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7

한국정신대연구소 / 윤정옥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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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近現代史/人物

한국정신대연구소 / 윤정옥

남쪽나라

2012. 8. 11.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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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대연구소



윤정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초대 공동대표

아무도 주목 않던 위안부 문제 최초로 세상에 밝혀내다






이제는 많은 국민이 알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이지만, 한 여성의 헌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일본 군국주의가 우리에게 행한 이 만행은 그냥 잊혀진 역사가 됐을지 모른다. 
부끄럽다며 당사자도 입 다물고 어느 역사학자도 관심 갖지 않던 ‘정신대’. 그래서 해방 후 몇 십년이 지나도록 그저 어렴풋한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위안부문제를 최초로 찾아내 역사 앞에 끌어낸 이가 바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초대 공동대표 윤정옥 선생이다.
“정신대 운동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고 대표에서도 물러났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는 윤 선생의 집을 무작정 찾아간 지난 22일, 윤 선생은 2002년 12월 타계한 일본인 친구 마쯔이 야오리를 위한 추도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마쯔이 야오리는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윤 선생과는 국경을 넘은 동지이자 친구가 된 사이였다. ‘처녀공출’로 끌려간 14살 소녀는 왜 안돌아 올까?

윤정옥 선생이 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열일곱 나이, 가슴에 화인처럼 박힌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3년 이화여전 1학년 시절, 어느 날 학교는 1학년 학생을 전부 지하교실로 모으더니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고 아래 양쪽 귀퉁이에 지장을 찍게 했다. 정신대 소집장이었다. 그 다음날로 자퇴서를 썼다. 학교에는 이미 자퇴하려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해방 후 다시 시험을 쳐서 이화여전에 재입학 했어요. 그런데 해방이 돼 징용·징병으로 끌려갔던 남자들은 돌아오는데 여자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없었어요. ‘처녀공출’로 14살짜리가 끌려가고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어찌된 일일까? 그래서 소문부터 채집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이화여대 영문과에서 가르치며 하루하루 바삐 지내며 이 일은 한동안 잊혀졌다. 다시 정신대 문제를 기억에서 되살려낸 건 1970년대 중반. 일본 기자 센다 가코우(千田夏光)가 쓴 <분노의 계절>이란 책 속에서 ‘종군위안부’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윤 선생은 일본 오키나와, 홋카이도, 태국, 미얀마, 파푸아뉴기니 등지를 다니며 정신대에 끌려갔던 여성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의 할머니’로 유명한 배봉기 할머니(자신이 종군 위안부였음을 세상에 최초로 밝힌 이로 지난 91년 77세 일기로 작고)를, 태국에서 노수복 할머니를 만났다. 소문을 ‘사실’(史實)로 확인해 나간 것이다. 그 만남들을 토대로 81년에 한국일보에 정신대할머니를 찾아다닌 기록을 연재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88년, 교회여성연합회가 주최한 기생관광문제에 관한 국제 세미나 자리에서 윤 선생은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국내외에 정신대 문제를 환기시켰다.
“그 이전까지 나는 여성운동이라는 것을 한 적도 없고, 정치문제에 관해서도 전혀 몰랐었죠. 그런 내가 정신대문제에 깊이 빠져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이효재 선생이 정신대 문제를 처음 세상에 얘기할 수 있게 다리역할을 해주었어요.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세미나에 참석했던 일본, 한국 여성 모두 깜짝 놀랐죠.” “우리나라는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다” 이후 관심 있는 연구자들과 여성운동가들이 정대협을 발족했다. 그 성과가 모여 2000년 일본 동경 여성국제법정은 히로히토 전 일왕과 일본 정부에 유죄를 선고했다. 또 2001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법정은 동경 법정이 판결을 유보한 조선군 사령관이었던 이타다키 세이지로를 비롯한 각 지역 군사령관 등 10명에 대한 선고와 최종판결을 내렸다.
히로히토 일본 왕에 대한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윤 선생은 아침마다 눈을 뜨지 못하고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노리고 있는 일본에게 피해자들의 인권을 회복시켜주지 않는 한, 절대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음을 상기시켜준 판결이었죠.”
이처럼 정대협 운동은 윤 선생을 ‘다시 태어나게’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배운 것 없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라며 화를 내는 할머니도 있었고 ‘당신 나이 또래에 대학 교육을 받았을 정도면 틀림없이 친일파의 딸’이라는 말로 속을 긁는 할머니도 있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은 일본 경찰의 가택 수사를 받을 정도로 외가, 친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한 집안이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지만 피해자들의 심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할머니들이 너무나 가여웠어요. 할머니들이 살아온 생활을 보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30여 년 동안 영문학교수로 수많은 소설을 읽고 영어 소설을 가르쳤던 그는 자신이 정말 인간과 인생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 정신대 할머니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읽은 소설 속의 기가 막히고 끔찍하고 비참한 인간사들은 할머니들이 살아온 생활, 일제시대의 절대빈곤, 위안소 시절의 고통에 비할 수가 없는 것이었어요.”
98년 조사해 온 사할린 위안부에 관한 보고서와 정대협 운동에 얽힌 뒷이야기를 쓰는 것이 남은 일이라는 윤 선생은 일본이 중국 땅에 버리고 간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는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자료출처 : 미즈엔,신민경 기자>


