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7

[요약+풀버전] 간토대지진 당시 한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나? (홍이표 교수,일본 山梨英和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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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풀버전] 간토대지진 당시 한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나? (홍이표 교수,일본 山梨英和大學)

후지자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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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views  Sep 27, 2023  #관동대지진
[요약+풀버전] 간토(관동)대지진과 한일 기독교 지식인의 인식과 대응 (홍이표 교수,일본 山梨英和大學)

#관동대지진 #관동대학살

※국내 최대 팟캐스트 '팟빵'에서 '한기톺' 시즌1~2의 모든 에피소트를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3184)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고, 알고 싶었지만 마땅히 알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한국 기독교의 역사! 괴짜 목사와 젊은 한국교회사학자가 만나 쉽고 재밌게 풀어보는 한국교회의 역사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의 선 자리를 선명하게 파악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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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0:00
23년이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9월 1일에 관동지역에 진도 7.9의
0:06
엄청난 강진이는 가오리 파괴되고 불이 나고 이런 걸로만 10만 명이 죽습니다
0:12
분노한 그 시민들이 정부를 향해서 분노의 화살을 쓰는게 두려운 거예요 정부는
0:19
각 지방에다가 그리고 언론에다가 지금 조선인들이 온 마을에 우물에다 독을 타고
0:24
다니면서 약탈을 하고 여자들만 보면 다 강간을 한다 그러니까 조선일만 보이면 조심해라 그리고
0:29
처음에 며칠 동안은 조선일 그렇게 어떻게 처분할지는 알아서 제가 이런 식으로 이제 점보를 쳐요 그러니까
0:34
그걸 받은 언론이나 막 경찰들은 또 그렇게 또 지침을 하니까 각 동네마다 자경단이라고 조직해서
0:41
죽창을 만들고 집에 있는 꼬챙이 다 가져와서 갈아 가지고 무기들을 만들어 가지고 조선인만 보이면 갖다 잡아
0:47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죽이는게 한 두 달간 이어집니다 학살에 의해서 죽은게
0:52
약 6천에서 8천명 동북 지방에서 서울에 상경해 가지고 돈 좀 벌겠다고
0:58
온 노동자들이 사투리가 너무 심하잖아요 발음이 이게 강도에서 쓰는 말을 말은 못하는게 있는 거야
1:05
그래 가지고 또 시코쿠에서 올라온 촌놈 애들 한 열몇 명 몇십 명이 막 몰살이 됐는가
1:11
동북지방에서 온 애들이 또 몰살이 되는 거야 이런 또 죽고 이런 사건이 또 있어요 근데 그게 다 뭐냐면 조선인이라고 생각하고
1:18
죽인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합쳐서 이제 또 대지진 조선인 중국인 학살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1:24
그걸로부터 지금 정확히 100년이 된 해가 올해 근데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1:30
한일양 정부는 노코멘트 구렁이 담는 뜻이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게 지금 현재이 시점입니다
1:35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지금 아주 이게 핫해요 지금 내가 일본의 16년째 왔는데
1:40
9월 1일이 되면 간도 지진 문제를 다루는 뉴스라든가 옛날 영상 보여주거나 이런게 거의
1:45
없었거든요 올해는 지금 뭐 아사히 테레비나 여러 nhk가 지금 정부가
1:51
사료 근거도 없다 뭐 이렇게 하는 말이 그거 정말 근거가 없다 사료가 이렇게 많지 않냐라는 거를 이제 막
1:57
옛날 유언비어 퍼트린정보통신문서라든가 이런 것들을 막 보기 위해서 보여주고 막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러면서
2:03
일본 국민들이죠 어우 좀 충격받고 있을 거야 와이프도 그렇더라고요 100년이다 보니까 일본 안에서는
2:10
조금 이렇게 성찰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렇게 학살이 있기 4년 전에 뭐가 있었죠 1919년 3일 운동이 있고
2:18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희생을 입었고 체포됐고 제암리교회 수촌리 교회가 학살을 당했고 그 이듬해
2:25
동호동 전투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일본군이 이제 독이 올라 가지고 어디로 갑니까 간도로 갑니다 간도
2:30
여기서의 간도는 북간도에 간도 거기 가서 제일 먼저
2:36
학살하던 장암동이라는 말 딱 기독교인들 밖에 안 사는 신앙촌이었어요 우리 뭐 만주 윤동주가
2:42
살았던 이런데 다 기독교 마을이잖아요 그런데가 집중 학살의 대상이 됩니다 일본 제국의
2:48
저항하는 조선민족에 대한 일본군과 당국의 분노 그리고 일본 국내 대중들한테까지도
2:55
아주 건방진 것들 조선놈들 손봐주겠어 이런게 응축이 돼 가는 거예요 한 3 4년
3:01
동안에 그것이 4년제 이렇게 천재지변하여서 제노사이드로 연결이 됐다 드라마 이민진씨의 소설 빠칭코 보면
3:08
각도 대지진 장면이 나오잖아요 여기 주인공하고 다 어떤 기독교인으로 나오잖아요 1919년
3:14
직후부터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가 일본의 이주를 합니다 갑자기 막 조선인도 소리가 늘어나는 거예요 일상 속에서 막 조선인들이 막
3:21
보여 근데 이것들이 막 몇 년 전에 막 우리한테 대들었대 마음에 안 들어 또 이제 지진이
3:27
나니까 막 조선인들만 갖다 잡아 죽이고 그러니까 그때 제일 처음 대응했던 분들로서 대표적인 분이 도쿄
3:34
조선인들이 모이는 YMC 거기에 총무를 하고 계시던 최성란 선생이라는
3:39
분이 엄청 오랫동안 남으면서 지금 우리가 6000명 희생자라고 하는 데이터를
3:44
다 정리하는데 가장 정성스러운 분이 YMCA 총무였던 분입니다이 부산
3:49
일신대학교 출신으로서 마산 의심 성경 교사도 일단 아주 열혈 청년 여성
3:57
정치인이죠 박순천 선생님 마침 간토지신 때
4:03
니혼 여자 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장소에서 우리는 어떤 수단으로든
4:10
일본의 복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연설을 그러니까 뭐
4:16
경찰이면서 이제 강제에서는
4:21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식인 유치원은 정확히 4년 전 3.1운동 때 조선민중이 불어난 운동을 부리는
4:28
것은 결코 이롭지 않다라고 아주 비난을 합니다 근데 4년 뒤에도이 조선인들이
4:35
도쿄에서 뭐 약탈을 한다 그대로 믿고는이 어리석은 조선인들이 조선이라는 고운 이름에 먹칠을 하며
4:41
그들은 미친 개들만도 못한 인간들이 막 부재 받을 여지가 전혀 없다 지난번에 다뤘던 본격의 창시자체
4:47
대용이 1923년 그 지진을 직접 경험을 하거든요 도쿄에서 있는데 기독교대학과 사전도 그렇고 그
4:54
이후에 나온 여러 백과사전에이 최태웅이 1923년에 일본에 보낸다는
5:00
책을 씁니다 근데 이게 이상하게 간도 대지진 조선의 역사를 보고 분노한 최태용이 일본인들에게 그
5:07
죄악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징벌을 경고하기 위해 일본에 보낸다는 책을 썼고 훈계하고
5:14
야단치고 나서 거기 귀국했다 이런 내용들이 엄청 많이 돌아다녀요 이게 보면은
5:19
웃긴게 일본에 보낸다는 책은 간도 지진이 나기 6개월 전에 출판이 됩니다 간도 지진 조선인 학살과는 아무
5:25
관계없는 구마모토 밴드의 대표적인 지도자 예빈아 단전은
5:31
신인 신진이란 잡지에 자경담 문제 이번 진지해서 드러난 일본 사회 이런
5:37
글에서 아주 신랄하게 조선이 낙설 문제를 비판합니다 이번에 빈민 구제와 협동조합의 아버지
5:43
