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5

조정래(소설가)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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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소설가)

최근 수정 시각: 
분류 
조정래


이름 
조정래 (趙廷來)

출생 
1943년 8월 17일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죽학리 선암사[1]

아내 
김초혜(1943)[2]

첫 작품 
누명 (1970)

최근작 
천년의 질문 (2019)




제37회 현대문학상 수상

김용운
(1981) 
→ 
조정래
유형의 땅
(1982) 
→ 
윤흥길
(1983)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1. 소개
2. 생애3. 논란과 비판
3.1. 정치적 논란
3.1.1. 일본 유학 단죄 발언 논란
3.2. 문학에 대한 비판
4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과의 관계5. 대표작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소설가1943년 8월 17일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죽학리(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서 출생. 종교는 불교이며, 법명은 인천이다. 등단작은 '누명'. 대표작은 태백산맥아리랑한강정글만리 등이 있다. 소설이 하도 잘 나가서 서울특별시에 빌딩을 산 경력이 있으며 운전기사까지 따로 뒀다. 대표적인 친중파 문인이기도 하다.

서정주의 제자이지만, 그의 친일 경력을 조사하는데도 큰 노력을 했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은 등장인물의 이름 한 가지 빼고 전혀 겹치지 않는다. 유일하게 하나 겹치는데 이건 작가도 모르고 있다가 독자가 알려주었다("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에 비중있게 등장하는 허진이라는 이름이 ‘아리랑’에 한 줄 스쳐 지나간 걸 어느 독자가 지적해줬습니다."). #

자신의 사후에 작가의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저작으로 먹고 살 거라면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원고지에다가 일일이 손으로 베껴쓰게 한 일도 유명하다. 그리고 며느리는 한 달 정도 만의 기간에 1권을 끝냈다! 작가 본인이 날림으로 쓴게 아닌가 검사해봤지만 깨끗하게 완성해놨다고.

21세기 현재에도 컴퓨터를 쓰지 않고 항상 육필(肉筆)을 고집, 일일이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오탈자가 생기면 그 장은 찢어버리고 새로 쓴다고 한다. 영혼이 더럽혀진 느낌이라고.

워낙 집필한 분량이 많아서 소설 원고를 쌓아놓으면 사람의 키보다 높고, 소설에 등장한 인물만 수백 명에 달한다. 더군다나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한 명만 빼고 다 다르니, 이름 짓는 것만 해도 고생이었다고 회고한다.

벌교읍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조정래의 대표작인 태백산맥이 순천 옆동네인 벌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라, 태백산맥의 배경지를 답사하려는 사람들이 벌교를 많이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원래 벌교 주민들은 태백산맥 타령하는 방문객들을 별로 안 좋아했으며, 태백산맥 때문에 외지인들 눈에 벌교가 빨갱이 동네로 보인다고 불평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태백산맥을 통해 증가한 관광 수요에 호응하여 태백산맥 문학관도 건립하고 현부자집, 보성여관 등을 복원하는 등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주제로 읍내를 단장하게 되었다. 또한 벌교 인근 해역에서 생산되는 꼬막도 같이 유명세를 타면서 그 유명한 '꼬막정식'이 생겨났고 벌교 꼬막이 수산물 지리적 표시제 1호로 등록되었다. 꼬막은 원래 '고막'이 표준어였는데, 태백산맥에 '꼬막'이라고 쓴 것이 널리 퍼져서 표준어가 '꼬막'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처가로 유명하다. 공처가를 넘어서 '경처가'를 자처한다. 본인이 쓴 원고의 첫 독자도 사모님이고 사모님의 지적 사항을 100% 수용하는 편이라고 한다. 부인도 유명한 시인이라 가능한것 같다.

2016년, 한국의 교육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한다. 그리고 나향욱의 개돼지 발언에 대해 '국민의 99.9%가 개와 돼지라면 그는 진딧물이나 기생충이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2019년,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대한민국 사회의 격변을 다룬 천년의 질문이라는 신작을 탈고했다. 여기에는 최순실 게이트의 발각과 격랑의 정치사 속에 있었던 나는 꼼수다의 멤버 주진우와 김어준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도 등장한다고 한다. 전 3권의 조정래 작품치고는 짧은 소설이며, 오디오북으로도 발간되었다.

