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8

손민석 신기철 선생의 책을 3권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

 

하루종일 신기철 선생의 책을 3권 연달아 읽었다.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 <전쟁범죄>, <국민은 적이 아니다>인데
이 3권의 책 모두 금장굴 민간인 학살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의 정치적 책임을 이승만 정부에 지우는 저자의 논지는 살펴볼 지점이 많다.
  • 책의 내용은 사실 대단히 간단하다. 대부분 사례 제시라 읽기에 그다지 부담도 없다. 어려운 논리도 하나 없다.
  • 왜 이렇게 많은 학살이 일어나야 했는지, 왜 그리 많은 죽음이 필요했는지 저자는 담담하게 서술하지만 그렇게 읽히지는 않는다.
  • 행간에서 저자의 분노와 격정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 저자의 정치적 견해를 보고 있으면 조금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을 많이 연구하다보니 나타나는 편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걸러서 들으면 된다.
  • 민간인 학살을 바라보는 저자의 입장은 제목인 <국민은 적이 아니다>로 집약될 수 있다.
  • 추상적인 차원에서 저자의 논지를 재구성해보자면 근대국가는 전쟁이라는 예외상태 속에서 '자기보호'를 행하기 위해 대단히 폭력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근대국가 자신이 이용할 수 없거나 근대국가에 협력하지 않는 '인간'은 모두 "적"으로 간주된다. 실상 타국과의 직접적인 교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장 상태에 군인들 간의 충돌보다 도시에 대한 일방적 폭격, 참호에 대한 집중포화, 민간인 학살 등 비무장 상태에 있는 이들에 대한 폭력의 행사가 더 많은 희생과 피해자를 낳는다는 점에 전쟁의 본질이 있다.

즉 전쟁이란 근대국가의 폭력 독점과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에 국가폭력의 정당성을 관철시키는 수단일 수 있다. 그리고 민간인 학살이란 이 폭력을 독점한 근대국가에 의해 조장된 "증오의 체계"가 근대국가에 의해 포섭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 저자는 오늘날의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국에 의해 증오의 대상으로 규정되고 국가기구의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본다.
  •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저자의 입장은 근대국가의 폭력의 독점과 그것이 자아내는 증오의 체계를 어떻게 무화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사회계약으로 구성되어 '대내적' 평화를 지켜내는 국가인 '리바이어던Leviathan'에 대해서도 썼지만
그뒤에 영국 내전을 소재로 삼아 그 반대의 상황인 반란과 무정부 상태가 된 국가를 의미하는 "베헤모스Behemoth"라는 이름의 저작도 썼다.
한국에는 번역이 안됐지만 두 책은 상당히 관련성이 깊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이뤄지는 국가의 베헤모스적 성격을 누르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리바이어던"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홉스는 지적한다.

그렇지만, 물론 홉스도 그렇게 말하지만, 국가의 베헤모스적 측면과 리바이어던적 측면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 할 수 있다. 베헤모스의 존재가 리바이어던을 뒷받침하고 리바이어던적인 측면이 베헤모스적 측면을 낳는다.
끊임없는 내외적 무정부상태가 국가권력의 자기정당화를 통해 주권행사의 영역을 창출해낸다. 한국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한국의 근대국가 또한 베히모스와 리바이어던의 이중주 속에서 인민을 강력하게 포섭할 수 있었다.