가가와도 있고 조선인 학살 얘기를 듣고는 너무나 부끄럽다 이러면서 조선 imc에서 조선인
5:51
중국인 대한 죄악을 참여하는 기도 모임을 주최합니다 그때가 표시가
5:57
되면서 지금까지 매년 도쿄 한국 ymc에서 주도 행사를 이어가고
6:02
있어요 가시아계기엔이라는 목사님은 3.1운동 때도 조선민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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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히 지지하면서 일본 제국의 철수를 주장하고
6:13
한국 일본이 어디 조선인을 지배할 자격이 없다 이런 얘기죠 이분이
6:18
선견이란 말을 쓰면서 하늘이 우리를 지금 붙이고 있다 근데 그냥 막연한 얘기가 아니고 바로
6:25
뒤에 나오죠 이번 진제로 수많은 죄악이 자행된 것은 정말 슬프다
6:30
특히 약자를 참살한 국민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약자를
6:36
참살했다라는 것은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인에게는 화가 있을거다 이렇게
6:42
강력하게 여전히 학살이 작용되고 있던 10월 중순에 이런 글을 쓰시죠 가장
6:54
큰 희생자는 조선인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후에 그 YMCA 최승만은
6:59
6천명 이런 것들을 다 정리하면서 같이 협력했던 지식인입니다 희생자 다수는
7:05
우회한 양민이며 이런 학살은 얼굴조차 들 수 없는 대치역이다 아주 강력하게
7:10
학살을 비판합니다 스즈키 분지라는 분입니다 이분도 사실 기독교인이에요 기독교 사회주에서 일본
7:18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가장 앞장서 그리고 마지막 생애 마지막까지 교회 장로로서 열심히
7:23
헌신했던 분입니다 이런 학살이 생긴 거는 우리가 일본인이 정복자로서의
7:28
우울감을 그들에게 대해 왔던 것이 이런 사태로 빚어진 거고 조선인 부를 설치해서 우리는
7:34
특히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해서 더욱 조사를 해야 한다 철저하게 진상규명할 것이다 이렇게
7:40
적지로 대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박열이라는 영화에 보면은 탄핵 고민과 바귀를 마지막까지
7:46
변화하는 변호사가 나오죠 후세에다 쓰시라고 하는 유명한 변호사입니다 사실 기독교인으로서 그 수많은 이팔 독립선은 직후에 조선인
7:54
청년들 변호 라결 뭐 이런 모든 이런 사건들에 대한 변호 이런 것들이 다
8:00
기독교적 양심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후세가 중심이 돼 가지고 조선인
8:06
학살에 대한 진상 및 그 책임에 관한 그런을 발표를 합니다 여섯 개의 질문을 해요
8:12
죽임 당한 조선인의 수는 몇 천 명인가 정부를 향해 공식 소환을 보냅니다 원인은 뭔가 누가 죽였는가 군인인가
8:19
경찰인가 작용가인 사례 방법은 뭔가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했는가 등등 이거에 대해서 당시 정부도 답변을
8:26
거부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존재하지 않아요이
8:32
문제에 대해서 희생당사자인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대해서이 후세에 다치지 변호사가 던진
8:37
질문을 다시 한번 일본 정부를 향해 던진 사례가 없습니다 [음악]
8:59
한국 기독교사 토파북이 우리 홍반장을 모시다 세미남편 여러분 보내드리도록
9:06
하겠습니다 자 오늘 주제와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번 우리
9:13
홍 박사님이 정리해주고 세미나 짧게 듣고 그 다음에 질문과
9:18
각종 토론 그리고 사정없는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그 하는
9:25
강의는 그 지난 며칠이죠 9월
9:31
9월 2일 9월 2일에 있었던 한국기독교 역사학회
9:38
[음악]
9:50
[음악]
10:18
사회적 동료가 극심해서 조선인이라는 학살이 약 6천에서
10:24
8000명 정도 관동지역 간토지역에서 자행이
10:30
됐습니다이 역사에 대해서 이번에 현 정부 일본 기타 정부와 윤소민을 대한민국 정부가
10:37
어느 쪽도 여기에 대해서 지금
10:42
입장표명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근거가 확인이 안 된다 이딴 소리를 했는데 이번에
10:49
한국에서 그래도 기독교 역사 분야에서도 다루게 돼서 그나마
10:56
다행이 가능성이 듭니다 오늘 그때 시간 관계상 소략해서 간단하게 발표했던 내용을 오늘 우리 한계톱을
11:03
통해서 조금 더 정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11
정밀하게 하니 시간에 맞게 1시간짜리 세미나라는
11:22
30분밖에 못했어요 와 진짜요 [웃음]
11:29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꾸 정비는 됐고 크게 크게 갑시다 왜냐면 당신들만
11:35
알면 안 된단 말이야 오늘도 빨리빨리 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자
11:45
그러면 우리 한일기독교 지식인의 간토대지진 인식과 대응
11:50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까 우리 홍두깨
11:55
박사가 소개한 것처럼 올해는 정말 중요한 해인데 한일 양국 정부는 지금
12:00
완전히이 문제는 그냥 아몰랑입니다 아몰랑 그래가지고 전혀
12:06
이른바 정부 공식 전에 언급이 없고 지금 당사자인 도쿄도가
12:13
70년대부터 매년 추도 행사에 추모문을 도쿄 도지사로 보내왔는데
12:18
현재 지사인 코이케라고 하는 여성 지사가 2017년부터 지금 그 주도문 보내는
12:26
걸 거부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거는 근거가 없는 사실이다 이래가지고
12:31
역사 수정주의적인 입장을 보내면서 지금이 문제가 더욱더 지금 은폐와
12:39
외면의 역사를 지금 가는데 한국이 제가 뭐 화면이 안 바뀌지
12:46
한국 개신교를 비롯해서 종교개가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지금
12:52
무관심이에요 근데 반대로 일본에서는 지금
12:57
기독교 뭐 불교 그리고 여러 다양한 종교들이 지금 올해 아주 지금
13:04
현재 9월 현재 지금 아주 핫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이 화면만 지금 보셔도
13:09
알지만이 결국 천재로 인한 사망도 상당히 심각한
13:16
죽음의 문제를 다루지만 또 박살로 인한 인재에 이런 죽음도
13:21
에드와 추도 죄의 용서 여러 가지 이런 개념들을 생각할 때이 종교가이 문제를
13:30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일본은 이렇게 지금 꽤 많은 행사도 있고 추도 행사도 있고 공부해도 있고
13:36
그런데 한국은 지금 너무 관심하다 이런 거를 좀 한번 지적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걸 예를 들면
13:43
ncck에 해당되는 nccj 작년부터
13:50
인권문화세미나라고 해가지고 10월 달에 제3회 학습회를 기울고 있죠
13:56
올해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감동 대지진 학살로부터 100년을
14:03
지나서라는 주제로 학습해를 계속 하면서 지금 8월 달에 벌써 4회를 하고 있다
14:10
이게 그 NCC 중앙이 계속 2년 연속으로 계속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14:16
노래가 봐야 되는데 그거하고 비교할 때는 어떤가 생각해 봐야 되고 최근에
14:21
이제 소위 복음파라고 불리는 아주 보수적인 그룹도 뭐였어요
14:27
2013년 8월에 나가는 쪽에서 모여서이
14:32
간도 지진 때 일본 기독교회가 어땠나 이거를 좀 살펴보자는 모임이 있었고 그때이 보도가 보면 교회는 무관심했고
14:40
방관자는 결국 가담자가 되었다는 지금이 결론을 내리는 행사가 최근에 지금
14:46
보수적인 그룹의 수도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각종 행사가 있고
14:53
며칠 전이죠 일본 성공에도 전체 교단 차원에서 조선인 중국인 희생자를 위한
14:59
추도 예배를 교단체원에서 드렸고요 제일제한 기독교에도
15:05
9월 3일에 이렇게 교단체원의 곧 있을 예정이에요 9월 30일에
15:11
일본 기독교단 교토교구에서도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서 생각하다라는 또
15:17