2. 생애[편집]

조정래는 일제가 권장한 대처승의 자손이다. 선암사에서 철운이라는 대처승[3]의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참고로 작가 본인은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해 복잡한 심정인 듯. 당시 일제는 불교황국화 정책에 따라 승려들의 결혼을 정책적으로 장려했다. 덧붙여 선암사는 현대에도 대처승 제도를 인정하는 태고종의 종찰이다. 아버지 철운 스님(세속명 조종현)은 선암사 부주지 출신의 좌익적 관점을 지닌 승려로, 해방 후 절 사유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 하자고 주장했다가 사형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부친에 대한 이미지와 일화는 소설 태백산맥의 법일스님으로 구현된다. 이 일로 인해 결국 철운 스님은 절에서 쫒겨나서 환속해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활동하였다가 1989년 별세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인 철운 스님을 따라다니며 철운 스님이 흥얼거리던 시조를 읊게 되었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시에 대한 매력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시조에 대해 배울 때에는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다 아는 내용이었다고. 청년 시절엔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스님이 될 뻔했다고 한다.

이후 광주에서 광주서중학교[4] 3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광주를 방문한다. 이 때의 광주는 흡사 죽은 도시 같았다고 한다. 심지어 건물에 들어가자 벽 곳곳에 들러붙은 핏자국과 머리카락 등이 보였다고.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아버지가 전근한 서울 보성고등학교(52회)에 입학하였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5]를 졸업했다.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와 중경고등학교의 국어교사로 일하였으며 교사 재직 중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 작품을 내 놓았다.

1973년에 '월간문학' 편집장, 1975년 '소설문예' 발행인이 되었고 1977년 '민예사' 대표를 맡았다.

1983년 6월부터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1985년에 '한국문학' 주간이 되었고 1997년 동국대 국문과 석좌교수가 되었다.

3. 논란과 비판[편집]

3.1. 정치적 논란[편집]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집필한 이후 보수 관련 단체나 인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야 했는데, 대표적으로 이승만의 양자는 태백산맥을 이적표현물이라고 국보법 위반으로 고소하기도 하였다. 태백산맥 소설이 끝나고 말미에 (아마 2000년을 전후해 쓰여진) 고생담이 적혀있는데, 읽어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버텼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벌교에 위치한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가 보면, 하루에 몇 통씩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직접 펜으로 쓰기를 고집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신체적 고통도 만만찮게 겪었는데 하도 좌식 생활을 하다보니 여러 번 탈장이 찾아와 입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마음고생과 몸고생을 했던 것과는 별개로, 실제 태백산맥은 당연히 논란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역사왜곡 수준인 묘사가 '매우' 많다. 자세한 것은 태백산맥 참조.

또한 '아리랑'에서는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을 묘사하면서 일본 경찰이 반항하는 농민을 즉결처형하거나 일제가 쌀 수탈을 하는 장면들을 자주 묘사했는데 이에 대해 이영훈은 이 부분이 사실과 다른 국수주의 선동이라고 조정래의 소설을 비판한 바 있다.

사실 태백산맥뿐만 아니라 아리랑도 그렇고 조정래의 소설 전반에서 근거없는 묘사가 굉장히 많다. 작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적당히 뒷배경을 만들고 본인은 그걸 진실이라 믿는다. 조정래 본인이 좀 반일에 대한 집착을 하는 면이 있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300~400만 학살론을 줄곧 밀고 있으며 이것이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한국을 친일파들이 장악해서 그렇다고 <글감옥에서 가출옥>에서 주장하는데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대목들이다.

또한 아리랑에 나오는 유림들의 묘사 역시 매우 악의적인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유림들이 모두 선은 아니지만 최익현 같은 경우 매우 악의적으로 묘사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 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몰이해 및 대상화로 인하여 여성주의자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풀꽃도 꽃이다'에서는 한국 사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오직 엄마들의 그릇된 욕망만이 문제의 근원인 양 묘사하며 아버지들은 전혀 부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영어 사교육 열풍을 비판하다 갑자기 '영어 잘 하는 외국인만 보면 중동이나 파키스탄 등에서 왔어도 헤프게 몸을 내주는 한국 여성'을 비판하는 데 수페이지를 할애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 와중에 일본 여자가 한국 여자보다 더 헤프다는 식으로 굳이 같이 까는 건 덤.