근대국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저자의 인권과 평화에 대한 관심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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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 - 지역민에게 듣는 옹진 이야기 신기철 (지은이)역사만들기2020-06-25

308쪽
책소개

옹진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해방과 분단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의 전선이 교차되는 혼란과 갈등 속에서, 옹진의 주민들은 바다만큼이나 깊은 전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군인이 아닌데도 전투에 동원되어야 했던 청장년은 물론 여성과 아이들도 큰 고통을 겪었다. 전장은 전투가 끝난 뒤에도 고통 속에서 살았던 지역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그 당시를 겪은 주민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서 지역의 역사를 돌아보며, 구체적인 역사의 얼굴을 찾아가고 있다. 이는 공적인 역사담론에서 누락된 개인과 지역의 역사를 당사자들의 언어로 다시 쓰고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가 투쟁하는 장이다. 이 책은, 역사의 맥락과 조우하는 개인이 어떻게 역사에 등장하고, 새로운 역사로 쓰일 수 있는지 치열하게 탐색하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삶과 역사는 우리 앞에 회귀하고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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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전쟁의 언어를 다시 쓴다는 것 1장 해방, 그리고 분단이 시작되다 1. 식민의 시대 어린데도 키가 크다고 잡혀갔어|게다로 뺨을 맞기도 했어|배가 침몰해 300명도 넘게 죽었어 2. 섬의 해방 풍경 ‘해방’이 무슨 말인가요? |선착장에서 만세를 부르며 춤춘걸|그 통곡을 어찌 다 표현할까|만세 만세! 반사이 반사이? |해변에 일본군 시체가 떠밀려오데? 3. 분단 시대의 시작 소련군이 연평의 소금을 뺏어갔어|백령에서는 첩보전이 치열했어|군인들한테 밥 가져다주다가 죽었어|전쟁 나기 전에도 우익 청년들이 활동했어|신도를 대한민국, 시도를 인민공화국이라 부르기도 했어|덕적도 어민들의 삶을 쓴 소설가가 있었어|유명한 용호도수산학교가 있었지 2장 전쟁이 일어나다 1. 피난 가고 피난 오는 사람들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 확대되고|섬에서 피난 가고, 섬으로 피난 오고|다리가 끊어져 사람들이 가물가물 사라졌어 2. 인민군이 상륙하다 총소리가 나더니 인민군이 상륙하데 / 연평에 인민군이 상륙했는데 조용했어 / 북도면 시도에서는 인민군이 활동했어 / 강제노동에 많이 동원됐어 / ‘빨갱이’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지8 6 영흥에 이북 청년들이 들어왔어 / 인민군 구경도 못하고 만세를 불렀어 / 의용군에 안 끌려가려고 숨어 다녔어 / 천장에 숨기도 했어 / 추락한 비행기에서 미군을 구출했다니까 / 덕적도 사람들도 미군 비행사를 구출했어 3. 후퇴하는 인민군 인민군이 백령에서 후퇴하다 엄청 죽었어 / 인민군이 총을 쐈는데, 살아남았지 / 인민군이 어선을 동원해 백령을 탈출했어 / 이작도 청년들은 해군상륙 직전에 피신했어 / 영흥도에 인민군은 주둔하지 않았지 3장 국군이 상륙하다
1. 인천상륙작전, 옹진 남부에 상륙한 해군 인민군이 아니라 주민들이 죽었어 / 문갑도에서 해군 최초의 상륙작전을 했어 / 함대가 와요! / 밧지름 해안에 해군이 상륙했어 / 군인이 와요! 피난 가요, 피난 가 / 먹염 앞바다에서 노래를 불러도 좋은가 / 마을 사람들이 죽었다니까 / 구덩이에 숨었는데, 어린애도 죽었어 / 주민들이 십리포 해안으로 끌려갔지 / 구덩이에 몰아넣고 / 밧지름 해안가에 뼈들이 떠내려왔어 / 인민군이 영흥을 공격했어 / 이승엽 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었어 / 월북했다가 내려와 반공강연한 사람이 있었지
2. 해군의 옹진 북부 상륙과 민간인 피해 함정까지 헤엄쳐가서 폭격을 막았어 / 그때는 해군 세상이었어 / 피난 못 간 부인들이 많이 죽었지 / 백령도 당개에서 인골이 나왔어 / 대청도 갈대밭에서 뼈를 캐가더라고2 02 치안대가 조직되고, 피신하고 / 정말 오발이었을까? 4장 전쟁이 계속되다 1. 이북의 청년방위대와 치안대 영문도 모르고 해주로 갔어 / 해주 신주막에서 혼자 살아남았어 / 무명 6용사의 죽음을 다시 보다 / 이북 송화에서도 동키부대가 활동했어
2. 옹진, 동키부대 후방기지가 되다 백령에는 피난민과 동키부대가 함께 있었어 / 동키부대는 수를 부풀렸다고 해 / 동키부대하고 갈등을 잘 풀었어 / 동키부대가 섬에 주둔했어 / 무선사로 활동하다 총에 맞았어 / 군부대가 주둔하고 이북 패잔병들이 오고 5장 후퇴와 피난 이후를 살다 1. 국민방위군으로 다시 떠난 피난 까마귀 싸움터로 춤추고 간다 / 덕적에서는 학생들이 전쟁에 동원됐어