학습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너무 많아 가지고 제가 다 모을 수 없을 정도예요 그리고 뭐 전체의
15:24
종합 아주 여러 시민들은 제가 연합해서 하는 것도 너무 많고 이거는 이제
15:30
도쿄 시내에 있는 고려박물관이라는 곳에 있어서 작년부터 이렇게 학습회를 여는가 하면은
15:36
지난 8월 30일에는 아주 거대한 행사가 추도 대회가 열렸죠 최근에 지금
15:42
윤미향 의원이 뭐 어디 요구아미초 공원이라는데 갔는데 저
15:47
청년이 뭐 개최하는 거에 뭐 참석했다고 지금 또 색깔론 가지고 난리를 치는데 저 청년만 개최한게
15:53
아니고 여러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들이 같이 연합해서 온 거예요 그런데 그건 우리
16:01
시청자들이 간토 대지진 뭐요 얘기가 뭔지 모를 수가 있거든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잠깐만 얘기해
16:07
주시고 그 다음에 홍승표 좀 얘기를 해서이 23년이죠 지금으로부터
16:14
정확히 100년 전 9월 1일에 진도 7.9의 엄청난 강진이
16:20
일어납니다 몇만
16:25
명 돌아가셨죠 간도라는 거는 도쿄 요코하마 사이타마 이런 치바
16:33
이런 지역을 묶어 가지고 영남지방에
16:39
관동 관동이라고 지금 내가 있는 나고야 쪽이 중부라고
16:44
하는데 거기에 3000m급 그걸 관이라고 해서 그 중부가 알프스
16:52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이 관동을 건설하고 불러요
16:59
관동지역의 100년 전 9월 1일에 엄청난 지진이 나서 그 가옥이
17:05
파괴되고 불이 나고 이런 걸로만 10만명이 죽습니다
17:10
갑자기 막 엄청난 혼란이 되는 거죠 근데이 일본 정부가 막
17:16
양장을 하면서 자기들한테 혹시 수습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어요 자기들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17:22
근데이 분노한 그 시민들이 정부를 향해서 이제 분노의 화살을
17:28
쏘는게 두려운 거야 집을 다 잃고 막 죽고 이러는데
17:33
나라에서는 전혀 도와주고 제대로 안 해주고 오케이 오케이 그런 뭐 그
17:38
분노가 정부를 향하게 될 때 너무 두려운 거야 정부 놈들이
17:46
각 지방에다가 그리고 언론에다가 지금 조선인들이 다니면서
17:52
온 마을에 우물에다 독을 타고 다닌다 그리고 다니면서 약탈을 하고 여자들만 보이면 다 강간을 한다
17:57
그러니까 조선인만 보이면 조심해라 그리고 처음에 며칠 동안은 뭐 그 조선일
18:03
그렇게 어떻게 처분할지는 알아서 제가 이런 식으로 이제 정보를 쳐요 정보를 그러니까 그걸 받은
18:09
언론이나 막 경찰들은 또 그렇게 또 지침을 하니까 각 동네마다 이제 자경단이라고 하는
18:15
남자애들이 청년들이 조직해서
18:21
죽창을 만들고 집에 있는 고층이 다 가져와서 갈아 가지고 이제 막 무기들을 만들어 가지고 이제
18:28
마을을 지킨답시고 이렇게 모여 가지고는 조선인만 보이면 갖다 잡아 주시는 거예요
18:35
그렇게 해서 죽이는게 한 두 달간 이어집니다 그게 이제 간도 대질이라고 하는 천재지변에
18:42
의해서 죽은게 10만명 천재지변 이후에 혼란 상황 속에서 두 달 동안
18:48
학살에 의해서 죽은게 약 6천에서 8000명 그걸 갖다가 간도 대지진 조선인 중국인 학살이라고
18:54
합니다 근데 거의 대부분도 조선인으로 같이 취급되가지고
19:05
아주 일부 평소에 일본 당국이 좀 저것들 좀 없앴으면 좋겠다고 싶어
19:11
하던 빨갱이 될 수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들하고 사회주의자들을 또 그때 많이 죽입니다
19:17
그리고 시코쿠라도가 동북 지방에서
19:22
서울에 상경을 해가지고 돈 좀 벌겠다고 온 노동자들이 사투리가 너무 심하잖아요
19:29
발음이 이게 강도에서 쓰는 말을 발음 못하는게 있는 거야 그래 가지고 또 시코쿠에서 올라온
19:35
촌놈 애들 한 열몇 명 몇십 명이 막 몰살이 되든가 동북지방에서 온 애들이 또 몰살이
19:41
되든 뭐 이런 또 죽고 이런 사건이 또 있어요 그러니까 근데 그게 다 뭐냐면 조선인이라고
19:47
생각하고 사실 그런 것들을 다 지쳐서 이제 또
19:52
대지진 조선인 중국인 학살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걸로부터
19:58
지금 정확히 100년이 된 해가 올해 근데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한일
20:03
정부는 노코멘트 구렁이 담는 뜻이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게 지금 현재이 시점입니다
20:11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지금 아주 이게 핫해요 지금 내가 일본의 16년째 왔는데
20:17
9월 1일이 되면 강도 지진 문제를 다루는 뉴스라든가 옛날 영상 보여주거나 이런게 거의
20:22
없었거든요 올해는 지금 뭐 아사이테레비나 여러 nhk가 아주
20:27
내가 보기에는 처음 보는 현상 와이프가 막
20:32
스마트폰을 찍어서 보내주더라고요 한국에 내가가 있을 때 지금 계속 아사히 텔레비가 뭐 지금
20:38
정부가 사료 근거도 없다 뭐 이렇게 하는 말이 그거야말로 근거가 없다 사료가 이렇게
20:45
많지 않냐라는 거를 이제 막 옛날 유언비어 퍼트린 정부 봉시 문서라든가 이런 것들을 막 보여주고
20:52
막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러면서 일본 국민들이죠 좀 충격받고 있을 거야
20:58
와이프도 그렇더라고요 그런 정도로 100년이다 보니까 일본 안에서는
21:04
조금 이렇게 성찰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렇게 그리고 특히 일본 기독교기에는 아까도 보여준
21:10
것처럼 많은 행사가 지금 있는 와중이에요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어떻냐
21:19
지난 6월에 이제 ncck는 cck 전체 행사로서 한번 좀 이런
21:25
걸 기념해야 되지 않냐 했을 때 최근에 NCC 어떻습니까 막 지금 자중 질환이잖아요
21:35
너무 위원회라고 하는 소위원회가 소위원회 차원에서 이렇게
21:42
행사를 한게 전부예요 acc 그리고 여기 보면 둘 넷 6
21:48
12번이어서 그냥 하고 끝난 거예요 가운데 앉아 있는 분은 ncck 현재 총무이신 제일코리안 출신의 김성재
21:55
목사님 손님 빼면 10명밖에 안 돼 이거 까만색
22:02
기장 목사님이시고 김종수 목사님이 오른쪽에 계신 분 오른쪽에 하얀 옷이 이제 제일 코리안
22:12
제자들도 아니고 열도 그러니까 딱 예수님
22:23
그리고 이게 또 얘 몇 년 전부터 계속 이렇게 일에
22:29
제일 유일하게 기독교계에서 관심 갖는 분이 아까 까만 옷 입고서 있던 분 김정수 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22:37
옛날 유명한 우리 한국 시각연구소라고 있잖아요 아우내 천안에
22:42
신학생 많이 내던 그 건물이 지금은 이제 여기 보시면 아우내 도서관 뭐 또 여기 1923
23:24
그 와중에 이제 한국 기독교 역사학회가 이만열 변호사님 등이 이제 중심이 되어서
23:29
만든 세무서가 유일하게 서울에서는 강도 돼지신과 조선인 학살 문제를
23:35
정북 단위의 이제 심포지엄으로서 개최를 했다 이렇게
23:41
보고를 드릴 수 있고 궁금하긴 하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냥 저 우리
23:48
돌아가신 분들을 기념하는 차원에서의 기독교적 관심이랑
23:55
정말 기독교가 여기 뭔가 관심이 그 당시 관심이 아니라 관련이 있어 가지고
24:00
돌아봐야 되는지 거기에 관해서는 좀 구별을 해야 되지 않을까 저는 생각을 하는 거죠
24:08
기독교 사적 사건인가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고요 또 하나의 관심은이
24:14
사건이 있음으로 인해서 한국과 일본의 양국 기독교가 어떻게 바뀌었나
24:19
어떤 영향을 받았나 이런 관심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3.1운동도 사실은 거적적인 사건이고
24:25
기독교만의 사건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3.1운동과 기독교를 다루는 건 3일운동이 기독교가 엄청 참여한 것도
24:32
있지만 지분이 있잖아 그거를 우리가 없다 하더라도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24:39
이런 관심도 가질 수 있고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 이런
24:44
충격적인 사건이 기독교하고 직접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그거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는 어떻게
