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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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국주의를 반대한 평화주의자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별세했다.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분이기에 삼가 명복을 빈다. 일본 군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평화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한 실천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나 국민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지금처럼 윤석열 정권이 친일 매국을 하며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를 고조하는 상황에서 더욱 고인의 죽음이 안타깝다. 
고인과는 스치듯 한 번 보았다. 필자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교수도 아니기에, 한양대에서 초청 강연을 했을 때 인문대의 몇몇 교수와 강연이 끝난 후 연구소에서 차담을 나눈 것이 개인적 인연의 전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같이 왔었던 황석영 작가와 달리 대가이면서도 아주 겸손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났다. 강연의 거의 절반 가까이 황석영의 칭찬에 할애하였다.옆에 있던 황석영 작가가 화를 낼 정도로 학생의 선문답 같은 다소 건방진 질문에도 재차 통역자에게 질문을 하며 친절하고 성실하게 답하였다. 김지하 선생과 대담하면서도 계속 김지하 선생을 띄워주면서 자신이 김지하 선생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계속 강조하였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장애인 아들을 지극하게 사랑하면서도 올바르게 키우는 다큐가 내게는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완벽한 인간, 참 지식인에 가장 근접한 분이다. 
전에 동아시아 근대화와 타자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노벨상을 받았거나 그에 필적할 만한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 풋볼>, 모옌의 <홍까오량가족>, 박경리의 <토지>를 타자의 재현 양상과 타자성의 구현의 관점에서 비교분석한 논문이 있어 이 중 해당 부분을 발췌한다.
<동아시아 문학에서 타자의 재현과 타자성의 구현> 
5장: 《만엔원년풋볼》: 골짜기 일본인의 동일성과 도시 소비문화 전파자와 천민으로서 조선인
만엔 원년인 1860년에 마쓰자부로의 증조할아버지의 동생이 '골짜기 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 주인공 마쓰사부로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간 학생운동을 하였던 동생 다카시가 100년 전 농민운동을 일으키고 죽은 증조부의 동생과 패전 후 조선인 마을을 습격했다가 죽은 형 S를 영웅시한다. 다카시는 골짜기 청년들을 모아 풋볼팀을 조직하여 ‘슈퍼마켓 천황’이라고 불리며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조선인의 슈퍼마켓을 습격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카시가 만든 왜곡된 역사와 기억이다. 실제로 증조부의 동생은 농민운동 실패 후 혼자 살아남기 위해 도주했고, 형 S 역시 영웅이라기보다는 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다카시 또한 백치 여동생과 성관계를 맺고 결국 자살로 내몰았으며 학생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도망갔었다. 다카시는 이런 내면의 수치심을 광기의 폭력으로 드러낸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주인공 자신 앞에 놓인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수용하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모럴의 문제가 과거 역사와 결부되어 쓰인 작품이다. 실존의 접점을 잃고 진실한 삶을 회피한 미쓰자부로와 달리 다카시는 내면에 지옥을 지닌 청년으로 그 자신의 지옥탈출을 시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행동파로 나선다. 행동의 정신적 근간으로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증조부 동생의 내면과 자신의 조선인 부락습격 사건은 동일하다는 역사적 추체험의 환상 속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고 폭력과 강간의 길을 가다가 결국 자기가책으로 자살한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타자인 조선인을 살펴본다.
<소설 텍스트의 인용 생략>
예전의 재일 조선인은 일본사회의 비주류이자 식민지의 열등민족이었다. 중심에서 밀려 주변부에서, 수직적으로도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와서 광부, 벌채노동과 같은 하층의 노동을 하며 겨우 생계나 유지하던 3등 민족이었다. 일본인 주류 사회에서 볼 때 조선인 부락은 “다층식 닭장과 같은 더러운 벌집과 같은 곳”이다. 부락이라는 낱말 자체가 일본에서 천민들의 마을을 가리킨다. 그런 맥락과 위상이 그대로 존재하는 바탕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소설 텍스트의 인용 생략)
전쟁이 끝나고 나서 마을의 일본인들은 숲에서 강제 노동했던 조선인들에게 부락의 토지를 불하해주었다. 슈퍼마켓 천황이 다른 조선인들로부터 토지 전부를 독점적으로 사들인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재산축적을 잘하여 골짜기의 경제를 지배하는 자의 위상에 올랐다. 그는 골짜기의 청년들이 양계를 하도록 지원하고, 추위로 닭들이 모두 얼어 죽는 일을 당하자 그 닭을 모두 묻으라는 결정을 내린다. 
이에 양계를 잘하여 골짜기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려던 다카시는 좌절한다. 21세기 오늘 일본의 구세대가 식민지에 대한 우월감으로 혐한의 감정을 가진 것과 달리 일본의 청년 세대들이 발전된 한국과 경제침체에 있는 일본을 비교하며 더욱 혐한에 빠지는 것처럼, 중심과 주변의 위상이 전도된 데서 골짜기 일본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는 더욱 증대한다. 이후 다카시는 실존의 접점을 슈퍼마켓을 약탈하고 이를 집단경영으로 전환하는 행동에서 찾고자 골짜기 일본 청년들의 분노를 조직한다. 다카시는 그들을 창고에서 합숙훈련을 시키고 풋볼 연습을 시켜 슈퍼마켓을 약탈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조선인 여인을 강간하려다가 다시 실패한 후 자신이 여동생을 근친상간하여 자살하게 한 죄를 고백한 후 자살한다. 
여기서 동일성은 일본, 골짜기, 전통문화, 고귀함, 공동체이다. 타자는 조선, 도시, 소비문화, 천박함, 개인주의 사회다. 다카시는 자신과 골짜기 청년을 일본, 전통문화, 고귀함, 공동체로 동일화하고, 반대로 조선인을 도시, 소비문화, 천박함, 개인주의로 동일시하며 이 전체를 타자화한다. 이 타자화를 통하여 슈퍼마켓 천황과 조선인은 약탈을 하고 강간을 해도 좋은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가 자살하는 것도 조선인을 약탈하고 강간한 데서 비롯된 죄책감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서 실존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다카시는 자신이 모델로 삼은 증조부의 동생이 만엔 원년에 농민폭동을 주도하고 실패한 데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창고에 자신을 유폐시킨 것처럼, 자신이 근친상간하여 여동생을 죽게 한 것과 약탈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산탄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한 것이다.
6장: 동아시아 문학에서 타자성의 구현 방안
동아시아에서 타자는 누구였는가. 그는 다른 부족, 인종, (소수) 민족, 이교도, 오랑캐, 역병의 전파자, 악마였을 뿐만 아니라 타계에서 온 신(神), 선진 문명의 전파자, 위기의 구원자이기도 하였고, 때로는 가족과 이웃, 여성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 동아시아는 공동의 타자인 서양을 만났다. 데리다의 지적대로, “동일자 속에 타자성이 없다면 어떻게 동일자의 유희가 발생하겠는가?” 한국에서 얼굴이 하얗다고 자랑하던 학생이 유럽으로 유학을 가면 자신의 얼굴이 노란색임을 절감하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울을 보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유럽 학생 또한 아시아계 유학생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이 흰색이란 점을 새삼 각인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유럽이며, ‘유럽(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 또한 아시아다. 양자는 서로에게 거울이자 타자다. “아시아는 유럽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결코 자기를 의식하지 못했다. 자율을 상실하고 유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또는 서양이라는 거울에 비춰보고서야 비로소 아시아는 문명적․문화적․민족적․국민적 정체성을 반성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아시아는 유럽의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침략을 받으면서 자신을 인식하며 국민을 형성하였고, 이에 대한 집단적 불안감을 근대국가 건설로 극복하였다. 동아시아의 엘리트와 국민은 이중의 수행을 하였다. 그들은 동아시아를 서양화하는 동시에 서양에 저항하였다. 동아시아는 서양 제국의 침략과 일본의 이의 모방, 서양과 일본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고정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일본은 일본의 보편을 대동아공영론으로 비약시켰고, 한국과 중국은 이에 맞서서 일본의 보편과 구별되는 한국다움과 중국다움으로 각각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이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화하고 민족적 저항의 동력으로 삼았다. 
앞 장에서 거론한 세 편의 소설도 노벨상의 위상에 오른 대작이지만 타자성에 대해서는 대동소이하다. 《토지》에선 공정하게 악한 일본인과 선한 일본인을 모두 형상화하고 있는 반면에, 《홍까오량 가족》에서는 철저히 일본인을 타자화/악마화하고 있으며, 《만엔 원년 풋볼》에서는 식민지 조선으로 타자화한 것과 근대 일본이 타자화한 것을 뒤섞어서 타자화하고 있다. 이 세 작품에 나타난 동아시아 문학의 타자성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타자성에 한정하면, 세 작품이 공통으로 범하고 있는 한계는 동일성을 해체하는 대대(待對)의 차이의 타자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 동일성을 해체하고 진정한 타자성(alterity)를 구현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다문화주의는 오히려 각각의 동일성을 강화하며 신자유주의체제의 시장질서와 융합하기 십상이다. 
이에 타자성을 구현하는 대안을 모색하면, 첫째, 동아시아 문학은 침략과 수탈, 학살에 관련된 기억을 재현할 경우 철저히 사실에 입각하여 기술하되, 설혹 객관적 사실일지라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전체를 조망하는 가운데 부분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둘째,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민족주의, 국민국가, 각 국가의 정체성 등 동일성을 해체하고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연기적이고 생성적인 정체성으로 전환해야 하며, 서로 타자화한 것에서 동일성을 발견하고 연대하는 대대(待對)의 눈부처-차이로 바라보아야 한다. 
셋째, 서발턴과 호모 사케르의 입장에 서서 타자성을 획득하고 결을 거슬리는 읽기와 쓰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최고의 대안은 서발턴과 호모 사케르가 스스로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눈부처-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내면서 저항하는 것이다.
Doheum Lee
2 September at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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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불교시국회의 출범선언문> 
오늘 범불교시국회의 출범선언문의 초안을 썼다. 이를 공동대표 방에 올리고 홍범도 장군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도,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도 빨갱이로 매도하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서 진정으로 이 땅의 평등과 해방을 위해 목숨을 던진 빨치산의 기억과 기다림과 그리움과 한과 고통, 열정과 동지애의 주름을 펴는 역사기행의 길잡이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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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불교시국회의 출범선언문
정법의 칼을 들고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나아가자!

우리 불자들은 이 땅의 중생의 고통에 대한 동체대비심으로 비법이 난무하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서 정법의 칼을 들고 연대하여 싸울 것을 결의하며 이 자리에 모였다.
