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정민 - 송구영신(送舊迎新) 둘- 한일관계 유감 「서정민 교수의 동경에세이- 종교사학자의 생각」 블로그에 오시면... | Facebook서정민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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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送舊迎新) 둘- 한일관계 유감
일제 하 식민지 한국에서 한국의 민중들과 고통을 함께하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전도자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가 있다.
그가 죽어, 그의 시신이 수원에 묻힐 때, 한국인 친구 김태희는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데도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사랑에 고무되어 노리마츠 형은 조선인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에는 영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리마츠 는 조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조선을 사랑해 주었던 저 마음, 죽을 때까지 조선, 조선 하며 하늘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록이 새겨져 있다.
“우리들은 토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을 미워하다./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일본을 미워한다./그러나 이름 없는 노리마츠의 일본을 사랑한다./노리마츠와 같은 선량한 일본인을 사랑한다...”
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일부 보수우익의 일본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의 일본, 일본인과는 소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와 일본, 아시아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리더십과 민중의 삶과 정서사이에 큰 괴리감을 지닌 나라인 것 같다. 가끔 내가 말하듯이 “착한 일본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쁜 일본”, 대개 이것은 정치 리더십이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위해 선택하는 ‘나쁜 길’의 결과로써 나타난다.
현직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 언젠가 자세히 쓴 바 있지만, 그것은 그가 국립묘지를 참배한 것과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근대 일본의 바르지 않은 과거에의 참배이며, 전쟁에의 정당화이며, 군국(軍國)일본에 대한 향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일본인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집약도가 높은 보수층 일각의 집결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또 장구한 내부 갈등과 이념의 소용돌이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한편 한국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일등 국가일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헤아리지 못하고 인류사회 양심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면 경제력이 크고 부강해도 일류국가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백번 천 번 맞는 말 일이다. 그런데 “인류사회 양심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과, ‘일류국가’라는 말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말과 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정치의 권력지향성과 민중정서 간의 괴리감은 남의 나라일 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한일양국 모두 지극히 보수적인 정권의 혜안(慧眼) 부재, 일부 민중 정서 간의 충돌, 한류(韓流)현상의 급락, 일본 자연재앙의 여파 등등으로 인해, 지난 한 해 한일관계는 유래 없는 냉각상태였다.
정치보다는 사회문화이고, 정부보다는 ‘비정부단체기관’이며, 양국의 한 사람, 한 사람 간의 분별 있는 이해와 인식으로 미래는 좀 더 밝아질 수 있다고 여긴다.
새해 한일관계 새로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생각한다.
노리미츠 마사야스, 1912년 그가 활동하던 경기도 수원에서 동지들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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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enlm Seo
새해복많이받으십시요~♪ 어떤책에서도 볼수없는 素敵な좋은글감사드립니다 갑오년에도 변함없이좋은글 읽을수 있었으면 좋겠읍니다~Happy new year~♪徐賢任올림
Chisun Jee
일본인 중에도 우리나라를 저토록 사랑한 분이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네요!!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검색결과
검색결과 약 1,430개 (0.29초) 검색결과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의 한국 선교활동과 한국인식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Mission Works and Recognizes the Problem by Norimatsu Masayasu in Korea ...
2010. 12. 25. — 승송아휴(乘松雅休)(노리마쯔 마사야스:1863-1921)는 1863년 7월 12일 일본 에이메(愛媛) 현 마쓰야마(松山)시에서 지주인 노리마쯔(乘松忠次郞)의 장남 ...
2017. 5. 14. — 이름은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로 1896년 12월 조선을 방문하였는데,. 그는 일본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습니다. 경기도 ...
19세기말 일본인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의 포교활동에 의해 시작된 신앙공동체로서 제도교회와는 매우 다른 신앙노선을 보여주었으나 최근에는 기성교회와의 ...
노리마츠 마사야스(乗松雅休、1863-1921)의 삶을 전하는 구전 이야기 중에 그의 한국인 동지, 친구들이 이런 말로 그를 칭했다고 한다. 우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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乘松 | 필수 포함 항목:
乘松2019. 9. 24. — '승송 목사'로 불리는 노리마쯔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는 일본 메이지학원대학 신학부 재학 때 플리머드형제단 소속 영국인 선교사 H.G. ...
2017. 3. 12. — 플리머드 형제단 소속의 영국인 선교사 브랜드(H.G. Brand)가 1888년 일본에서 선교를 시작하자 이에 동참했던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가 한국에 ...
2020. 4. 20. — 19세기말 일본인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의 포교활동에 의해 시작된 신앙공동체로서 제도교회와는 매우 다른 신앙노선을 보여주었으나 최근에는 ...
2021. 6. 14. — 제1장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일본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 25 제2장 다우치 지즈코田內千鶴子: 한국 고아 3천 명의 어머니 / 47 제3장 니시다 ...
...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9.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박열(이자오 토미오) 10. 인도주의를 실천에 옮긴 후세 다츠지(布施辰治)변호사(오오 11. 언론의 양심을 ...
목차. 추천사 / 5. 한국 그리스도인 독자 여러분께 / 9. 옮긴이의 말 / 13. 개정판에 부치는 말 / 18. 들어가는 말 / 23. 제1장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일본 최초의 ...
2016. 10. 14. —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는 북수동에 정. 착 ... 존중은 모든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법하다. 승송아휴(乘松雅休)(노리마쯔 마사야스:1863-1921)는 1863.
일본인 개인 전도자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의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은 미워하지만, 노리마츠 선생의 일본은 미워할 수 없다.
수원에 최초로 정착한 일본인은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 온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로 1900년의 일이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 방식은 군인-선교사 ...