24:50
인식하고 어떤 태도를 가졌나는 또 하나의 역사적 규명제 대상이 되는 그런 면에서 중요한 하나의 주제인데
24:57
지금까지 간도 대지진 관련한 한국 기독교계에서
25:02
나온 논문이 한국에서 빵편입니다 한편도 없어요
25:08
그게 이제 약간 이번에 좀 새로 알게 된 충격이고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좀
25:14
여러 관심이 있어서 좀 다뤘던 것이 있어요 그래서 물론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고 일본
25:19
기독교 개가 좀 침묵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이런 것도 일본 기독교기는
25:25
있죠 그래서 이제 그런 것도 있지만 한국 기독교인이 너무 무관심했다 그 얘기는 우리 저기 박사님들 잘 또
25:32
들어보세요 이거 쓰기만 하면 한 군데 최고 전문가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사실 이거 전문가
25:38
아닌데 이번에 와서 이거 발표했더니 벌써 이렇게 보도가 된 거야
25:51
자신이 없는 분야하고 뭐 근데 의뢰가 왔으니까 정리한 것뿐인데 지금 내가
25:56
거의 처음 정리해서 발표하다 보니까 내가이 분야에 지금 뭐 거의 뭐 이렇게 최초의
26:04
원래 전문가였던 것처럼 이렇게 생각될까 그냥 하는 것들 열심히 잘 해봐요
26:19
그래서 이런 상황이다 그래서 근데 뒤에 이제 나오겠지만이 사건이
26:25
결코 기독교와 무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없어요 왜냐하면
26:30
그이 학살이 있기 4년 전에 뭐가 있었죠 1919년 3일은
26:38
기독교가 중심이 됐고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희생을 입었고 체포됐고 제암리교회 수천리교회가 학살을 당했고
26:47
그 이듬해 그 아까 얘기했던 봉오동 전투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일본군이
26:52
이제 독이 올라 가지고 어디로 갑니까 간도로 갑니다 간도 여기서의 간도는 북간도에 간도 거기에 가서 제일 먼저
27:01
학살하던 장암동이라는 마을 딱 기독교인들 밖에 안 사는 신앙촌이었어요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27:07
우리 뭐 만주 윤동주가 살았던 이런데 딱 기독교 마을이잖아요 그런데가 집중
27:13
학살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어떤 한국 일본 제국의 저항하는
27:20
한국 및 조선민족에 대한 일본의 엄청난 그 일본군과
27:26
당국의 분노 그리고 아주 맛 좀 보여줘야겠어 이런 상황이 일본
27:33
국내 대중들한테까지도 그 한국에서 이것들이 우리한테 막 들이대네
27:40
아주 건방진 것들 조선놈들한테 손봐줘야겠어 이런 응축이 돼 가는 거예요 한 3 4년
27:45
동안에 그것이 4년제 이렇게 비상사태 하에서 천재지변하에서
27:53
제노사이드로 연결이 됐다 이렇게 볼 때 그 앞에 그 기독교적인 기독교인이
27:58
주로 생장했던 사건 그리고 저항의 전면에 기독교인이 섰던 사건 그리고 우리 올해 그
28:06
애플 tv에서 나온 드라마 이민진 씨의 소설 빡친 거 보면
28:11
각도 대지진 장면이 나오잖아요 여기 주인공하고 다 어떤 기독교인으로
28:17
나오잖아요 저기에 1920년을 전후로 1919년
28:23
직후부터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가 일본의 이주를 합니다 갑자기만 조선인도 소리가 늘어나는
28:28
거예요 1920년부터 21년 22년
28:33
조선인들이 막 보여 근데 이것들이 뭐 몇 년 전에 막 우리한테 대들었대
28:39
마음에 안 들어 근데 다 보니까 그 보세요 애플 테레비전도 보면 기독교인들이
28:44
다수 넘어와요 그래가지고 오사카 교회라든가 초기에 교회들도 다
28:50
기독교인들이 많았어요 이제 그런 것들이 아주 그 일본인들이 볼 때는
28:56
어디서 났고 마음에 안 들고 이랬던 것이 있지 않았나 싶고 그런 면에서 우리가 더 바칠 것이 많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29:03
바로
29:12
들어오세요 눈치 보지 말고 아니 끊어주세요 자
29:18
갑시다 아 이제 서론이에요 나 끝난 줄 알았네
29:25
천재로 인한 희생자는 사망자는 10만명 약사를이라고 하는 인재로 인한 희생자
29:30
6천 내에서 8천명이 안에는이 천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
29:35
재앙이냐 천벌이냐 종말이냐 심판이냐
29:41
인간이 죄로 인한 거냐 이런 여러 가지가 우리가 늘 논의하잖아요 이건 상당히 종교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천재
29:47
근데 그것도 그로 인해서 발생한 인재로서의 학살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고 증오하고
30:20
[음악]
30:49
등등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그 간도 지진 직후에 남긴 글들이 다이 안에
30:55
원문 그대로 이건 0인 집이에요 나 같은 사람 공부하기 쉽게 다 모아
31:02
놓으셨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내가 이거를 가지고 아주 이렇게 효과적으로요 안에 있는
31:07
기독교인만 쫙 봐도 너무 많아요 이분이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주의자
31:14
같은 분이 오히려 더이 억울하게 죽임 당한 임명에 대해서 안타까우면서이 평생을
31:21
바친 연구를 했다 광고과 세력이잖아요 사회주의자 그래서 이런 선행연구
31:29
덕에 내가 이번에 그래도 짧은 시간에 연구를 할 수 있었고요 또 뭐 여러가지 자료집도 일본에 많이 나와
31:34
있어요 그리고 교토대 명예교수가 정리한
31:41
민본주의자 제국주의라는 책에도 아주 군경 일제 당국의 죄
31:47
책임 이런 걸 아주 처음으로 꼬집은 책이고요 또 한일
31:52
기독교 관계사 자료집이란게 있어요 지명당 선생님이라고 박정희 정권 때 이렇게
31:58
망명하셨던 분이 중심이 자료집에도 여러
32:03
기독교 관련 자료들이 있어서 제가 이번에 이런 자료들을 다 이제 모아서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
32:10
금병도 선생님이이 정리한 자료 안에서 주로이 일본을 대표하는네 명의
32:16
기독교인들을 이렇게 웃지무라 간조 외무라 마사회사 다시 하기엔
32:24
4명에 대해서 2011년에 일본 크리스찬 아카데미라는 것이
32:31
심포점을 뭐 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32:37
분야 교파별로 저명한 이제 교회에서
32:44
목사님들도 있고 그래요
32:53
간단히 한 명 한 명 누군지 얘기해 줘요 이제
32:58
홋카이도의 삿포로 밴드라고 하는 것을 대표하는 기독교의 초기 기독교인인데
33:05
한국에는 이제 김교신 선생 함석헌 선생 [음악]
33:10
송두영 선생 같은 분들을 길러낸 그리고 복음교회 얼마 전에
33:16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교회주의라는 어떤 서양 제도 교회로부터
33:22
자주적으로 우리 동양의 우리만의 복음에 기초한 교회를 세우자라는 운동을 벌인 분인데 이때 외무라
33:30
마사회의 사람들은 요코하마 밴드라고 해서 장로교나 개혁파 교회가 중심이 돼서
33:35
이렇게 처음 선교를 시작한 요코하마 지역을 대표하는 일본 기독교인이에요 그래서
33:42
한국으로 치면 이제 길선주 같은 분 가시아 기기엔이란 분은 아까 이제
33:49
큐슈에서 전학을 많이 왔다 그랬죠 구마모토 밴드에 제자인데
33:54
이분은 도시사 쪽 조합교회 회중교회 쪽 분이에요 근데 이분은
34:01
아주 그 안에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냈던 분으로 유명하고요
34:06
맨 마지막 가가 도일 거라는 사람은 예전에도 한번 다뤘잖아요
34:11
장로교 쪽 분위기는 하지만은 빈민 운동에 아주 투신해 가지고
34:16
한국에도 둘의 김진호 목사라든가
34:23
투신했던 분들은 다 가가와도의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보시면 될 정도로 한국에 대응을 많이 미친
34:28
분입니다이네 분이 이번 2011년에 일본에서도
34:34
간도 지진 때 어떤 태도를 취했나 고찰이 됐는데 내가 보기엔 좀
34:40
애매해요 애매한 어떤 연구가 더 여기서 더 심화가 안 된
34:46
상태로 지금 정체 구면이 있다 연구들이 많이 있어요
34:52
근데 요거는 이제 참고하시고 지진이 나니까 막 조선인들만 갖다
34:58
잡아 죽이고 그러니까 그때 제일 처음 이제 대응했던 분들로서 대표적인 분이
35:05
도쿄 조선 YMC 조선인들이 모이는 YMC 여기서 3일은
35:14
도쿄에 있던 한국 YMCA 거기에 총무를 하고 계시던 최승만 선생이라는 분이
