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따라 드러나는 궁금했던 허경영의 과거
입력 : 2008.01.30 14:57이용욱 기자
지난 대선에서 튀는 공약과 발언 등을 앞세워 비주류 후보로는 적지 않은 9만6756표(0.4%)를 얻은 허경영씨(58·경제공화당 총재)의 베일에 가려졌던 과거가 벗겨지고 있다. ‘결혼수당 1억원 지급’ ‘유엔본부 판문점 이전’ 등 튀는 공약에 IQ가 430이고, 축지법·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쏟아내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허씨. 대선 후에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면서 인기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이 ‘부시 미 대통령 등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으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결혼설을 퍼뜨려 박전대표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면서 지난 23일 그를 구속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궁금했던 그의 이력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대선에만 두차례(1997·2007년) 출마했지만, 그의 이력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당국을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는 1947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50년초 겨울 중랑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서전적인 책이라는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서 아버지인 허남권씨(1918~50)가 GS그룹의 일가가 되는 허정구씨의 조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당국에 따르면 그는 서울신학교(66~68년)를 중퇴했으며, 72~73년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것으로 돼 있다.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방송통신대 법학과 졸업, 동국대 행정대학원 수료(77~79년)도 정부가 파악하는 경력에 포함됐다. 그는 “69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비공식적 정책보좌역을 맡았고, 당시 박전대표와 혼담이 오갔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 근무경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94년부터 광고대행사를 운영했으며, 본적지가 서울 은평구로 돼 있다는 정도가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다.
그가 외부로 드러난 것은 97년 11월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후보 등록을 하면서부터다. 이때 그는 9억9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으며, 0.2%의 득표를 했다. 2004년 10월엔 “가수 조용필씨의 부인인 고(故) 안진현씨에게 동양화 매매대금을 받지 못했다”면서 조씨를 상대로 50만달러의 매매대금 청구소송을 냈으나, 재판부로부터 ‘원고의 주장은 허위로 판단된다’며 패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허씨가 유명세를 탄 것은 오히려 대선 이후다. 선거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그의 기이한 언행과 공약에 대해 “황당하지만 재밌다”면서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 진정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고 관심을 보였다.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만만찮은 입담을 과시했다. 4·9 총선에 출마해 국회에 진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허경영씨가 대선 후인 지난 15일 케이블TV 채널 tvN에 출연, 직접 자세를 잡으며 축지법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공중부양은 물론 외계인과의 교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MBC ‘PD수첩’은 두차례에 걸쳐 그의 실체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금욕주의자이며 미혼이라고 주장했지만, 방송은 “허씨가 최소 두번 이상 결혼했으며 2남1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는 제보자들의 목소리를 방송했다. 방송은 그가 “10억원을 주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켜주겠다”는 모습을 방영했고, 허씨와 박전대표와의 결혼설을 보도한 무가지는 경제공화당과 같은 건물이 주소지로 돼 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허씨를 둘러싼 갖가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23일 허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남부지법 김선일 판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선거에 이용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다가오는 총선에 국민을 미혹해 새로운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구속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허씨가 선거기간 중 제시했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찍은 사진도 합성이며, 부시 대통령에게서 유엔 사무총장직을 제안받았다는 주장도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문이 커지자 허씨 스스로도 발을 뺐다. 그는 검찰에 구속되기 전인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박전대표와) 결혼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박전대표의 사상과 철학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무가지에 과장광고가 실린 것은 단순한 신문기사일 뿐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도 했다.
정치컨설팅 회사인 폴컴 윤경주 대표는 “허씨는 정치 비꼬기나 풍자를 한 것이 아니라 희화화시켰다고 본다”며 “확대재생산시킨 일부 TV나 인터넷도 문제가 있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좀더 책임있고 적극적인 자세로 걸러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정치 무관심이 ‘허경영 신드롬’이라는 왜곡된 사회현상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용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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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허경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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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7년 7월 13일(76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시 또는 서울특별시[1]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김해(金海)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학사 |
경력 | 경제공화당 총재 국가혁명당 총재 국가혁명당 명예대표 |
직업 | 정당인, 기업인, 가수 |
정당 | 국가혁명당 |
부모 | 허남권(부), 조계식(모) |
배우자 | 경주 김씨 |
자녀 | 슬하 3남 1녀 |
허경영(許京寧, 1947년 7월 13일[2]~)은 대한민국의 정당인이자 기업인, 가수, 전 대선 후보이다.
