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4

[석탄일 특별 인터뷰] ‘자비 명상’ 설파하는 힐링멘토, 마가 스님 : 월간조선



[석탄일 특별 인터뷰] ‘자비 명상’ 설파하는 힐링멘토, 마가 스님 : 월간조선




‘자비 명상’ 설파하는 힐링멘토, 마가 스님
“오늘 내가 뿌린 씨앗이 미래의 열매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마가 스님
⊙ 54세. 광주 금호고 졸업. 1982년 입산. 1985년 도선사에서 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 전공. 現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중앙대 겸임교수·(사)자비명상 대표.
⊙ 저서: 《알고 보면 괜찮은》 《내 마음 바로보기》 《내 안에서 찾는 붓다》 등.

◎ 취재기자가 말하는 마가 스님의 '힐링법' ☞ 영상 보기


스무 살의 청년은 지난 1년간 모은 수면제를 열 알, 스무 알씩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대산의 아름다운 설경(雪景)이 가물가물해지며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가 자살하면 아버지가 평생 후회하면서 살겠지’. 아버지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산에서 죽어가는 그를 발견해 월정사로 옮겼다는 스님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는 부처님 가피로 다시 태어났으니, 여생은 부처님에게 바치게나.”

35년이 지난 지금, 고단한 삶에 지친 대중이 그를 찾는다. 스님이 쓴 《알고 보면 괜찮은》이란 책은 베스트셀러, 그가 중앙대에서 강의하는 《내 마음 바로보기》(3학점)는 ‘1초 마감’으로 유명하다. 수강 신청 시작과 함께 곧바로 마감되기 때문이다. 그가 설파(說破)하는 ‘자비 명상’은 미움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하나의 힐링(healing)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혜민·법륜 스님 등과 함께 이 시대의 힐링멘토로 꼽히는 마가 스님 얘기다.

“오는 5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한 말씀 청하러 왔다”고 하자 스님이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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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복이 와요. 그게 만고의 진리지요. 하하.”

마가 스님은 기자가 준비해 간 책 앞 장에 둥그런 원을 그린 다음에 사람의 웃는 표정을 채워넣었다. 그 밑에는 복(福)이라는 한자를 썼다. ‘웃으면 복이 와요. 마가 두손 모음’(윗그림)이 완성됐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쉬운 해학 그림이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됐는데도 저보고 성격이 괴팍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느낌을 주려고 아이콘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웃는 얼굴의 동그라미를 3년 동안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려도 그려도 제 마음에 드는 동그라미가 안 그려지는 겁니다. 동그라미를 잘 그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안 됐습니다. 결국 포기를 했죠. 3년 동안 동그라미만 그리다가 포기했으니 마음이 허했겠죠. 차를 한잔 마시는데 그때 그토록 찾던 완벽한 동그라미가 눈에 보였습니다.”

마가 스님은 종이 위에 마시고 있던 찻잔을 뒤집고, 찻잔의 둥근 원형을 종이 위에 따라 그렸다. 스님의 말처럼 완벽한 동그라미가 종이 위에 선명히 그려졌다.

“아하, 잘하려고 한 것이 나의 욕심이었구나. 그 욕심을 버리고 나니 동그라미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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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면 병 되고, 터트리면 죄 된다”

―강의의 별칭이 ‘1초 마감’이라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인기를 끌려고 하지 않았으니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욕심을 가졌다면 그 강의가 인기 없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강의를 해야 했고, 제게 주어진 시간만큼은 멋지게 쓰려고 한 것뿐입니다. 그 진심이 학생들에게 전달됐겠지요.”

―다른 스님들도 마가 스님처럼 스타가 되면 기분이 좋겠지요.

“많은 이가 반가워해 주니 기분이야 좋죠. 조금 지나면 덧없이 사라져버릴 것이지만요.”

―사람들이 왜 스님을 두고 ‘힐링멘토’라고 부릅니까.