지금 침묵하고 방관하기에는 비법이 난무하는 정도가 너무 극심하다. 지극히 무능하면서도 독선적인 사람이 대통령에 오르자마자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급속도로 퇴행하였다. 대통령이 재벌과 미국·일본에 굴종하고 일부 극우인사들에 휘둘리면서 대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언론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반대자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매도하며 시민과 학생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극우적인 선동을 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시대정신인 기후위기 극복과 불평등 완화와 반대의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한반도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상황에서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해야 예방할 수 있는데 그 반대로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을 압박하여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과 노동자들은 생존위기와 안전의 위기에 놓였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재벌 퍼주기를 하고 복지예산은 대폭 축소한데다 더해 공공요금을 인상하는 바람에 서민들은 하나같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전면부정하고 반노동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들은 소변을 참아가며 일을 해도 하루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영업자의 부채는 1,020조 원에 이르러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농민 또한 45년만의 쌀값 최대 폭락으로 절망적인 지경에 놓이고, 도시빈민들은 노점 삼진 아웃제로 유일한 생계수단마저 박탈당하였다. 이태원에서 국가의 태만과 직무유기로 159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여 오송 등 곳곳에서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만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2,223명의 노동자가 유명을 달리 하고 13만 여 명이 다쳤다.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앞장서서 일본 핵 폐수의 해양투기에 대해 묵인을 넘어 지지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니라고 푸념할 지경이다. 
부처님께서도 통치자의 법이 바르지 못하면 백성들 모두가 괴로움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폭주로부터 중생을 구하는 길은 기도나 참선이 아니라 운전자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공업(共業)이 있고 신라의 동령승(動鈴僧)의 전통으로부터 민중불교운동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사회화한 역사가 있다. 이에 우리는 곳곳에서 죽어가는 생명과 서민과 노동자의 아픔에 대한 동체대비심으로 그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맞서 정법의 칼을 들고 그를 퇴진시키는 운동에 나선다. 진정한 변화가 오려면 퇴진을 넘어 새로운 지향을 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 극복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생태적이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정토를 이 땅에 구현할 때까지 용맹정진할 것을 결의한다. 이 결의를 모아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범불교시국회의’를 출범하며 아래와 같이 천명한다. 
1. 우리 불자들은 검찰독재자 윤석열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정법의 칼을 들고 분연히 맞선다.
1. 우리 불자들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심화하고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내모는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
1. 우리 불자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 이 땅에 생태적이며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정토사회를 구현할 때까지 용맹정진한다.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범불교시국회의
Doheum Lee
14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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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향한 대전환과 반윤석열 전선
한국 사회 전반에서 급격한 퇴행이 진행되고 있고 국민들은 생활고로 도탄에 빠졌으며 국격은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이 정권은 시대착오적인 권력행사와 정책, 보복에만 혈안이다. 미국과 재벌에 극단적으로 편향된 행보를 하며 친일 매국을 자행하고 서민과 노동자를 생존위기로 몰아놓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반도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균형외교를 저버리고 미·일 동맹체제에 가담하고 북한과 대결구도로 일관하여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권력의 전·후면에 모두 배치된 강성 신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시대의 가치인 기후위기 극복과 불평등 완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내달리면서 노동개악을 강행하고 노조파괴를 단행하고 있다. 언론을 탄압하고 노동과 진보진영을 부패집단·종북세력으로 매도하고 당정분리와 협치를 거부한 채 군사독재정권의 유령인 공안정국을 부활시키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는 뼈대만 남았고 나라는 안팎으로 파국 직전이다.
경제의 객관적 상황을 보아도 총체적 난국이다. 장기침체임에도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서 에너지 가격은 오르고 기업의 투자와 수출, 일자리가 줄어드는 '초대형 위기(perfect storm)'가 닥치고 있음에도 거꾸로 가고 있다. 복지를 축소하고 임금인상을 억제하여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의 길을 봉쇄하였다. 재벌 퍼주기와 잘못된 정책으로 기업부채와 한계기업이 급증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로 인한 자금경색은 점점 금융위기로 향하고 있다. 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인 105.8%, 무역적자는 사상 최고인 472억 달러, 실업률은 3.6%에 이르렀다. 올해 1% 성장도 낙관하기 어렵다. 
독단과 퇴행의 극치이고 실정의 연속임에도 이 정권은 여전하다. 이유는 여럿이다. 극우이데올로기로 합리화하고 군사독재정권도 부러워할 정도로 검찰 권력이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디지털화 이후 여론이 둘로 갈라치기한 가운데 확증편향이 심해, 화물연대 파업사태에서 보듯 60∼70%가 반대해도 수구냉전세력과 강성 보수층의 팬덤이 강화한 것이 여론지지로 탈바꿈한다. 반면에 야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지만 민주당은 도덕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데다 사법리스크에 걸려 식물정당 수준이다. 진보진영은 아직은 괴멸 상태다. 이대로라면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할 것이고 윤석열 정권의 파쇼적 만행은 날개를 달 것이다. 기후위기, 불평등의 극대화, 지정학적 전쟁의 위기 등 글로벌 복합위기(Global poly-crisis)의 상황에서 이 끝은 대한민국의 파국이거나 전쟁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대안은 무엇인가. 반신자유주의·반윤석열·한반도 평화체제로 전선을 명확히 설정하고 각 주체들을 중심으로 연대하여 총력으로 투쟁해야 한다. 복합위기의 극복은 탈자본과 탈성장의 새로운 사회에서만 가능하므로 이를 목표로 담대한 전환을 하려는 이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노동운동진영은 풀장의 물장구질이나 뻥파업일랑 그만하자. 계급의식에 기반한 투쟁의지를 확고히 하고 총자본에 총노동이 맞서는 투쟁을 하고, 이에 진보정당과 진보 세력이 연대하면서 총선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하자. 
반윤석열 전선의 전제는 민주당의 반성과 혁신이다. 불량정권이고 70%가량이 반대함에도 왜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 힘보다 못한가. 촛불의 열매를 송두리째 내주었지만 문재인 정권은 촛불배반정권의 행보를 보였다. 적폐의 핵심인 자본과 미국에 굴종적이었고 압도적인 의석을 갖고 있었음에도 촛불에서 요청한 개혁을 하나도 수행하지 않았다. 불평등과 노동자의 삶은 더욱 악화하였다. 조국 사태에서 위성정당, 방탄 국회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힘과 별 차이가 없었다. 민주당은 기득권동맹의 행태를 취하면서 일개 검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데 대해 뼈저리게 성찰해야 한다. 이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하여 386과 부패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사퇴하거나 정계 은퇴를 하고 당을 젊고 청렴하며 진보적으로 쇄신하여야 한다. 더 미루면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의 참패가 총선에서 반복될 것이다. 
촛불행동과 비상시국회의를 포함한 민주당과 지지층은 진정으로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가. 그렇다면, 총선에서 위성정당 금지와 독일식 비례대표제, 퇴진 이후 민주당과 좌파·노동운동진영과 공동정부 구성, 직접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화를 대폭 수용한 개헌, 신자유주의 극복과 사회대개혁을 약속하고 좌파·노동운동진영과 연대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당과 좌파·노동운동진영, 대한민국을 다 같이 살릴 뿐만 아니라 꺼져가는 촛불항쟁을 촛불혁명으로 승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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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eum Lee
23 August at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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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불자 시국선언>
윤석열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에 2차로 범불교시국선언을 하기로 하고 제가 초안을 작성하였습니다. 불자가 아니신 페친을 고려하여 앞의 경전 문구만 빼고 여기에 올립니다.(구글 폼에는 경전을 포함한 전문을 수록하였습니다.) 제 페친 중 불자들께서는 아래 구글폼에 들어가셔서 서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마감 9월 2일 토요일) 주변 지인들께 서명 요청하여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생태적이며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정토사회를 구현하자!>
지금 한국 사회 전반에서 급격한 퇴행이 진행되고 있고 국민들은 도탄에 빠졌으며 국가는 위기상태다. 
지극히 무능하면서도 독선적인 대통령이 재벌과 미국·일본에 굴종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을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탄압하며 반민족 · 반민중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시대정신인 기후위기 극복과 불평등 완화와 반대의 방향으로 역행하며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과 노동자들은 안전의 위기와 생존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정권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검찰독재를 강행하고 있다. 
이 정권은 권력의 곳곳에 포진된 검찰들을 중심으로 노동과 시민사회 진영을 부패집단 · 종북세력으로 매도하고 문재인 정권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당정분리와 협치를 거부한 채 군사독재정권의 유령인 공안정국을 부활하였다. 이를 비판하거나 저항하면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훼손하면서까지 집회를 제한하고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부여하여 민간인을 사찰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나 개인에 대해 마녀사냥을 획책하고 있다.
경제는 파탄 상황이다. 
장기침체임에도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상태에서 에너지 가격은 오르고 기업의 투자와 수출, 일자리가 줄어드는 '초대형 위기(perfect storm)'가 닥치고 있음에도 거꾸로 가고 있다. 임금인상을 억제하여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의 길을 봉쇄하였다. 10대 재벌의 독점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의 84%, 매출의 63%를 차지할 정도로 극에 달하였는데 재벌 퍼주기로 일관한 탓에 기업부채와 한계기업이 급증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일방적이고 종속적인 친미 행보로 러시아와 중국만이 아니라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 제재에 가담하지 않은 인구로 따져 80%에 이르는 세계 시장과 멀어지고 있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로 인한 자금경색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와 유사한 금융위기를 야기할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인 105.8%(전세대금을 포함하면 156.8%), 작년의 무역적자는 사상 최고인 472억 달러, 실업률은 1주일에 한두 시간 일하는 이를 제하고도 3.6%에 이르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한반도 평화는 바람 앞의 촛불의 지경이다. 
지난 해 10월에 이태원에서 국가의 태만과 직무유기로 159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성찰은커녕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모르쇠로 일관한 채 대비와 개선에 소홀히 하여 제2의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일극의 패권 유지와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대리전을 수행하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반도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상황에서 균형외교를 저버리고 친미·친일 일변도로 치달으며 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가해자인 일본에 미리 굴종하여 굴욕적인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고 일제 강제동원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의 생존과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이제 핵 폐수의 해양투기까지 묵인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과 대결구도로 치달으며 전쟁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와 기득권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생존위기에 놓였다. 
