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5

박정미 원효, 그는 幻(환)에 물들지 않았을까. 원효의 무애행 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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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201024
 
원효, 그는 幻(환)에 물들지 않았을까.

어쩌다 길을 걸으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릴 때가 있다. 그러다 원효생각이 났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위태로운 신라의 밤거리를 걸어갔을까. 신비롭고 깊은밤 어둠에 그는 물들지 않았을까.
책을 찾았는데 마침 이 책이 다가왔다. 괴이쩍게도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다.
진덕여왕의 구애에 응하지 않고 분황사 무애당에 칩거한 원효는 곧 닥친 여왕의 죽음 앞에 흔들린다. 거기에 다시 끊임없이 마음을 전해오는 요석공주를 피하여 숨으려던 길에 그만 사흘낮사흘밤을 요석궁에 붙들리게 되는 것이다.

원효는 이로 인해 길을 떠나게 된다.

그가 요석공주와의 파계의 날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이름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흠 잡을 데 없는 당대의 고고한 학승으로 널리 존경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게다.

하지만 그는 그 이름에 갇혔을 것이다. 삼계육도의 중생을 설교단 아래 내려다보는 생이었을 것이다. 중생과 함께 하는 보살행을 '아는 자'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환의 시간을 통과함으로써 자기 이름을 깼다. 환은 그의 몸과 영혼에 물들고 그는 물든 환을 통해 비로소 이 환의 세상에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환은 꿈인 줄 알면서 꾸는 꿈이어서 그의 길을 비틀지는 못했다.
사흘낮사흘밤을 환에 들어 그 사흘을 채우자 분연히 그 환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깨인 채로 꿈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것은 환의 내상이 뜻밖에 컸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청정한 마음에 물든 독같은 환을 빼면서 자신과 우주의 실상에 더 깊이 들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독을 빼기 위해 세상을 뒹굴면서 비로소 학승이 아닌 보살도의 제 길을 갈 수 있었다.

그의 무애행은 물을 보면 물을 피하지 않고 불을 보면 불을 피하지 않는 길이다. 물에도 조금 젖고 불에도 몰래 타면서 떨치고 가는 길이었다.
그는 이제 보살이 '되어가는 자'로 섰다.

글을 읽어가면서 다른 두 가지 줄거리도 눈에 띄어 쫓아가보았다.
하나는 번뇌로 인하여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던 원효가 신라기층민들의 등불로 서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전생의 업연으로 얽힌 두 여인, 요석공주와 아사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관한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는 그게 한 가지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원효는 곧은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자기 길을 갔다. 거짓없어 곧은 마음과 변함 없어 깊은 마음으로 뚜벅뚜벅 제 길을 갔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들림없는 그 발자국에 자기발자국을 포개면서 멀고도 기약없는 그 길을 따라나선 것이다.

여기서 우리역사의 동력으로서 '나로부터의 각성'을 주장하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어쩔 수 없이 연상된다 할 것이다.

베락맞아 디질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친일파의 심장에서 깨끗한 민족의 얼과 혼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이광수의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삼중당문고본으로 멋모르고 읽었던 그의 사랑이며 무정이며 유정이며 흙도 읽고 나면 꼭 마음이 깨끗해졌다.