35:22
엄청난 실태조 스타를 하면서 목숨 걸고 여기저기 위문반이라는 걸 조직해가지고
35:28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당시 도쿄 교회 교포들이 다니던
35:34
도쿄 교회의 파견되었던 분이 감리교회 오기선 목사였어요
35:40
그래서 이제 그 이분이 또 어떻게 대응했나요
35:50
아직도 정리가 안된 11월 달에 가족들 데리고
35:55
인천으로 피신을 와 있더라 아직도 그게 정리가 안 됐는데
36:02
도쿄교회 주님 목사가
36:17
너무 그때 그 학살 영어를 경험하면서 드라마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나왔다가
36:23
도망갔을 거예요 이제 배를 구해 가지고
36:30
온 가족이 이제 피신을 온게 있는데이 최승만 선생 같은 경우는
36:35
엄청 오랫동안 남으면서 지금 우리가 6000명 희생자라고 하는 데이터를 다 정리하는데 가장 앞장서는 분이
36:42
YMCA 총무였던 분입니다 그러니까이 일본에서의 희생자 문제를
36:48
뒷수습하는 것도 기독교 지도자가 애를 썼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36:54
그래서 이런 것들은 이제 앞으로 더 가르쳐서 정리해야 될 과제인데 저는 이제
37:01
의뢰받은 주제가이 지진 문제 그리고 그의 학살 문제 두 가지가 있죠
37:08
천재와 인재이 두 죽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37:15
기독교인입니다 한일 양국의 기독교인의 인식 및 태도라는 거죠 대부분 기본적으로는
37:22
이제 엘리트 지식인들을 주로 [음악] 하고 있어요
37:29
그래서 그 유형을 나누기 위해서 일본 당국이나 이렇게 그
37:36
퍼뜨렸던 유언비어 조선인이 폭동을 한다 뭐 약탈을 한다 강가를 한다 독을 퍼트린다 이런 거를
37:42
적극적으로 믿었느냐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자경단 활동 같은데
37:49
적극적으로 참여했느냐 이런 것들을 지수로 기준으로 해서 적극적 긍정형이라고
37:55
일단 나눠보고 좀 조선의 문제는 얘기를 하지만
38:00
관심도 없어 침묵하고 방관하고 정부가 하는 대로 그냥 대세 수능으로
38:06
따라가는 사람들을 소극적 긍정형이라고 나눠봤어요 이쪽은 다 좀 우리가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좀
38:13
실망스러운 입장이 아닐 수 없죠 세 번째로 이제 소극적 부정령이라고 해서
38:19
혼란 속에서 이제 수습하고 구원활동 열심히 하지만 조선인 학살까지는 그렇게 집중을 하네 하지만 이제
38:26
나중에 그래도 최선의 양심은 가진 사람들은 이제 소극적 부정형
38:31
근데 누구보다이 조선인 학살을 분노하고 앞장서서 이게 말이 되냐고
38:36
이제 시장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거나 정부를 비판했던
38:43
입장에서 어떤 기독교인들을 적극적 부정형 나눠 가지고 한번 볼 수 있지 않을까
38:49
합니다 우리가 볼 때 가장
38:54
실망스러운 사람들이겠죠이 사람들이 이제 당시 보세가 만약에 죽창으로 이렇게
38:59
경찰하고 자경단이 같이 찔러주긴 조선인들 시체 위에서 이렇게 있는 장면입니다 이게 사람들이
39:07
기독교인이라는 거지 조선인은 아니죠 [음악]
39:17
그 안에는 이제 여러 사람이 있겠죠 근데 그거에 대해서 제가 이제
39:24
구체적으로 소개를 할 건데이 사람은 뭐 도시자의 니지만 제례 받은
39:30
기독교인인데 도톰이 소홀하고 대표적인 구마모토 밴드의 멤버입니다 처음에는 약간
39:36
평민주의라는 걸 추천하면서 국권주의로 민중을 대변하듯이 활동하다가 이후에
39:44
국권주의로 전향하면서 국가주의자가 됩니다 그래서 가짜라타로
39:49
우리 유명하죠 전후에는
39:55
a급 점검 용의자로까지 지목되어서 이렇게
40:00
용의자가 되는 공직에서 추방되는 사람인데 정확히 지진이 나던 상황에서이 사람이
40:07
시즈오카 해변에서 자기 책을 쓰고 있었어
40:13
근데 쓰나미가 몰려 난리가 났는데도이 사람은 자기 안전한 자기 집에서
40:18
책 쓰는데만 몰두했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이 사람이 이제
40:24
돌아오면서 이런 말을 해요 이제 시조가에서 도쿄로 들어오는 길에
40:29
여러 차례 작용들한테 일본말 해봐 발음 체크박 당하고 조선인 아니냐 이런 오해를 받아요
40:37
그래가지고 무서운 것은 조선인이 아니라 우리가 조선인으로 오해당해
40:44
잘못된지도 모르는 그런 것이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인이 죽거나 희생당하는 거는
40:52
별로 관심이 없는데 조선인으로 오해당해 잘못 희생되는 일본인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40:58
상당히 염려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금병돈 선생님은 이제
41:03
독점이 역사 인식뿐만 아니라 인간성에까지
41:09
의문을 포기한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 시죠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식인 유치원은 정확히 4년 전 3일 운동
41:18
때 [음악] 조선민중이 불어난 운동을 부리는 건
41:24
결코 이롭지 않다라고 아주 비난을 합니다 근데 4년 뒤에도이 조선인들이
41:32
도쿄에서 뭐 약탈을 한다 그대로 믿고는 이 어리석은 조선인들이 조선이라는
41:39
고운 이름에 먹칠을 하며 그들은 미친 개들만도 못한 인간들이 막 부재 받을 여지가 전혀 없다 이런 말을 하죠
41:45
그래서 상당히 아주 조선인의 입장보다는 오히려 일본 당국의 입장
41:53
족저로 신뢰하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한국 일본 양국의 대표적인
42:00
기독교 지식인 사상가들의 태도였다 엘리트 기득권 주류들이 가지는
42:07
태도였다 두 번째로 소극적 소극적
42:15
긍정형이라고 해서 좀 그렇게 적극적으로 조선인을 막 비난하거나
42:21
그러진 않지만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메시지나 이렇게 얘기하면서
42:28
침묵하고 대세에 이렇게 수능하는 그리고 참혹한 학살 현실을 외면하거나
42:33
방조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아까도 나왔는데 요가마 밴드의 대표적인 정통주의 신학자
42:41
의무라 또 뭐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나기 위한 이번에 사건이다
42:50
우리 지금의 기독교 그런 느낌이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42:57
기독교와 세월호도 그랬지만 이태원에서 일어난
43:02
천사에 대해서 지금 막 단순한 교통사고인데 뭐 그리고 걔네들 놀러 다니다가 지들이 뭐 이런
43:08
식의 아주 외면하고 싶어하는 태도 이런게 아닌가 싶고요
43:14
그래서 이거를 또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 위한 기회를 삼아야 한다 그러면서이 설교에서
43:21
갈릴리에서 예수가 태어날 때가 학살 그런 거에 대해서는
43:26
얘기를 하면서 당시 자행되고 있던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는 이런 방법을 합니다
43:31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말밖에 그렇잖아요 조선인 학살이라고 하는
43:37
눈앞에 자명한 일본인들의 일어나는 죄악의 문제는 회피하는
43:43
태도를 보이죠 그리고 일본 구세군의 지도자였던 야마모로 구분 별 한 사람도 마찬가지
43:51
그냥 이걸 통해서 우리는 적나라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43:59
인간이 지닌 존엄성과 강인함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면서 막연한 얘기만
44:05
놓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표적인
44:10
지도자 예빈아 단전은 당시 도시사 교토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 체험은 안 했습니다만은 예비나가 만든
44:17
잡지 신인 신진이란 잡지에 그 당시 에비나의 제자들이
44:23
아주 사회주의자였던 많고 그랬어요 그래가지고 자경담 문제 이번 진재에서
44:30
드러난 일본사회 이런 그래서 아주 신랄하게 조선이 낙설 문제를
44:35
비판합니다 자기가 만든 적지에서 그러니까 그걸 알아요 알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년
44:42
지진 이후에는 자신의 신앙의 생애 자서전이라는 그 어떤
44:49
자기 회고록 연재만 쭉 이어가면서 조선인 학살 문제는 이런 방구 안 합니다
44:57