한국의 불평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2번째로 빠르게 심화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재벌과 부자들에게는 법인세, 상속세, 종부세를 줄여주고 서민들의 복지예산은 대폭 축소했다. 이에 더하여 전기, 가스, 교통 등 공공요금을 인상하여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전면부정하고 반노동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강경하게 탄압하여 양회동 열사를 끝내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영업자의 부채는 1,020조 원에 이르고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데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상환 유예조치를 올해 9월에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농민 또한 45년만의 쌀값 최대 폭락으로 절망의 상황인데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노점 삼진 아웃제를 도입하여 도시빈민들의 유일한 생계수단마저 삭제하였다. 전세사기피해로 곳곳에서 국민들이 고귀한 목숨을 내던지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의 전면과 후면에 모두 배치된 강성 신자유주의자들과 더불어 시대정신인 기후위기 극복과 불평등 완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내달리며 다수의 국민과 무수한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로도 역대 급의 폭염, 폭우, 폭설, 태풍이 일상화하고 38% 생명이 멸종위기에 놓이고 1970년대 이후 척추동물의 60%가 사라졌다. 1.5°가 더 오르면 파국에 이르는데 이제 이 기한은 6년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불평등 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상위 10%가 전 세계 전체 소득의 52%, 자산의 76%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위 10%가 절반의 소득과 60%에 이르는 부를 점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3차/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등 글로벌 복합위기(Global poly-crisis)가 더욱 파국을 촉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반대의 방향으로 내달리는 이 폭주의 끝은 대한민국의 파국이거나 전쟁일 가능성이 크다. 폭주로부터 사람을 구하는 길은 기도나 참선이 아니라 운전자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대방편경』에서 한 선원이 499명의 선원을 죽이려고 하자 선장은 세 차례나 그러지 말라고 그 선원을 설득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자 그를 죽여 499명을 살리고 그 사람의 업을 대신 받고 자신이 지옥에 가겠다는 선택을 한다. 그 선장이 바로 부처님의 전생이었다. ‘정의로운 분노’ 또한 타자의 입장에서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어 옳지 않지만, 나보다 약한 이들의 고통을 내 병처럼 아파하여 내는 ‘자비로운 분노’는 불교 교리에 부합한다. 
이에 우리는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픈 유마거사의 마음으로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퇴행으로 인하여 곳곳에서 죽어가는 생명과 서민과 노동자의 아픔에 대한 동체대비심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운동에 나선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극대화 등 복합위기를 극복하려면 촛불은 윤석열 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과 생태적이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사회 건설을 향하여 들불로 활활 타올라야 한다. 이에 우리는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은 물론, 생태적이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정토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 일환으로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범불교시국회의’를 출범하며 아래의 같이 천명한다. 
1. 검찰독재자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하라!
1. 우리 불자들은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전쟁의 위기로 내모는 어떠한 정책도 반대한다.
1. 우리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극대화 등 복합위기를 맞아 생태적이며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정토사회를 구현한다.
윤석열 퇴진 범불교 비상시국선언(제2차)과 범불교시국회의 동참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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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범불교 비상시국선언(제2차)과 범불교시국회의 동참 요청
윤석열 퇴진 범불교 비상시국선언(제2차)과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범불교시국회의" 동참을 요청합니다 <요청사유> 1. 윤석열대통령은 지난 범불교 시국선언(1차)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불자들의 요구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


Doheum Lee
17 Augus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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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로 봅시다. 탈레반 집권 이후 얼마나 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 특히 여성들이 탄압과 고통을 받을지, 얼마나 많은 문명이 바미안 석굴처럼 파괴될 지 걱정이 큽니다. 오늘 카불 공항에서 이륙하는 미국 수송기에서 떨어지는 사람과 공항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한참 동안 멍하였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의 탈레반을 만든 것도 미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아프가니스탄은 계몽적 왕정체제가 서구 근대화를 추진하여, 70년대까지만 여성들도 부르카는커녕 히잡조차 벗어던진 채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였고 대학에 다니며 자유연애를 하고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며 일하였고 여성파워도 강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80년대에도 여성이 공과대학에 들어가면 홍일점으로 보도가 되었는데 7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Poly-technic institute-아래 하단 맨 오른 쪽 사진- 등에 들어가서 남자들과 … See more
Doheum Lee
29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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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 외교를 규탄하는 한양대 교수 성명을 발표합니다. 시국문제든 학내문제든 2002년대 초부터 제가 성명서를 써서 교수들의 동의를 받아 50명이 넘으면 발표해왔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신자유주의 내면화, 확증편향, 냉소주의, 무력감, 다양한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동참자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동안 한 번이라도 서명한 교수님들께 메일로 성명서를 보낸 후 마감한 결과 24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주일 내내 서명자 리스트에 없지만 할 만한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내고, 서명자 리스트에 있는데 동의 답장을 안 보낸 분께는 독촉 메일과 전화를 하여, 또 서명한 교수님들로부터 주변에서 서명에 동참할 만한 교수님들의 추천도 받아 간신히 50명을 채워 발표합니다. 몇몇 교수님들은 바쁘신 와중에 주변의 교수님들께 전화를 하여 동의를 받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동의를 해주신 50인의 의로운 교수님들, 여러 도움을 주신 교수님들, 또 이번에 새로 서명하신 교수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표합니다. 끝으로 50명이 넘자마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렸는데 <경향>, <오마이뉴스>는 물론 기대도 하지 않았던 <데일리중앙>과 <뉴스라인> 등이 보도하였는데 가장 기대하고 제자를 통해 부탁까지 했던 <한겨레신문>은 일언반구도 보도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물었음에도 사회부 기자에게 전달했다는 말만 한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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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을 요청한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대일 굴욕외교의 극치이자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수반이 오히려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킨 망국 행위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의 기본을 망각하여 단 한 건의 국익을 챙기지 못한 채 일본의 부당한 요구를 모두 들어준 외교 참사를 저질렀다. 대한민국의 역사로 볼 때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대일외교에서 절대 포기 불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라는 미명 아래 ‘그랜드 바겐’이라는 황당한 흥정거리 대상으로 삼았음은 물론 이를 대가로 추호도 일본의 사과나 해명도 받아내지 못했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인정을 전제하지 않은 미래는 비극을 예비하며, 성찰 없는 과거는 미래가 된다. 5년짜리 대통령이 반만년의 대한민국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자격이 없다.   
제3자 변제 해법은 국제 인권 규범과 헌법을 위반하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폭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사과를 받지 않은 채 지난 3월 6일에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제3자 변제’ 해법을 제시하였다. 대법원은 이미 2012년에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라는 판결을 내렸고, 2018년에는 이 판결 취지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확정판결을 선고했다. 당시 국민의 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조차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가 구제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라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강제동원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운동을 해 온 것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자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이라는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여 삼권분립의 원칙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하고 시민사회의 노력과 피해자의 인권과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는 반민주적 폭거를 행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역사적 만행을 행하였다. 나아가 피해자 의사를 무시한 이른바 ‘제3자 변제방안’을 거꾸로 제안함으로써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국제적 인권 규범조차 위반하였다. 무엇보다 일본의 불법적 식민 지배와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행위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였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가슴에 다시 국가가 2차 가해라는 대못을 박았다.
더 큰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 큰 대형 참사를 예비한다는 우려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해제를 위한 WTO 제소와 지소미아 유보는 한국이 행사할 수 있는 대표적 외교적 수단의 지렛대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일본에 헌납했다. 정상회담 직후 NHK의 기하라 세이지 관방 부장관 발언에 근거한 보도에 의하면, 정상회담 자리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를 포함한 한・일 현안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실행을 촉구했다고 한다. 

왜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리 불법이고 위헌이며 99%의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이토록 굴욕적 태도를 견지하겠다고 하는가. 역사의식의 부재, 국제질서에 대한 무지와 천박한 인식만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사시에 (자위대가)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즉, 현 정부의 이 무도한 굴욕적 외교정책의 근저에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가 자리한다. 미국은 유럽과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부상에 맞서서 일극의 패권 유지와 중국 포위 전략을 강화하고 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중국과 협력하여 미국을 견제하려 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4대 강국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위상에 있음에도 이를 저버리고 미·일 동맹체제에 가담하고 북한과 대결구도로 일관하면, 중국과 대만/미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는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의 매파와 일본의 극우세력이 다음 차례로 노리는 것은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여 중국에 맞서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전쟁이 주로 한반도와 대만에서 벌어지면서 전쟁의 피해는 온전히 대만과 한국의 국민이 겪고, 일본은 한국전쟁 때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하여 패전 이후 부활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재도약을 할 수 있고 미국은 일극으로서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 이의 대안은 자주적 균형외교를 복원하고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 사회 전반에서 급격한 퇴행이 진행되고 있고 국민들은 생활고로 도탄에 빠졌으며 국격은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위기에 놓였다. 이제 민주주의는 뼈대만 남았고 나라는 안팎으로 파국 직전이다. 이 모든 위기보다 더 심대한 것은 전쟁위기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서민을 도탄에 빠트리고 친일 매국 행위를 하며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현 정권을 강력히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대오각성하여 민주주의 확대와 자주외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길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이를 저버릴 경우 우리는 여러 형식을 통해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 나설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2022년 3월 28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양대 교수 일동
고광민, 고보형, 고운기, 공구, 김미영, 김상진, 김용수, 김용헌, 김태용, 류수열, 류웅재, 민찬홍, 박규태, 박기수, 박상천, 박선아, 박성현, 박조원, 박찬운, 방승주, 서경석, 소순규, 신동옥, 신영전, 안성호, 유상호, 유성호, 윤성호, 은용수, 이광철, 이도흠, 이석규, 이승수, 이승일, 이재복, 이충훈, 이현우, 이형섭, 전성우, 정대호, 정병호, 조율희, 주동헌, 최원배, 최형욱, 탁선미, 한충수, 한홍열, 허선, 허수연(이상 가나다 순, 50명)


Doheum Lee
8 Augus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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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시점에서 열정을 지속하되, 차분하게 지나친 흥분이 혹시 광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흥분만 해서 절대 일본에 이기지 못합니다. 자한당을 비롯한 극우세력, 친일 매판세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베와 싸우듯 맞서야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국민의 반일 감정에 편승하여 재벌에게 수십조 원을 지원하고 총선에서 표를 얻으려 국민의 감정을 조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반일 감정을 폭발해선 이번 싸움에서 질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싸움은 크게 세 가지를 목표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이번 기회에 일본에 종속적인 경제 구조를 해체하는 것, 둘째 한국 내 친일매판 세력을 청산하는 것, 셋째, 일본 내에 아베를 정점으로 한 극우 전쟁 세력의 헤게모니를 축소하는 것으로 반일운동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 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면 지고도 이기는 것이자 선열들께서 피를 흘려 쟁취한 것을 계승하여 제2의 독립운동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광기에 맞서서 비판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지식인들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극우나 친일 매판만이 아니라 우리 편의 지나친 흥분을 비판하는 전선에 서시기 바랍니다.