백년이 지나도 그는 잊히지 않고 욕을 먹겠지만 삼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는 잊히지 않을테고, 그때는 어쩌면 다른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Comments
Sejin Pak
저도 이 책 2주 전인가 다니면서 다 귀로 읽었는데 뭐를 남길까 생각하다가 잊어버리다가 하고 있습니다.
 · Reply · 23 h
Paul Shin
마보로시는 저 편으로 제쳐두고, 원효가 요석공주 집으로 가던 월정교 구경하러 오세요.^^
 · Reply · 20 h
Lee Wonyoung
이광수를 친일의 잣대로 보는 것은 그 시대와 그가 처한 상황을 모르고 재단하는 것이지요. 순전히 작품으로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 Reply · 19 h
강상태
민족어로 민족의 현인을 형상화할때 어떤 생각으로 가득하겠습니까...진정 모를 일들입니다.
이런 현인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일제와 야합하게 만들었으니 진정 누구에게 죄를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 Reply · 18 h
박정미
강상태 이 뜬금없는 반일광풍 시대에 제 정신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바람이 잠잠해질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겠지요^^
 · Reply · 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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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친구야.,.
세상사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엇일까 휼륭한 선인이 그 어 놨던 그 경계가 과연 세속의 민중의 옳고 그름의 경계일까..?
아듀 ...
오십 중반에 와서도 생각나고 나의삶의 가치관에 혼돈을 준 중학교때 송00이라는 도덕선생님 생각난다 ... 서슬퍼런 전두환이 총칼밑에서 투쟁하는 대학생들에게 배불러서 국가에 도전하는 저런놈들은 다죽여야 한다고....
그날이 80년 5.18첫날이고 그분이 우리 담임 ...도덕 선생님
 · Reply · 18 h · Edited
박정미
김종학 너는 일찍 깨어났나보구나. 중1때 벌써 그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하고 그것을 또 기억하다니.
세상민심과 역사와 정신계는 강폭과 유속이 다른 흐름을 이루고 있다고 봐. 다르면서도 얽혀들어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겠지만. 다 제 몫이 있겠지^^
 · Reply · 9 h
김종학
박정미 참 선생님도 계셨지...
아마 5.18 그날 버스가 다니지를 않았는데 많은 선생님이 광주 어디서부터인가 걸어서 오셔서 수업하시고 ..,
농업을 가르치던 이두행선생님이 수업을 시작 하기전 모두 책을 덮어라 하시고는...
전두환정권에 대해서 사실을 교육하시면서 울분을 토하시던 그 멋진선생님..큰 충격 이였지 ..
도덕 선생님과는 전혀다른 내용으로 수업을 하셔서
혼돈 그 자체 뭐가 옳은거지..
 · Reply · 8 h · Edited
박정미
김종학 나는 농업대신 가사를 배워서 이두행선생님을 모르고 지냈는데 그런 훌륭한 분이 우리학교에 계셨구나.
5.18이야기는 나도 이 페북에서 많이 했는데, 정작 중학교 관련해서는 등교길 오며가며 딸기밭의 딸기가 썩어가서 아까운 기억만^^
 · Reply · 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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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Wonyoung
환이 무슨 의미인가요?
 · Reply · 8 h
박정미
Lee Wonyoung 불교에서 말하는 환을 그냥 차용해서 말한거예요. 불교는 이 세상, 물질계를 마음이 부리는 환영이라고 보잖아요. 뜬 세상의 온갖 기쁨, 향락, 기대, 세속적 욕망을 생각하고 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김윤
‘베락’맞을 죄인들은 따로 있답니다.
위선자들의 장난질이 어찌 더이상 하늘을 속이고 수많은 눈동자들을 기만할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스스로 먼저 무너질 겁니다.
저도 박정미님 덕분에 이광수 버전의 원효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 Reply · 8 h
이용복
원효대사하면 일체유심조 만 생각했는데,
박정미 선생님 좋은글 덕분에 원효대사의 무애행과 환을 배움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늘 건강하시길...._()_
 · Reply · 8 h · Edited
박정미
이용복 아! 고맙습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닌데다 원효초보라 그런지 책을 읽어가며 느끼는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원효의 화쟁사상도 배우고 싶었는데, 춘원이 그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제가 눈이 어두워서 못찾아봤는지 그게 좀 아쉽습니다.
 · Reply · 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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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한 이태 전 쯤 원효와 요석을 다룬 소설 '발원'을 읽은 적이 있어요.
춘원의 원효는 읽지 않았지만 이 소설도 괜찮다 싶었어요. 부제가 '요석과 원효'입니다.
 · Reply · 29 m
박정미
이병철
※선생님. 책이 참 좋은 모양이에요.예스24에 쓴 나나벨이라는 분의 서평이 눈에 띄게 좋아서 옮겨왔습니다.
저도 읽고 싶네요.
ㅡㅡㅡ
지옥 보기 참으로 좋은 세상 아닙니까? 요 자그마한 휴대폰 하나로도 온갖 진창을 구석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물로 된 창으로 머리를 베여 생사를 넘나들고 흉측한 폭탄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터져 죽습니다. 갓난쟁이를 내던지고 부모 자식이 서로의 얼굴을 못 알아본 채 칼을 꽂는데 질병과 재해마저 단골손님처럼 번갈아 드나드니. 지옥천하를 이룰 작정이 아니고서는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그것을 논하는 사람들은 어찌나 뒤틀려있던지. 각진 키보드를 누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그것을 총알로 쓰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경쟁하듯 열리는 지옥문과 그것을 태연하게 치부하려는 위선의 말씀 아래 주렁주렁 열린 악한 활자들을 훑어 내리다가 냉큼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네모진 것이라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화면이 선명할수록 좋은 것이라던데 좋아질수록 눈도 마음도 버리는 기분입니다. 기진해진 몸으로 방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닫고 들어앉은 이유가 나름 있었단 말입니다.
