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 Facebook

(2) Sejin Pak - 이런 논문이 있군요.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 Facebook

Sejin Pak
tSsdoroepnpg7e1r2ul3fg69ai919 g2ll0m192472e lt9l1442Se0g40bh ·

이런 논문이 있군요.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나자레원 사례를 중심으로>
https://www.earticle.net/Article/A268642

[재한일본인처의 삶은 여성으로서 겪었던 이산의 경험, 현모양처로서의 삶의 유지, 경계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고향지향성을 지난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제 식민지시기에 조선인 남성과 결혼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인처들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국제결혼이민자의 한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제대로 된 지원이나 대우를 못 받으면서 ‘잊혀진 국제 미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





Park Yuha
Favourites · tSsdoroepnpg7e1r2ul3fg69ai919 g2ll0m192472e lt9l1442Se0g40bh ·

어제 모셨던 김종욱 작가는 “재한 일본인처”에 대해 박사논문까지 쓰신 분이다. 사실 많지는 않지만 이분들에 대한 연구도 한일양국에 없지 않다. 어제 강연을 들으며 생각한 것도 많지만 자세히는 다시 쓰기로 한다.
우선 말해 두고 싶은 건 해방이후 “해방”되지 않았던 건 조선인 위안부나 징용자만이 아니라는 점. 이런 말을 하면 물타기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러번 말했던 것처럼 피해를 말하는 일에 가치와 의미가 있다면 또다른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심정적 연대이지 ‘피해정도의 비교와 배척’이 아니다.
더구나 해방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고, 일본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편들의 폭력 끝에 버림 받거나 가난 속에 자식들도 죽고 혼자 살아 남아 차별과 냉대 속에서 심한 경우 거지생활이나 매춘조차 해야 했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마저 시도하거나 감행한 이들을 두고 그 고통이 다른 누군가에 비해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서였을까. 김종욱 작가에 의하면 언론은 인터뷰를 내보내면서도 그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삭제했다고 한다.
사회적자살을 종용했다는 점에서 해방이후 한국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이들을 보살피는 시설을 설립하고, 직접 이들을 보살피고, 귀국을 도운 이들이 몇사람이나마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김종욱 작가는 말하자면 그런 이들의 계보를 잇는 분인 셈이고 이제 곧 그들이 존재하지 않게 될 시간을 앞두고 그 오랜 보살핌-보이지 않았던(한일)관계의 마무리를 짓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일본인처들에 관한 자료를 들여다 보다가 작금의 문제인 징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일종족주의”의 저자 중 한 분인 이우연 선생과 이 문제를 오래 다루어 온 정혜경선생의 본격토론이 시작되기도 한 지라 그 자료중 하나를 올려 둔다. 이우연 선생께는 이미 보여 드리고 의견개진을 부탁했다.
1972년에 나온 일본인처 증언특집에서 46세 이재선씨는 이들의 남편으로 등장해서 <충청도출신인데 서울에서 징용대상이 되었고 북해도 탄광으로 ‘연행’당했는데, 가혹한 환경이어서 도주. 하지만 일본여자를 아내로 맞아 두면 목숨부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거라 해서 일본여자와 결혼했다>고 말하고 있다. 연애한 경우도 있지만 “조선인인 줄 모르고 (혹은 얼굴도 모르고 )마을촌장등이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는 일본인여성들도 있으니 구조적으로는 상충하지 않는 이야기다.
분명한 건 이들 모두가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의 희생자라는 점.
주류권력은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자신의 여자라 해도 소모품으로 바친다. 피난길 일본인들이 소련군에게 일본여자를 ‘위안부’로 바친 것도 같은 구조. 물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위안부”도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공헌”하는 것으로 (국가는) 의미부여를 해 둔다. 미나미 지로 총독은 이른바 “내선일체”결혼을 권장하면서 표창까지 했는데, 패전이후 그 여성들은 한국호적에 들어간 경우 자기도 모르는 새에 국적상실자가 되었고, 그렇게 만든 전후일본은 이들에게 냉정했다. 일본에 갈 수 있었던 경우도 남편이 조선인이면 가족이 함께 갈 수 없어 이산가족이 된 경우도 많다. 이산가족은 남북만의 일은 아니었다.