생애[편집]
- 17대 대선까지는 주로 정치 행보를 보여 왔으나 17대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前 대표와의 결혼 루머설로 허위사실 유포 혐의으로 구속기소되었다. 2008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되었고, 2009년 만기 출소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년동안 피선거권이 박탈 됐지만 2018년 12월 24일부로 복권됐다. '국가혁명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19년 8월 15일 창당대회 후 2020년 국회의원 30명을 내세워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고 밝혔다.[10]
2019년 8월 15일 국가혁명당 창당대회에서 당대표 및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다.
2019년 10월 21일부로 당명이 '국가혁명당'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으로 변경되었으며, 약칭은 혁명배당금당이다.
2019년 11월 27일 국가혁명배당금당 중앙당 개소기념 특별기자간담회에서 허경영 당대표는 "배당금당이 150석을 확보하고, 국민에 매달 배당금 150만원을 주고, 당비를 납부하는 책임당원도 150만명이 될 것"이라며 이른바 ‘세 가지 150’ 정책을 발표했다.[출처 필요] 2020년 6월 16일 당명을 다시 '국가혁명당'으로 환원하였다.
2020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에서 2021년 4월 시행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공식 출마 선언하였다.[11]
2021년 8월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8월 18일에는 행주산성에서 두정갑을 입은 채로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공식 출마 선언하였다.[12]
2022년 2월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1억원 지급' 협약식을 배우 오지명과 함께 공약이행 확약서를 들고 참석했다.[13]
허경영의 원래 생년월일은 1950년 1월1일날 이다
주요 일생[편집]
1997년 대선 이전[편집]
- 1972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이 때 그의 군대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경녕이는 항상 정체 불명의 책가방을 매고 다녔다. 그런데 60트럭으로 이동할 때마다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면 트럭에서 내려서 책가방을 열었는데 거기에는 양복 정장이 들어있었다. 경녕이는 거기서 그 양복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군복으로 갈아입고 트럭에 탑승했다. 현재 아이큐가 430이니 뭐니 하고 다니고 있는데 아마 그 시절에 이미 그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라 한다. 허경영은 1973년 2월 베트남 전쟁 파병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했다.
- 1972년 "대한불우자 보호협회"를 만들어 운영하였다.[14]
- 1987년 김대중, 김영삼이 총재를 지낸 신민당과 같은 이름의 신민당(이름만 같을 뿐 다른 당이다.)의 부총재를 역임하고, 13대 대통령선거 당시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으나 출마하지 않았다.[14]
- 1991년 서울특별시 은평구의원 선거와 서울특별시의원 선거에 각각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시의원 출마 당시의 당적은 민중당이었다.)
- 1992년 10월 24일 진리평화당을 창당하였다.[15] 14대 대선 후보로 진리평화당은 당초 허경영을 후보로 등록하고자 하였다가 마지막 순간 현홍균 당고문을 후보로 선출하고, 후보 등록 마감일인 1992년 11월 25일 마감 3분전인 오후 4시 57분에 서류 제출을 시도하였으나, 시간내에 기탁금 3억원이 준비되지 않아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하였다.[16]
- 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후보 등록을 하였고, 9억 9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하였다.[17][18] 개표 결과 0.2% 득표를 하였다.[19]
- 2002년 11월 제16대 대선 후보 민주공화당 대선후보로 등록하고자 하였으나 기탁금 문제로 등록을 포기하였다.[20]
- 2004년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비례대표 1번은 허경영 대표였다.[21]
1997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1987년 대선 당시 신민당의 부총재로 취임하여 대통령 후보로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1992년, 2002년 대선 때는 출마하지 않았다. 1997년 대선 때 첫 출마하였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는 IQ 430의 천재정치, '제2의 박정희' 슬로건, 산삼뉴딜, 국회의원 자격고시, 출산수당 3천만 원, 몽골과의 국가 연합론 등을 주장하는 등 독특한 공약들로 관심을 끌었다.[22]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그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6년 2월 기자 회견을 통해 2006년 7월 열린우리당에 기간당원으로 입당하였으며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딴지일보를 포상하고 청와대에 탱크를 진격시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23]
딴지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허 본좌'라는 별칭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후 KBS 폭소클럽2, 연예가중계, MBC PD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자신에 대한 비판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매스컴에 등장해 독특한 언행과 쇼맨십을 이어가면서 풍부한 화제거리를 만들어냈다.