이것이 이제 일본의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의 어떤 이런 모습
45:03
실망스러운 모습인데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 아닙니다 세
45:08
번째 유형으로써 소극적 부정형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어려운 겪는 사람들을 구원하면서도
45:16
조선인 학살까지는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이후에
45:23
참회와 위로를 통해서 최선의 양심을 보인 기독교인들이라 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가가와도 했고 이번에
45:32
빈민 구제와 협동조합의 아버지 아요 분도 소극적이네
45:38
조금 적성이 좀 떨어진 것은 좀 의외인데 너무이 사람은 자기가 원래 하던 일 빈민 구제
45:45
재해민 복구 활동 이런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까 그것까지 좀 신경 못 쓰는
45:50
것도 있지 않나 생각은 들어요 근데 이분은 앞에 사람들이 천견론이라고 해서 그냥 모든 걸
45:57
신에게 신의 뜻이다 신의 섭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아주 신을 원망합니다
46:04
그러면서 하지만 나는 무신론자가 될 수 없기에 당신에게이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힘을
46:11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음악] 앞에 사람들하고는 또 다른
46:17
차원의 신에게 아주 책임을 추궁하고 원망하면서도 신에게 유지하는
46:23
속죄적 신종론의 욥과 예레미야 같은 한탄과 연민을
46:29
지닌 태도였다라고 분석을 하고 있죠 이 사람이 이제 주로 비판하는
46:34
정부담금을 비판해요 근데 아주 그 제 이재민들을 아주 쓰레기 취급하면서 또 난민
46:42
빈민 굴로 만들라고 아주 도쿄 공무원들이 아주 야망적으로 대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46:48
[음악] 도쿄시의 아주
46:54
피난민들 학대하고 있다 이러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런 속죄의적인 연민을 보였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47:01
그래서 그 앞에 분들하고는 전혀 다른 현장을 그리고 지키는 모습인데 부당한
47:07
당국의 어떤 조치에 대한 저항 주체적 시민운동의 창출 이런 것들을 다가오는 보였죠이 강화가 1년 동안은 좀
47:15
정신이 없어 가지고 거기에 집중하다가 1년 지난 1024년 9월에
47:21
고작 기록 잊지 않게 조선인 학살 얘기를 듣고는 너무나 부끄럽다 이러면서 조선
47:27
ymc의 아까 소개했던 조선 imc에서 조선인 중국인
47:33
죄악 학살에 대한 죄악을 참여하는 기도 모임을 주최합니다 그때가
47:38
휴식하는 것은 지금까지 매년 도쿄 한국 imc에서이 추도 행사를
47:45
이어가고 있어요 이런 모습은 이제 앞에 두 유형에서는
47:51
볼 수 없었던 가가도 있고가 보인 최소한의 어떤 양심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47:58
그리고 폭력의 무능이란 말을 통해서
48:05
자경단이라는 걸 지목하진 않아도 그런 것들을 이제 좀 비판하는
48:10
글도 좀 썼구요 또한 언론인이었던 다가와 나이키치로라는 사람인데이 사람 또
48:18
적극적이진 않지만 아 이거 언론조사기 있고 좀 이상한데 그리고
48:23
문제가 많아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당시 자경단의 학살이 만연하는 상황에
48:29
대해서 좀 조정을 해보려고 애를 썼죠 저는 이제 나중에
48:37
메이지 학원 대학 이제 총장까지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이제 좀
48:44
재밌는게 있어요 지난번에 다뤘던 복음교회 창시자체 대용이 이게
48:50
1923년 그 지진을 직접 경험을 하거든요 도쿄에서 근데
48:55
기독교대학과 사전도 그렇고 그 이후에 나온 여러 백과사전에이 제태용이
49:01
1923년에 일본에 보낸다는 책을 씁니다
49:08
근데 이게 이상하게 간도 대지진 조선의 역사를 보고
49:13
분노한 최태용이 그 일본인들에게 그 죄악을 비판하고
49:19
하나님의 징벌을 경고하기 위해 일본에 보낸다는 책을 썼고 훈계하고
49:25
야단치고 나서 한국에 귀국했다 이런 내용들이 엄청 많이 돌아다녀요
49:31
이게 보면 웃긴게 일본에 보낸다는 책은 간도 지진이 나기 6개월 전에
49:36
출판이 됩니다 간도 지진 조선이나 살아가는 아무 관계없는
49:43
근데 1983년에 그 전병호 목사님이랑 사상이라는
49:52
책을 쓰면서 좀 약간 소설을 쓰신 것 같아
49:57
일본에 보낸다는 책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저는 23년에 나왔네
50:03
그러니까 이거는
50:11
뇌피셜로 그렇게 막 쓴 거예요 거기다가 1년 동안 막 그걸
50:16
근데 그러다 보면 주차 맞아 죽죠 근데도 딱 한번 써지니까 그 2년 뒤에 나온
50:23
기독교 대백과사전에 그 내용이 그대로 이렇게 실려요 그리고 또
50:29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백과사전 또 고대로
50:34
강력한 나라 아닙니까 최태용 목사는 물론 겪었지만
50:40
그 학살을 비판하거나 경고하는 활동을 전혀 안 했는데 엄청난 영웅이
50:47
제가 이번 기회에 좀 바로 잡았고요 물론 이분이 뭐 그거에도 분노하고
50:53
그랬겠지만 그렇게 적극적인 활동까지는 못했다
51:04
요거는 바로 잡아야 된다 그리고 대형을 비롯한 오기선 최승만 최승만은 나머지
51:12
분들은 심지어 함석헌 선생조차도 사실 중국인가봐
51:18
숨어있고 이랬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소극적 부정형에 포함시켜야 되지 않을
51:25
가능성이 드네요 마지막으로이 문제의 조선의 역사를 등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51:31
비판하고 진상 구명과 시성 시정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던 사람들인데
51:37
[음악] 의외로 기독교인이 많아요 앞서 소개했던 앱이나 단조의 제자
51:44
가시아기 기엔이라는 목사님은 3.1운동 때도 조선민중을
51:51
강력히 지지하면서 일본 제국의 철수를 주장하고
51:58
결국 일본이 어디 조선인을 지배할 자격이 없다 이런 얘기도 했죠 이분이
52:03
그 천견이란 말을 쓰시면서 하늘이 우리를 지금
52:09
붙이고 있다 근데 그냥 막연한 얘기가 아니고 바로 뒤에 나오죠 이번
52:14
진제로 수많은 죄악이 자행된 것은 정말 슬프다 특히 약자를 참살한 국민에게는 여기서
52:22
약자를 참살했다라는 것은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인에게는 화가 있을거다
52:28
이렇게 강력하게 여전히 학살이 작용되고 있던 10월 중순에 이런 글을 쓰시죠
52:35
일은 학살이 일어난게 무엇 때문이냐 군대 군국주의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래서 군대를 줄여야
52:43
된다 이번 자경단 학살부터 딱 군대에 폐습이 소위 군인 정신이라고 하는
52:48
그런 걸로 아주 바이러스가 퍼져서
52:53
생긴 일이다 우리는 군대를 줄이고 세계 평화를 촉진해야 한다 이런
52:59
군축 주장의 기회로도 삼습니다 그리고
53:04
구약 성경의 십계명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개념을 반복해 강조하면서
53:10
전쟁 때의 살인도 안 되고 국법에서 사용되는 사용 제도도 폐경이 되고 또 정당방위를 내세우며 자행되는
53:18
이번 작용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조선인이 막 우리를 죽이러 오니까 우리가 먼저 조선을 죽이자라고 하는 정당방위
53:24
논리거든요 그것도 말도 안 된다 기독교는 절대 살인을 다
53:31
동경은 부정하고 있다 그거는 살인하지 말라는
53:37
계명은 절대성을 가지라고 주장하면서 요즘 또 우리가 논의가 되고 있는 일본은 아직도 사용 제도가 있고
53:44
사형이 시행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이 100년 전에 사형제
53:50
폐지 강제징병제 폐지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까지도 부정하는
53:55
정말 그래서 금병동 선생님은 이런 가시하기를 무자비하고 같은 권력에도
54:00
정면으로 봐서는 두려움 없던 철인이라고 표현하고 계시죠 이게 바로 이런 사람이 일본 기독교인 중에
54:07
있었다는 것이 지금 그나마 희망입니다 또 한 명은 도쿄 제국대학교
54:15