“포교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자기 내면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하고 인내하고 사는지라, 무언가를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둡니다. 썩고 곪은 것이 한계에 다다라서 아플 때가 되어야 그 마음을 봅니다. 토해내야 하는데 제대로 토하는 법을 모릅니다. 엉뚱하게 다른 이에게 불똥이 튀어 ‘묻지 마 범죄’가 생깁니다. 참으면 병이 되고, 터트리면 죄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사라지지만요. 한국인들의 막힌 가슴을 먼저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비 명상’ 얘기를 시작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가 봅니다.”

―막힌 가슴을 뚫기는커녕, 무엇이 가슴을 막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괴롭다는 것만큼은 사실 아닙니까. 저는 머리 깎고 승려가 된 후에도 아버지를 증오했습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정체 모를 화 때문에 수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카락만 잘라냈지 제 마음속의 화를 자르지 못한 겁니다. 가슴을 옥죄는 정체인 아버지를 인정하고, 토해낸 다음에야 자비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가 스님의 화법은 여느 스님과 많이 달랐다. 어려운 불경의 구절을 인용하지도, 선문답(禪問答)을 하지도 않았다. 머리를 깎지 않고 회색 법복(法服)을 두르지 않았다면, 그저 인생살이 선배와의 대화쯤으로 여겼을 터였다. 그가 젊은이들의 ‘힐링멘토’가 된 것은 격식 없음이 한몫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가 스님의 ‘마음속 응어리 풀기’를 진심으로 느끼려면 잠시 그의 인생을 엿봐야 한다. 스님은 “내가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람들 마음속의 응어리를 잘 안다”고 말했다.



“내 마음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라”

스님에게 가장 큰 아픔은 가족이었다. 스님의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와 바람이 나서 도회지에 살림을 차렸다. 아들 없이 며느리와 살아야 했던 그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남편에게 버림받아 괴로우면서도 4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그의 형제들은 우울한 집안 분위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가 나고 자란 전남 고흥 촌구석은 동네 초등학교 소풍날이 되면 온 가족이 따라 나섰던 곳이다. 스님은 소풍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도시락을 준비해 놓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마을 뒷산으로 내달렸다. 주워든 소나무 가지를 들고 쭈그려 앉아 땅바닥을 헤집으며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자라면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 전이됐고, 그는 어린 시절에 아무 이유 없이 종종 친구들을 때렸다.

그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 도회지에서 교육을 시키고자, 그를 광주시에 사는 아버지 집으로 보냈다. 그의 방황은 극으로 치달았다.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에, 어머니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새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말썽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노란 브리지 머리를 한 누나의 뒤를 쫓아가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다. 마가 스님은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고, 아버지가 이에 반대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겠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고 한다. 마가 스님의 말이다.

“참 그 녀석, 어렸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버지 없이 태어나서 상실감이 컸던 울분을 친구들 패주는 것으로 폭발시킨 겁니다. 제 어린 시절에게 연민이 느껴지네요.”

―꼭 스님의 어린 시절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럼요. 지금 제가 있고, 제 마음속에는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저를 다른 곳으로 가라 하고, 누구는 틀리다 누구는 맞다고 말합니다. 그런 내 마음을 제3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명상입니다. 내 마음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참 재밌습니다.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는데, 그 마음이라는 녀석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혼자서 난리가 납니다. 그런 내 마음을 한참 바라보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하하. 명상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채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내 몸에서 마음을 분리하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김연아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면 아나운서가 중계를 합니다. ‘김연아 선수, 노란색 옷을 입고요. 첫 번째 점프를 성공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나의 내면을 한번 바라보세요. ‘지금 내가 말을 하네’ ‘화를 내고 있네’ ‘걷고 있네’라고 말입니다. 자꾸 하다 보면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인지,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가 보입니다. 나아가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명상을 통해 흩어진 마음을 다잡아야”



마가 스님은 불교계의 최고 인기 힐링강사 중 하나다. 사진은 작년 11월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인도 쿠쉬나가르에서 불교성지순례자들을 명상으로 이끄는 마가 스님.
―구체적으로 어떻게 명상합니까.