2. 옹진으로 들어온 피난민 외양간 소까지 몰아내고 살았어 / 주민이 2천 명인데, 피난민이 3만 명이야 / 피난민 집이 많아 길 찾기도 힘들었지 / 영흥에도 피난민 마을이 생겼어
3. 전쟁 이후, 탈바꿈한 전쟁 화동 어선들이 공격당했어 / 백령에 추락과 폭격이 있었어 / 상이군인들이 들이닥치면 도망갔지 / 부역자나 월북자의 가족이라서 / 다섯 집 건너 하나씩 간첩신고 벨이2 82 바다에서 납북어부가 되기도 했어 / *맺음말 / 주석 / 참고문헌 / 이미지 출처 --------
책속에서 첫문장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국가를 전시 총동원체제로 바꾸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P. 14 “만약 덕적이 육지였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구술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옹진 지역의 민간인 학살은 옹진이 섬이었기 때문에 더욱 고립되어 행해진 측면이 있었다. 특히 인민군과 국군의 교차 점령기에 벌어진 비극을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 중 남북의 전선이 교체되면서, 군인이 아닌데도 전투에 동원되어야 했던 청년들은 물론 그 가족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겪었던 고통은 극심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고통의 얼굴, 그 당시를 겪은 주민들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전장은 단지 전투 현장만이 아니었고, 전투가 끝난 뒤에도 갈등과 후유증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접기
P. 65 옹진 지역의 인민군 점령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군사적 관점에서 한국전쟁 초기 패전의 역사로 볼 수도 있지만, 옹진 지역에서 살아간 주민의 관점에서, 그들이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역사가 재구성될 수 있다. 역사적 현장을 살아간 옹진 지역 주민들의 기억과 증언은 매우 진귀한 기록이고, 객관적 역사를 충실히 복원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접기
P. 177 덕적 저기 먹염인가 거기예요. 덕적도에서 그런 얘기 하지요. 돌아가신 장소까지 가보았어요. 내가 커서. 달 바위라고, 먹염이 커요. 거기는 양지바른 데에 뼈가 다 모여 있었어요. 바위가 양지바른 데에 다 모여 있었어. 문갑 쪽으로 양지바른 데에 뼈가 다 모여 있었죠. 죽은 사람들 뼈가 바닷가로 떠내려오고. 내가 열여덟 살 때 가보았을 거예요. 뼈가 잔뜩 모여 있었어. 나무 넝쿨, 죽은 지 오래 되었으니까 우거졌지. 접기
P. 259 우리들 쬐그만 할 때, 국민병 가는데 노래 불러주고 막 울고 그랬어. 처녀들이 줄 서서 “까막이 싸움터로 춤추고 간다” 노래 부르고 그랬어. 입안에서 뱅뱅 도네. 열두 살인가 열한 살인가. 언니들이 울며 그 노래 부르면 같이 따라서 울었어. 이불 보따리 짊어지고 군인을 나가는데, 그냥 왜 그런 때는 컴컴하고 으슬으슬한 밤에 데리고 가? 그걸 보고 그렇게 울었어. 우리 친정 큰오빠 작은오빠 다 가니까. 형제가 다 가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울기만 했어. 군인 나가는데 서럽지. 지금 같지 않지. 막 우는 거야. 국민병 가는 거야.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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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및 역자소개 신기철 (지은이)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구로·영등포지역 노동운동과 고양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고양금정굴 사건을 만나면서 국가범죄, 전쟁범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3),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6~2010)에서 일했다. 현재 금정굴인권평화재단에서 인권평화연구소장으로 일하며, 희생자 유해안치와 학살현장 보전, 평화공원 조성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벌어진 민간인 희생사건과 전쟁범죄, 국가범죄 등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의 구술을 재구성해 지역민의 생애와 당시 사회상, 공식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전쟁경험을 복원해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하고, 기억되지 않은 이름들을 되살려내려고 한다.