1. 일본을 이기려면 가장 먼저 ‘추격기술 정책’을 폐기하고 기초과학연구에 투자를 하며, 대일무역적자액의 54년간 누적액이 700조 원에 달할 정도로 실질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일본의 하청기업인 종속적인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2. 1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는 재벌 위주 경제에서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와 산업으로 재편해야 한다.  
3. NO Japan 불매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는 가운데 일본의 양심세력, 평화세력, 진보세력 등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아베 및 극우세력의 헤게모니를 축소해야 한다. 
4. 65년 한일협정은 미국의 압박 아래 일본국 장교였고 대한민국을 기시의 만주국처럼 만들려고 했던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민족적으로 행한 것이고,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근본적으로 여기서 비롯되므로 한일협정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
5.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 친일매판세력, 자한당의 반민족적 공세에 조직적, 이성적으로 대항해야 한다. 
6.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이므로 중국, 북한과 손을 잡고 일본을 협공해야 한다. 
7. 현해탄으로 전선(戰船)이 오고간 것은 1%미만이고 이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손해였으며, 99%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처럼 서로의 문화와 예술, 역사, 문명의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평화의 꽃배가 오고갔고 이때 한일 모두에게 번영과 발전을 야기하였음을 흥분한 중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와 교역이야말로 한국과 일본 모두가 승리하는 유일한 길임을 반일운동 중에도 간직하며 최종목표로 추구해야 한다



Doheum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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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eum Lee
29 Dec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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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 이후 시민사회 · 민중 운동의 방향과 전략
1. 머리말
두 달이 넘게 대한민국이 조국사태의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엄청난 국력의 낭비이자 소모전이었다. 소위 ‘조국사태’에는 공정과 정의, 불평등, 지식인의 도덕성과 책무, 기득권과 울타리의 갈등, 세대모순과 계급모순, 검찰, 언론, 교육 개혁 등 여러 층위의 문제와 모순들이 겹쳐 있다. 이에 대한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어느 문제나 모순을 더 중시하는가에 따라 보수와 진보는 물론 진보 안에서도 치열한 논쟁과 대결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진보 진영 또한 둘로 갈라져 분열상을 보였으며 의미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조국 사태를 분석하면서, 향후 운동의 방향에 대하여 논한다.
2. 주 · 객관적 조건
2.1. 객관적 조건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권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불평등과 노동 배제, 공적인 영역의 사영화, 대중의 탐욕의 내면화 등 이 체제의 모순이 심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소득주도 성장을 모색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 신자유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았다가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불평등은 심화하고 서민과 노동자, 농민, 청년은 생존위기에 처해 있다. 1,100만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인 50.7%(2017년 기준 홍민기, <노동리뷰>), 배당소득의 93.9%를 차지할 정도로(국세청,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불평등이 악화하였으며, 청년실업자는 30만 명에 이르며(통계청 2019년 8월), 971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고용노동부 2018년) 노동시간 단축 유예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농성에 대한 대처, 부동산 부양책, 24조 원에 달하는 기업 지원책 등에 잘 나타나듯이 노동을 배제하고, 친기업 성장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둘째, 그동안 막강한 권력과 자본, 정보를 독점한 채 여러 모순과 부조리를 야기하고 민중과 노동자를 수탈하면서 배제하던 ‘자본-권력-보수언론-종교권력층-사법부-김앤장과 같은 전문가 집단 및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조금도 균열되지 않았다. 이 카르텔의 헤게모니, 이들이 만든 법과 제도는 온전하다. 이 카르텔은 박근혜를 비롯하여 국정농단을 자행한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집단 가운데 일부를 털어내고는 권력을 재창출하였고, 집권 여당은 유, 무형으로 이들과 얽혀 있다. 박근혜는 물러났지만, 반민족, 반민주, 반민중을 획책하면서 권력과 이익을 취해 온 친일, 독재, 천민자본세력을 중심으로 한 대다수의 적폐들은 잔존하고 있다. 권력을 획득한 문재인 정권은 점점 ‘연출정권’으로 가고 있다. 선언적으로 적폐청산을 거론하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가장 손쉬운 블랙리스트 주도자들마저 처벌하지 않았다.  
지역에는 관료-국회/지방의회 의원-종교 권력층-지역언론-지방 검찰과 경찰-지방대의 토호동맹 카르텔이 있고, 이들의 연결 고리는 토건기업과 명문고와 문중이다. 진보운동과 진보정당이 정체되어 있는 핵심원인은 분단모순, 선거제 등 구조적 모순과 함께 지역의 토호동맹 카르텔이 진보의제를 지역주의로 집어삼키고 지역의 진보인사나 단체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에너지원은 토건사업이다. 지역에서 이 카르텔을 깨는 운동을 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정착시키려면, 지역 개발의 열매가 고루 돌아가는 시스템,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주민위원회 등의 거버넌스 시스템을 만든 상황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지역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은 24조 원에 달하는 예비타당성(예타)를 면제하는 지역개발사업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한 마디로 ‘문재인 판 4대강 사업’이다. 이는 개발 위주의 성장정책을 성찰하고 생태복지국가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역의 토호동맹 카르텔에게 권력과 돈을 안기고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총선을 돈잔치로 이끄는 반민주, 반환경, 반민중의 정책이다.    
셋째, 문재인 정권은 촛불이 요구한 경제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등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넷째, 글로벌 경제와 더불어 지정학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올해 성장률을 정부 스스로 2%로 축소하는 등 소비가 위축되고 성장이 멈추는 디플레이션의 우려마저 있다.  
2.2. 주체적 조건
첫째, 촛불의 동력은 타오르고 있다. 주권자로 인식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이것이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미투운동 등 모든 갑질과 불공정함에 대한 집단적 저항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시민사회로 조직화하지 못한 채 분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사태나 미투운동에서 보듯 갑들의 횡포에 대한 을들의 저항이 곳곳에서 연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이 마을, 일터, 학교에서부터 풀뿌리들의 자치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성하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으로 조직화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촛불 이후에도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의 진성조합원/회원/당원의 가입은 의미를 부여할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이번 조국사태에서 보듯,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만 몰두하며 공론장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촛불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여 공론장과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단순히 촛불을 타고 번지는 을들의 일시적 반란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둘째, 서초동의 촛불에서 진보 진영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였다.
셋째, 진보 운동의 중심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진영은 아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3. 조국 사태에 대한 집단별 참여 논리와 한계, 성찰 
여러 모로 불완전한 인간은 성찰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인, 집단, 문명의 발전을 도모해 왔다. 조국 장관이 사퇴한 이후 우리는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성찰하면서 그것이 남긴 과제들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광화문에는 자한당과 그 지지층, 60대 이후의 산업화세력, 동원된 기독교도들, 강남의 부유층 노인들이 절대 다수였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한 중년과 소수의 청년도 모였다. 합리적 보수를 제외한 세력, 소위 태극기 부대들은 반공이데올로기와 산업화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들이다. 이들의 색안경으로 볼 때 문재인 정권은 좌파 정권이자 타도 대상이다. 거짓과 억지까지 동원하여 악다구니하던 차에 상식적인 기준에서 보아도 문제가 많은 조국은 문재인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들은 허위와 가짜뉴스를 확대생산하며 조국의 부도덕성을 선동하며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고 대신 검찰과 기득권을 엄호하였다. 
하지만, 도덕의 프레임은 정치를 후면으로 후퇴시켰다. 도덕적으로 더 타락한 집단이 도덕을 무기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조선일보>를 사령관으로 하여 보수언론과 SNS를 총동원하여 가짜뉴스를 생산한 것은 일시적으로 보수 대중을 선동하기는 했지만, 그를 비판하는 정보와 논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 너머로 확장되지는 못하였다. 조국이 사퇴하고 자한당의 지지율이 올랐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정치는 여러 변인에 따라 생물처럼 작동하고 자한당의 인사들은 조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기에, 그 칼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다. 매도와 음해성의 흠집내기와 상대방 죽이기로 일관하는 정치는 소모전일 뿐이다. 언론이 그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독재정권처럼 통제되지 않고 SNS로 반대 정보와 담론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상황에서는 이로 얻는 대중과 표는 한정되어 있다. 이참에 자한당이 국민의 명령인 검찰개혁과 선거법개혁에 대승적으로 협조하고, 영국의 보수당처럼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민족적인 보수로, 산업시대의 유령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울타리 밖의 중도층의 대중과 청년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지지층으로 돌아선 것은 주시해야 한다. 사회학적으로는 조국 사태 이전부터 2000년대 이후의 청년들의 삶 자체가 보수화한 것, 노동자와 서민들이 반공이데올로기와 산업화 이데올로기에 포획/세뇌되어 무지한 우중에 머물러 보수를 지지하는 것과 더불어 자본화한 노동자(Capitalist Worker)로 변질된 것 등의 달라진 요인도 주목해야 한다.
진보는 둘로 갈라졌다. 서초동에는 민주당의 지지층, 586과 60대 이전의 민주화세력, 검찰의 오만에 분노하는 청장년이 모였다. 절대 다수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들이다.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동일시하는 자와 양자를 분리하는 자 사이의 차이는 있었지만, 갈등으로까지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검찰을 개혁하지 않으면 무소불위의 권력이 언제든 서민은 물론 장관과 대통령까지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키거나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절박감과 울분에서 거리로 향하였다. 기득권의 동맹에서도 검찰은 핵심고리였고, 적폐의 중심이었다.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하자는 촛불이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더구나, 586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고문과 투옥을 당한 것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을 맞은 것에 이르기까지 검찰에 대한 트라우마와 분노가 있다. 그러기에 이들의 저항은 정당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번 사태를 통하여 많은 것을 상실하였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가 두 달 동안이나 국론 분열과 사실상 직무정지의 상태에 있었음에도 전혀 정치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정 지지층을 제외하면 자한당과 적대적 공존 구도, 자한당의 꼴통보수로서 몰상식적인 행태에 대한 반사이익에 의존하여 그나마 40% 지지율을 유지해왔었다. 그러다가 사회개혁을 거의 하지 않고 친재벌 반노동으로 회귀하면서 진보가 이탈한 데 이어 이번 조국사태로 중도층마저 이탈하면서 사실상 레임덕에 이르렀다. 고정 보수층과 진보층이 30% 정도씩 양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중도층의 향방과 진보의 열정이다. 중도층의 입장에서도 공정과 정의의 아이콘이었던 조국이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586들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까지 광적으로 조국수호에 나섰다. ‘문빠’들은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의 차원에서 조국을 비판하는 진보 인사의 SNS나 언론 보도에 대해 무차별적이고 광기어린 악플 공격을 가하였다. 