“힘을 빼고 목과 어깨,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어줍니다. 온몸의 힘을 빼고 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슴을 폅니다. 편하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세요. 두 번째 숨을 쉴 때에는 눈을 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느껴보세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애들이 떠들면 칠판을 두드리면서 ‘주목~’이라고 말하잖습니까. 그렇게 내 마음에 ‘주목~’을 외쳐보세요. 숨을 마시고 내쉴 때마다 외국에 가고, 100년 후의 미래도 갔던 마음을 붙잡아보세요. 돌아다니는 그 다심(多心)을 일심(一心)으로 만드는 것이 명상의 요체입니다.”

―다심을 일심으로 만들고 나서는요.

“그렇게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세요. 아나운서가 경기를 중계하듯이, 이 순간 내가 깨어 있음을 느끼는 겁니다. 그것이 곧 자기를 보는 것이고, 생각의 노예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겁니다. 명상을 통해 내재돼 있는 DNA가 드러납니다.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 안의 응어리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으면요.

“밥을 먹는 순간 밥을 먹음에 깨어 있고, 공부하는 순간 공부하는 것에 깨어 있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참된 나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봤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정말 내 인생의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싶습니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죠. 불교에서는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을 중시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동, 말, 생각이 과연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행복한 결과를 원한다면, 그 결과만 추구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복의 근간이 되는 행동과 말, 생각을 바꾸고 이를 따를 때 결과가 바뀝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찾고, 그 원인인 행동을 바꾸라는 말씀입니까.

“부처님 말씀에 과거에 뿌린 씨앗은 현재의 나이고, 오늘 내가 뿌린 씨앗은 미래의 열매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바뀝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막연히 미래에 행복하고 싶다는 것은 안 됩니다. 불교는 삼업을 닦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도 그것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편해졌습니다.”

―그럼 스님은 화가 나지 않습니까.

“화가 났다기보다, 화난 내 마음을 만난 적이 있죠. 세 모녀 자살 사건, 거제도에서 실직한 아버지가 빈집에 있다가 타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제 마음의 녀석이 화를 내더군요. 종교인으로서 무엇을 했는가를 곱씹어보면서,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일 이외에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 중입니다.”


증오했던 아버지 용서하면서 세상이 자비롭게 보여

마가 스님의 명상은 ‘자비 명상’이다. 마음의 상흔을 바로 보고, 이를 풀고, 그리고 타인들에게 이를 베푸는 명상이다. 실제로 마가 스님은 승려가 된 뒤 10여 년 가까이 내면의 나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고 한다.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아버지를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시켜 달라는 명상을 한 어느 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석양이 물든 경내에서 스님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스님의 입에서 이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말을 내뱉고 나니 그간 스님을 억누르고 있던 앙금이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가 스님의 얘기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세상이 한없이 자비롭게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내게는 선지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진실로 행복했습니다. 큰 스님(청화스님)이 제게 보내준 따뜻한 자비의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산에서 불경만 욀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알려주고 줘버리고 가자는 생각에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하하.”

마가 스님의 믿음 중 하나는 “내 안에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면 그 사랑이 넘쳐 상대에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마가 스님이 개발한 ‘자비 명상’은 템플스테이가 태동하기 전인 지난 2002년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자비 명상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스님이 개발한 자비 명상은 청문회, 유서 쓰기, 걷기 명상 등 여러 가지로 행해진다. 청문회는 일종의 역할극인데, 참가자들이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면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요소들과 화해를 한다. 참가자들에게 유서를 쓰게 하는 이유는 죽음이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 또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걷기 명상은 맨발로 하는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마가 스님은 “자비 명상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팔짱을 끼고 사찰을 내려가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볼 때 가슴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마가 스님의 ‘자비 명상’이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중앙대가 ‘내 마음 바로 보기’ 강의를 요청했다. 지난 2003년 첫해에 150여 명이었던 수강생이 지난 2011년에는 1500명까지 늘어 이제는 스님 다섯 명이 수업을 나눠서 진행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가 수업 중에 강조하는 것은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학생은 예비 직장인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청정한 자아(自我)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임제 스님의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마가 스님이 전하는 화를 풀어주는 1분 명상법

1. 명상에 들어가기 전 2~3분 동안 선 자세로 힘을 빼고 목과 어깨,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어준다.