24 comments
Seokhee Kim
어제 꼭 듣고 싶은 내용이었는데 선약이 있어 못 갔습니다. 아쉬웠는데 포스팅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Reply
4 y
Park Yuha
Seokhee Kim 또 기회가 있겠지. 언론에서 여름이면 다루게 되어 다행이지만,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
위 내용은 김선생님 얘기라기보단 내 생각이니 충실한 리포트는 아님.^^
Reply
4 y
Seokhee Kim
박유하 네 그런 거 같아요.^^ 오래전부터 하시던 말씀이지만 또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라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손이상선생이 잘 정리해 준거 같더라구요. 읽어보겠습니다.
Reply
4 y
김희숙
Seokhee Kim 어제 오셨으면 뵈었겠네요.^^ 저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랑 갔다가 뒷풀이는 못 가보고 일찍 헤어졌어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유하 선생님^^
Reply
4 y
Edited
Park Yuha
김희숙 잠시지만 다시 만나 반가웠어요. 담엔 꼭 천천히 얘기해요!
Reply
4 y
김희숙
박유하 네네넵^^
Reply
4 y
李宇衍
화자는 1938년 2월에 징용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집이라는 형태로 전시동원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19개월 뒤인 1939년 9월의 일입니다. 게다가 징용이 실시된 것은 1944년 9월부터입니다. 그 전에도 일부의 징용이 있었지만, 그것은 군속에 한하였습니다.
그가 1925년생이라고 했으니 1938년 2월이면 불과 12-13세입니다. 2월생이니 12세이기 쉽겠군요. 그런데 징용은 만 17세 이상 55세 미만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불과 12-… See more
Reply
4 y
Injik Cho
李宇衍 교수님 납득이 가는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이재선씨가 본인의 과거사를 단순화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약간 자의적 편의적 주관적으로 재구성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요. 다만 "조선인은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하도록 강요받아 죽은 사람도 많았다" "사키야마하는 데 일급이 조선인은 3엔, 일본인은 7엔이었다"고 적은 부분은 좀 눈길이 갔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서에서 쓰신 글에 보면 업무숙련도에 따른 조선인과 일본광부의 일종의 합리적 차별로 인해… See more
Reply
4 y
Keumryong Cha
강제 징용을 갔었다고 해야, 뭔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도 바탕에는 있었겠지요... 요즘의 태양광기업들처럼...
Reply
4 y
Park Yuha
李宇衍 신속하고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분명 나이로 보면 공식징용자로 보기는 (강제동원)어렵겠네요.
그리고 글 중에 奉公라는 말이 있는 걸 보니 처음엔 누군가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허드렛일을 해주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실 국내에서도 그렇게 일본인집에서 남의집살이를 한 경우는 많으니까요.… See more
Reply
4 y
李宇衍
박유하 또 이어서 쓰겠습니다.
Reply
4 y
Park Yuha
李宇衍 천천히 해 주셔도 됩니다. 저도 고발직후에 온갖 이의제기와 비난에 대해 혼자 답하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선생님의 경우 공론장이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그 공론장에서의 토론을 우선하시고 여유가 있을 때 적어 주세요.
Reply
4 y
李宇衍
박유하 예. 감사합니다
Reply
4 y


장철규
이런 내용은 처음 알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Reply
4 y
Sungjeun Wi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정보를 공유해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Reply
4 y
Byung-il Choi
꼭 듣고 싶군요. 기회가 되면 말이죠.
Reply
4 y
황상윤
이런일도 있었군요 ㅜ ㅜ
전혀 생각못한 일 입니다
지나간 슬픈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사람들에 화가 납니다 ㅜ ㅜ
Reply
4 y
Park Yuha
황상윤 “지나간 슬픈 역사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걸까요?
Reply
4 y


Sejin Pak
김종옥 작가가 쓰신 책이나 글이 있나요?
Reply
4 y
Park Yuha
Sejin Pak 박사논문이 있는데 아직 책이 되진 않은 거 같아요
Reply
4 y
Sejin Pak
이런 논문이 있군요.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나자레원 사례를 중심으로>
https://www.earticle.net/Article/A268642
[재한일본인처의 삶은 여성으로서 겪었던 이산의 경험, 현모양처로서의 삶의 유지, 경계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고향지향성을 지난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제 식민지시기에 조선인 남성과 결혼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인처들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국제결혼이민자의 한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제대로 된 지원이나 대우를 못 받으면서 ‘잊혀진 국제 미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나자레원 사례를 중심으로 ‒
EARTICLE.NET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나자레원 사례를 중심으로 ‒
잊혀진 재한일본인처의 재현과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성 고찰 ‒ 경주 나자레원 사례를 중심으로 ‒
Reply
Remove Preview
4 y
Park Yuha
Sejin Pak 네. 알아요. 저도 한번 쓸 생각이어서 현재까지 한일양국논문은 대충 다 모아 두었어요. 제 관심은 가해국의 피해자문제로서도 그렇지만 ‘국가와 젠더’ 의 관계에 있고요.
Reply
4 y


Seong Hwan Park
이중섭씨가 이산가족 케이스였죠.
Reply
4 y
Park Yuha
박성환 맞아요. 그래서 더 귀국한 분들한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Reply
4 y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