이는 민주화 운동 경력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대중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권력도 장악했던 586도 기득권과 다름이 없음을 대중에게 뚜렷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이제 ‘문빠’의 바깥에서 민주당 인사들의 당선을 위하여 발 벗고 주위 사람을 설득하고 SNS에 글을 올리고 퍼 나를 열혈 지지자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586의 종말과 문재인 정권의 레임덕을 그들 스스로 부른 것이다. 앞으로 586은 권력을 잡은 이후 울타리 밖의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은 채 기득권에 유리한 정책을 남발하고 그들이 비난하던 자한당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한 것을 처절하게 반성하여야 한다. 촛불 이전이든 이후든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은 계급모순이고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이었으며 조국 사태에서도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와 농민, 빈민,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지극하였는데, 이들은 이를 무시하였다. 한 마디로 주요 모순을 부차적 모순인 세대모순으로 대체하는 모순의 전위(displacement)를 범하였다. 비유하면 암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에게 이는 묵과한 채 감기만 문제로 삼았다. 문재인 정권은 남은 몇 달 사이에 울타리 바깥의 국민과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경제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노동개혁 등 사회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은 물론 그 이후도 위험하다. 
노동자와 농민, 빈민, 노동운동 진영의 활동가와 지식인, 가난한 청년 등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서초동에 가지 않았다. 이들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졌거나 노동존중의 사회를 추구하거나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한다. 이들은 국정농단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불평등과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가 2016 촛불의 주요 동력이었으며, 촛불의 명령은 정권교체를 넘어 불평등의 완화와 공정한 사회를 위한 개혁이었다고 본다. 촛불 이후에도 이들의 삶에 전혀 변화가 없는 까닭은 ‘자본-권력-보수언론-종교권력층-사법부-김앤장과 같은 전문가 집단 및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전혀 균열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권도 이 동맹에 안주한 채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사회개혁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회귀한 채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킨 문재인 정권에 대해 울분을 가졌다. 조국에 대해서도 기득권의 온갖 특권과 편법을 답습한 것으로 간주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노동자 민중 운동 진영의 현실인식은 타당한 것이었지만, 이들은 대중을 동원하여 사회개혁을 견인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전선이 형성되지 않고 진보언론조차 이들의 주장을 거의 보도하지 않는 구조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서초동에 모인 대중과 거리를 둔 채 연대하지 않음으로써 고립을 자초하였다. 사회개혁의 큰 틀에서 조국과 문재인 정권을 비판한 이들이 다수였지만, 극히 일부는 울타리 밖의 사람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를 투사하다 보니 조국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에만 매몰되었다. 이들은 대중 없이 관념에 머문 것,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점, 디지털 시대에서도 그들이 혐오하는 극우세력과 다름없이 산업화시대의 논리와 운동에 머물고 있는 점을 뼈저리게 성찰하여야 한다. 이 성찰을 바탕으로 진보와 보수가 울타리 밖과 안의 사람들과 일치하지 않는 달라진 현실을 직시한 바탕 위에서 새로운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정의당은 한 마디로 조국을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데스노트에 오르게 되었다. 조국사태는 민주당과 구별되는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고 정의당의 위상과 이미지를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정의당은 조국을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는 중대한 실책을 범하여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 달 동안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과 노동존중을 추구하는 진보적 대중들은 문재인 정권의 친재벌 반노동 행보와 기득권의 특권적 행태를 답습한 조국을 수호하는 담론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이들은 그나마 제도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구현할 정당이 사라졌다는 좌절을 하였고, 이는 분노와 이탈로 이어졌다. 선거법 개혁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지도층의 변명은 가치와 이익, 대중과 권력 가운데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진보 정당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검찰은 연이은 무리한 수사로 자충수를 두어 조국을 피해자로 전환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령을 소환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가만히 있으면 나와 내 가족도 언제인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검찰 자신이었다. 검찰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부터 지금까지 기득권의 수호자로서 수많은 서민과 노동자, 독립투사와 민주 인사들을 부당하게 탄압한 과거를 뿌리에서부터 성찰하고 검찰개혁에 협조해야 한다. 
언론은 언제까지 ‘찌라시’와 ‘기레기’로 일관할 것인가. 언론인으로서 사명과 윤리를 송두리째 내버린 채 가짜뉴스와 궤변과 악플로 기득권이나 자기 집단의 수호를 위한 정치적 선동과 조작에 몰두한 이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보수 언론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진리와 팩트의 조작에 치중할수록 언론과 광고의 중심은 점점 더 SNS로 이동함을 깨달아야 한다. 
지식인은 진정한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하고 허위에 맞서서 진리를 지키고 자신이 탐구한 진리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갖는다. 지식인은 과거의 성찰과 지혜를 통해 현재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자이기에, 성찰과 비판과 비전을 생명으로 한다. 지식인이 침묵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이런 사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지식인의 실천을 중요시하였다. 유가에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불가에서는 듣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사수(聞思修)를 강조하였으며, 서양에서도 소크라테스가 게으른 말(국가)을 깨우는 등에(지식인)가 필요함을 역설한 이래 사상과 이념은 변해도 지식인의 실천을 당연한 덕목으로 삼았다. 지식인은 이번 기회에 업적과 승진 등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울타리 바깥 노동자, 서민, 빈민, 청년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지 못한 점, 언행의 불일치를 보인 점, 금수저로서 다양한 특권을 누리면서도 이중적인 목소리를 낸 것 등에 대해 처절하게 성찰해야 한다.
4. 향후 운동의 방향과 전략
진보 진영은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검찰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과 더불어 촛불의 명령이었던 재벌개혁, 노동개혁, 정치개혁 운동을 추진한다. 이의 달성을 위하여 시민사회 운동 진영과 노동자 민중 운동 진영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범진보연대를 결성하여 대사회개혁운동을 전개한다. 전술적으로는 좀더 진보적이고 근본적인 방향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집회, 담론투쟁, 여론 투쟁 등을 수행하며 한 편으로는 문재인 정권을 압박하는 동시에 견인하고 대중들을 설득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 운동 진영은 모험주의를 지양하고, 시민사회 운동 진영은 이것이 대중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채 좌우협공을 당하고 있고 지지율도 레임덕 수준인 30%대로 하락한 문재인 정권을 살리는 길임을 인식한다.
검찰개혁 등 사회개혁을 추진할 때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결과의 평등 없이 기회나 과정의 평등과 공정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교육개혁이나 언론개혁, 검찰개혁 등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고 불평등을 완화하지 않으면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왜냐하면, 개혁은 법과 시스템에 이어 사람과 문화가 바뀌어야 안착하는데,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람들이 반개혁적 성향과 행동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하면, 기득권은 자신과 자식들의 자본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창’을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권력과 자본, 정보를 동원하여 제도와 법을 바꾸고 편법을 구사하며, 민중 또한 탐욕을 키우고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한다. 불평등이 심화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나경원’과 ‘조국’이 될 수 있다. 
전략적 목표는 촛불혁명의 3단계 완성과 신자유주의 체제의 극복이다. 현재 촛불이 1단계 탄핵, 2단계 정권교체로 나아갔지만, 3단계 사회대개혁이나 4단계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을 향한 진전은 없다. 국정농단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분노의 바탕에는 불평등과 불공정함에 대한 울분이 깔려 있었으며, 촛불의 명령 중 핵심은 불평등의 완화와 공정한 대한민국의 건설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자고 하면 급진적인 주장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길이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국제통화기금(IMF)조차 경제를 성장시키면 그 열매가 노동자와 서민에게도 돌아간다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부정하는 보고서인 <소득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세계적 전망>을 2015년 6월 15일에 발표했다. “소득 불평등과 경제발전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159개국의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이 보고서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5년 동안 GDP는 0.08%포인트 감소했지만,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GDP는 같은 기간에 0.38%포인트 증가했다.” 한 마디로 낙수효과는 허구에 불과하며 서민과 노동자가 잘 살아야 경제성장도 가능하다는 분수효과(fountain effect)가 타당하다. 성장과 복지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면 보수는 물론 일부 진보인사조차 도덕적으로 옳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2011년 조사의 경우 30대 기업에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당기순이익 49조 7천억 원의 1.5%인 7천 9백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시사저널>, 2012년 10월 31일) 인천공항의 경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4-5년 뒤에는 외려 비용 대비 편익이 더 증가한다. “2011년 기준으로 인천공항공사가 39개 부문의 외주용역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한 해 총 3306억여 원인데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고 외주를 직영으로 전환하면 한 해 3천 120억 원이면 운영이 가능하다” (김성희, <인천공항공사 민간위탁 노동자 실태와 직접고용 정규직화 방안 연구>) 수천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두 배의 임금이 더 소요되는데, 어떻게 이런 ‘마법’이 가능한가? 바로 협력업체의 업주들이 마름처럼 과도하게 중간착취를 하는 구조이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공수처 설치나 검경수사권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개혁은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키고 시민사회가 검찰의 권력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검장의 직선제, 시민위원회가 검찰을 통제하는 시민검찰제, 범죄행위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이유로 형사법원에서 사소(私訴)를 제기하는 프랑스식 사인 소추제, 피해자나 변호사가 검사와 함께 공동 원고로서 소송에 참가하는 독일식 부대공소제 등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수처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검찰은 괴물로 남을 것이다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는 금수저의 대물림이 보장되고 언제든 ‘제2의 정경심’은 양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교육개혁도 대학서열을 해체하고 입시를 철폐하지 않는 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특성화와 재정지원,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연계하면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국립대학을 네트워크화하는 것과 함께 지역의 문화와 산업과 연계하여 특성화하고 재정지원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경북대 섬유산업학부를 경북지역의 다른 대학의 섬유산업부의 교수와 학생과 하나로 네트워크하고 1년에 1,000억 원 정도씩 재정지원을 하고 이를 졸업한 이들이 대구 지역의 섬유 관련 산업체에 취업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1970년대까지 홍대 미대, 건국대 축산학과 등은 서울대보다 낫다고 자부하였으며, 지방의 국립대 또한 연고대 수준은 되었다. 세계 100대 대학의 서열과 재정은 비례한다. 재정은 별도의 세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이명박 정권에서 행하였던 부자 감세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20조의 재정이 확보된다.