2012년 대선, 2017년 대선 때는 피선거권이 없어서 대선후보 출마가 불가능했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2022년 대선에서 후보등록을 완료하였다. 대선 기간동안 기호 6번으로 선정되어 선거운동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만 언론의 적은 보도로 인해 정의당 심상정 후보보다 0.83%의 낮은 득표율(약 28만1천여표)로 4위를 했다.
득표[편집]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의 득표율(약 9만7천여표)로 7위를 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68%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득표율이다. 이러한 높은 득표율은 웹상의 인기와 아울러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24]
특히 아래의 지역에서는 이인제 후보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 서울특별시 : 강남구, 강동구, 강서구, 광진구, 마포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중랑구
- 경기도 : 구리시, 과천시, 성남시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 수원시 영통구, 안양시 동안구, 고양시 일산동구
- 부산광역시 :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금정구, 동래구, 부산진구, 사상구, 사하구, 수영구, 연제구, 영도구, 해운대구, 기장군 (강서구를 제외한 모든 구)
- 대구광역시 :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달서구, 수성구, 달성군
- 울산광역시 : 중구, 동구, 남구, 북구
- 강원도 : 강릉시(허경영 1.01%로 전국 최다 득표율), 속초시
- 경상북도 :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봉화군, 상주시, 안동시, 울릉군, 울진군, 청도군, 청송군, 포항시 북구, 포항시 남구
- 경상남도 : 거제시, 거창군, 김해시, 사천시, 산청군, 양산시, 진주시, 진해시, 창원시, 함안군
부산, 대구, 울산의 경우,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허경영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제쳤으며, 부산 동래구, 대구 남구, 대구 수성구의 경우 2배가 넘는 득표를 하였다.[25]
대선 이후[편집]
대선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허경영은 이후 각종 TV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여러 가지 기행을 선보이며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대선 이후에는 경제공화당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계속 홍보했으며, 18대, 19대 대통령 선거에는 피선거권이 없어서 출마하지 않았다. 허경영은 2022년 5월 실시될 예정인 20대 대선을 목표로 33개의 공약을 발표했다. 2018년 12월 24일부로 복권 되면서 '국가혁명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당 창당[편집]
허경영은 2019년 8월 15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국가혁명당 창당대회'에서 국가혁명당 대표 및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추대, 국민배당금제(1인당 매월 150만 원, 성인 4인 가족당 월 600만 원) 등 혁명공약 33개 조항을 공식 선포했다.[2] 허경영 당 대표는 대표 추대 인사말을 통해 “국가혁명당은 제3의 군소정당이 아닌, 좌파와 우파가 아닌 허(許)파로 내년 총선에 선거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허경영후보는 자신의 국가관과 세계관 및 정책을 소신 있게 피력했다. 그리고 국민배당금을 지급하여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겠다고 발표했고 저출산으로부터의 해방, 상속세 폐지 등 기업 자생력과 창의력 보장으로 반(反)자본적 간섭으로부터 해방, 한·일무역분쟁에 관련된 내용 등을 언급했다.[3]
- 2019년 10월 21일부로 당명이 '국가혁명당'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으로 변경되었으며, 약칭으로는 혁명배당금당이다. 2019년 11월 27일 국가혁명배당금당 중앙당 개소기념 특별기자간담회를 가졌다.[4]
- 허경영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외 정치현실 타개방안과 관련해 정치혁명, 결혼혁명, 노후혁명, 부채혁명, 세금혁명, 교육혁명, 사법혁명, 뉴딜혁명, 금융혁명, 취업혁명, 징병혁명, 노동혁명, 장애혁명 등 혁명배당금당 33정책 공약을 파격적으로 제시했으며,[5] “배당금당이 150석을 확보하고, 국민에 매달 배당금 150만 원을 주고, 당비를 납부하는 책임당원도 150만 명이 될것이다”며 이른바 ‘세 가지 150’ 정책을 발표했다.[6]
- 21대 총선에서 ‘구국의 사명감’을 내세워 출마 의지를 밝힌 허경영 당대표는 배당금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다는 계획을 알렸다. 2019년 11월 29일 여의도 극동VIP빌딩에서 전국 17개지구당원 등 내외빈 약 2천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 행사를 개최했다.