2010. 4. 1. — ...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가 한국에 전도하면서 비롯되었다. △ 동신교회를 설립한 노리마츠 마사야스 기념비. 그는 1900년 8월 9일 ...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의 한국 선교활동과 한국인식에 대한 고찰Go to Link. 연승, 이시준. ArticleIssue Date2016Citation일어일문학연구, v.96, no.2, pp.478 ...
목차. 추천사 / 5 한국 그리스도인 독자 여러분께 / 9 옮긴이의 말 / 13 개정판에 부치는 말 / 18 들어가는 말 / 23 제1장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일본 최초의 개신교 ...
'승송(乘松) 목사'로 불리는 노리마쯔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는 일본 메이지학원 대학신학부에. ... 그리고 오늘은 천안 독립기념관, 화성제암리 교회, 수원 노리 ...
양현혜 · 2009 · Christianity and politics ... 노리 마츠 마사야 스 (乘松雅休) 는 와 타세 보다 15 년 이나 앞 선 1896 년 에 이미 조선 에 복음 을 전하고 있었다 . 노리 마츠 는 플리머스 동포 교회 ( Plymouth ...2010. 6. 1. — 8. 교육과 신앙으로 한국에 생을 바친 마스토미 인자에몽(枡富安左衛門) - 이수경 [칼럼] 기독교 포교에 생을 바친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 김정애
2017. 2. 19. —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라는 선교사님이다. 수원에 가 보라. 수원 동신교회다. 우리가 일본에 가서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없다. 나. 는, 일본에 ...
리나라에 외- 동신교회를 세운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 1921)다. 한국을 아꼈던 일본인 선교사라 하는데 그 사실을 아는 사. 람은많지 않다,. 동신교회 안에 ...
2023. 8. 11. — 일본인 목사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가 세운 수원동신교회. 노리마츠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2층에서 일요저녁 예배를 보지 않을 가 ...
한상일 저술 — 에 묻은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도 “어제까지도 그처럼 순정적이던 조. 선인 ... 책학자인 교토제국대학의 스에히로 시게오(末廣重雄), 도쿄제국대학의 야나이하라 ...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의 한국 선교활동과 한국인식에 대한 고찰. Since the Meiji Restoration, Japanese Christianity was abolished with forbidden faith and ...
... 노리마츠 마사야스 (乘松雅休, 1863-1921) 가 조선에 들어와 서울 과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를 했다. 1898년 일본에서 활 동하던 브랜드 (H. G. Brand, 1865-1942) ... 이와 같은 배경에서 1827년에 더블린(Dublin)에서 그. 로브스(Anthony N. ... 68) 이 청년들은 회심 후 돈의동의 성서강당에서 1896년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 ...
2021. 6. 14. — 제1장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일본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 25 제2장 다우치 지즈코田內千鶴子: 한국 고아 3천 명의 어머니 / 47 제3장 니시다 ...
2021. 6. 14. — 한국 그리스도인 독자 여러분께 / 9 옮긴이의 말 / 13 개정판에 부치는 말 / 18 들어가는 말 / 23 제1장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 일본 최초의 개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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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마츠 마사야스, '위키피디아
탄생
1863년 8월 25일 이요마츠야마 번사망
1921년 2월 12일 (57세)
직업
전도사승마츠 마사히메 (노리마츠 마사야스,
분쿠 3년
7월 12일 (
1863년 8월 25일 ) -
다이쇼 10년(
1921년 )
2월 12일 )은 일본의 개신교 최초의 해외 선교사.
평생 [
편집 ]
승마츠 마사유키, 브랜드 부부, 승마츠 유노부, 1912년 조선 수원
이요 마츠야마 번사 의 아이로 태어났다. 20대에 상경해, 1887년
일본 기독 공회 에서,
이나가키 신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헌신하고
메이지 학원 에 입학한다.
신학생 시절, 가쓰마츠는 일본 기독일치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도중에
플리머스 브레자렌 의
하버드 브랜드를 만난 것을 계기로 메이지 학원을 중퇴한 후 일본 기독공회도 탈회해 개척 전도를 하고 있던 브랜드의 집회에 참가한다. 그것이 나중에
그리스도 동신회 이다. 나중에 오사카, 기슈, 강천, 기타코시, 신슈에서 전도했다.
1896년
청전쟁이 끝나자 단신으로 조선으로 건너 서울 수원을
중심 으로 전도했다. 일본인 최초의 해외선교사이다. 브랜드
슈토 신조 등과 서울에서
로마서를 번역해 1899년 9월 9일 '신약성서 라마서'로 출판했다.
질병 때문에 1914년에 귀국한다. 1921년에 57세로 사망했지만, 유언에 의해
백양배 의 창설자
이가라시 켄지 등이 조선에 유골을 옮겼다.
현재도
한국 에 승송 기념비가 있다. 이것은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인의 기념비입니다. 사는 것도 주님을 위해, 죽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쓰여 있다.
건축가 오노 유키의 아버지 할머니의 삼촌
[1] .
재주 고승 마츠오빠 기념비 [ 편집 ]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을 위해 죽었습니다.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주님을 사랑하고 사명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주님을 위해 죽었습니다.그들 모두, 그들의 부부 모두, 수십년 동안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일했는데, 그들의 고통은 심장과 폐의 고통, 살과 뼈의 얼어붙음, 배고픔, 수족병 등 극심했고, 북한에 패해 희생당했다. , 소식만 전합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견디시며 생명을 참으셨습니다. 또한 많은 형제들이 기도와 감사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았고, 그분의 생애가 괴로웠지만 그분은 또한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분은 죽기까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형제들이 자신들의 뼈를 한국에 남기고 싶어 한 이유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마음이 담긴 기념비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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