[출처 : 여자만세]


第2回 [유관순賞] 受賞者 프로필
인적사항
- 성 명 : 윤 정 옥 (尹貞玉)
- 생년월일 : 1925. 9. 21 (만 78세)

- 출 생 :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
- 주 소 : 서울시 서대문구 대신동 131 (☎ 02-393-1215)

학 력
- 1949. 7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 1955. 6 미국 스칼랫대 (석사, 영문학과 성서문학과정)
- 1967. 6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석사, 영문학과 창작과정)
- 1980 영국 University Exetor 영문학 연구


주요경력
- 1958∼1991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 1990∼2000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 2000∼현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위원

주요 포상내용
- 1992. 1 여성동아 대상 (동아일보사)
- 1993. 9 올해의 여성상 (한국여성단체협의회)
- 1995. 9 시민인권상 (서울지방변호사회)
- 1999. 5 자랑스런 이화인상 (이화여대)


第2回 [유관순賞] 受賞者 功績要約

1. 동남아 각 국에서의 정신대 자료 발굴 및 여론 환기
1980년부터 90년까지 10여년간 5차례에 걸쳐 일본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타이 핫차이, 파프아뉴기니 라바울 등지를 찾아 정
신대의 발자취 답사 확인
- 현지인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그 지역의 신문 등에 실렸던 당시의 기사 등을 수집
- 1980년 오키나와 현지에서 정신대 할머니 배기봉씨를 만남
- 1981년부터 정신대에 관한 자료를 수집 한국일보에 "끌려간 사람들 - 도공과 정신대를 찾아가는 길" 연재
- 현장기록을 정리 90년 1월 한겨레신문에 4회 연재하여 국내외에 정신대 문제를 새롭게 조명
2. 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조직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15개 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정대협 결성
10년간 공동대표직을 맡아서 숨어살던 정신대 할머니들이 세상에 나와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도록 설득

滿洲에서 첫 韓 日 합동 종군위안부 위령제 거행
- 1992년 6월 중국 동북부지방을 찾아 당시 그 지역에 주둔했던 日本軍 출신의 증언을 바탕으로 종군위안부의 묘지를 찾았으며
- 吉林省 東寧市 인근 石門子 마을에서 그곳에서 살다 숨진 종군위안부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냄
- 인근 지역에 있었던 日軍위안소 건물과 터 8개소를 확인하고 현지인 들로부터 당시의 만행 등에 대하여 증언 청취
3. 1993년 11월 평양을 방문 정신대 문제에 대한 남북 공조체제 구축 및 국제사회에 알림
北韓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 주최로 평양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처리 문제에 관한 [평양국제토론회]에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대표자격으로 참석
일본정부의 교과서 개정에 관한 내용을 주제 발표하여 국내와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의 정신대 문제에 대한 관심제고
4. 韓 日 양국정부에 정신대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 공개요구 등 정신대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확산시킴
1995년 5월 노태우대통령 訪日에 맞춰 한 일 양국 정부에 정신대 문제 대책을 촉구하는 공식 서한 발송 일본 국회의원들과 토론회를 갖고 한국 국회에 청원서 제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수상 訪韓시 시위참가
도쿄 아시아평화를 위한 여성 심포지움에서 발제강연
日本의 女性團體들과 협조 매주 수요일 韓國과 日本에서 동시에 시위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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