천민적 사회경제조건의 해결 없이 바로 여성과 환경 문제로 넘어간다는 것은 정치공학적 술수입니다.
최근 교황님이 발표하신 ‘찬미받으소서’는 일상적인 선언이려니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면서 위에 이야기한 모든 아젠다를 총체적 사회과학의 분석 위에 인본적 인식과 미래인류적 지침을 체계적으로 분명히 한 문건, 하나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 앞서 동학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동학이라는 엄청난 사상과 운동이 빠르게 쇠퇴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우선 일제강점의 지배형태가 잔악무도했습니다. 이후 해방 과정이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방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외적 조건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해방이후 과정에서 소비에트 지원을 받은 김일성 정권에서 견디지 못하고 월남한 지주세력의 반공주의적 복수심과 미국적 개신교를 국교로 만들겠다는 이승만 개인의 과대망상적인 집착 등으로 인해, 민족맥락의 역사적 성찰의 기회를 갖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동시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학이 천도교로 위축되면서 사회변혁의 동력을 담아내지 못한 점도 있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큰 문제는 남북분단 상황과 더불어 남한 내부에 존재하는 분열, 그리고 외세의존적 상황이 내재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되풀이하면 남한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극우적인 외세기반이 우리 미래에 큰 걸림돌 되고 있다고 봅니다.
- 동학의 사회변혁적 활력이 불교, 개신교, 천주교에 주는 메시지가 클 것 같습니다. 왜 한국 종교에서 사회변혁적 활력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후에 좌우의 극심한 대립, 군사독재, 경제개발의 진행과정에서 단세포적 성과주의 형태가 긴 세월동안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동학의 불씨를 다시 살린 것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신데 생명운동이 중심되어 현재 모심과 살림, 생명평화운동으로 발전‧확대되었죠. 그렇게 새로운 불씨가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 동학운동의 변혁적 활력을 남미해방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에는 해방신학의 활력이 유입되지 않습니다. 현대 한국 3대 종교는 사회변혁적 활력이 없고 오히려 사회변혁을 가로막는 장애물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 천주교는 그나마 공의적 선언과 자기성찰을 통한 고백, 사회적 기여 등 순기능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현 교황님이 큰 역할과 힘을 보태주리라 믿습니다. 반면 개신교는 이승만 정권 성립 이후 극단적인 보수주의가 확실하게 중심으로 자리 잡아서 변화의 틀을 찾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불교도 최근 일부 사회참여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주류는 여전히 기득권에 편입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개별적 수양과 구복기도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선생님이 보시는 한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 탐욕과 상생의 두 얼굴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가난을 겪은 50세 이후 사람들은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하고 우리를 가난에서 구했다고 많이 생각합니다. 멀리서 길게 보면 해방 직후 한민당이 만든 정강정책에서 기초산업과 중공업에 중심한 자립경제계획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상당한 구체성을 갖고 이야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해방 이후 산업화를 추진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기존의 지주 중심 농지소유권입니다. 이를 혁파하신 분은,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이 승인하고 지원했지만) 토지개혁을 과감하게 실천한 조봉암 선생입니다. 조봉암 선생의 토지개혁이 전제되지 않았으면 한국사회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4.19 민주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은 곧바로 부흥부를 중심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햇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상기 맥락 속에서 부흥부 계획을 기초하여 경제발전을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단시간에 최대성과를 내려고 민중적 희생위에 군사적 동원체제로 실행하죠. 단기간의 성과는 좋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이것이 옳았을까요? 단시간에 급속히 성장하면 나중에 후유증들이 나타나요. 오히려 천천히 순리대로 체계적으로 이루었으면 50년이 지난 오늘, 대부분의 시민들이 경제성과를 평형과 기여에 따라 원칙에 맞게 공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박정희를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군사적 동원체계로 밀어붙이면서 지속 불가능한 조건들을 함께 만든 잘못도 크게 저질렀습니다. 산업경제적인 성취로 세계 10위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만, 이러한 성공적 공과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주역은 당연히 민중들의 에너지, 피와 땀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2016년 한국의 현실은 대단히 양가적이어서 OECD국가 중 사회 안전망, 복지문제, 자살문제 등 삶의 질적인 면에서는 최악의 밑바닥에 처해 있습니다. 성공한 산업국가라는 성과(현재는 매우 흔들립니다만) 와 젊은 세대가 금수저론을 제기할 만큼 절망과 불안과 불평등이 보편화 된 모습, 이 두 가지가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욕심을 활력의 기초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역동성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신가요?