 정사각형의 네 평 남짓한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니 막상 할 것이 없었습니다. 제 몸에 가시 박힌 사슬을 칭칭 감고 바닥을 기어다니기엔 영원처럼 흐르는 시간이질 않습니까. 그리하여 네모진 것이라면 질색이라 했으면서도 기어이 네모진 책을 꺼내들었던 것입니다. 두 권의 책이니 두 권을 읽는 동안의 시간은 버릴 수 있겠구나. 의미 없는 시간이거든 기꺼이 버려주마. 호기롭게 책을 넘기니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흥이 나 읽으려니 원효대사, 그 유명한 스님이 나오셔 슬퍼하십니다. 굶주림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자식을 파는 어미를 보며 ‘인의예’를 묻고 계십니다. 이곳이나 서라벌이나 지옥을 보는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원효 계시는 신라엔 ‘아미타림’이 있습니다. 국적도 신분도 무용한, 모두가 차별 없이 자유로이 어울려 지극히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세계. 꿈속에서나 볼 법한 천국 같은 마을이 버젓이 존재한단 말입니다. 버려지거나 도망쳐 나온 아픈 자들이 서로를 의지하여 새 삶을 꾸려갑니다. 불우한 채 이곳으로 흘러왔던 아이 하나가 입술을 끌어당겨 웃습니다. 미소수행이라면서 말이죠. 수행은 키가 크는 것과 거의 비슷하니 이리 수행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변화시켜 더는 울보가 되지 않을 거라면서.
 아아, 무릎을 한번 쳤습니다. 수행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술 한번 끌어당기는 것으로 마음의 키를 키울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작정하였기에 시도도 못해보고 좌절하여 방안에 처박힌 것입니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원효께서 사모하는 요석공주에게 글로 써 마음을 전하시기를,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마시라.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슬프고 괴로운 첫 번째 화살이야 피할 수 없이 맞아도 빠져나오면 되느니. 그것에 끌려가 스스로를 감옥으로 데려가는, 나의 내부로부터 쏘아진 두 번째 화살만은 피하시라. 그러니까 저는 죄인처럼 한참을 꿇어 앉아 있을 수밖에요. 찌르르 저려오는 두 다리를 형벌처럼 제 몸으로 눌러앉아 어리석은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요. 졌다, 졌습니다. 저는 제 화살에 당해버렸습니다.
 너도 꽃, 나도 꽃. 모든 꽃은 생겨난 그대로 어여쁜 거지! 너희는 모두 꽃씨들이니, 피어나기만 하면 된단다(267p). 꽃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껴안는 아이들의 모습이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눈앞에 선연합니다. 존귀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달아 그 존재로서 서로를 보듬어 안는 것. 그런 포옹이라면 지옥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따뜻함을 잊지 않을 수 있겠구나. 비관을 세 살 버릇처럼 안고 살아온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스스로 어설프게 다독인 모난 마음으로 당신의 모난 마음을 다독이고, 그리 주고받은 우리의 손으로 상처 난 다른 이의 마음을 매만져주고. 이런 어루만짐이 물결처럼 이어지다보면 각진 키보드로도 총알을 던지는 일이 줄지는 않을까. 스스로 쏘아올린 화살에 맞기 전에 서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의 말이 아닌 듯 느껴졌던 희망이라는 것을 언약처럼 서로의 마음 귀퉁이에 새기고 열정으로 뛰노는 날이 오진 않을까. 생각하는 동안 이틀의 밤이 훌쩍 흐르고 난폭하게 비뚤어져 가슴을 짓찧던 모난 마음이 놀랍게도 마모되었습니다.
 닫힌 창을 열었습니다. 세계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볕 없는 몸속에서 번뇌는 물을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랐지만 그래도 열어야겠다고 이 책을 읽은 저는 생각했습니다. 틀어박힌 영혼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님도, 벗도, 이름 모를 숨들도 각기 허청거릴 세상인 것을.
 그러하니 저는 문까지 열어젖힌 것입니다. 허청거림이 춤사위로 바뀌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도 않은 일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입니다.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서로에게 포개며 버티고 그리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런 걸음이 반복되어 신명난 춤판이 이어지고 바로 거기에 꿈만 같던 아미타림이 있지 않을까. 지옥 없는 세상은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방에서 나오니 첫눈이 내렸습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가장 사랑하는 벗의 차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히트곡을 부르다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닿으려는 흰빛들은 송이송이 아름다웠습니다. 이토록 감격하여 첫눈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툭하면 방안으로 숨어들던 제가 영영 잊을 뻔한 설렘이지 않습니까. 잃어버렸을 지도 모를 장관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좋구나.”
 오늘 저는 허청거리는 당신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이 추위 속에서도 기어이 당신을 보러 가겠습니다. 허청거림이 허청거림이 아니게 될 때까지 함께 어울려 몸을 살갑게 부딪치고 춤을 추겠습니다. 아물지도 원만하지도 않은 마음으로도 서로의 것을 맞대고 비비면 매끄럽게 둥근 날이 올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창을 여십시다. 문밖으로 나오십시다. 속 편하게 숨지 않고 비겁하게 떠넘기지도 말고. 그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춤을 부지런히 춥시다. 우리의 춤바람이 지옥에서 서로를 구해줄 것입니다.
 이곳에도 아미타림을 만듭시다. 귀하고 유일한 우리들이 살아갈 우리들의 세상을. 무기력하게 휩쓸린 생에, 모처럼 간절해집니다.
===
불교용어 