--- 저서로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2011), 『국민은 적이 아니다』(2014), 『전쟁범죄』(2015),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2016), 『멈춘 시간 1950』(2016),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2018) 등이 있으며,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2017)으로 2018년 제12회 임종국상을 수상했다. 접기 최근작 :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 총 8종 (모두보기)
-----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기억과 증언으로 다시 쓴 한국현대사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건과 죽음을 기록하고 복원해낸 역작 지역민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이해한다! 지역민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전쟁의 언어를 다시 쓴다는 것 2020년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해이다. 한국현대사는 한국전쟁의 영향에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분단의 상처와 전쟁의 기억, 후유증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왔으며,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려 왔다. 그동안 한국현대사 연구는, 해방 이후부터 분단과정에 이르는 전쟁사와 국가 수립을 둘러싼 국제관계와 국내 정치세력에 대한 해석에 집중되어왔다. 정작 그 혼돈의 시대를 살아간 지역 주민의 삶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전쟁을 보느냐에 따라, 누구의 언어로 경험을 쓰느냐에 따라 역사의 얼굴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한국전쟁 당시의 국가범죄와 전쟁문제에 대해서 조사하고 연구하며, 역사적·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지역민의 전쟁경험을 듣고 기록을 남기는 활동을 해왔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 역사적 현장 속 지역민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기록되고 조사되지 못했는데, 이제 당사자들은 고령이 되어 그 기록과 보존이 시급한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시기에 분단의 최전선, 바다라는 전선에 둘러싸여 고통을 겪어온 옹진의 역사를 당사자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새롭게 살펴보고 있다. 한국사회를 규정해온 현대사의 공식 서술들은 역사의 미시적인 접근 속에서 새롭게 드러나고, 전쟁이 눈에 보이는 전투만이 아니라 민간인들의 숱한 고통과 죽음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좀체 시도되지 않았던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역사를 지역민의 언어로 다시 쓰고, 구체적으로 되살려낸 이러한 치열한 시도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다 옹진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옹진의 섬들은 식민의 기억과 해방의 기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분단선이 어떻게 생겨나 고통의 현장이 되었는지 그 원형을 박물관처럼 보여주는 지역이다. 저자는, 식민지 시대, 해방 직후, 한국전쟁, 이후 분단시대를 통과하며 옹진 지역민들이 전쟁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구술 증언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옹진 지역의 의용군 강제징집과 상륙작전과 수복 과정의 피해, 이후 부역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의 죽음, 군사작전에 동원된 청년들의 죽음 등 한국전쟁이 일상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가 당사자들의 언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옛 옹진 지역에서는 주둔한 국군이 인민군을 상대로 국지전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대한청년단 등 준군사 조직으로 동원되거나 노무부대나 보급대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쉽게 들을 수 없었던 귀한 증언이기도 하다.(연평도 구술인, 50~51쪽) 군인보다 우리가 더 죽었어. 군인들은 싸우다 죽는다지만 우리는 맨몸에 밥 가지고 가다 많이 죽었어요. 그때 보급대 무진장 죽었어요. 박격포, 조그만 따쿵총 떨어지잖아. 무진장 죽었어, 보급대. 전쟁 전에. 또한 국민보도연맹에 대한 증언을 통해 전쟁 전에 전국에 걸쳐 조직된 국민보도연맹이 덕적군도의 작은 섬인 이작도에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대이작도 구술인, 55쪽) 여기 보도연맹 한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여기서 셋인가 넷인가. 