2. 온몸의 힘을 빼고 자리에 앉는다. 허리를 곧게 펴고 가부좌나 반가부좌로 바닥에 앉거나, 등받이에서 등을 살짝 떼고 곧은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3.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낀다. 숨이 쉬어지는 대로 가만 두고서 그저 느끼기만 한다.

4. 마음이 방황하더라도 자기를 비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숨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돌린다.

5. 가슴 한가운데에 마음을 둔다. 마침내 마음이 조용한 연못처럼 고요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초조해하지 말고 숨에 조용히 마음을 모은다.

6. 1분이 지나면 눈을 뜨고서 눈에 들어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틈틈이 혹은 삶의 문턱을 만났을 때 이렇게 1분을 보낸다. 이 1분이 흔들리는 삶을 잡아주는 닻이 되어줄 것이다.

“종교 때문에 힘들다면 그 종교를 내려놓아라”

마가 스님. 참 이름도 생소하다. 한 번 들으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가 미얀마 선원에서 받은 산스크리트어 법명 마가(Magga)는 ‘걸림 없이 길을 가는 자’라는 뜻이란다. 거침없는 그의 성격과 꼭 닮았다.

스님은 “이름을 말하면 기독교 신자들이 ‘마가 복음’이 연상된다며 좋아한다”며 껄껄 웃었다. 불가와 인연을 맺기 이전에 목회자를 꿈꾸었다고 하니, 그는 이래저래 종교인으로서 살 운명이었던 것 같다.

―스님에게 첫 번째 힐링의 공간이 고등학교 시절에 다녔던 교회였던 거죠.

“네. 요즘도 그 교회에서 배웠던 노래를 법회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음악이 없었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불교도 하루 빨리 기독교의 음악을 벤치마킹해서 활용해야 합니다. 노래를 같이 부르고, 손뼉 치는 과정에서 내 속의 응어리가 많이 풀어집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공생(共生)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종교 때문에 갈등하거나, 힘든 이들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사람이 여행 중 힘든 상황에서 큰 강을 만났습니다. 그 강을 혼자 건너려 하는데 마침 뗏목이 보입니다. 그 뗏목에 의지해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뗏목을 강가에 내려놓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갈 길을 갑니다. 우매한 사람은 뗏목이 정말 고마웠기 때문에 지고 가기로 합니다. 어깨에 지고 가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은 잊습니다. 종교는 뗏목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종교를 가져서 힘들다면 종교를 갖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종교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 신자이기를 포기해도 된다는 겁니까.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내면에는 불성(佛性)이 있다고 믿습니다. 종교에 너무 심취하지 마세요.”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난무하는데 심취하지 말라니요.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들을 보면 그중 90%는 자기 안의 갈등, 집안에 불만스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본인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종교를 통해서 채우려고 하는 겁니다. 현재의 불만스러운 자신의 처지에서 탈출하고자 종교에 몰입하고, 그걸 통해서 힐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꼭 맞는 말입니다. 그릇된 인간 행동의 원인을 찾아가면 거기엔 온전치 못한 가정이 있어요. 부자로 살고 싶으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푸세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고 싶으면 어머니와의 관계를 풀고,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배우자와의 관계를 먼저 푸세요. 상처를 마음속에 단단히 가두면 응어리를 풀 수 없습니다.”

―부자로 살고 싶으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라니요.

“500원, 기사 읽고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으면 500원 들고 찾아오라고 하십시오. 참, 기자가 꼭 써줘야 할 것이 있어요. 제가 광신도 얘기를 언급했으니 본인이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화가 치밀 겁니다. 제게 따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그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꼭 써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제게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화가 나는 본질이 무엇인지 쳐다봐야죠.”