언론 개혁의 경우 제4부로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는 철저히 보장하면서 가짜뉴스와 악플을 제한하면서 자유롭고 합리적인 공론장을 형성하도록 여러 개혁을 수행하여야 한다. 
정치개혁의 경우 우선 지지자와 국회의 의석이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재현의 위기(the crisis of representation)를 극복해야 한다. 선거제를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개선할 뿐만 대통령 선거 등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국회를 양원제로 바꾸어 상원은 지금처럼 정당에 기반한 지역대표제로 하되, 하원은 직능대표제로 하되 ‘몫없는 자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선출하지 않고 추첨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하원의 의원 정원이 1,000명이고 선거인 중 노동자가 60%라면 노동자 대표가 600명이 되도록 구성하고 추천하는 것이다. 전문성을 우려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실험한 결과, 사안마다 전문가를 초빙하여 숙의민주제의 형식으로 할 경우 선출 국회의원보다 더 전문적이면서 공정하였다.
경제개혁의 경우 재벌의 여러 독점을 제한하고 재벌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금융과 산업, 언론의 완전한 분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며, 공기업의 공적 기능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포지티브적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6T(IT, NT, BT, ET, RT, CT)의 산업국가로 재편하면서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형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한다. 근본적으로 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 공유가치를 바탕으로 공평하게 분배되고 공정하게 권력이 행사되고, 경쟁보다 협력과 연대를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한다.
조세정의를 확립하여 보편적 복지의 재정을 확보한다. 복지의 재원은 부자감세 20조 원의 환원, 사회복지목적특별세 20조 원, 상속세의 정상화(4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모든 불로소득(자산/토지/주식)의 세수를 통한 사회적 환수 약 100조 원, 부패방지로 인한 공적 자금 확보 50조-100조 원,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군사독재정권 때처럼 70∼90%로 환원하고 법인세를 단계적으로 30%대로 올린다.
노동개혁의 경우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노동하기 좋은 나라’로 전환하여 노동존중을 추구한다. ILO 협약과 마주치는 관련 법을 개정하고,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는 특수한 영역을 제하고는 철폐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4차 산업혁명과 자동화를 대비한 제도적 방안 마련, 실업수당의 3년 지급 보장과 재교육 등 사회안전망을 확보한다. 기업의 곳간에 쌓아둔 2000조 원을 임금인상과 일자리 창출로 풀어 소비를 진작하고 경제를 활성화한다.
역사의 기관차라지만 혁명은 늦게 올 수도, 빨리 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저항의 동력 없이는 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방향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한 정의롭고 평등한 생태복지국가로서 민주공화국과 한반도 평화체제다.
2016년 “이게 나라냐?”라며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대한민국이 진정 좋은 나라로 거듭나려면, 정부와 국민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보편적 복지, 조세개혁, 경제개혁, 노동개혁, 일자리 창출에 우선하면서 시민이 주체가 되고 ‘차이의 평등’을 이루는 정치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럴 때 촛불은 비로소 항쟁에서 혁명으로 승화할 것이다.
_ 박근혜 퇴진운동을 주도한 퇴진행동에 참여한 단체들의 촛불 3주년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문건입니다.
지난 10월 25일에 발표했던 것인데, 송년회 장에서 길어도 페북에 올렸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신 분이 있어서 올립니다.
Doheum Lee
26 Octo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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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탄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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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eum Lee
29 Dec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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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민족문학론의 해체와 21세기 민족문학론의 재구성
1. 해체와 재구성의 이유  
21세기다. 제국이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정복하여 자원을 수탈하고 원주민을 학살하던 18-20세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이행했으며,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세계화와 탈국가화가 급속이 진행되고 있다. 인류는 45억 년의 지구의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로 접어들고 있다.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이 지층을 형성하고 닭뼈들이 화석으로 발견되고 온난화로 여러 기상이변이 일상화화고 지구상의 생명체의 38%가 멸종위기에 놓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이 생명을 창조하는 호모 데우스의 지위에 올라섰으며, 인공지능이 앞으로 대략 30년 안에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18-20세기에 부합하던 민족문학론을 다시 재론한다면, 이는 “국수주의적, 복고적, 교조적이며, 권력지향적, 한국 우위주의라는 가면을 쓴 패배주의자의 문학”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엇보다 20세기의 민족문학론은 민족과 국가의 동일성에 갇혀 타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재생산한다. 왜 이성과 교양이 증대된 20세기에 집단학살이 수시로 자행되었는가.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 ‘순전한 생각없음’,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 때문이라 주장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경제적인 요인이 토대로 작용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가해자들이 타자를 배제하고 폭력을 행하면서 동일성을 강화하려는 집착에 갇혔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에게 우파 독일 중산층 시민을 학살하라 했어도 아이히만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명령을 준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인 아이는 때리지도 못하는 신부가 아메리카에서는 별다른 죄책감이 없이 원주민 어린이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였다. 학살을 행하기 전에 상대방을 타자화하는 혐오언어(hate speech)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일이 먼저 일어나며, 학살은 타자화한 특정 종교, 인종, 민족, 종교, 집단에 한해서만 행해진다. 그렇기에 동일성에 바탕을 둔 민족문학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타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내포한다.
민족문학론은 다른 국가와 종족의 문학과 예술, 문화를 타자화하면서 이와 구분되는 자신의 언어, 문화, 역사, 민족성 등의 동일성을 표상하거나 우월한 것으로 주장하기에 배타적이고 국수적이다. 민족문학은 21세기임에도 식민지 지배를 받던 일제강점기나 산업사회에 통용될 정서와 의식을 형상화하거나 이에 호소하기에 복고적이고 퇴행적이다. 민족문학은 다양성과 독창성을 지향해야 할 문학작품의 주제와 형식을 종족 민족주의(ethno nationalism)가 구성하고 지향하는 이념에 종속시키기에 교조적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족문학은 지배층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거나 계급 모순을 은폐하고 이를 민중과 노동자의 구체적인 현실을 소거시킨 (순수) 민족으로 대체하기에 국민을 동원하는 지배층의 통치전략에 복무하거나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민족문학은 한국 문학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외국, 주로 서양의 문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기에 열등감의 표출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특히 프로문학과 민족문학을 대척점에 놓고 민족문학을 오도한 김현과 이형기 식의 주장은) 지금 우리의 문학이 식민지적 의식에서 벗어났다는 전칭 긍정이 성립된 이후에 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식민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식민성은 우리의 의식과 삶을 규정하고 있으며, 식민적 구조는 제도와 담론과 이데올로기와 아비투스로서 작용하고 있으며, 제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노예화하고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일제의 관료와 지주 등 친일 분자들을 독립국가의 지배층으로 존속시켰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백선엽, 정일권 등과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대한민국을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만주국을 모델로 한 짝퉁 병영국가’로 개조하였다.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본떠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국민교육헌장, 재건체조, 교련을 강요하고, 일제강점기 때의 행정체계와 사법체계를 그대로 존속시켰다.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친일분자들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서 지배블록의 일원을 형성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확대재생산하고 일본에 유리한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대중은 지배층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독도영유권,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내면의 식민성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향가에서 탈춤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가 ‘정과 한을 대대적(待對的)으로 화쟁한 흥(興)과 신명의 아우름’의 심층구조를 이루고 있건만, 야나기 무네요시가 설정한 ‘한국문화=한(恨)의 문화’라는 도식은 김소월에서 임권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인과 지식인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으며, 외려 이들이 ‘한국적 작가’로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 시가의 기본 율조가 3.4조인데 반하여 와까(和歌)에서 하이쿠(俳句)에 이르기까지 일본 시가의 기본 율조가 7.5조인데, 7.5조로 노래한 김소월이 민족시인으로 둔갑하고, 지금도 수천만의 한국 대중들이 렌까(連歌)의 영향을 깊이 받은 애상적 뽕짝에 가슴을 내주고 있다. 
일본 제국은 미국 제국으로 대체되어 한국인의 내면에 식민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변방인 한국에서 중심으로서 내지(內地)인 “일본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세계체제(world system)의 역학과 한미관계에 따라 “미국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으로 대체된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 이제 한국인의 중심은 미국이다. 미국은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며 남한을 사회주의를 막는 반소 전진기지와 미국에 종속된 자본주의 시장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불평등협정을 체결하고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때로 민중학살에 가담하면서 무기와 상품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취해 왔다. 촛불항쟁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권조차 미국의 눈치를 보며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조차 추진하지 못하고 한국의 대외정책이 철저히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따라 제한될 정도로 정치는 종속되어 있다. 경제정책은 정권에 관계없이 미국 유학파이자 미국의 파워엘리트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관료들에 의해 결정이 된다. 미국의 지식과 담론이 학계와 언론계를 압도한다. 드라마와 영화, 광고, 인터넷에 담긴 미국의 이미지와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마저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 잔재의 완전한 청산, 미국에 대한 종속 체제의 극복, 남북통일,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체제나 세계공화국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제국에 대한 저항으로서, 우리 안의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민족담론과 민족문학은 유효하다. 그러기에 민족문학은 기존의 민족문학을 해체하고 새로운 맥락과 패러다임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동일성에서 차이의 민족문학론으로
인간은 동일성에 포획되면, “유색인, 이교도, 좌파, 장애인, 여성, 병자” 등으로 타자를 상정하고 이를 배제하고 때로는 폭력을 행하면서 동일성을 강화하고, 그로부터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안정과 이익을 얻고 동일성 내부의 구성원과 유대를 강화한다. 인류가 동일성을 형성한 요인은 유전자의 번식 본능, 농경 생활, 문화, 전염병, 언어 및 이로 이루어진 종교와 이데올로기, 국가다. 