- 국가혁명배당금당 당사인 여의도 극동VIP 빌딩은 역대 세명(김영삼, 김대중, 박근혜)의 대통령을 배출한 명당으로 소문이나 대통령 출마자들이 선호하고 있지만 워낙 임대료가 비싸 선뜩 입주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여의도 당사 현판식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민 1인당 150만 원씩 지급하겠다.”며 “차기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킨 앤드류 양 후보가 나의 공약을 베껴 미국 국민에게 120만 원 지급할 것을 발표했다.“[7] 고 말했다. 특히 허경영 당대표는 ‘허경영 정치공약’을 총 33개로 요약한 정치혁명, 정당혁명, 결혼혁명, 출산혁명, 노후혁명, 소득혁명, 세금혁명, 노동혁명 등을 타 정치인들이 벤치마킹을 하지 못하도록 특허를 신청했다고 전했다.[8]
- 2019년 12월 27일부터 삼삼33정책을 조선, 중앙, 동아일보 외 전국 신문에 전면광고를 실시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 34개 정당 중 민주당, 한국당에 이어 '제 21대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네번째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9]
- 국가혁명배당금당은 2020년 1월 8일 보도자료에서 더불어민주당 331명 자유한국당 299명의 예비후보자 등록에 이어 139명의 후보자를 등록했다고 밝혔고 지난 주 한겨레는 TK지역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보다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자유한국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예비후보자를 등록했다고 보도에서 밝혔다.[10]
- 국가혁명배당금당(당대표 허경영)은 4.15총선의 예비후보자 367명이 등록해 정당별 예비후보자 등록 1위를 차지했다고 11일 밝혔다. 2020년 1월10일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신생정당인 국가혁명배당금당(약칭, 배당금당)은 집권 여당의 339명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328명보다 많은 367명의 예비후보자 등록을한 것으로 알려졌다. 4.15총선을 앞둔 예비후보자 등록에서 신생정당인 배당금당이 정당별 1위를 기록한 것은 정치선거혁명이라는 항간의 호사가들 여론과 함께 또 다시 허경영 신드롬의 현상까지 예고하고 있다.[11]
- 국가혁명배당금당(당대표 허경영)은 2020년 1월 28일 오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자 785명을 등록했다고 이날 밝혔다.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지난해 군소 정당으로는 최초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이어 전국 17개 지구당을 창당해 관심을 모았다. 예비후보자 등록 수에서 더불어민주당 410명 자유한국당 421명보다 거의 2배 가까운 예비후보자를 등록해 1위를 기록했다.[12]
가수 활동[편집]
2009년 8월 14일, 디지털 싱글 〈Call Me〉를 공개하였다. 발매 하루 만에 싸이월드 BGM(배경음악) 차트 1위에 등극하며 화제를 모은 이 곡의 작곡에는 록밴드 뷰렛의 기타리스트 이교원이 참여하였으며, 허경영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26] 2009년 9월 18일 홍익대학교 브이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마쳤다.[27]
허경영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회사인 본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으며, 사실상 허경영 1인 기획사이다. 허경영의 수석 보좌관인 박병기가 대표로 있다.
디지털 싱글[편집]
- Call Me (2009년 8월 14일)
- 허본좌 허경영 (2009년 10월 15일)
- 허경영의 크리스마스 캐롤 (2009년 11월 30일)
- Red Angels (2010년 6월 11일)
- Right Now (2010년 12월 8일)
베스트 앨범[편집]
- BEST T7 (2010년 12월 22일)
광고 모델[편집]
방송 활동[편집]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편집]
그는 예전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자신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결혼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이어 허경영은 2007년 9월 대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을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결혼 하기로 그녀의 아버지와 약속했다.”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허경영은 대통령 후보 공보에 “부시 대통령의 당선 축하파티에 초청되어 유엔 본부 논의와 아시아의 안보에 대하여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다.[32]
故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그의 주장과,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이 합성으로 밝혀져 당시 재판부는 실형을 판시하였다.[33][34]
낭설 주장[편집]
허경영은 수차례 돌발적인 발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대선에서는 자신의 눈빛만으로도 질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35], 축지법과 공중부양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이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는 박정희 대통령 비밀 보좌관을 지냈고 새마을 운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설립을 주도하였다고 주장했다.[36]
과거 마이클 잭슨, 김대중 등 유명 인사들이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의 꿈에 나타났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37][38]
허경영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언급한) 마이클 잭슨뿐만 아니라 저명인사들은 꼭 죽기 3일 전에 영혼의 형태로 나를 찾는다.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인기에 비하면 TV에서 극심한 괄시를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방송국 하나를 인수하거나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인터넷은 장악을 했으니 방송국 인수나 설립을 통해 '본좌 허경영쇼'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서히 방송을 장악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논란 요지가 있는 주장을 이어갔다.[39]
자신이 주장했던 공약이 정치인들이 따라하고 싶은 공약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며[40][41][42], 노인들이 노인수당 20만 원씩을 받고 있는 것은 실제로 자신의 노후혁명 공약이 현실화된 것이라 주장한다.[43]
기타[편집]
허경영 신드롬[편집]
허위 주장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편집]
2009년 10월 17일, 11월 2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신드롬 뒤에 숨겨진 진실, 허경영은 누구인가?'라는 프로그램을 총 2회에 걸쳐 방송하였다.