“가화만사성이 진리”

―편안하게 말씀하십니다. 화내는 이들이 꽤 될 것 같은데요(웃음).

“간이 작은 치와와는 바람만 불어도 짖습니다. 불도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정 불안하면 물어버리면 되니까요. 내면의 힘은 그런 겁니다. 껍질이 두꺼운 나무일수록 속살이 부드럽다고 합니다. 적의 침투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껍질로 에워싼 겁니다. 어떤 일에 떠드는 사람은 실제로 약하기 때문에 강한 척하는 겁니다. 혹여 주변에서 권위주의에 뒤덮여서, 무작정 자기 목소리 내기에 열을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생각하세요. ‘저 사람 안에 부드러운 내면이 있을 거다’라고요. 그러면 그 사람과 소통이 될 겁니다. 항상 현재의 내 주변의 관계를 먼저 편하게 풀도록 하세요. 증오로 30여 년을 살았던 제가 홀가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제 가족과의 관계를 풀면서부터였습니다.”

―가족 간에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에서 ‘부모은중경’의 구절을 가슴 깊이 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 히말라야를 백 번 천 번 돌아 살갗이 터지고 뼈가 부서진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는 구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멀리 떨어진 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가까운, 내 가족과의 관계를 제대로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숫타니파타》(불교의 경전집)는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고 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스님’이라고 저를 부르면서도 마치 초등학생 아기를 보는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에 자비를 베풀면 됩니다. 어머니는 부처님입니다.”


신학대학에서 공부 中

마가 스님은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신대에서 기독교를 공부하고 있다. 길희성(吉熙星) 서강대 명예교수와 얘기를 하다가 무릎을 탁 치고는 결정한 일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길 교수는 평생 대학 강단에서 불교를 가르쳤다.

“하루는 길 교수가, ‘목사들은 불교 공부를 많이 하는데 왜 스님들은 기독교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서양 2000년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 아닙니까. 왜 스님들이 동양에만 심취해 있어야 하나 싶어서 신학교 문을 두드렸죠.”

하지만 그에게 쉽사리 문을 열어주는 신학대는 없었다. 세례 교인에 한해 신학과에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다. 결국 스님은 문턱이 없는 한신대 종교문화과에 입학해 마지막 학기째를 맞고 있다. 마가 스님은 “신학 공부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 내 말년을 아름답게 만드는 초석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친교를 맺어온 최일도 목사, 김영택 신부 등 이웃 종교 성직자들과 만나 함께 교도소와 고아원 등 불우시설을 방문하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들이 함께 KTV에 출연해 <멘토링 토크쇼 시대공감 Q>를 진행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서로 틀리다고 하면 싸움밖에 일어날 것이 없고, 다른 점을 인정하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또 마가 스님은 올해 안에 달라이라마를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준비 중이다. 스님의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달라이라마를 초청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서 한 말씀 청하자는 겁니다.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서 그런 것 같은데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마가 스님과의 만남은 그가 몸담고 있는 동국대 정각원과 동국대 구내식당인 채식뷔페 식당을 오가며 이어졌다. 이동하는 와중에 마가 스님에게 손을 내미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 끊기기가 수도 없었다. 스님은 인사를 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기자에게 일일이 한 명 한 명을 소개했다.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 우스갯소리도 잊지 않았다.

“제주도보다 아름다운 섬을 발견했습니다. 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섬이 뭔지 알아요? ‘그래도’입니다. 이 섬 사람들은 전부 행복하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어딥니까’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불교를 믿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한 번쯤 가야 하는 절도 있는데, 그 절은 어디일까요? 바로 ‘우여곡절’입니다. 부자들도 우여곡절은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그래도 이만하기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웃으세요. 오늘도 웃으세요. 복이 온다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며 스님에게 “정말 화가 안 나고 행복하십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네. 한없이 행복합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매일매일이 보너스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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