그 사람들, 스무 살여 되는 사람들은 영흥 가서 다 죽고 젊은 사람들은. 그때 여기가 열여덟 살 먹은 사람들은 보도연맹에 전부 가입했는데, 나는 그때 나이가 어려서 안 했어요. 이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자유롭지 못한 ‘빨갱이’라는 용어가 당시에 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이승만정권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해방 이전에는 없었던 말이다. 주민들은 인민군이 점령한 시절 ‘빨갱이’가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직책인 줄 알았다고 한다.(대청도 구술인, 86쪽) 인민군이 잔뜩 들어와 우리 마당에서 훈련을 했어요. 경나무 옆에서 쉬면서 하는 말이 저 아랫마을에 가니까 상투 튼 할아버지가 오더니, “빨갱이님 저 좀 한 번 살려달라”고 그랬다고. 그 소리를 듣고 나도 같이 웃었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거든. 매일 회의 나오라고 하고. 애들 데려다가 노래시킨다고 하고. 아침마다 모여서 노래 부르라고 하고. 매일 사람들 동원해서 산 뺑 둘러서 파고. 일하러 나오라고 해서 끌려다녔지. 특히 이북 피난민들의 정착 이야기나 간첩사건에 얽힌 사연, 납북어부에 대한 이야기는 옹진 지역이 전쟁의 고통을 어떻게 겪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어민들은 해상에서 어로작업 중 돌발 상황이 벌어져 북방한계선을 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어부들은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백령도 구술인, 286쪽) 형부 하나가 끌려가 죽었어. 홍어 잡으러 나갔어. 인민군 배가 덮쳤어. 잡아가는 거야. 그 애가 밧줄을 세 번 끊었데. 총을 쏜 거야. 총에 맞았어. 장산곶에 묻었다고 하더라고. 3명이 또 죽었지. 두 번째 잡혀가다. 다 물에 빠져 죽었데. 한 사람은 산 거로 나왔데. 가을리 사람인데. 이북에 갔다 온 사람들은 자식들이 공무원 아무것도 못 봤어. (연좌제) 계속 따라다녔데. 6촌까지 따라다닌다고 하더라고. 4촌이 갔다 왔는데 군인도 못 갔다잖아. 전쟁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닫혀 있었던 역사의 문을 열어준다. 증언을 통해서 민간인들이 전쟁을 어떻게 겪었는지, 인민군 점령 시절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수복 후에는 어떤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연대하게 되고, 역사는 현재화될 수 있다. 그것이 이야기를 듣기의 놀라운 힘일 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삶과 역사는 우리 앞에 회귀하고 되풀이될 것이다 전쟁사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겪은 고통은 그 전쟁을 통과하며 살아낸 이들의 기억이 아니면 되살려낼 방법이 없다. 전쟁은 이데올로기 싸움이고, 군인과 강한 자들의 기록이 역사화되기 때문이다. 남북의 전선이 교체되면서, 군인도 아닌데도 전투에 동원되어야 하는 청년들과 그 가족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은 겪은 고통을 드러낸 점도 이 책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한편으로 구술과 증언을 통해 드러나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들은 역설적으로 공식적인 역사서술, 국방부 기록에 존재하는 공식 서술 등을 뒤집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식기록조차 사실이 아닌, 정황만을 가지고 단정하고 추론한 것이다. 이 책은, 당사자의 경험을 끄집어냄으로써 침묵하고 억눌려온 역사적 기억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반적이고 주류적으로 이야기되는 역사와는 다른, 미시적인 경험이 하나의 ‘증언’이 됨으로써, 개인이 역사 안에서 부상하고 또 다른 진실을 밝혀주고 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옹진 지역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다. 이 책을 통해 분단의 모순을 중심에서 겪어오며 치열하게 살아온 옹진 지역민들을 통해 한국현대사, 특히 한국전쟁의 깊은 면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옹진은 오늘날 평화와 통일을 가장 열망하는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책은 그 중요한 기억이며 증언이다. 밝혀지지 않은 일, 억압된 것, 억울한 죽음, 닫혀버린 입은, 언제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 얼굴은 사라질지언정 진실을 밝히지 못한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전해지고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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