3.1.1. 일본 유학 단죄 발언 논란[편집]






2020년 10월 12일, 조정래는 서울 중구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등단 50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일본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된다."는 발언과 함께 "반민특위를 부활시켜야 하며, 이러한 150만 명의 친일파들을 징벌하는 법을 만들어 단죄해야 한다."는 쇼비니즘적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 이는 논리적으로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열심히 자기계발 중인 유학생들 및 유학파 출신 인재들에 대한 인격 모독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일본 쪽에서 한국 유학을 갔다 오는 일본인들은 무조건 친한파, 비국민이 되므로 탄압해도 된다는 거나 다름없다.

거기다가 애초에 조정래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한 일본 유학생 출신 독립운동가들 및 독립유공자들도 많다. 윤동주[6]이중섭지청천 등이 있고 3.1 독립운동의 계기 중 하나인 2·8독립선언은 일본 유학생들이 주축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일제시대를 한국나이로 치면 0~3살만 살아서 기억도 못할시절이기에 더욱더 욕을 먹고있다.

또한, 이영훈 교수가 아리랑에 대해 비판한 점을 들어 "본인의 소설 《아리랑》은 매우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고 답하며, "이영훈이 매국노인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아리랑》이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근거로는 "《아리랑》에 나오는 내용들은 진보계 지식인들이 검증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7]

한편 과거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민경욱 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딸인 문다혜를 두고 "일본에서도 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고쿠시칸대학[8]에 유학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에 좌파 성향의 언론인 오마이뉴스는 "일본에 유학했다고 다 친일이라는 논리는 잘못이다." 는 논조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같은 날 이 사례를 들며 조정래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일본 유학 하면 곧 친일파라니, (문다혜는)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돼 민족반역자로 처단당하겠네요."라고 반박하면서,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 한다.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안에 잠재된 극우적 경향이 주책없이 발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후 민주당 측에서 박진영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이 이례적으로 논평을 냈는데 “이론도 없고 소신도 없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예의마저 없다”, “명색이 학자이자 교수 출신이면서 이론과 학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느냐”거나 진중권의 말이 계속 기사화되니까 자기 세상같냐며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겠다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늘어놓다 마지막에는 예형의 길을 걷고자 하면 그리 가라며 사실상 악담을 퍼부었다.[9][10]

정작 조정래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 유학 출신이다. 그것도 현대적 의미의 단순 유학 정도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원래 철운이라는 승려였는데 일제시대 일본이 한국 불교를 말살하기 위해 시행한 "종교황국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대표로 뽑혀 일본에 갔다가 나중에 일본식 승려가 되어 선암사로 돌아와 한국 불교의 일본화에 일조한 사람이다. 일본 불교 승려답게 선암사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래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조정래.[11] 기사 한국 불교는 이런식으로 일본화 되었고 그래서 광복 후 이승만이 한국 불교에서 일본식 불교와 대처승을 쫓아내고 다시 본모습을 되찾으려고 시행한 것이 불교정화운동이다.

3.2. 문학에 대한 비판[편집]

대중적인 작가이지만 명성에 비해 문학성은 낮다고 평가 받는다. 대하 장편소설이라는 특성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번뜩이는 기교나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필력도 같은 시대의 대작가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태백산맥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80년대 이전까지 빨치산이란 소재는 공산당을 욕할 때만 쓸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 빨치산을 새롭게 다루면서 당시 민주화 바람을 타고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지 이 작품 자체가 대단한 명작이라서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원고 수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조정래만큼 쓴 작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모두 합친다면 그 분량은 30권이 넘고, 해냄에서 출판한 책 속의 활자는 다른 도서에 비해 매우 빡빡한지라 원고 분량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외 수많은 단행본과 장편들(최근작으론 허수아비춤, 풀꽃도 꽃이다 1 2, 정글만리 1 2 3 등)도 많다.