허경영은 사진과 함께[45] 자신이 부시 미 대통령의 당선 축하 만찬에 초청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그 해당 만찬은 "돈만 주면 누구든지 갈 수 있는 만찬"(뉴욕 한인권익신장위원회 회장)이었다고 부풀려 방송하였고 "부시와 함께 찍은 사진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은 모두 합성"(유경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허경영이 조지 W. 부시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46]
또한 허경영은 끊임없이 이의가 제기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반론으로 자신의 저서(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새나라)를 증거로 제시하였으나 취재 결과 그의 책에 담긴 추천사에 대해 "서울대 문학박사가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 글을 쓸리가 없다. 대필의 모습이 보인다"(한양대 국문과 교수)라고 소감을 밝혔으며, 서울대 문학박사의 지인에 따르면 "그리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끝내 (허경영이) 말을 듣지 않아 포기하였다."라고 응답해주었다. 여기에 허경영 측은 "추천서에 기재돼 있는 사인이 본인이 작성한 게 맞느냐 아니냐에 주안점을 두어 허총재의 박 대통령 보좌관 경력을 마치 허위인 것처럼 유도한 방송한 것"이라 못박았다. 하지만 2007년 9월 13일 박정희 대통령 대통령실 수석 보좌관,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장국진 박사(2008년 작고)가 허경영이 쓴 책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장국진 박사 자신이 산증인이라고 주장했다.[13]
2009년 10월 22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의 인터뷰에서 허경영은 자신의 과거 인쇄업과 결혼 사실에 대해 "IMF로 사업이 위기에 처한 친구를 위해 잠시 인쇄업을 맡았다."고 밝혔고 이어 "고아원을 운영하는 도중 고아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몇차례 호적상으로 결혼을 한 것으로 유전자 조사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라고 하였다.[47]
취재진이 허경영과 채무[48] 관계에 얽힌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던 도중에 채권자에게 일부를 변제해주면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는 공증을 받았고 공증도 함께 방송되었다.
한편 허경영 측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에서 사실을 왜곡했다면서 이에 대해 고소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49][50] 실제로 고소가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18년 2, 3, 4월에 허경영은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 소개로 미국 상원 아태위원장 코리 가드너, 마코 루비오 등을 만났고 같은해 2018년 5월 5일 낮 12시경에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모처에서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과 함께 허경영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핵 문제 해법을 논의한 바 있다[51] 고 밝혔으나 2019년 5월 17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Y’는 허경영 전 민주공화당 총재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며 지지자들에게 공개한 사진이 ‘조작’됐다고 보도했으나 허경영 전 총재가 트럼프를 만난것이 사실임을 한미동맹협의회 임청근 총재가 증언했고 3인(허경영, 트럼프, 임청근)이 같이 찍은 사진을 공개했으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신문에 전면지면으로 사실임을 알렸다.[14]
2019년 5월 17일 SBS ‘궁금한 이야기Y’는 허경영 전 민주공화당 총재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며 지지자들에게 공개한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보도했다.[52]
- 2019년 6월 18일 허경영 측은 SBS 방송이 ‘허위보도’라며 실제 사진과 같이 사진촬영을 했던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의 공증서류를 들고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 제소했다.
- 2019년 7월 9일 언론중재위원회 결과는 ‘조정 불성립’. 허 전 총재는 “너무하다.”며 소송전을 예고했다.