평생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생각했던 그리고 가장 큰 희생자는 조선인들이 아닐 수 없다
54:22
그리고 이후에 그 ymca가 협력해 가면서 2600명을
54:28
처음 공개했고 희생자 명단을 그리고 농담까지는 아니고 그 실태를
54:33
6천명 이런 것들을 다 정리하면서 같이 협력했던 지식인입니다
54:40
희생자 다수는 우회한 양민이며 얼굴 이런 학살은 얼굴
54:45
좇아 들 수 없는 대치역이다 일본인에게 신로 자유에 대한 모독이며
54:52
민중에 대한 반역이다라고 아주 강력하게 학살을 비판합니다 그래서 이런
54:58
신호 사쿠조는 일본 다이소 데모크라시의 기술이라고 불리면서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이런 인물이
55:04
가가도역과 함께 기독교인이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고요 또
55:10
기독교인으로서는 주목이 안 됐던 분이에요 사회주의 운동에 거두인 스즈키 분진하는 분입니다 이분도 사실
55:17
기독교인이에요 기독교 사회주 그래서 가가도역과 함께 왜 해를 결성해서 일본
55:23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가장 앞장서 그리고 마지막 생애 마지막까지 교회 장로로서 열심히
55:28
헌신했던 분입니다 이분은 노동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55:36
양옆에 신호와 스즈키가 있잖아요 이렇게 도쿄 신인회라는 데서 같이 예빈한테
55:42
배우는데이 제자들은 전혀 선생들과 다른 거예요 선생의 선생들의 그 아주 이런
55:49
상황에서 애매한 태도를 대립하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55:55
이런 학살이 생긴 거는 우리가 일본인이 정복자로서의 우울감을
56:00
그들에게 대해 왔던 것이 이런 사태로 빚어진 거고 조선인 부를 설치해서 우리는
56:07
특히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해서 더욱 조사를 해야 한다 철저하게 진상규명할 것이다 이렇게
56:14
적절히 대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에 또 한 명이
56:21
박열이라는 영화에 보면은 전에 고민과 바귀를 마지막까지 변화하는 변호사가 나오죠 영화의
56:28
후세에다 쓰시라고 하는 유명한 변호사입니다 이분도 이제 다 아까 신호사 구조
56:35
스즈키 분지 후세 다 똑같은 동북지방 우리조차
56:41
함경도 같은 시골 출신들의 똑같은 고향이고 다 선후배로 아주 서로
56:47
아껴주는 사이였는데 이분도 러시아 종교의 신앙생활을 어릴
56:52
때부터 해가지고 심지어 니콜라의 성당 부설 신학교 입학한 신학생이기도 했습니다
56:58
근데 중간에 이제 그만두고 법학으로 옮기는데이 사람은 자신의
57:04
생애 모델이 기독교인으로서의
57:14
톨스토리였어요이 사람의 변호사로서의 사상이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57:20
아내가 독실한 불짜라 생애 마지막에 이제 불교를 옮기긴 했지만 사실 기독교인으로서 그 수많은
57:27
이팔 독립선은 직후에 조선인 청년들 변호 박열 뭐 이런 모든 일은 사건들에
57:34
대한 변호 이런 것들이 다 기독교적 양심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구요
57:41
안 떨어지진 직후에도 그 열도 안아 키스트였고
57:48
저분이 톨스토리에 심취했다고 보면 톨스토리도 아나키즘 사상을
57:55
문학으로 표현한 분이거든요 아마 사상적으로 많이 동료가 됐을 것 같네
58:02
당신 아나키스트라고 지금 편드라고 조선인
58:14
학살에 대한 진상 및 그 책임에 관한 건을 발표를 합니다 6개의 질문을 해요
58:20
죽임당한 조선인의 수는 몇천 명인가 정부를 향해 공식 소환을 보냅니다
58:26
원인은 뭔가 누가 죽였는가 군인인가 경찰인가 자경단인 사례 방법은 뭔가 시체들은
58:32
어떻게 처리했는가 등등 이거에 대해서 당시 정부도 답변을 거부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이 질문에
58:39
대한 답변은 존재하지 않아요 일본 사람 이 문제에 대해서 희생당사자인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58:46
대해서이 후세에 다투질 변호사가 던진 질문을 다시 한번 일본 정부를 향해
58:52
던진 사례가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다시
58:57
들여다 봐야 될 여섯 개의 질문이 라고
59:04
하는이 예술가 제가 지금 있는 야마나시에 출신인데
59:09
소다가의 경성감리교회 출석했던 일본 감리교신재
59:14
그리고 야나기문역시 같은 미학자든가 함께 조선의 사라져가는
59:20
백자 소반 등 민중 예수를 지키는 운동을 벌였어요 그리고 1927년에
59:26
광화문이 철거될 때는 이거 안 된다 이래가지고 광화문 도전 운동을 해서
59:32
실제로 도전을 시켰죠 이 사람은 아까 유치원은 완전 반대예요
59:39
조선인들이 약탈하고 강간한다는 소식도 있고 그럴 리 없다
59:44
오히려 선도 조선인들을 선동한 못된 일본인들이 있을 것이다
59:51
일본인들은 조선인에 대해 너무 이해가 부족하다 나는 지금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정말
59:57
저주받은 인간들이다 나는 지금 당장 저 손님들을 변화하기 위해 그것을 가고 싶다 이렇게 쓰고 있어요
1:00:04
그리고 당시 뭐 일본 조합 교회에
1:00:11
어떤 유일선 목사 같은 친일 목사 등은 의연금 모집 그리고 안부 확인 뭐
1:00:16
이런 활동들에 집중하면서 뭐 이렇게 조선인 학살 같은 것은 이런 방법 아니에요
1:00:23
근데 오히려 아사카 타쿠미는 교회의 태도가 정말 아쉽다
1:00:29
교회는 다른 사명이 있다 뭐 의연금 뭐고 연락 통신 하는데 뭘 따는게 교회 갈 일이 아니다
1:00:36
신의 소리를 듣고 두 민족 사이에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 근본을 바라봐야 되고
1:00:42
등대가 되고 정신적으로 이끌어야 된다 군대나 뽐내고 만세 일기를 자랑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1:00:51
그리고 이때 우리가 무엇이 주의했듯이 가장 올바른 길인지 나는
1:00:56
계시를 받기에 기도할 것이다 이러면서 그 당시 교회가 하는 모든 활동들에 대해서도 아주 그 가식적이고
1:01:05
정부의 그냥 조치에 그냥 수능하면서 물타기하는 활동들에 대해서 아주
1:01:12
근본적으로 비판을 합니다 이런 사카타 국민은 이제 마무리에
1:01:17
묻혀 있으니까 한번 우리가 또 찾아이 관동대지진을 이렇게 대응했던 아사카를
1:01:24
기억하면서 한번 또 찾아뵐 필요가 총독부 산림청 직원이었잖아요
1:01:32
그래서 그 총독부 직원으로서 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활동을 하지 뭐
1:01:39
어떻게 뭐 좀 그런게 있으니까 뭐 그래도
1:01:44
문서로서 일기라는 이런데 남겨둔 거죠 그렇게 그래서 그런 어떤 인식과 태도를 볼 때는
1:01:50
적극적 부정형 저항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어
1:01:59
아주 중요한 인물이 나가이 류타르라고 하는
1:02:05
정치인이에요이 사람은 남관리해서 세례를 받고 평생
1:02:12
기독교인으로 사는데이 자경단이 막 만들어지고
1:02:17
유언비를 퍼트린게 정부 아니냐라고 내무성에서 처음 내려보낸 그런 전보라든가 이런
1:02:24
문서들을 지목하면서 오히려 그런 유언비어를 단속하고 자경단에 만행을 규제해야 될
1:02:30
정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국회에서 총독 사립도 조선총독 등 그리고
1:02:37
야마모토 당시 수상에게 아주 신랄하게 지적하고 책임을 추궁한 정신입니다 거의 유일한
1:02:44
정신이에요 근데이 사람도 기독교인이었다 물론이 사람은 3 40년대는
1:02:50
군국주의 체제에서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좀 그 마지막 전시하에
1:02:56
죽으면서 일본 민중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죽죠 좀
1:03:03
최소한의 양심인데 이때 당시에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추궁했던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03:11
그리고
1:03:16
한국에 몇 명을 좀 소개하고 끝낼까 하는데요이 부산 일신대학교 출신으로서
1:03:22
마산 드시니어 성경 교사도 이랬던 아주 열혈 청년
1:03:29
여성 정치인이죠 박순천 선생님 마침
1:03:34
간도 지진 때 니혼 여자 대학에 유학하고 있었어요 이듬해
1:03:40