▶ 인간이 갖는 이기성, 탐욕성, 동물성은 한편에서는 에너지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사회 속에서 이러한 에너지를 옳게 유도하려면 담아낼 그릇으로서 합의된 공의의 틀이 필요합니다. 탐욕성, 이기성이 공정이나 정의라는 프레임 속에서 유도되어야만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는 거죠. 한편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어가 상징하듯이 반드시 상생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상생과 협력의 공간을 경제발전프로그램 성장에 있어서 공유지의 비극으로 봅니다. 하지만 최근의 이론들은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한 상황과 조건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공유지의 비극이 되지 않도록 재구성하면, 공유지가 매우 중요한 새로운 발전의 모티브나 집단화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미래 사회의 첫 번째 과제는 시장만능적 탐욕성과 이기성을 공정과 정의라는 틀로 재정립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사회적 경제, 협업적 경제라고 하는 공유영역을 클라스터로 활용하여 새로운 혁신적 기제로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 선생님께서 에너지를 찾는 방법으로 ‘다른백년’이라는 모임 활동을 하시는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와 절차 문제뿐만 아니라 내용의 질적 성숙이 매우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형식적 절차로만 주장하면서 그 시대와 상황에서 억압받고 가난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삶을 도와주고 향상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어렵게 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기입니다. 실제 한국사회의 87년 민주화 이후 경제적 상황을 분석해보면 9분위, 10분위에 속해있는 빈민들의 수입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면에 1분위, 2분위에 속한 상류층 수입은 급격히 상승하죠. 2016년 현재 한국사회경제상황은 일반 시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자살을 유도하는 탐욕적이고 천박한 성장주의로 표현됩니다. 민주주의로서의 절차적‧제도적 과정도 잘못됐고, 사회경제적인 내용성도 우리 삶을 배반하고 매우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당연한 과제로서 사회경제적 운영의 경로변경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면 우리 경제성장은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주요 원인은 재벌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독과점, 단세포적인 수출주도경제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생산하는 1인당 부가가치가 중소기업보다 높다고 이야기하면서, 박근혜정부가 하듯이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한다면 더 성장하고 효율이 높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대기업과 재벌이 우리나라의 모든 자원을 독점한 상태에서는 1인당의 생산성,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어요. 이를테면 박정희의 단기적 개발독재방식 경제성장이죠.
그런데 추가자원을 투입하면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매우 빈약하죠. 오히려 추가자원을 문화나 IT, 벤처, 사회적 경제, 복지 등 새로운 영역에서 투입하면,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경제정책과 운용을 추가자원을 투입했을 때 부가가치가 더 높게 나오는 쪽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적이고 새로운 발전이자 보다 한국사회가 성숙한 미래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상적 혁신체제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은 낙수효과를 믿고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제에 낙수효과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과거에 우리나라 재벌 기업이 기본적으로 국민주권적 경제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월가를 중심으로 한 외국의 투기적 탐욕자본의 방어막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론(대안경제론)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형성된 거대한 재벌 기업에 가능한 자원을 투입하고 국가가 개입하여 발전전략을 시행하면, 거대한 외국자본의 탐욕성을 방어하고 국민경제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이 검증됐습니다.
YS부터 현재까지를 살펴보면 재벌들의 독점성과 월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의 탐욕성이 단단히 손을 잡고,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됐죠. 시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매우 불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재벌기업의 독점성과 금융재벌의 탐욕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후기산업화과정이라는 구조적 현재진행형에 있어요. 독점성과 탐욕성에 더하여 산업의 구조적 격변이 진행되면서 경제사회운영의 성과들을 극소수가 독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듭니다. 소위 1.0%가 90%의 부를 소유하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만들어진 재화, 서비스를 전 국민과 공유하고 순환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민주적 공화정부가 이를 강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은 일반적 시민의 생활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죠. 고 김근태는 이를 제민지산(制民之産)이라고 우리를 일깨웠습니다.