그러나 원고의 분량에 비해서, 문학성을 획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다. 예를 들어 이문열 작가는 비록 1990년대 홍위병 이후 예전만큼의 감수성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1980년대의 성취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한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등등 이런 흐름은 1990년대 금시조나 시인으로 이어졌고 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이 그 결과를 보증한다. 더 분명한 예를 들자면 김승옥이 있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이나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장>으로 그 세대를 주름잡았고 문학의 흐름을 틀어 버린다. 사실 김승옥의 백미는 단편에 있으므로 그 분량이랄 게 거의 없는데, 김승옥의 성취는 현대문학사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큰 것이다.

한국문학에서 민족,민중,사회파 쟝르만 살아남는 쟝르적 편중화를 불러운 한국 문학의 원로답게 역사적 사실이나 사회현실을 담지 않은 소설은 안 좋아한다.

4.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과의 관계[편집]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과 관계가 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쓴 "한강"에서부터 포철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를 서술했다. 2007년에는 (이 해는 박태준의 팔순 해이기도 했다) 신채호김구안중근한용운과 함께 15권으로 예정된 자신의 아동용 위인전의 위인으로 박태준을 선정했다.

박태준은 "민족주의자, 그것도 투철한 민족주의자"라며 몇차례 조정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태백산맥 이적성 고소에도 친분이 있는 몇몇 보수들과 달리 반대 의견을 표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태백산맥 기념관 등의 사업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조정래 또한 "박태준이라는 인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에요.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처럼 뒷모습이 깨끗한 기업인이 있었나요"라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박태준 회장을 개발독재의 주역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개발독재의 주역은 독재로 인해 권력을 누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재를 행사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거예요. 박 회장은 순수한 기업인일 뿐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등의 긍정적 평가를 했다. # 관련기사 1 # 관련기사 2 공교롭게도 박태준 회장도 일본 유학파 출신이다

5. 대표작[편집]

[1] 現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2] 유명한 시인이다. 학교 교사와 육군사관학교 강사를 지냈다.[3] 대처승이란 아내나 자식을 두면서 경우에 따라 육식을 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일제에 의해 도입된 일제잔재라는 의식이 일반적이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조정래의 아버지는 일제에 "뽑혀서" 일본에 가 일본식 승려가 되어 돌아온 사람이 맞다. 즉 한국 불교의 일제화를 도운 인물.[4] 6년제 광주서중이었다가 광주서중과 광주일고로 분리됐고 중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광주서중은 폐교됐다. 광주-전남 지역의 엘리트들이 모인 중-고교였다.[5] 62학번으로, 성우 김종성과 동기.[6] 일본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수학했었다.[7] 당장 윗문단만 봐도 조정래의 주장은 틀린 말임을 알 수 있다.[8] 아마도 교기가 욱일기라서 그렇게 말한 듯하다.[9] 예형은 권력자들을 조롱하다가 최후에 혀가 잘려 처형되었다. 일각에서는 단순 지지자 모임도 아니고 공당에서 이런 과격한 논평을 내도 되는지에 대해 비판이 일었고 진중권은 지금 협박하는거냐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10] 이전 버전에는 진중권이 예형이면 문재인은 조조냐(...)는 서술이 있었으나 그렇게 따지면 예형을 죽인건 유표 소속인 황조니 문재인은 유표 정도여야 맞을것이다.[11] 결혼하지 않는 일반적인 비구와 달리 일본 불교에선 대처승이라고 하여 결혼도 하고 가족도 꾸리고 할거 다 한다[12] 1989년 단행본 완간되었다.2019년 현재 누적 판매부수가 1,500만 부를 넘었다.[13] 1995년 단행본 완간되었다.[14] 2002년 단행본 완간되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세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 삼부작으로 엮인다.[15] 원래 오 하느님으로 출판되었다가 개정판에서 제목이 바뀌었다. 내용은 노르망디의 한국인을 다룬 것으로, 초판 '오 하느님'을 기준으로 영화 마이웨이보다 4년 빨랐으며 개정판 출간을 기준으로 해도 2년 정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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