- 2019년 7월 9일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재산[편집]
2020년 3월 27일 비례대표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제출한 공직선거후보자 재산신고서에 따르면 허경영은 채무를 제외하고 총 92억 9105만 4천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의 강연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일대에 133억 8747만 5천원 상당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석현리 일대의 토지 부속 건물 외에도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건물의 임차보증금을 포함해 허경영의 건물 재산 가치는 67억 7900만원 상당이다. 허경영은 2009년식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8천만원에 중고차로 취득하였으며, 해당 자동차의 평가 가치는 1억 5천만원이다. 현금으로 9억 2380만원을 보유하고 있고, 예금으로는 5개 은행에 8억 4190만 7천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의 강연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인 주식회사 초종교 하늘궁의 주식을 2000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액면가액 5000원으로 1천만원 상당 가치로 평가된다. 지적재산권으로 6개의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53]
학력[편집]
- 지수보통학교 38기 졸업
- 서울협성고등공민학교(야간중학교) 졸업
- 서울협성상업전수학교(상업고등학교)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철학과 학사 (1988년)
전과[편집]
-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벌금 1000만원 - 1993년 8월 25일 선고[54]
-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도로교통법위반: 벌금 1200만원 - 1998년 1월 13일 선고[54]
- 명예훼손, 공직선거법위반: 징역 1년 6개월——>> 2008년 5월 15일 선고[54]
저서[편집]
-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ISBN 978-89-952568-0-0)
- 《2000년대의 한국대통령은?》
- 《난세의 영웅, 허경영을 아십니까?》
- 《LOTTO 복권신문》(허경영이 17대 대선 당시 발행해 유포한 것으로 재판부에서 판결되었다. 또한 이 신문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공정성 및 형평성 위반으로 경고문 게재 징계를 받았다.)[55][56]
역대 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 | 선거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91년 | 지방선거 | 초대 | 구의원 | 서울 은평구 (갈현1동) | 무소속 | 1,565표 |
| 3위 | 낙선 | |||
1991년 | 지방선거 | 4대 | 시의원 | 서울 은평구 제1선거구 | 민중당 | 2,451표 |
| 4위 | 낙선 | |||
1997년 | 대선 | 15대 | 대통령 | 대한민국 | 공화당 | 39,055표 |
| 7위 | 낙선 | |||
2004년 | 총선 | 17대 | 국회의원 | 비례대표 | 민주공화당 | 24,360표 |
| 비례대표 1번 | 낙선 | |||
2007년 | 대선 | 17대 | 대통령 | 대한민국 | 경제공화당 | 96,756표 |
| 7위 | 낙선 | |||
2020년 | 총선 | 21대 | 국회의원 | 비례대표 | 국가혁명배당금당 | 200,657표 |
| 비례대표 2번 | 낙선 | |||
2021년 | 4·7 재보선 | 38대 | 시장 | 서울특별시 | 국가혁명당 | 52,107표 |
| 3위 | 낙선 | 민선 7기 | ||
2022년 | 대선 | 20대 | 대통령 | 대한민국 | 국가혁명당 | 281,481표 |
| 4위 | 낙선 |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주민등록상 출생지는 밀양시, 그의 주장으로 출생지는 서울특별시이다. 다만 고향은 진주시이다.
- ↑ “2022년 3월 9일 제 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명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2022년 2월 17일에 확인함.
- ↑ “허경영의 혁명공약 33”. 2020년 9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5월 8일에 확인함.
- ↑ 허경영 혁명공약 33 강의중~
- ↑ 허경영 33 혁명공약
- ↑ 가나 남형석 (2009년 8월 14일). “허경영 ‘콜미’ 음원차트 1위 "정규앨범 낼 것"”. 스타뉴스. 2009년 8월 14일에 확인함.
- ↑ sbs 허경영 공약과 저작권관련 뉴스보도
- ↑ 최사랑 부자되세요
- ↑ 국민송, 허경영작사 노래: 허경영, 최사랑
- ↑ “보도 자료 리스트”. 2021년 10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3년 7월 4일에 확인함.
- ↑ “허경영, "나는 항상 몇 십 년 앞을 본다..재산세 부과는 불법”.
- ↑ 기자, 신혜연 (2021년 8월 10일). “허경영, 세번째 대선 출마…행주산성서 행주치마 입는다”. 2021년 9월 5일에 확인함.
- ↑ “허경영 지지 밝힌 오지명,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1억원 지급' 협약식 참석 [TF사진관]”. 2022년 2월 28일에 확인함.
- ↑ 가나 “대선출마 군소후보가 걸어온 길/허경영 후보”. 동아일보. 1997년 11월 28일. 2008년 1월 7일에 확인함.