추도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우리는 어떤 수단으로든 일본의 복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1:03:46
메시지로 강연을 연설을 그러니까 뭐 경찰이면서 또
1:03:53
고철 겪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활동이나 그분의 어떤 기록 이런 걸 앞으로 또 살 필요가 있는데 이런
1:04:00
용기는 기독교의 성이 일본 현지에 있었다는 거 기억할만 하고요 이 사진은 제가 그
1:04:10
페이스북에서 올라와 있길래 마침 이승란이랑 찍은 사진이 있길래 제가 이번에 썼습니다
1:04:15
이 중앙대학교 창립자이기도 하죠 창립자인가 아무튼 초대를
1:04:28
동상이 있는 분인데 마침 이분도 이제 일본 유학 갔다 온 직후에이 소식을 듣고는
1:04:33
일본으로 가서 그 YMC 총무 등에게 자료를 받아요 아까 조사하고 있던
1:04:40
희생자가 몇 명이 여러분 입수해서 미국으로 넘어가서 이승만 등에게 자료를 전달합니다
1:04:46
빼주고이 기독 신부 24년 2월 보면은 영국 등의 이런 학살 문제가 조선인 학살 문제가
1:04:52
보도되었다라는 기사가 뜨는데 이런 해외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데
1:04:57
기여한 활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것도 상당히 위험 험지에 자발적으로
1:05:03
가서 정보를 구해서 또 미국 가서 전파하고 이런 연기 있는 활동이었다라고 볼 수
1:05:09
있겠습니다 근데 나중에 이제 3 40년대에 활동하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1:05:15
그때 이제 임영신이 이승만과 미국에서 함께 만날 수도의 사진이죠
1:05:20
이제 마지막입니다 간도 지진에 대해서
1:05:26
조선대학 조선 조총련 학교에서 가르치신 금병동 선생님은 이걸 사료를 정리하면서 이런 말을
1:05:33
간도 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이 나라 종교인들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했던 것 같다
1:06:15
근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 저항하고 비판하는 발언이 좀 사료가 많지 않아
1:06:21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이번에 제가 여러 자료들을 다 이렇게 모아 가지고 정리하다 보니까 오히려
1:06:27
침묵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발언하고 비판했던 저항했던 사람들도
1:06:34
엄청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06:39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이 간도 대신 사건의 기독교 역사에서 뭔 의미가 있는가 아까 우리
1:06:45
날먹기에서 정말 중요한 지적하신 거예요 그런데 3.1운동
1:06:51
그리고 직후에 있었던 간도 경신참변 이런 것들은 우리 제암리교회 수천리교회
1:06:58
장암동과 같은 기독교 신앙촌의 학살 뭐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상당히 기독교 역사의 한 중요한 축으로
1:07:06
민족대표 33인 뭐 이런 거 얘기하면서 보지요 그런데이 간도 돼지지는 바로이 우리가
1:07:14
상당히 중요하게 기독교 사회 일부러 여기는이 두 사건의 금위의 서있던
1:07:20
학살이다라는 걸 생각할 때 결코 그런 면에서도
1:07:27
쉽게 광각으로 넘어갈 사건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이 사건을 통해서 1923년
1:07:33
이후에 한일양국 기독교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고 어떻게 변동 있었는가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살펴봐야
1:07:41
될 사건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안 살펴봤다 예를 들면 20년대 사회주의가 상당히
1:07:49
붐이 일어나니까 한국에서도 기독교 사회주의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대화 이런 문제들이
1:07:54
일어났잖아요 그 어떤 하나님 또 기폭제가 되는 사건이기도 하지 않을까이 조선인
1:08:01
낙상을 해보고 이때이 경험이 그 이후 1920년대
1:08:08
30년대 초까지의 어떤 기독교인들의 사상 인식들의 어떤 영향을 한번 보기
1:08:14
위해서라도 중요한 내용이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우리가 앞에 두 유형이죠
1:08:21
대표적인 지식인들 엘리트들 그리고 다
1:08:28
적극적으로 군경에 협조하거나 침묵하거나 대세에 순응하면서
1:08:33
낙관적 종말론에 기초한 성소 인용을 하고 주류적 그 신의 섭리다 뭐 하나님의
1:08:40
은혜다 이런 거 얘기하면서 관념적인 주상적 메시지를 남발합니다 그런 것들이 앞에 두유형이 보이는
1:08:47
이번 간도 지진을 통한 실망스러운 모습이고 이것은 지금도 수많은
1:08:53
광주 학살 사삼 문제 이런 것들을 우리가 현대사 속에서 다룰 때
1:08:58
교회가 보이는 태도 인식 이런 것들을 해석 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증거로
1:09:05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경우는 두 j라는 걸로 유명하죠
1:09:14
그걸 배워서 김규신은 나는 두 시밖에 없다 크라이스트와 조센 그런
1:09:22
얘기도 이제 있죠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저 팬이라고 하는 말이 갖고 있는 그
1:09:28
함의가 물론 아비나 단조나 구마모토 밴드 같은 국수시지 적은
1:09:34
의미로서의 접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독교 사상가가 저편이라고 하는
1:09:40
거대한 집단성을 가지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는 것이
1:09:47
문제가 있지 않나라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1:09:52
과연 계속 우리가 손이나 하면서 사상을 다 무조건
1:10:00
긍정적으로 떠받들고 이렇게 해석할 놈에 있어서이 간도 지진에서의이
1:10:07
문제도 한번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두
1:10:13
번째 이제 세 번째 유형이죠 마지막
1:10:18
현장을 지킨 사람들은 앞에 그 두 유형과는 다른 어떤
1:10:24
고난을 함께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였던 것을
1:10:29
발견하게 되고요 마지막으로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부정했던 사람들을이 의외로 엄청 많았다는 거
1:10:35
그것은 정말 의미 있는 입은 조사 결과입니다 그리고
1:10:43
가시화기 같은 경우는 구약 성경의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이 구절을 상당히 비타협적으로
1:10:50
강조하는데 이런 사건 하나에 대해서 해석의 근거로 삼는 성경 구절들이 또
1:10:56
다 달라요 그런 것들은 이제 성서학적 앞으로 이제 신학적인 분석에 또 대상도 되지 않을까 하는
1:11:03
생각도 그리고이 저항에 있어서는 좌파든 우파든
1:11:08
관계없이 양심 위에서 그런 것들이 나오죠 그것이 기독교
1:11:14
신앙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구요 마지막으로
1:11:19
메이지 제국시대의 기독교인이 가진 제국주의 제국 자체를 긍정하는
1:11:25
기독교인으로서의 한계 그에 비해서 다이소 데모크라시대를 주도했던 그
1:11:31
다음 세대들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는 것 그리고 지무라와 함석헌의 그 대비되는
1:11:38
새로운 저항인으로서 출발하는 함소편의 모습에 원점으로서의 관둬지신 이런 것들을 볼
1:11:44
때이 사건은 중요한 어떤 기독교 지식인들의 시대적 사명이
1:11:52
붕괴하고 있는 중요하다는 역사적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
1:11:58
기독교 사쪽에서도 상당히 저렇게 조명할 만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런 생각을 들고
1:12:05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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