동일성을 극복하는 것은 차이의 사유로 전환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탈근대의 사상가들은 동일성의 사유를 해체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데리다와 들뢰즈의 차이의 사유와 원효의 변동어이(辨同於異)론을 결합하여 눈부처-차이를 제시한 바 있다. 첫째, 눈부처란 ‘주/객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대대(待對)’다. 우선 상대방의 몸인데 내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눈부처를 보는 순간에 내 눈동자에도 상대방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서로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너와 나,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해체되고 상대방을 내 안에 서로 모시는 대대적 관계를 형성한다. 둘째, ‘내 안의 불성(佛性)과 타인 안의 불성의 서로 드러남’이다. 설혹 상대방을 때리러 간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부처를 보는 순간 멈출 수밖에 없다. 이처럼 눈부처는 내 안에 타인과 공존하고 섬기려는 불성이 드러난 것이다. 셋째, 동일성에 포획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차이 그 자체’다. 이처럼 눈부처의 차이는 내 안의 타자, 타자 안의 내가 대화를 하여 공감을 매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 감성에 의해 차이를 긍정하고 몸으로 상대방을 수용하고 섞이면서 생성되기에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제 민족문학은 세계문학으로서, 동아시아 문학으로서, 한국문학으로서 모든 동일성을 해체하고 유럽,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한국 내의 여러 집단의 사상, 이데올로기, 문화, 삶 등에 대해 눈부처-차이로 바라보고 재현하는 것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한 예로, 박범신의 『나마스테』는 차이의 민족문학에 다가간 작품이다. 작가는 한국인이 행하고 있는 네팔 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한국인이 미국에서 당한 똑같은 경험을 나란히 배치시켜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 한국인이 네팔의 노동자를 경멸하고 무시하고 있지만, 그들은 바로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너의 누이이고, 미국에서 흑인에게 똑같은 조롱을 받고 폭행을 당하던 너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눈부처 차이의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이주 노동자를 연민과 시혜의 대상으로 타자화하고 있다. 카밀은 현실에 존재하는 서발턴(subaltern)으로서 주체가 아니라 작가가 재현한 ‘착한 타자’일 뿐이다. 이는 ‘재현의 폭력(the violence of representation)’이다. 이런 작가의 태도는 착한 이주노동자에 한해서만 차이를 존중하려는 한국 중산층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일치한다.  
3. 정태적 민족문학론에서 생성적 민족문학론으로
30대 때 참석한 학회에서 대학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의 입에서 “탈춤은 우리나라에만 있다”라는 말을 듣고는 실소한 적이 있다. 탈춤 자체가 신라 때 서역으로부터 수용한 것이며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형의 마스크 댄스(mask dance)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민족문학은 ‘우물 안 개구리’를 넘어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아시아 문학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하며, 이럴 때 전제는 정태적 민족문학론에서 생성적 민족문학론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데리다의 지적대로, “동일자 속에 타자성이 없다면 어떻게 동일자의 유희가 발생하겠는가?” 한국에서 얼굴이 하얗다고 자랑하던 학생이 유럽으로 유학을 가면 자신의 얼굴이 노란색임을 절감하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울을 보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유럽 학생 또한 아시아계 유학생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이 흰색이란 점을 새삼 각인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유럽이며, ‘유럽(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 또한 아시아다. 양자는 서로에게 거울이자 타자다. “아시아는 유럽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결코 자기를 의식하지 못했다. 자율을 상실하고 유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또는 서양이라는 거울에 비춰보고서야 비로소 아시아는 문명적․문화적․민족적․국민적 정체성을 반성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아시아는 유럽의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침략을 받으면서 자신을 인식하며 국민을 형성하였고, 이에 대한 집단적 불안감을 근대국가 건설로 극복하였다. “서양 근대의 정수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국민’이라고 불리는 집단적 주체가 불가결했고, 아시아의 국민은 밖으로는 서양에 저항하고 안으로는 반동적 유제를 초극(超克)해야 했던 것이다. 서양에 대한 저항과 부정이 없는 곳에 아시아의 근대가 실현될 전망은 없다.” 근대 초기에 유럽의 파리나 런던에 갔거나 난학(蘭學)의 태동공간인 데지마[出島]에서 유럽의 근대에 충격을 받은 일본의 엘리트들은 이를 일본과 일본의 하층민에게 이식하였고, 외부로는 조선과 타이완을 근대화와 식민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식민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과 타이완에 국민(國民), 이를 주체로 한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었다. 
일본의 엘리트들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 언어를 유럽으로부터 유입한 근대 학문 방법론으로 분석하였으며, 그 중 대다수는 타율성론, 정체론,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식민주의 사관에 꿰맞추어 해석하였다. 일본적인 것이거나 일본과 조선에 공통인 것은 보편이었고 이에 포섭되지 않는 것은 조선의 전통으로 분류하였다. 이광수를 비롯하여 한국의 엘리트들도 ‘미개한 조선’을 일본식으로 근대화하는 데 앞장섰다. 
이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한국의 엘리트들도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국문학과 국사학,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이중의 수행을 하였다. 그들은 한국을 서양과 일본을 좇아 근대화하는 동시에 서양/일본적인 것에 저항하였다. 자본제, 합리성, 과학, 근대 학문과 교육, 민주주의를 수용하여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서양과 일본에 저항하여 유럽과 일본의 타자로서 유럽과 일본에 없거나 부족한 것으로 ‘한국’을 구성하고 ‘전통’을 창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적인 것은 세계적 보편과 동일시되고 그것과 다른 한국의 특성은 민족성의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식민지배의 종식 이후 정치적인 지배-종속관계는 해체되었지만 경제적, 문화적 지배-종속관계는 잔존하며, 유럽과 아시아, 일본과 나머지 아시아 사이의 보편-특수의 역학관계는 존속하고 있다. 이런 구조와 역학관계 속에서 대다수 한국의 작가들은 근대 초기에는 서양식 근대화와 계몽을 강한 메시지로 전하였으며, 이후에는 민족의식을 고양하거나 가장 한국적인 것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문학을 창작하였고 비평가 또한 이 관점에서 감상하고 평가하였다.   
정체성이란 자체가 정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에 따라, 시공간에 따라, 맥락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인간과 인간, 나라와 나라의 관계는 찰나의 순간에도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서로 생성하는 상호 생성자(inter-becoming)의 관계에 있다. 한국의 정체성이 변하면 일본도 따라 변하며, 이는 동양과 서양의 관계서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은 기업, 국가, 화폐처럼 허구이지만 그 안의 구성원들의 사고와 실천에 영향을 미치면서 현실을 구성하는 상호주관적 실재로 작동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제국과 다른 국가가 동일성의 배제와 폭력을 행할 때는 이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우리가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 전쟁을 행사하려 할 때는 이를 해체하는 이중의 실천을 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민족주의, 국민국가, 각 국가의 정체성 등 동일성을 해체하고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연기(緣起)적이고 생성적인 정체성, 이에 바탕을 둔 생성적 민족문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생성적 민족문학은 서양과 일본, 중국에 대해서만 아니라 한국 안에서도 모든 중심을 해체하는 생성을 해야 한다. 국가주의, 엘리트주의와 가부장주의를 해체하고 중심- 파워엘리트, 남성, 다수자-에서 주변-서발턴과 호모 사케르, 여성, 사회적 약자, 이주여성과 이주 노동자-로 시선을 옮기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그렇지 못할 경우 지식인과 작가들이 대변해야 한다. 
4.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에서 탈식민의 민족문학으로
유럽 안에서 인종, 국가, 계급, 집단에 따라 다양한 자질과 양태가 생성되므로 서양을 통일적인 정체성으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허구다. 그럼에도, 유럽과 아시아는 통일적인 정체성을 구성하여 서로 영향을 미쳤다. 유럽은 초월적인 이분법적 재현체계를 통하여 ‘서양’과 대조하여 ‘동양’을 ‘이국적, 전근대적, 전제적인 것, 비합리적, 이교도’ 등 의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하였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한 마디로 말해, 오리엔탈리즘은 힘과 헤게모니에서 월등하게 우월한 유럽이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서양’과 대조되는 이미지, 관념, 성격, 경험으로서 ‘동양’을 조작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것을 1차 오리엔탈리즘으로 명명한다.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한다. 근대 이후 서양 대 동양을 “근대 대 전근대, 발전과 미/저발전, 계몽 대 야만, 교양 대 무지, 과학 대 주술”로 구분하고 후자를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며 전자를 지향하려는 것이 2차 오리엔탈리즘이라면, 이를 일부 반성하면서 차이라는 명목 하에 “분석적 대 직관적, 능동적 대 수동적, 남성적(아니무스) 대 여성적(아니마), 합리적 대 감성적, 개인주의적 대 집단주의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은 3차 오리엔탈리즘이다. 물론, A or not-A의 이분법 대 A and not-A의 퍼지(fuzzy), 부분적 대 총체적, 실체론 대 관계론 등 사유(구조)의 차이는 존재한다. 또, 유교자본주의론에서 잘 볼 수 있듯, ‘동아시아적인 것,’ ‘혹은 서양에 없는 동양의 고유 전통’이라고 우리가 인지하고 구성하고 있는 개념, 이미지, 정체성조차 유럽의 눈으로 본 타자로서 동아시아다. 유럽적인 것과 동아시아적인 것을 비교하며 유럽에 없거나 부족한 것, 혹은 ‘이질적이고 기묘한 것’을 비서양으로,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전통이나 정체성으로 간주한다. 세계에서 서양을 빼냈을 때 남는 잔여물을 아시아적이거나 아프리카적인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과 구분하여 형성된 정체성에 대해 아시아인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식으로 우월감을 가지는 것이 4차 오리엔탈리즘이다. 
지금 한국의 대중, 언론, 학계, 지식인에게 1차와 2차, 3차, 4차 오리엔탈리즘이 혼재한다.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하는 반면에 이에서 한국의 전통과 정체성을 확립하여 서양과 일본의 문화적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그것 또한 유럽과 일본에 대한 거울에 비춰진 타자로서 한국적인 것이다. 학자들 또한 유럽의 ‘수입오퍼상’을 답습하거나 유럽의 타자로서 ‘고물상’을 고집하는 것이 중층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식민지인들이 식민주의자의 자아상에 따라 ‘자아 통합적 타자로 구성되고, 유럽 또한 식민지를 타자로 정의함으로써 스스로를 주권적 주체(sovereign subject)로 통합하였다.” 이런 면에서 로버트 영의 “서양의 전유적 나르시시즘(the appropriating narcissism of the West),”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의 서양의 거울에 비춰진 타자로서, “유럽중심주의적 보편주의와 아시아적 특수주의 사이의 공범성-전형적인 탈식민지주의적 공범성”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가해자의 법(독일-일본법)으로 판정하는가. 탈식민의 기획은 한 마디로 “나는 노예다→나는 내가 노예임을 알았다→나는 나를 노예로 규정하고 구성한 모든 것에 저항한다→나는 이제 노예가 아니다.”로 진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황석영의 『손님』은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라는 두 서양 손님, 타의에 의한 근대화가 어떻게 신천 양민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낳았고 또 화해, 해원하는 과정에 대하여 지노귀굿의 형식, 다초점 서술방식을 빌어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서구의 장르를 빌어 동일성 담론으로서의 소설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서구 문화의 전복적 수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즉, 근대 소설 양식과 이와는 이질적인 전통적 서사 기법이 혼성적으로 교차하면서 새로운 서사의 모델을 형상하는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재현의 틀을 넘어서는 헛것(유령)의 세계는 재현된 심상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근대의 통합된 서사에 균열을 낸다.……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는 지노귀굿을 차용한 구성적 힘은 전통 양식을 현재적으로 전용한 『손님』의 탈식민주의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헛것을 현실에 끌어와 판타지를 현실과 결합시킨 것 또한 한국적 환상적 리얼리즘의 지평도 열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민족문학에서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문체와 시간관, 세계관은 아직 서양의 그것에 머물고 있다.