- ↑ “진리평화당 대선후보/허경영위원장 지명”. 세계일보. 1992년 10월 25일. 2016년 3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 ↑ “후보등록 마감창구 “해프닝” 속출(돋보기)”. 경향신문. 1992년 11월 26일. 2016년 3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 ↑ “후보등록 첫날 스케치”. 조선일보. 1997년 11월 27일. 2007년 12월 12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등록후보들 재산신고”. 조선일보. 1997년 11월 27일. 2007년 12월 12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50년 만에 첫 여야 정권교체”. 문화일보. 1997년 12월 19일. 2016년 3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 ↑ “후보등록 마감...모두 7명출마”. 세계일보. 2002년 11월 29일. 2016년 3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 ↑ “[여의나루] 총선 후보 등록한 10개 정당”. 국민일보. 2004년 4월 1일. 2016년 3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 ↑ “'당선 매개 매관매직'까지, < PD수첩 >의 '허경영 검증'”.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16일. 2008년 1월 30일에 확인함.
- ↑ 송홍근 기자 (2007년 10월 4일). “이색후보 황당공약 눈에 띄네”. 주간동아.
- ↑ 송한진 기자 (2007년 12월 20일). “<기자수첩>허경영 후보의 선전과 정치 허무주의”. 뉴시스.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08년 1월 7일. 2008년 2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월 6일에 확인함.
- ↑ “허경영, `콜미`로 가수에 도전장”. 한국경제. 2009년 8월 12일. 2009년 8월 12일에 확인함.
- ↑ “허경영, 18일 단독 콘서트 개최”. 2009년 9월 8일. 2009년 9월 8일에 확인함.
- ↑ 허경영 공중부양의 비밀, 변락에프과립에 있다?
- ↑ 라이브플렉스, 불패온라인 모델 허경영 출연 홍보영상 공개
- ↑ [온라이프존] 불패온라인, 허경영 불패당 기조연설 - 유튜브
- ↑ 강의석 제작 영화에 허경영 출연한다
- ↑ “언론중재위까지 간 허경영-트럼프의 '엄지 척' 사진 논란”. 중앙일보. 2018.06.19.
- ↑ “언론중재위까지 간 허경영-트럼프의 ‘엄지 척’ 사진 논란”. 중앙일보. 2019.06.19.
- ↑ 최영훈 (2009년 7월 22일). “‘허본좌’ 허경영 23일 출소 “토크쇼 구상 중””. 서울신문. 2017년 5월 14일에 확인함.
- ↑ 김춘경 (2008년 1월 8일). “뜨거운 눈빛 허경영, 특이한 삶과 사랑”. 문화저널21.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 ↑ [1]
- ↑ '출소' 허경영 "잭슨 사망 3일 전 영혼이 찾아와" 주장. 세계일보, 2009-07-29 입력, 2009-07-29 확인.
- ↑ 이재훈 (2009년 10월 14일). “허경영, 그것이 알고 싶다”. 뉴시스.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 ↑ “허경영 "인터넷은 장악, 방송사 인수하겠다" 허경영이 진리다”. 머니투데이. 2009년 7월 30일. 2009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허경영의 선견지명 누가 '황당 공약'이라고 그래~ _채널A_뉴스TOP10
- ↑ 허경영공약33가지 대대적방송보도! 정치인들 반성하라!
- ↑ 남경필 '광역서울도’발언, 허경영 '지역감정 해소법' 재조명
- ↑ 허경영 혁명공약33: (5) 노후혁명
-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주사위 게임 결과
- ↑ 허경영 (2000).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제6판. 서울: 한강사. 10-11쪽.
- ↑ 허, 만섭기자 (2008.08.04). “‘본좌’ 허경영, 美 부시 대통령 취임 축하파티 실제로 참석했다”. 《신동아일보》. 동아일보.
- ↑ 인용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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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CancelLawsuit
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텍스트가 없습니다 - ↑ 2009년 10월 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허경영의 채무는 약 7억 원이다.
- ↑ 신기한 기자. “허경영 '그것이 알고싶다' 고소 "사실 왜곡했다"”. 투데이코리아. 2021년 10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2년 1월 9일에 확인함.
- ↑ 정, 창곤 기자 (2009.11.11). “'그것이 알고싶다' 조작 방송 의혹, 배후있나?”. 《시사프라임》. 시사프라임. 2009.11.11에 확인함.
- ↑ 조, 택영기자 (2019.07.12). “[단독] 허경영-트럼프 만남 ‘키맨’ 임청근 박사 “‘허경영’ 내가 데려갔다””. 《일요서울-뉴스블리치》. 일요서울. 2019.07.12에 확인함.
- ↑ “'궁금한이야기Y' 허경영, 트럼프와 인증샷 감정결과…'합성'”. 뉴스1. 2019.05.17.