- 앞으로 시민권력이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 그것이 ‘다른백년’이 하고자 하는 핵심문제입니다. 우리나라 기본문제는 거대한 산업자본 권력 밑에 공익을 시행해야하는 정치권과 고급관료들이 종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주요 언론도 수구적 집단을 중심으로 소유권과 편집권이 구성되어 있고 상당수의 지식인들도 곡학아세하는 식으로 가담하고 있죠.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의 현재는 탐욕적인 기득권 세력들이 자본의 물적 기반과 산업구조뿐 아니라, 정치행정체계와 언론 및 문화체계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속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들 경험과 각을 정치적으로 조직해 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죠. 이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한국사회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층이 올바른 담론을 형성해서, 이를 기초하여 각 분야, 각 지역의 시민사회 내에 거대한 공론의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작은 불씨에 휘발유를 붓는 작업인거죠. 현재의 SNS 환경이 이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요?
- 한국 종교가 자본 권력과 싸울 수 있을까요?
▶ 가톨릭역사를 보면 부패한 시기에는 항상 예언자가 나타나서 변화를 일으키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다시 부패가 성행하고 다시 개혁을 시작하는 변화의 과정이 반복됩니다. 가톨릭부패가 극심했던 12~13세기 이탈리아 아씨시에 성 프란치스코가 나타나서 큰 변화를 일으키죠. 현재의 교황님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썼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예상되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기득세력에 대하여 가히 혁명적 선언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교황님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회개하고 성찰하고 잘못된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새로운 변혁이 형성되는 역사의 흐름이 생겨나리라 믿습니다. 예수님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종교는 결국 시대의 소명과 맥락에 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실천신앙으로, 부처님의 근본질문으로, 동학의 변혁사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예컨대 동학의 중요한 사상이 ‘유무상자(有無相資)’입니다. 유무상자가 동학의 사상이긴 하지만 예수님과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 혹시 선생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배웠던 점이나 놀라웠던 점이 있으십니까?
▶ 가장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적에는 특별한 기질이 없었던 평범한 인물이었잖아요. 그런데 신부가 되고 점차 예수회 관구장을 맡고 주교가 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을 겪고,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놀랍도록 개혁적으로 변신해 가시는 것 같아요. 어떤 학자들보다 현실 문제를 보는 관점이 적확하시고 시야가 대단히 넓으신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잘못된 통념을 통쾌히 버리시는 결단도 갖추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아씨시의 성자가 부활해 오신 느낌입니다.
- 선생님 개인이 느끼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고, 신앙관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 처음에는 복음주의자들이 외치는 ‘예수님의 구원은 네게 주는 선물’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접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중에 소설 「쿼바디스」를 읽었어요. 감당할 수 없는 감동이 오더군요.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에서 최고의 장군이라는 자리가 보장된 한 인간이 사랑과 예수신앙을 통하여 변해가면서, 사자가 으르렁대는 죽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 용기가 무엇일까, 어떻게 저런 신앙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입시 준비를 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주일에 3~4일은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나이 많은 노인들이 다수였던 새벽기도에 빡빡머리 고등학생이 나타나니 목사님이 당황하시더군요(웃음). 그런데 대학에 와서 철학과 역사공부를 하면서 기존의 믿음이 깨지고 교회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으로 나오면서 예수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습니다. 예수의 근본적인 열정, 삶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 결국은 옳고 정의로움이 부활처럼 이긴다는 확신이 예수에 대한 그리운 신앙으로 되살아났다고 할까요.
-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진정보]
이래경 : 1973년 서울대학교 입학. 6년 동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로 있었으며, 현재 '한반도(김근태)재단' 부회장, 사단법인 '일촌공동체' 창립자 겸 회장, 변혁을 위한 연구기획법인'다른백년'준비모임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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