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가보안법 7조’ 또 합헌 결정
입력 : 2023.09.26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관석에 앉아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2조·7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헌법소원 심판 등의 선고를 내린다. 연합뉴스
이적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 이적표현물의 소지·반포 등을 금지한 국가보안법(보안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26일 재차 판단했다. 1991년부터 해당 조항에 대해 7차례 합헌 결정한 헌재의 판단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다.
헌재는 이날 보안법 7조 1·5항에 관한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나 구성원,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5항은 반국가단체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하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반국가단체를 규정한 2조와 이적단체 가입 처벌조항인 7조3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각하했다.
7조 1항에 대해선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고, 5항에 대해선 구체적 행위별로 판단을 달리했다. 5항 중 ‘제작·운반·반포’ 부분은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소지·취득’ 부분은 4대 5 의견으로 각각 합헌 결정을 받았다. 위헌결정 정족수는 재판관 6명이다.
여덟번째 합헌 결정··· 헌재 “북한은 여전히 반국가단체”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한 A씨는 2013년 온라인 사이트에 북한 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찬양하는 글을 총 26차례 게시하고 김일성 회고록을 본인 주거지에 보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12월 제주지법의 1심에서 징역 8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 A씨는 항소심에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이듬해 1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A씨 등 청구인 측은 지난해 9월 열린 공개변론에서 이들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적행위나 이적표현물 소지 등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해 국가의 형벌권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당 조항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양심·사상·학문의 자유 등도 침해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헌재에 “7조 1·3·5항은 명확성의 원칙 및 비례의 원칙, 국제인권법 등을 위반하고, 표현의 자유와 사상·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법무부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보안법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고자 제한 규정을 두고 있어 이전과 같은 오남용의 소지도 없다고 했다.
이날 헌재는 법무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우선 ‘대한민국의 특수한 안보 상황’을 합헌결정의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지정학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고,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노선의 본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아 온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국제 정세나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본질적인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이적행위나 이적표현물의 제작·소지·반포 등으로 인한 위험은 언제든지 국가의 안전이나 존립에 위협을 가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며 “중한 법정형으로 처벌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헌재는 또 정보기술 발전으로 이적표현물 소지·취득을 금지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했다. 헌재는 “정보통신망을 통한 표현물의 전파는 소지·취득과 전파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으며, 전파 범위나 대상이 어디까지 이를지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적표현물이 정보통신망에 전파되고 난 후에는 다양하게 편집·가공돼 완전히 회수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적표현물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은 오히려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구시대적 악법 청산 실패··· 시민단체 “헌재, 보수적 현실 옹호”
보안법이 합헌 결정을 받은 건 이번이 여덟번째다. 1990년 헌재가 보안법 7조 1·3·5항에 대해 한정합헌 결정을 내린 뒤 법이 일부 개정됐고, 이후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여섯 차례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2015년에는 재판관 한 명이 7조 1항의 ‘동조’ 부분이 위헌이라며 반대의견을 냈고, 2018년에는 7조 5항 중 ‘소지’ 부분에 대해 재판관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이후에도 보안법이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헌법 위의 보안법’이라는 말도 나왔다.
시민단체인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제 순응적인 헌재가 극히 보수적인 현실을 옹호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신민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국제 인권기준에 맞게 보안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하거나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며 “헌재의 합헌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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