5. 세계문학의 보편성과 주변의 부정성의 종합
K-pop의 세계적 열풍에도 시조를 아는 외국인은 아마 몇 명밖에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하이쿠는 해외에 최소한 1억 명 이상의 동호인이 있고 대다수 나라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 최근에 들어 진전이 있지만, 세계문학계에서 일본문학이나 중국문학에 비하여 한국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아직 초라하고 미미하다. 누구든 한국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서양의 교과서에도 버젓이 실릴 수 있게 되기를 열망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영화제의 목록에 오르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한국 영화에 대해, 권명아가 “이는 한국 영화가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하의 과정이자 세계 자본으로 편입하는 재영토화의 과정이며, 동시에 변방marginality에서 벗어나려는 탈게토화와 중심으로 편입하려는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다.”라는 지적은 문학의 장에서도 음미할 만하다. 주변은 늘 타자화하고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고 배제되지만, 이 때문에 중심의 원리 및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는 부정성을 갖는다. 반면에 중심은 늘 권력을 갖고 주변을 지배하지만, 이 때문에 부정성은 상실되고 창조성마저 고갈된다. 그래서 주변이 중심을 교체하면서 인류문화는 발전하였다. 한국문학의 주변성에 대한 냉정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를 잘 형상화하되, 세계 자본에 편입하려는 재영토화와 중심으로 편입하려는 욕망과 조바심을 버리고 지역성/특수성과 세계성/보편성 사이를 부단히 오고가면서 주변성을 벼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에서 필요한 것이 한국이 맞고 있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객관적이고 첨예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망이나 판타지를 종합하는 것이다. 민족문학/프로문학의 이분법이 민족문학에서 민중, 노동자, 계급모순, 정치성을 제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국수주의 내지 국가주의로서 민족문학일 뿐이다. 이는 사이비민족주의론에 불과하다. 백보 양보하여, 일제강점기에 한국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는 것에 맞서서 순수하게 한국적인 것을 재현할 때 이는 정치성과 민족적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해방 이후의 공간에서는 이런 민족문학은 민족적인 것을 감상과 복고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박제화할 뿐이다. 민족문학은 당연히 민족이 맞고 있는 여러 모순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야 한다. “민족문학의 개념은 철저히 역사적 성격”을 지님과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을 가져야 하며, 당대 있는 현실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묘사와 더불어 통일을 지향하고 유토피아적 전망이나 전복(顚覆)으로서 판타지 또한 가져야 한다. 이럴 때 참조할 만한 것은 난장이다. 탈춤의 장에서는 양반/서민, 어른/아이, 남성/여성의 권력이 전복된다. 참여한 이들은 유교의 규율체계와 이데올로기, 윤리에서 벗어나 욕망과 불만을 발산한다. 문화는 지배와 저항, 질서와 일탈, 포섭과 배제, 지배담론과 피지배담론, 지배 코드와 피지배코드, 지배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가 치열하게 마주치는 장이다. 난장은 모든 억압에 맞서서 욕망(desire)만이 아니라 욕망으로 타자화하지 않은 욕동(drive)마저 발산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장이다. 난장의 민족문학은 자연스레 민족을 세계체제, 국가나 자본에 포섭하려는 모든 시도를 부정한다.
말 그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민족문학론이 20세기의 고루한 이념과 형식을 고집한다면 신체시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이제 민족문학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세계관을 갖고서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재현과 인류세에 부합하는 전망을 종합하면서 변방의 부정성에 충실하여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
-  <푸른사상> 2019년 겨울호(30호)에 게재한 원고입니다.임동확, 맹문재, 공광규 선생께서 저와 유사한 주제로 새로운 ㅁ민족문학론에 대해 저보다 나은 글을 게재하였고, 김응교 선생도 김수영에  뺴어난 글을 실었으니  <푸른사상> 2019년 겨울호구독하시고 앞으로도 많이 사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with 고명석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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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Apri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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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총선결과는 임계점에 다달은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것일뿐이다.
오늘날 "헬조선" 을 몰고온 세력이나 .옆에서 불구경하던 야권이나. 
이제야 말로 대오각성하여.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들을 섬기는 자세로
"멸사봉공" 의 자세로 적체되었던 아래의 국가현안을 해결하고 냉혹한 국제사회속에서
국가를 보위해야 할것이다.
1.전임정권의 "사 자 방" 비리
2.대선부정
3.세월호참사
4.탄저균 사태
5.사드정국
6.위안부 문제
7.역사교과서 문제
8.사회 양극화 문제
9.극도의 남북대결로인한 안보불안문제.
10.국민들의건강을 극도로 위협하는
    GMO(유전자조작)식품. 방사능오염식품.
    녹조(발암물질)로 오염된 국민들의 
    식수원인 4대강 관리문제.
(※ 한국은 세계적으로 GMO식품.일본의 방사능 폐기물수입 1등국가임)
12.임계점을 넘어선 가계부채.국가부채문제.
5,000만 국민들이 주시하고있고.
지구촌시대에 전 세계가 지켜보고있는바.
20대 국회 개회즉시 한치의 어긋남없이 
표류하던 국정을 바로잡아서 국가를 보위해야할것이다.
이만백 is with Doheum Lee and 
1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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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arc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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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
냄비의 물은 점점 뜨거워지고있다.
여기서도 깨어나지 못한다면 냄비속의 개구리. 타이타닉의 신세가 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자살공화국에서  "헬 조선" 까지 추락한데는 해방이후 동족을 배신한 부역자들을 응징 못함으로인한 … See more
Doheum Lee shared a memory.
2 Marc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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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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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eum Lee
2 Marc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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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3.1절이었다. “오늘 수구반동의 세가 만만치 않으니 촛불집회 때 백기완 선생님 호위하라.”는 채원희 동지의 부름을 받고 백선생님을 모셨다. 청와대 행진 이후 세종문화회관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백기완 선생님께서 진지를 드시기 전 나보고 본무대에 올라 촛불의 진로에 대해 발언하였으면 한다고 하셨지만, 선생님이야말로 발언하셔야 할 분이시다. 한국에서 최고로 연설을 잘하시는 분은 단연 백기완 선생님이시다. 시냇물처럼 느리고 가늘게 속삭이다가는 갑자기 폭포수가 되어 내리꽂고는 하늘로 치솟아 천둥벼락이 되면서 참여한 청중을 휘어잡는 분이 그분이시다. 물론 최근에는 전성기만 못하셔서 가슴이 아프다. 선생님을 배웅한 후에 신학철화백님, 우문명 동지와 막걸리를 하고 11시경 헤어졌다. 어제 올리려던 글을 올린다.
"1945년 이후 2016년 지금까지 해방된 것은 영토만이 아닐까. 우리는 아직 식민지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식민성은 우리의 의식과 삶을 규정하고 있으며, 식민적 구조는 제도와 담론과 이데올로기와 아비투스로서 작용하고 있으며, 제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노예화하고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일제의 관료와 지주 등 친일 분자들을 독립국가의 지배층으로 존속시켰으며,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백선엽, 정일권, 박임항, 김동하 등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만주국을 모델로 하여,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본떠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고 국민교육헌장, 재건체조, 교련 등을 수용하는 등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을 만주국의 ‘짝퉁 병영국가’로 개조하였다. 박정희는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었고 그 딸 박근혜와 만주국의 총리 기시 노부스께의 외손자 아베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밀실야합을 추진하였다. 아직도 친일분자들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서 지배블록을 형성하면서 일본과 미국의 하청산업국가 구조를 유지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심화하고 한일군사협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대중은 지배층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독도영유권,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내면의 식민성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향가에서 탈춤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가 ‘정과 한을 대대적(待對的)으로 화쟁한 흥(興)과 신명의 아우름’의 심층구조를 이루고 있건만, 야나기 무네요시가 설정한 ‘한국문화=한(恨)의 문화’라는 도식은 김소월에서 임권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인과 지식인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으며, 외려 이들이 ‘한국적 작가’로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 시가의 기본 율조가 3.4조인데 반하여 와까(和歌)에서 하이쿠(俳句)에 이르기까지 일본 시가의 기본 율조가 7.5조인데, 7.5조로 노래한 김소월이 민족시인으로 둔갑하고, 지금도 수천만의 한국 대중들이 렌까(連歌)의 영향을 깊이 받은 뽕짝을 향유하고 있다. 
일본 제국은 미국 제국으로 대체되어 한국인의 내면에 식민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변방인 한국에서 중심으로서 내지(內地)인 “일본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세계체제(world system)의 역학과 한미관계에 따라 “미국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으로 바뀌었고, 일본어의 자리를 영어가 대체하였다. 한국의 주요 정책이 미국에 의해 결정되고 경제는 신식민지적 질서 속에 종속되어 있다. 책과 논문, 잡지, 소설,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 내재된 미국의 지식과 담론, 상징과 이미지가 대중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마저 지배하고 있다. 미국 유학파가 학문권력을 형성하여 대학과 연구소를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직접 장차관으로 나서거나 관료들과 유착하여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대한민국은 미국의 속국이다. 더구나 이 제국은 야만적이다. 제국은 반테러를 명분으로 세계 곳곳에서 인권유린, 고문, 시민의 사찰과 도청, 민간인 학살을 버젓이 자행하고 수십,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쟁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 잔재의 완전한 청산, 미국에 대한 종속 체제의 극복, 남북통일, 더 나아가 세계공화국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제국에 대한 저항으로서, 우리 안의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민족주의와 민족문학은 유효하다.”
- 졸고, <디지털시대에서 민족문학의 진로> 중에서
Doheum Lee
14 Sept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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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점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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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점 총정리
친일ㆍ독재 미화 교과서라 비판받는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총정리했다. 지난 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증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독재 정권 시기를 옹호했다는 비판과 미검증된 이야기를 교과서에 담았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에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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