- ↑ “공직선거후보자 재산신고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년 3월 27일.[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가나 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년 3월 27일). “전과기록증명에 관한 제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허본좌’ 사전 구속영장 청구, 이제는 그만둬야 할 때
- ↑ “언론중재위원회 제17대 대선 선거기사심의위원회 5차 회의결과”. 2016년 5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2월 1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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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칼럼 - 시드니 스캔들 (제6화) : 허경영과의 악연
호주한국신문 | 호주 | 2019.11.2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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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허경영과의 악연
2009 년 어느 날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담당 작가실에서 연락이 왔다. 허경영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후속으로 한 번 더 방영을 할 예정이어서 자료 수집차 온라인 서핑을 하다가 내 블러그에 있는 허경영 관련 내용을 읽고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 1회 방영분의 대본을 보내 주었다.
PD: 본인이 고 박대통령의 비밀보좌관이었다는 부분을 강조하다가 월남 얘기를 꺼냈었는데요,
허: 내 군대생활기록부 봤습니까? 군대생활기록부 보세요. 청와대로 돼있어요.
PD: 월남전 가셨다고?
허: 그러니까 청와대에서. 월남에는 심부름 갔지. 대통령이 보내서 간 거고 월남 휴전 때, 월남에 있는 금괴. 금괴를 월남의 대통령이 박대통령한테 ‘아, 이걸 좀 한국으로 옮겨 달라, 인천으로.’ 근데 그걸 LAT(?)를 가져가서 청룡부대가 가서 그 금괴를 싣고 오라는데 대통령이 거기 응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단 내가 월남에 갔죠. 가서 전반적인 걸 봤는데, 사태가 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헬리콥터 타고 돌아오고 말았는데.
나는 대본을 여기까지 읽다가 기절할 뻔 했다. 세상에나? 저나 나나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징집된 일개 사병에 불과했는데 도저히 만화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데 제 멋대로 지어내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인원 30만 명 이상이 파월되어 5,000여 명이 전사한 전쟁터에서 빽이 좋았던지 운이 좋았던지 편한 곳에서 근무하다 살아 돌아왔으면 감사하고 살아야 할 일인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멋대로 지어내는 것은 파병 전우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허경영이 무슨 헛소리를 하든지 내가 관여 할 일이 아니지만 내 옆에서 을 들고 함께 보초를 서던 사람이 전우들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전쟁을 이용해서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국민들을 속이는 일은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에서 한 마디도 사실과 다르거나 조금의 과장도 하지 않고 인터뷰 녹화를 했다. 허경영과 나는 1972년도에 월남 전 참전 때, 백마부대 본부중대에서 허는 법무부에, 나는 군종부에 근무했다. 젊었을 때 그의 모습은 거창하게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웅지를 품은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큰 명분이나 대의나 공익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군대 생활을 할까 하고 요령 피우는 보통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허경영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에게 유리하면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타입이었다. 허 경영은 73년 2월 4일 미군 수송용 민간 항공기를 타고 나와 함께 귀국했는데, 헬리콥터 타고 어쩌고... 라니 무슨 공중에 날아가다 추락할 소리를 하고 있는지...
그러나 애써 녹화를 한 부분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 의도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어 방영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방송의 기획 의도는 허경영이 얼마나 파렴치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들어내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가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지 않게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허경영이 월남에서 했던 웃기는 짓 같은 것을 SBS 측에 보낼 것을 그랬다.
한 번은 군수물자 수송에 경계 작전으로 출동하여 트럭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모두들 야자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경영이가 배낭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구겨진 양복을 꺼내서 군복을 벗고 갈아입기 시작했다. 경계 근무하러 나가는 병사가 배낭에 사복, 그것도 양복을 넣고 다니는 것은 기상천외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이면 영창 감이지만 그는 평소에 워낙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라 인솔 장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리고는 야자수를 배경으로 마치 관광객처럼 유유하게 폼을 잡고 서서 가지고 온 사진기를 내밀고 다른 전우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몇몇이 야유를 하자 경영이는 "내가 니들에게 무슨 피해주냐? 상관 하지 마라" 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SBS는 방영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당시 촬영한 것이 아까워서 그 부분을 유튜브에 올려놓았더니 지금도 꾸준히 허경영의 지지자들로부터 악플이 달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내용이 인터넷에서 허경영을 비판하는 유일한 내용이기 때문에 삭제하지 않고 있다. 궁금한 사람들은 아래 주소에서 찾아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JUNZJF85k&t=2s
▶ 다음호에 계속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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