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5 서정민
‘한일의 역사를 배우는 회’ (일본)
본론 이후에 강조한 ‘한일그리스도교 관계사’는 기왕의 내 연구논의를 정리했다고 치고, 모두(冒頭)에 시간을 상당히 할애하여 친일파 이야기를 좀 했다.
강연 순서에 따라 간단히 키워드 정도로 요약, 여기에 보고해 둔다.
나는 한국 친일파의 역사를,
- 첫째 ‘근대화 친일파’로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갑신정변 주최세력), 김홍집 등등으로 설명했다.
- 둘째, ‘한일합병 친일파’로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을사오적), ‘일진회’ 등을 들어 설명했다.
- 셋째, ‘식민통치 협력 친일파’로, 일본 귀족이 된 친일파들 필두로, 관료, 법조인, 군인, 경찰, 언론, 예술, 교육, 종교계로 분야를 나누어 설명했다. 이들을 주축으로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수록대상 4,776명에 대한 선정 상황 등을 보충했다.
- 넷째, 해방 후 ‘기득권 친일파’을 설명했다. 즉 가장 문제가 되는 친일파가 이들인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등등에서 연이어 한국현대사의 ‘메이저’가 된 친일파의 흐름을 보충했다.
다음으로 친일파의 종류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했다.
- 첫째, 자신의 개인적 이익과 명리(名利)를 위해 동족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준 ‘악질적 친일파’를 언급했다.
- 둘째,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순응한 ‘민중친일’의 예를 설명했다. 다수의 창씨개명, 징병, 징용, 근로정신대에 강제 동원된 다수의 민중들의 예를 들었다.
- 셋째는 지식인 엘리트 층 일부에서 드러나는 ‘인식론적 친일’을 거론했다. 진정 당 시대 조선이 일본과 하나 되어야만 하고, 바로 그것이 조선의 살길이라는 인식을 지닌, 지식층 일부의 예를, 그들의 직접적 논급을 통해 설명했다.
이어 최근 자주 거론되는 해방 후 친일파의 특징 분류도 적나라하게 소개해 주었다.
- 첫째, 소수지만 친일의 행적을 반성한 ‘인간적 친일파’.
- 둘째, 친일행위에 대한 책임전가를 하고 어찌할 수 없었음을 항변하는 ‘인간이하의 친일파’,
- 셋째, 친일은 오직 반공을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고, 만일 이러한 자신들을 친일파로 몰아 비판, 공격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빨갱이일 것이라고 열을 올리는 ‘동물이하의 친일파’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친일파의 심리분석을 통해, 특히 지식인층의 친일 인식과 행위의 단계를 구분해 주었다.
- 첫째, 강제적, 압박을 받아 마지못해 나서는 단계,
- 둘째, 자발적으로 솔선하여 나서는 단계,
- 셋째, 일본인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일본국에 충성을 다하는 단계,
- 넷째, 주변의 일본인들도 염려할 정도로 광분(狂奔)하여 선두(先頭)에 나서는, 초 적극적 단계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예를 들어 주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친일파의 문제는,
- 역사적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바로 그들이 ‘파워집단’,
- ‘주축’의 자리에 있지 못했던 시기는, 거칠게 나누면, 김대중, 노문현 정권 시대 10년 정도를 겨우 거론할 수 있다고 했다.
- 그래서 해방 후의 친일파 기득권 세력은, 이 시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고, 이른바 ‘뉴 라이트’가 적극적으로 태동된 배경이라고 알려주었다.
결국 해방 후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문제는
- 이들이 그대로 ‘메이저’가 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 내부적으로 이들에 대한 역사적 정리, 최소한의 참회와 자숙이 없었다는 점,
-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된 데에는 일본의 적극적인 역사에 대한 책임고백이 없었다는 점에 더 큰 근원적 문제가 집결된다고 지적했다.
- 그리고 다 아는 이유이지만, 해방 후 한반도는 차분한 역사적 문제의 정리보다는 원색적인 이데올로기의 대결, 외세가 작용한 극한의 좌우대립에 함몰되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 그래서 친일파들의 숨을 곳과 그들의 당당한 역할, 역학구도가 마련된 것에 더욱 직접적인 문제가 있다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였다.
- 한국의 해방 후 현대사는 거의 대부분 ‘친일파’의 기득권 역사가 이어져 내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한일 관계 역시 바람직하게 전개되지 못했을까 하는 나의 문제제기였다.
- 친일파들이 주도하는 한국과, 그들 친일파의 지근거리의 일본은 적어도 기득권 세력 간이라도 한일관계가 친밀하게 전개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친일파 그들은 일본에 가까운 이들인 바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문제를 던지고 스스로 대답해 주었다.
- 이들 한국의 친일파들이야 말로 의리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없을 망종(亡種)들임을 알려주었다.
- 이들이 친일을 한 것은 일본을 진정 좋아하고, 이해했다 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현실, 실존에서 가장 유리하고 사리(私利)와 타산(打算)에 맞는 대상이 일본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언제라도 일본에 대해서도 배반의 칼날을 꽂을 수 있는 존재들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해방 후의 그들을 그대로 현재적 친일파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해 주었다.
이런 논리에 근거, 아직 한일관계는 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관계 형성 이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전제했다.
- 즉 1965년에 한국의 수많은 민중, 의식 있는 이들의 반대를 짓누르고 한일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들은 앞서 살핀 바대로 과거로 보면, 절대적인 친일파 그룹이었다는 것이다.
- 물론 이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일본을 배신하고, 반공주의자로, 민족주의자로 위장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있는 자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 이렇게 보다면, 아직도 일본 전후(戰後)의 국가사회는 일제 하 한국에서 진정한 ‘민족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민족독립운동에 주축이 되었던 한국인들, 그들 지도자들과는 한국 독립 후 새로운 관계형성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 구체적으로 본다면, 상해임시정부 주체들과 일본은 아직도 화해협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새로운 관계형성도 하지 못한 상태라고 해 두었다.
- 다만 수많은 다른 문제가 가득 산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과정, 그리고 한국의 통일이 미래적으로 가능하다면, 통일된 한국정부와 한일의 새로운 관계 지평을 다시 형성할 때, 그 모든 것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고 여운은 남겨주었다.
이것이 오늘 강연 전반부 나름 진솔하게 토로한 친일파 담론의 핵심적 요약이다. 이는 강연의 기승전결(起承轉結)과 보면, 기에 해당하는 것이고, 시간상으로도 2시간 강연 중 채 한 시간이 안 되는 시간을 할애한 부분이었지만, 나로서는 나름 처음 꺼낸 이야기, 진솔히 나누고자 한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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