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은 너무 늦게 왔다
우리에게 김시종은 “너무 늦게 왔다”라고 해야 할 듯하다. 1955년 출판된 그의 첫 시집 번역본인 이 책 말미의 해설에서, 재일조선인 연구자 오세종은 그를 두고 “동아시아 최고 시인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이를 믿든 말든, 시의 내용이나 표현 모두 일본 문학계에서 결코 쉽게 싸안을 수 없는 시인인데도, 문학을 조금 아는 일본인이라면 적어도 그가 일본의 현존하는 최고 시인 중 한 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김시종 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저작집이 10여 권으로 출판되고 그의 시에 대한 심포지엄, 그에 대한 문학지들의 반응 등이 크게 이어진 2018년은 이를 확인해주는 해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김시종은 문학을 하는 분들에게조차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 명성과 중요성을 안다면 정말 너무 늦게 왔다고 할 것이다.
혁명의 열정 속에서 4·3 항쟁에 참여했고 일본에 가서도 재일조선인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니, 그의 시가 ‘리얼리즘’에서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남들은 ‘해방’이라고 환호하던 8·15를 비통한 패전으로 받아들였던 ‘황국 소년’이, 다른 이들에겐 환한 빛이 된 사건을 심연의 어둠으로 추락하는 사건으로 겪었던 그가 이념이나 체제가 제시하는 빛을 순순히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이다. ‘반한분자’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일종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여 탄생했다는 조총련 지도부와 계속 싸웠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결국 세 번째 시집은 조직에 의해 해판되어 망실되고, 네 번째 시집 〈니이가타〉는 방화금고에 넣어둔 채 10년 넘도록 출판하지 못한다.
이 시집은 ‘재일을 살다’라는 말로 잘 알려진 그의 시적 궤적이 어디서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26세 청년의 패기와 솔직함, 그러나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고 살 수 없는 처지로 인해 갖게 된, ‘안 보이는 것을 보려는’ 의지가 현실의 이런저런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는 차분한 열정에 실려온다. 그런데 〈지평선〉이라는 제목의 이 시집은 시 가운데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많은 ‘사건’이나 ‘사실’ 때문에, 그리고 읽기 쉬운 리얼리즘적 묘사 때문에, 그가 발 딛고 선 ‘지평선’ 안을, 시선이 쉽게 도달하는 곳을 시적으로 탐색하려는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나는 오히려 ‘자서(自序)’에 표명되어 있듯이 이 시집은 우리를 지평선 밖으로 인도하려는 시도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심연의 어둠을 보았던 그였기에, 문학을 하려 한다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면 진정 머리 들이밀고 들어가야 할 곳은 화려한 빛의 세계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임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테니까. ‘자서’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진정 새로운 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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