환(幻)

(꼭두각시)없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일종의 환상을 말한다. 
여러 가지 인연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도 자성도 없고, 이름만 있는 것에 비유하여 幻化 , 幻夢 , 空華라고도 한다.

원효의 환(幻)
===
〈16〉 원효의 무애행
연재
입력 2008.10.04 


“일체 무애인은 단번에 생사 벗어난다”

 

성사(聖師) 원효는 성이 설씨이고 할아버지는 임피공이며, 아버지는 담날내말이다. 압량군(지금(고려)의 장산군, 현재의 경북 경산 압량면) 남쪽 불지촌의 밤골 사라수 아래서 태어났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한 절의 주지스님이 종에게 하루저녁 끼니로 밤 두알씩을 줬다. 종은 양이 너무 적다며 관아에 소송을 했다. 관리가 괴이하게 여겨 밤을 가져다 조사해보니 한 알이 사발 하나에 가득 차 있으므로 도리어 한 개씩만 주라고 판결을 했다. 그래서 밤나무 골이라고 부르게 됐다.

원효스님은 출가하고 그 집을 초개사(初開寺)라 이름 지었으며, 나무 옆에 절을 세우고 사라사라고 불렀다. 법사의 어릴적 이름은 서당이고, 다른 이름은 신당이었다. 어릴적부터 총명하고 특이하여 혼자 공부를 했는데, 하루는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누가 내게 자루없는 도끼를 주려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어 보련다.”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이 노래를 들은 태종 무열왕은 “이 대사가 아마 귀한 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가 보다”고 뜻을 알아차렸다.



이때 요석궁에 과부 공주가 있었다. 왕은 궁리를 시켜 원효를 불러오게 했다. 궁리가 원효스님을 찾아가니 이미 남산을 지나 문천교를 지나고 있었다. 원효는 궁리를 보자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셨다. 할수없이 궁리는 요석궁으로 인도해 옷을 말리며 머물게 했다. 이후 공주가 태기가 있어 설총을 낳으니 신라 10현(賢)중 한사람이다. 설총은 훗날 이두 문자를 만들고 학문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화엄경’ 내용의 노래 유포시켜

 무지한 백성도 아미타불 ‘염송’

원효가 계율을 어기고 설총을 낳은 이후 속인의 의복을 입고 스스로 소성(小性)거사라고 불렀다. ‘일체 무애인(無碍人)은 한 번에 생사를 벗어난다’라는 <화엄경>의 내용으로 무애가를 만들어 세상에 유포시키니 뽕나무 농사짓는 늙은 이와 옹기장이나 무지몽매한 무리들도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됐다.

원효스님은 일찍이 분황사에 머물면서 <화엄경소>를 지었는데, 제40 <회향품>에 이르러 붓을 꺾었다. 또 송사 때문에 몸을 일백 그루의 소나무로 나누니 모두 이를 위계의 초지라고 했다. 또 바다용의 권유로 길가에서 조서를 받들고 <삼매경소>를 지었는데 붓과 벼루를 소 뼈 사이에 놓았으므로 각승(角僧)으로도 불렸다.

그가 입적하자 설총이 유해를 잘게 부수어 진용을 빚어 분황사에 모시고 슬픔을 표했다. 그때 소상이 갑자기 돌아보았는데 그때 돌아본 채 그대로 있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한국불교의 큰 스승인 원효.의상.자장스님 등 수많은 고승이 함께 했던 까닭이다. 그 가운데서도 원효스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님이다.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걸림 없이 살았던 원효스님이다.

일연스님은 다른 스님과 달리 원효스님에 대해 ‘聖師’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만큼 원효스님을 존경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효스님은 특히 원융사상을 강조했다. 모든 사상과 가르침, 일체만물은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체만물과 화합하는 중도의 삶을 살라는 것이 원융사상의 요체다.

최근 몇 개월 사이, 계층간.지역간.종교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또한 그 상대로 인해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원융의 가르침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원효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불교신문 2465호/ 10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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